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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이것도 역마살, '자전거 여행'
전시가 끝난 뒤에도 인야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작품을 옮기는 문제부터 밀린 공과금, 바닥을 보이는 쌀통까지. 살아낸다는 것이 꼭 무언가와의 싸움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숨부터 나왔고, 저녁이 되면 또 하루를 겨우 끝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때일수록 그의 마음은 더 자주 먼 곳을 향했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돈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인야에게는 그런 처지가 못 되었고, 떠나고 싶은 마음은 늘 벽에 부딪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천천히 돌다가, 앞서 걸어가는 한 가족을 보았다. 아이 둘에 부모까지 넷이었다.
딸은 아버지 곁에서, 아들은 어머니 곁에서 조금씩 떨어져 걸으며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여서, 인야는 자전거를 탄 채 고개를 돌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가족을 이루며 살 수도 있었는데......' 하면서, 자꾸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않고 사는 사람이, 이렇게 한 가족을 부러워 하다니!'
그러면서도 인야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결혼을 했다 해도, 자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안달을 냈을 것이다. 그러니 안 한 거지.
'그렇지만 어쩌다는, 그런 것들이 그리울 때도 있는 것이지......'
자유와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삶이라면, 그 삶의 장점도 분명해야 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의 형편 안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
그 좋은 계절(9월)에 아파트 안에만 처박혀 신세타령이나 하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바라는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생각이 자전거 여행이었다.
돈도 많이 안 들고 그런대로 기동력도 웬만큼 보장되면서, 또 어디든 자신이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춰 기분을 낼 수 있는 여행. 걸어서 가기에는 또 그만큼의 경제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서.
그런 여행으로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 떠나보는 일이 안성맞춤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잠자는 일이었다.
하룻밤에도 2~3만 원은 드는 모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찜질방이었다.
아직까지 그런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전거도 문제였다.
A가 타다 물려준 중고인데다 썩 성능이 좋은 게 아니었다. 특히 기어가 힘을 못 받아 툭하면 오르막길에 체인이 벗겨지곤 했다.
그렇다고 새 자전거를 구입할 수도 없는 처지라, 있는 것을 그대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속력을 낼 것도 없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면 어디든 못 가겠는가?' 하는 배짱이었다.
첫 자전거 여행지는 지금으로부터 27~8년 전에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던 치악산 계곡으로 정해놓았다.
일사병이 날 정도로 덥던 한 여름에 도착해서, 아름답던 가을을 다 보내고... 얼음을 깨고 식기를 닦던 추운 겨울인 이듬해 1월에 자대로 배치되어 떠날 때까지 24주의 너무나도 힘든 훈련을 받았던, 아 지긋지긋했던 곳.
그 곳을 떠날 땐,
"내가 이곳을 향해서는 오줌도 안 싼다."라는 다짐을 했던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까지 싫어했던 건 아니어서, 늘 그리워했던 곳이었다.
벼들이 익어가는 들 가운데엔 병풍처럼 둘려 쌓인 산에서 내려오는 폭이 제법 넓은 냇물이 흐르던, 산과 들이 어울어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있던 곳이었다.
군대 생활만 아니었다면, 한 번 멋들어지게 그 풍광에 몸과 마음을 담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당시, 호된 훈련을 받느라 그런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던질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고, 땀에 범벅이 되도록 굴러야만 했던 그런 지형마저도 지긋지긋해 하던 때였지만... 그렇게라도 스치고 지나던 풍경들이 기억 속엔 그대로 각인되어 갔던 것이다.
아, 얼마나 자유를 그렸던가.
이제 나이가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그 곳에 다시 한 번 가 보려는 것이었다.
가서, 맑은 날 오후라면 더 좋겠지만... 힘든 훈련을 받다가 점심을 먹기도 했던 개울가 논두렁에 앉아서,
이제는 담배는 끊었지만, 하다못해 가을 산골 풍경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라도 불다 오고 싶었던 것이다.
사전 답사도 했다. 사는 곳에서 신내동을 거쳐 고개를 넘어 구리에 도착하는 길을 뚫어보았는데, 초행이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가파른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길을 이용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예행연습까지를 끝냈다.
그리고 힘든 2박 3일 일정으로 자전거 여행을 감행한 첫날 밤은 숙소 잡는 때도 놓쳐, 시골의 한 영감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정작 치악산 산골짜기에 도착해서의 기록을 보면......
아, 그런데 너무 많이 변해 있다. 옛날의 그 곳이 아냐.
산천은 그런 것 같은데, 분위기는 영- 아니다.
물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른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
실망이고 뭐고, 그런 감정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큰 기대는 갖지 않았었으니까.
그저 옛 기억의 장소에 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실망하리라는 걸 충분히 예상은 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절로 한숨을 짓고 있었다.
여기 어디 쯤, 그 때는 저 다리도 없었는데... 그 날은 날이 투명하도록 맑았었는데......
저 산 모퉁이 나무가 있는 그 곳, 요즈음 같은 가을 날의 한 점심 무렵... 훈련 끝이라 그랬지, 그 날은 오늘처럼 이렇게 흐리고 후텁지근하지 않았던,
아, 너무나 깨끗한 날이었는데... 저기 저 쯤......
