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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제목 : “영적 혼합주의를 배격하라!”
♥ 말씀본문 : 호세아 7장 8절 - 16절 (구약 1262쪽)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12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13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14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15 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16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아멘!
호세아 선지자가 지적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자기 백성에게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도 신자 행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도 기도하고 찬송 부를 수 있지만,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지적한 이스라엘이 망한 두 번째 이유는,
인애 - “헤세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지적한 이스라엘이 망한 세 번째 이유는,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혼잡해서 - 혼합됐기 때문에 망했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망합니다.
승전국인 앗수르는 패전국인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나라로 데려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인 앗수르 사람들을 그곳 이스라엘에 이주시켜 혼합시킵니다.
그렇게 혼합되어버린 땅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가기 싫어했던 사마리아 땅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앗수르 사람들과,
혼혈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히 그런 그들의 신앙생활도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세상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서 7장 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호세아 당시부터 혼합주의(混合主義) 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여기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말씀을 연결하면 “에브라임이 주변의 여러 이방나라들의,
이방 민족들과 섞여서 순수한 혈통이 아닌, 잡종이 되어 버렸다.” 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호세아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 나라의 사람들과,
국제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나라의 왕부터가 주변 국가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이방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치인들은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이 섞여버린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더더구나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제결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방문화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시집 온 이방 왕비들은, 그들이 섬기던 신을 왕궁에서 공공연히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혈통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 문화도, 신앙도 혼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聖徒)” 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백성들” - 이 말씀은 다른 무리들과 구별된 무리들이란 말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될 때 성도이지, 구별이 없어지면 성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냥 세상의 논리대로 따르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사는 것을 편하게 여깁니다.
New Age가 무엇입니까? 기독교와 동양신비주의, 곧 세속의 모든 것을 잊게 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는 불교의 참선, 더러운 몸을 괴롭게 하므로 영혼이 바르게,
된다는 힌두교의 요가가 웰빙 시대의 건강요법으로, 우리에게 파고들어 왔습니다.
이런 게 혼합주의인데, 혼합종교는 서구의 물질문명의 환멸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대단히 매력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의 생명을 질식시키자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아십시오. 우리가 이런 혼합주의에 빠지면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2,700년 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New Age - 혼합주의가 성행했습니다.
바알과 하나님을 혼합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바알도 믿자는 것입니다.
바알 종교에도 장점이 많으니, 그 장점만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불교, 힌두교, 이슬람의 장점만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전에 광야생활 할 때에는 목축을 했으니까 하나님을 믿었지만,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농사의 신인 바알신의 축복이 있어야 풍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혼합주의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도 하나님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바알도 섬기는 혼합 신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인 초파일에 교회들이 ‘축 봉축’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그랬더니 화답한답시고, 절간에서 성탄절 날에 ‘축 성탄’ 하고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심지어 교회행사에 중을 데려다 축사를 시키니까, 축사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더래요.
세상 사람들이 ‘와, 멋있다’ 그러니까, 진짜 대단한 좋은 일 한 줄 알고 우쭐해 합니다.
그러나 곧 다가 올 하나님의 심판은 미처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혼합주의를 용납하면, 기독교의 생명은 끊어집니다.
겉에서 보아서는 멋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갑니다.
혼합주의를 용납하면 잡종이 생기고, 잡종은 순종보다 생명력이 더 강한 괴물입니다.
잡초가 무성한데서 화초는 자라지 못합니다. 질식하고 맙니다. 결국 죽고 맙니다.
사탄이 가장 즐겨 쓰는 술책이 둘입니다. 핍박하고, 혼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도 이단들이 알곡인 성도들 사이에, 가라지를 가만히 뿌려 놓고 다닙니다.
마침내 변질시켜, 알곡성도들을 유혹하여 열매 맺지 못하도록 혼잡케 해버립니다.
왜 이런 혼합주의가 생깁니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혼합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one of gods.
이 세상에 수많은 여러 신들 중에 하나로, 취급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십계명 첫 계명에 Only God! -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핍박 받은 줄 아십니까? Only Jesus! 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one of jesus - 여러 신들 중 하나라고 했으면, 절대 핍박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여기에 생명이 있기에, 오직 예수님을 외치다가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신학에 ‘토착화신학’ 이라는 것이 있는데 “무당굿에서도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전통종교를 우상숭배로 정죄하지 말자.“
이렇게 주장하는 신학이 바로 토착화신학입니다. 요즘은 다원화신학을 말합니다.
‘다원화시대에는 특정종교가 아닌, 어느 종교에서든지 신념에 따라 구원받을 수 있는,
다원화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도 들으시지만,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도 듣고 응답하고, 다른 종교 사람들이 기도하면 하나님도,
들어 주신다. 그래서 누가 듣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체가 중요하다.’
말은 그럴싸한데, 이것은 사탄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한 사탄의 소리일 뿐입니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 고 강하게 외쳐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갖는 의문은,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어느 성을 점령하게 한 다음,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잔인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다 죽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우상의 독소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혼합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상의 뿌리를 뽑기 위해 다 진멸하라 명령합니다.
