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남편은 점점 여성호르몬이 샘솟아 드디어 사촌언니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장보기를 하고
요리를 즐기며 심지어 요즘은 마당에 꽃도 심고 화분도 잘 가꾼다. 반면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점점 일이 많아지고, 점점 남성호르몬이 분출되는 나를 남편은 사촌동생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남편이 아직 남자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남편의 이른(?) 귀가 덕분이다.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
에도 남편은 수시로 당구장으로 간다. 전화를 걸면 수화기에서 당구 공이 탱탱 부딪치는 소음이
들려 현장을 직감한다. 체력은 갈수록 좋아져서 당구를 친 후에 맥주와 치킨 혹은 꼼장어등으로
야식을 하고 다시 맹렬하게 재도전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곤 새벽 3~4시 이른 귀가를 한다. 난 그 나이에도 당구를 칠 수 있는 건강과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다만 맥주나 치킨을 먹을 때마다 새벽에 내 휴대폰으로 울려오는
카드값 결제안내 신호에는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참 고맙다.
무엇보다 아직 살아줘서 비운의 과부소리 안듣게 해주는 것이 고맙다. 딸아이 결혼할 때 웨딩
마치는 밟아줘야 할 것 아닌가.
양가 외할아버지가 거의 100세에 돌아가신 놀라운 유전자 집안인데다 지금도 각종 건강보조
식품과 비타민, 견과류를 챙겨먹는 모습을 보면 절대 내가 과부가 될 확률은 없는것 같다.
또 내가 아직은 직장에 다니니 동반 부양가족, 그리고 병원치료비(임플란트까지 했다) 등으로
연말정산에 환급을 받게 해준 것도 고맙다. 경남고 출신이라 교양이 있어서 상스러운 말,
남의 흉도 잘 보지않고 폭력은 더더욱 행사하지 않아 감사하다.
국회의원등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으며, 내기당구와 카드놀이는 해도 정선카지노나
경마장 출입을 하지않으니 더더욱 감사하다. 10대 미성년자와 성매매한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고,
직장에 안다니니 직장 성희롱으로 짤릴 우려도 없어 고맙다. 또 운전을 못하는 나를 위해 요즘은
매일 아침에 출근도 시켜주니 참 고맙다.
무엇보다 남편의 무심함, 무감각, 무관심 덕분에 내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
하다. 남편은 항상 내가 글로 쓰거나 방송에서 떠들 무한한 소재를 제공해주었다. 또 일찍 사업에
실패해주는 등 내가 열심히 돈을 벌게 해 나를 늘 자립심이 강하고 성실하게 살게 해주었다.
사회생활하면서 울컥하는 순간도 많고, 수시로 사표를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인 남편 덕분에 난 꿋꿋하게 직장에 다닌다. 그래서 다들 겪는다는 갱년기
우울증을 겪을 여유도 없이 명랑하게 늙어가고 있다.
"대체 언제 철이 들거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말한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것다"...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인생학교>(School of Life) 를 만들었다는데
나도 이런 영감들을 모아 <철들지 않는 학교> 라도 만들어 볼까.
첫댓글 아, 정말 재미있어...
이 여인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잘 살거나 못살거나 다 비슷비슷한가봐.
보통사람 끼리 손 잡고 늙어가는....
그러면서 철드는거라 ~~~
난규야!
오랫만에 재미있는 글, 잘 봤다.
서방님 모교 싸이트에 재미있는 것 있으면 자주 좀 옮겨봐~~
ㅋㅋㅋ
여기자님 대단하십니다
남자들 늙어 쓴소리하면
기집애들 마냥 잘도 삐지는데
남편은 부처님 가운데토막?
구구절절 동감입니다
나대신 다 써줬으니
스트레스 확 날렸네요
어느날은 예뻤다가 언날은
눈에 안보였으면하는 남자
남편을 버리고 관심안두니
마음은 한없이 편터라
그래도 측은지심인지
오늘도 반찬을 맛있게해 한상차렸네요.
하긴 나도 완벽하지는 안으면서
ㅉㅉㅉ
경순아!
그대야말로 부처님이시네...
마지막의 대사,
"하긴 나도 완벽하지는 않으면서..ㅉㅉㅉ.."
우리 모두 내가 하는 일은 내 눈에 안보이니까
내 눈에 보이는상대방만 가지고 난리부르스를 추는거 아닌가 몰라~
마지막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자주 들어와 줘 고맙고 반가워요~
미술전시회에서 만납시다!
남편모교 홈피에 있는거면 그대로 복사-붙이기만 하면 간단한데..
매달 나오는 동창회보지에 실린 글이라 그걸 word 로 치느라
시간좀 걸렸지.. 이제 나이가 드니 작은 글씨보며 치기가 만만치
않네요.
난규는
이 긴글을 워드로?
정말 수고했다
우린 재밌는글 읽어서 좋지만~~~~
난규야!
요새 자판 두드리려면 스마트폰하고 헷갈리지 않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머리속에서는 스마트폰 자판, 손으로는 컴 자판이 서로 싸운다~~~
나만 그런가?
긴 글 옮기느라고 수고가 많았구려~
감사!!!
난 그래도 아직은 컴퓨터 자판이 좀 더 자유스러워.
삼성의 3x4 키패드는 철자끼리 꼬여서 맘에 안들고
swype 자판은 손가락 넓이에 비해 자판글자가 너무
적어 힘들어. 철자가 꼬여도 3x4 를 선호하는 이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