어딘가 초가집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점심을 먹고, 화랑담배 한 개피를 피면서, 그 시간이 단 몇 초라도 더 연장되길 바라던 아마득한 휴식 시간에... 'Free as the wind'(영화 '빠삐용' 주제곡..)가 흘러나왔고, 그러면서 자유가 그리워... 순간적으로 나는 죽고 싶었고,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갔었지......
9 . 8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그제서야 그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가방 안에 아직도 하모니카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산골에 가서도 나는 하모니카는 불어볼 생각도 못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서 그 때 그 기분이 아니었다지만... 그토록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도 내내 가지고 다녔던 하모니카를, 꺼내보지도 않고 돌아오다니......
9 . 10
내가 이 여행을 떠나기 전,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자전거 여행'이라 겁이 나기도 하고 또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 인터넷 사이트 두어 군데를 뒤져보았는데,
그 중, 한 여행객이 게시판에 올려놓은 머릿속에 남는 얘기가 있었는데,
'죽는 줄 알았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도, 이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9 . 11
그렇게 힘든 여행이었으면, 그만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포기는커녕, 인야는 자꾸만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흘을 힘든 자전거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 밤이었다.
지친 몸에 빠져버린 잠은, 생각처럼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온 몸이 어찌나 쑤시던지, 몸부림을 치면서 잠을 잤는데, 그런데도 인야는 다른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고 말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홈페이지 작업을 조금 하고, 메일도 체크하고... 멍먹한 상태로 마치 평상시의 자신으로 돌아온 듯 행동을 했다.
그렇게 다섯 시가 넘어가면서 아무래도 몸이 무거워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떠보니 이미 밝은 해가 솟아나와 있었다.
그 상태로 베란다 쪽을 바라보니, 이제는 조금 을씨년스러 보이는 넝쿨 속에서 나팔꽃 몇 송이가 피어있었다.
'꽃도 못 피고 시들어버릴 줄 알았었는데, 너는 지금이 절정이란 말이냐...... 내가 없었어도, 너는 혼자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 물을 주었다.
그런데 열려진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던 싸늘하게 느껴지는 아침 공기.
아, 오늘도 맑은 가을 아침이었다.
순간, 지금쯤 자전거로 어느 들길을 달리며 볼, 맑은 햇살에 빛나고 있을 들의 색(色)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요 며칠을 내내 그걸 즐기다 돌아온 판인데. 어쩌면, 이제는 무뎌져있거나 지칠 법도 한데... 그저께 일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도 바로 어제 일인데......
그리고 인야는 또 자동적으로 음악을 틀었다.
이미 카셋에 꽂혀있던 트럼펫 음악. 숨어있던 보물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듯, 아련하게 트럼펫 음악이 흘러나왔고, 인야는 그 속으로 빠져들면서 볼륨을 높였다.
그런데, 베란다의 빨래 줄엔 그동안 며칠은 묵었을 빨래들이 어수선하게 걸려있어 시야를 답답하게 했다.
'저걸 치워야 돼. 너무 거추장스러워......'
인야는 후다닥 빨래를 걷어 침대에 던져놓았다.
이제야, 뻥 뚫린 베란다의 허공이 훵해졌고, 마음도 안정이 되는가 싶으면서,
아, 편하고 좋았다.
'이렇게, '여행의 끝'은 아득한 것입니다......' 하는 순간,
아, 내가 왜 이러는가.
마음이 조금 아려오는 것 같았다.
마음이 음악을 따라가는가 싶더니, 뭔가 모를 느낌이 다시 꿈틀거렸다.
아닌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서글픔이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에, 이 안락한 좋음이... 그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사실, 요 근래를 짚어보면 그럴 법도 했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선, 그 밑도 끝도 없는 서글픔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왜 그런 게 함께 존재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런 이유로, 그걸 치료한답시고 몸이 녹초가 되도록 실컷 싸돌아다니다 돌아왔는데... 이제는 돌아와, 단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아직까지도 이러다니......
바로 그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을 병'이란 것이, 시도 때도 없이... 염치도 체면도 없이...
이 가을에 나에게 막무가내로 엄습해 오는 증후군.
9 . 26
오늘, 지도책을 펴 놓고, 나는 ‘길’을 연구했습니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다 내팽개치고는 지도책과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요.
나요? 지도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 건, 비단 요 근래 시작된 일이 아닌...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래왔던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어릴 적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재미삼아 지리부도를 보곤 했는데요..
늘 밖으로만 나돌던 아이였던 나는, 비가 오는 날 같은 밖에 나갈 수 없는 날은... 그저 자연스럽게 지도책을 펴놓고,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세상 연구를 했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세상 연구였지요.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의 지형과 도시 까지도요.
그러던 나는, 결국 고3 대입을 끝내놓고는... 무전여행을 감행합니다. 그 전에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부모님 허락을 얻기도 불가능했고 또, 최소한의 여비도 마련할 수가 없어서... 기회를 보다가, 대학 시험을 치룬 뒤 무작정 떠나보았던 겁니다.