여러분! 문제는 이것이 엣 날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속에도 이런 혼합주의의 위험이 있습니다.
이 혼합주의 문제는 교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중대한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런 혼합주의의 위험성에 대하여, 분명한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혼합주의 철학의 뿌리가 ‘헤겔의 변증법’ 입니다. 일면 잡종철학이라고 말합니다.
로마, 헬라, 그리스 철학이 모두 다 합치면 더 좋은 게 나온다는 잡종철학입니다.
소크라테스, 풀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들의 철학이 모두 다 잡종철학입니다.
이런 잡종철학이 신학과 혼합되고, 심리학이 복음과 혼합되어 오직 예수를 흔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혼합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오직 예수님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좋은 교회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율법주의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가장 신랄하게 다룬 말씀이 신약성경 중 갈라디아서입니다.
언제부턴지 갈라디아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슬그머니 들어와서 복음도 지키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복음과 율법을 혼합시켜 버린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가 있어야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는 “내가 무엇을 했다. 무엇을 지켰다.” 는 자부심을 심어 줍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의 매력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장에 동조합니다.
이것을 잘 아신 예수님은, 행위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 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했다. 무엇을 지켰다.” 는 자부심을 우리에게 심어 주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율법주의는 우리 사람을 위선자로 만들 뿐입니다.
8절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여기 말하는 전병은 “떡” 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빈대떡쯤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이 전병을 잘 구우려면 뒤집어 주어야 합니다. 안 뒤집으면 어떻게 됩니까?
밑바닥이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 안 태우려고 하면, 위가 설익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버리게 되는데, 이게 바로 율법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강력한 말로 율법주의를 경계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페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멘!(갈 2:21)
율법주의에 들어 있는 독소적인 요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들어 버립니다.
율법주의는 복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예수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예수 없이도 나의 열심 있는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몰아갑니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믿음으로만이,
구원 얻는다는 것은 교회가 목숨을 바쳐가며 줄기차게 지켜왔던 복음의 진리입니다.
왜 초대교회가 순교자들을 냈습니까? “오직 예수만이!” 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보세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아멘! 아멘!(사도행전 4:12)
주님의 교회가 “오직 예수!” 예수의 이름을 선포할 때에 기독교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철회할 때 교회는 문을 닫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교회들이,
퇴조하고 교회의 문을 닫는 것은 “오직 예수만이!” 설교자들이 이 예수님의,
복음 진리를 선포하지 않았고,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에게 성도들이 “오늘 설교에 감명 받았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명 받았다는 말은, 당신 오늘 옳은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명을 받은,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연설에서도 감명은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을 구원 시키는 능력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설교를 통해서 감명이 아니라, 감동(感動, inspiration)을 받아야만 합니다.
감동이라는 말은 단단한 우리의 마음에, 그 말씀이 구멍을 뚫고 깊숙히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박살내므로, 그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이 완전히 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단단하게 굳어 있는 마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깨집니다.
우리 마음을 꿰뚫고 깨뜨려, 주님 은혜로 구원할 이름은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의 찬송시 중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찬송시가 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우리는 모든 율법주의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이 복음진리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이 복음진리로 구원을 선포하며 살아갑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세속주의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이 말씀에서 보면, 이스라엘을 어리석은 비둘기로 비유했습니다. 비둘기는 위급할 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매달아 날려 보내는 새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할 때,
비둘기를 하나님께 날리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인 애굽으로, 앗수르로 날립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믿고, 세상의 힘도 믿는,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세속주의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은 척, 세상에서는 영악하게 처세하는 그것이 세속주의입니다.
여러분! 아주 조심하십시오.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다가 그래도 마음이 안 놓면,
다른 데, 이상한데 가서 알아보는, 세속주의라는 양다리 걸치기 신앙 말입니다.
“저 사람, 저렇게 기도만 한다고 다 되는가? 도무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군!”
우리가 이렇게 기도만 한다고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은 융통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거든 좋아하지 마세요. 이 말은 여러분이 세속에 물들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너도 별 수 없다.” 는 치욕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말을 듣거든 좋아하지 말고,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서,
“주님, 내가 어떻게 믿었기에 이런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까?” 하고 회개하십시오.
우리는 모든 세속주의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기복신앙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아멘!
그들의 마음이 곡식과 포도주에 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복신앙의 핵심은 물질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물질로 대치시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울지 않고, 곡식과 포도주를 위해서는 웁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애를 태우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애타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나 훈련이나 사역이 먼저가 아니라,
내 일이 먼저이고 우선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기복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속의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믿다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진짜 성도입니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내 여건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전혀 변함없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성도입니다.
여러분! 혼합주의에서 벗어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의 옛사람은 죽고, 성령님 안에서 되살아나는 은혜 체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되고, 생명의 하나님이 되고, 축복의 하나님이 됩니다.
모든 신앙의 문제는 알고 보면, 바로 이런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는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다른 데 기웃거립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세속에 물듭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온 힘을 기울입시다.
말씀과 기도의 삶에 더욱 힘쓰고, 말씀과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갑시다.
그리고 내 속에 은밀하게 들어와 있는 율법주의, 세속주의, 기복주의의 제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순전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신앙과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