슈퍼히어로 우리아빠
임지형
산하는 게임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이번엔 “으악 도와주세요!”
혹시나 하고 게임 화면 속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게임 속 어디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올리 없었다. 거실로 나가보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하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있는 탁자로 갔다. 그때 속보를 전하고 있는 기자의 뒤쪽엔 정말 어마어마한 불길이 활활 치솟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란 추리닝에 빨간망토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있는 타이거맨은 두 사람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힘겹게 날아와 바닥에 내려놨다.
“와. 저 타이거맨 엉덩이 완전히 크다. 우리 아빠 엉덩이 같이 크네 킥킥.”
강하가 킥킥거리며 한마디 했다. 그제야 산하도 타이거맨 어덩이를 눈여겨봤다. 한 시간쯤 지나 강하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빠가 온 것이다. 등산을 갔다왔다는 아빠의 말에 이상한 산하는 어지러운 꿈을 꾸고 난 것처럼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다음날 학교에선 타이거맨 이야기로 가득했다. 산하는 아빠의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도 책장도 그리고 바닥에도 굴러다니는 물건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산하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붙박이장이었다. 그 옷 손잡이 옆에는 번호키가 있었다. 몇 개의 지문 같은게 보였다. 몇 개의 번화가 색깔이 더 진해 보였다. 그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옷장문이 열렸다.
빨간 망토와 타이거 마스크였다. 아빠가 타이거맨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태권도 승급 시험이 있는데 아빠는 오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아빠는 가족과 함께 갈비집에 갔다. 그때 텔레비전 자막엔 자살소동이라는 글씨가 물결처럼 움직였다. 동생 강하가 화장실에 갔다. 흥분한 기자의 말을 듣는데 화장실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주인아저씨도 난감한지 쩔쩔맸다. 아빠는 온갖 소동을 다 벌이고 치료를 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컸다.
아빠가 불쑥불쑥 사라지는 일은 뜸해졌다. 폭풍전야처럼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어쩌면 어떤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자다가 배가 너무 아팠다. 아빠가 산하를 안고 응급실로 갔다. 맹장염이었다. 산하는 아빠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 힘을 올바르게 써야 할 책임도 있다는 거야. 너희가 보는 만화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을 생각해 봐. 힘을 가진자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잘못된 방법으로 힘을 사용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지 않니?”
아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는 했다.
태형 찜질방 화재는 실시간 화제가 되었다. 아빠가 불타는 건물로 다시 들어가려 했는데 건물 한 축이 불길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몇 명의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아빠를 욕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쉬지 않고 맹비난을 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수군 거렸다. 어떤 아이는 대놓고 계속 욕하는 걸 보니 속이 부글부글 했다.
화가 화산처럼 점점 치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화를 삭이기 힘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책상을 꽝쳤다. 책상이 금이 쫙 가 있었다. 짝꿍 재준이가 산하와 책상을 번갈아봤다. 그다지 힘을 준 것도 아닌데 산하도 깜짝 놀랐다.
체험학습 가는 날이었다.
“사고다!”
누군가 소리쳤다.
사고가 난지 모르고 달리던 차들이 꽁무니를 박았는지 몇 대의 차도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차는 부딪히기 전에 멈춰섰다는 거다.
느닷없이 타이거맨 이야기가 나왔다. 비난만 하더니 이젠 대놓고 칭찬을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택시 기사아저씨가 소리쳤다.
“여러분 좀 도와주세요. 저기 사람이 끼여 있어요.”
그 소리에 옆 반 선생님과 기사아저씨가 밖으로 나갔다.
“힘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을 올바로 사용해야 하는 거야.”
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운전자를 구해냈다.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 박수소리도 들렸다. 산하를 위한 함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뭔가 뿌듯한 기분이었는데 헉! 잘못 알았다. 그 소리는 다른 곳을 향했다.
거기에는 타이거맨 아니 산하의 아빠가 있었다.
사고 현장이 거의 정리가 되고 있는 동안 방송국 기자들이 왔다.
“이번엔 사고 현장을 가깝게 지켜본 어린이에게 마이크를 돌리겠습니다. 오늘 이 사고 현장을 다 지켜봤지요?”
갑작스런 질문에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후끈 달아 올랐다.
“오늘 이 현장에서 타이거맨을 다 지켜 본 소감을 말해 줄 수 있어요?”
“타이거맨은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아빠는 타이거맨 복장 하나를 산하에게 건넸다. 후계자 복장이라는 거다 산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곧 네가 입어야 할 거라는 거지.”
산하는 싫다고 했다.
“산하 너도 너에게 이전에 없던 능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산하는 마스크를 쓰고 거울 앞으로 갔다.
“에잇 되게 촌스럽네.”
일부러 좀 전의 기분을 떨치려고 후다닥 마스크를 벗었다.
어 이상 보지도 만지지도 않기 위해 지퍼를 단단히 잠갔다. 그런데 산하의 머릿속엔 어느새 아빠와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재밌게 읽은 책이다. 영웅의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내가 적용하고 싶은 부분도 그 가족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산하의 아빠 말대로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이 책의 핵심이지 싶다.
읽은책
오지랖 왕자와 푼수 공주 이규희 밝은미래
건수 동생 강건미 박서진 바람의 아이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박채란 키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