이젠, 지 혼자 타지를 다닐 만큼의 배짱이 생겼던 것이지요.
그러던 나는, 30대 중반에 결국... 스페인까지 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여행정보 라든지 지도에 관계되는 것은... 오히려 일반적인 스페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료와 사전 지식이 있어서, 오히려 어떤 스페인 친구는 나에게 여행에 관한 조언을 구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리곤 멕시코, 또 독일..
그러던 나는 언제부턴간, 그런 내 성향이 어쩌면 ‘팔자소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니, 늘 여기저기를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고, 또 한 곳에 머물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에는 미련마저 없는 ‘나’를 보게 되면서는...
'어쩌면, 이 건 운명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구요..
그러니, ‘김 삿갓’이라거나... 아니면 어떤 이들은 ‘남궁 삿갓’이라 할 정도로 나는 역마살이 낀 사람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전혀 낯설지가 않거든요.
내 사이트에 들어오시는 여러분들도, 이미 익히 느끼셨을 겁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런데, 나는 ‘김 정호’ 같이 지형에 관심이 있어서 지도를 만들고 연구하는 것보다는, 그저 방랑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쪽에 더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나에겐 어쩌면 이상적인 방랑여행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요즘에 지도를 보는 건, 지형을 연구한다기 보다는 내가 갈 곳에 대한 사전정보를 충분히 숙지하여 그 곳에 가서도 내 나름대로의 공간이나 방향개념을 갖고 그 맛을 더해보고 싶은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요 근래에 내가 지도를 보는 것은.. 세상 연구를 한다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라는 말이 더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내가 오늘 꽤나 오랜 시간을 지도에 빠져있었던 것은..역시, 다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요..
내일, 다시 떠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제 돌아왔는데, 나는 내일 다시 떠납니다..
'참 잘도 쏘아 다닌다......'
내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랍니다.
이번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요.
이번 여행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여행’에 대한 준비 여행으로... (나는, 말도 참 잘 갖다 붙입니다.)
며칠 뒤 거기에 도착하면, 자전거를 놓아두고 바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나중에, 그러면 겨울이 될 텐데... 중부지방보다는 조금은 따스할 남녘 겨울여행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랍니다.
꿈도 크지요?
끝이 없는 여행요.
근데, 그 건... 어쨌거나...
어릴 적, ‘지도 보기’부터 출발한 것 같거든요?
11 . 9
그렇게 인야는 자전거에 맛에 들어가고 있었다.
치악산을 시작으로 동강과 영월, 태백산맥을 넘고, 나중에는 더 먼 남도까지... 그는 계절이 바뀌는 틈마다 자전거를 끌고 길 위로 나갔다. 찜질방에서 자는 일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가는 곳마다 메모를 하고, 때로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돌아오면 그것들은 다시 글이 되었다.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담이 아닌,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가난과 고집, 외로움과 자유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인야 자신은 그것을 쉽게 ‘여행’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남들이 말하는 여행은 편안해야 했다. 쉬고, 먹고, 구경하고, 돈을 쓰며 즐기는 것. 그런데 자신이 하는 것은 늘 고생 쪽에 가까웠다.
사서 하는 고생, 거의 모험 같은 것. 편한 여행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여행을 할 형편이 안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여행은 늘 거친 조건 속으로 파고드는 방식이 되었다.
그러니 그는 자주 생각했다. 이것은 여행일까, 모험일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궁핍을 견디기 위해 이름 붙인 또 다른 생존 방식일까.
그래도 그는 떠났다.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리고 나서기도 했다.
"이 추운데 무슨 자전거 여행을 한다고 그러세요? 참았다가 내년에나 하지."
"아니, 신부님 왜 이러십니까? 기왕에 맘 먹은 것, 빨리 해야 되잖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내년에 해요! 내 말 듣고...... 이 추운데 어딜 간다고, 위험하게......"
"아니라니까요!"
"고집부리기는......"
"신부님은 내일 미국으로 떠나시는데, 그럼 난 날아가는 비행기만 멍- 하게 바라보고 있으란 말입니까?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지요. 난, 이기적인 사람이라... 남아있는 역할을 잘 못하거든요? 나도 떠나서 정신없이 어디론가 싸돌아다녀야, 이런저런 잡념을 없앨 수 있거든요."
"아무튼, 그 고집 못 말린다니까!"
"고집이 아니고, 내 일입니다. 내 일!"
그렇다. 내 일이다.
살림하는 거 다 내팽개치고...
가을인지 겨울인지, 나도 내일 떠난다.
남도 여행(南道 旅行).....
11 . 22
그렇게 맛을 들인 인야는, 이제 툭하면 자전거를 끌고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다 돌아오면 또 그 여행기(여행기라기 보다는 여행에서 느꼈던 세상살이에 대해)를 써야만 했고, 홈페이지에 올리게 됐고...
그런 것들도 쌓이다 보니, 뭔가 외부적인 일도 생기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