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현 서울의 이조선궁궐, 일제가 20세기초에 한반도에 '셋트'로 지어 놓은 것인가,
대륙을 이성개조선이 차지하고 거기에 이조선 왕이 거하는 궁궐이 있었다고 하는 대륙이조선의 원조, 김종윤등은 현재 반도 대한민국 수도서울에 있는 수많은 이조선 왕이 거주한 궁궐들은 일제가 반도 이조선사로 날조조작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현재 경복궁 근정전의 주 기둥을 조사했다. 그리고 관련 전문연구기관에 의뢰해 수령이 얼마나 된 것이고 언제 짜른 것인지, 또한 어디서 채취 한 것인지 밝혀 냈다.
결과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집권하고 경복궁을 중건하던 시기에 베어온 것이고 장소는 반도 대한민국 강원도 한계령이었음이 밝혀 졌다. 이걸 어떻게 밝혀 낼 수 있을까, 현대과학기술은 이것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당시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때 타고 없어진 경복궁을 어떻게 다시 세웠는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경복궁 중건(景福宮重建)은 조선 말기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에게서 지시를 받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5년(고종 2년)부터 1872년(고종 9년)까지 행하였다. 경복궁 중건을 흥선대원군이 지휘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다음은 이조선의 심장부, 경복궁 근정전에 사용된 목재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운반되었는지 증명하는 역사스페셜 동영상 해당 부분이다.
2. 대륙이조선은 종이상의 망상이며, 반도이조선만이 존재했다.
공자유교를 통치지배 이념으로 굳힌, 소중화 사대모화 유학도들과 이들과 의기투합한 이성개가 자신들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위화도 회군난동을 일으켜 제국 고려를 멸망시키고 소중화 사대모화의 이조선을 개국했다.
당시 고려의 강역은 공민왕의 만주회복 기록을 볼때 최소한 현재의 요하를 기준으로 그 동쪽을 국경으로 삼고 있었다. 명나라가 고려에게 내 놓으라고 한 철령위도 복기대 교수등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현재 압록강 건너 요령성, 본계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보더라도 고려 강역은 당시 요동까지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고려를 명나라에 사대함으로써 신하국 또는 속국으로 만들고 이어 명나라 소유라는 뜻의 有明조선을 개국하였다. 이에 따라 이조선정권은 고려의 만주땅을 대부분 상실하고 현재의 압록강 두만강 선에서 국경을 굳혀 버린다. 이조선 태조실록에 보면 당시 만주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고려백성들에게 무역금지 명령을 내린다. 이 기사가 시사하는 바는 만주땅을 명나라에게 내 주었음이다.
감찰(監察)을 의주(義州) 등지에 보내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서 무역하는 것을 금하게 하였다(遣監察于義州等處, 禁人越疆貿易). 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12월 24일(경오)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위 기사는 분명히 반도 의주를 나타내고 있고 거기를 기준으로 강역을 넘어 무역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한다. 이조선개국년도인 1392년도 기사다. 민족의 철천지 원수, 이성개 역도들이 위화도 회군반란,난동을 일으킨 때가 1388년이다. 위화도 난동 이후 불과 4년만에 우리의 강역이 반도로 축소된 것이다. 또한 아래 기사를 보면 이미 그 이전에 요동을 명나라에게 넘겨준 정황이 드러난다.
판사재감사 이을수에게 말 1천필을 끌고 요동에 가서 넘겨주게 하다
(遣判司宰監事李乙修, 押馬一千匹, 至遼東交付).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9일 병술 4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위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나라를 상국, 조상나라로 모시기로 한 이조선 정권은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말 1천필을 끌고 이미 명나라에게 넘겨준 요동으로 가서 넘겨준다.
아래 기사는 이조 개국하면서 고려가 황제국임을 나타내는 제천행사인, 팔관회 등을 모두 없애는 과정을 보여주며 고려의 종묘를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이조선 왕조의 종묘를 세우는 만행을 저지른 장면이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허물어 버리고 조선신궁을 지어 놓고 참배시켰듯이 말이다.
-도당(都堂)에서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를 폐지하기를 청하였다(甲寅/都堂請罷八關、燃燈).
(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8월 5일(갑인).
- 고려 왕조의 종묘(宗廟)를 헐어버리고 그 땅위에 새 종묘를 짓도록 명하였다(命毁前朝宗廟, 作新廟於其地).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10월 13일(신유)
-임금이 북문(北門)으로 나가 〈종묘로〉 가서 종묘(宗廟) 짓는 역사(役事)를 시찰하였다(己巳/上出自北門, 往觀宗廟役). 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10월 21일(기사)
이조선 정권은 명나라 사대를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 이름까지 스스로 짓지 못하고 명나라 왕에게 가서 정해 달라고 아래와 같이 구걸을 하고 있다.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으로써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임(趙琳)이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삼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자문에, ‘삼가 황제의 칙지를 받들었는데 그 내용에, 이번 고려에서 과연 능히 천도(天道)에 순응하고 인심에 합하여, 동이(東夷)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변방의 흔단(釁端)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사절(使節)이 왕래하게 될 것이니, 실로 그 나라의 복이다. 문서가 도착하는 날에 나라는 어떤 칭호를 고칠 것인가를 빨리 달려와서 보고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가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소방(小邦)은 왕씨(王氏)의 후손인 요(瑤)가 혼미(昏迷)하여 도리에 어긋나서 스스로 멸망하는 데 이르게 되니, 온 나라의 신민들이 신을 추대하여 임시로 국사를 보게 하였으므로 놀라고 두려워서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요사이 황제께서 신에게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허가하시고 이내 국호(國號)를 묻게 되시니, 신은 나라 사람과 함께 감격하여 기쁨이 더욱 간절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나라를 차지하고 국호(國號)를 세우는 것은 진실로 소신(小臣)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등의 칭호로써 천총(天聰)에 주달(奏達)하오니, 삼가 황제께서 재가(裁可)해 주심을 바라옵니다.”
처음에 임금이 사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그 적임자를 어렵게 여겼는데, 상질(尙質)이 자청하여 아뢰었었다.
“신(臣)이 비록 외국에 사신 가서 응대할 만한 재간은 부족하지마는, 감히 성상의 명령을 받들어 조그만 충성을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기뻐하였다.
丙午/遣藝文館學士韓尙質如京師, 以朝鮮、和寧, 請更國號。 奏曰: "陪臣趙琳回自京師, 欽齎到禮部咨。 欽奉聖旨節該: ‘高麗果能順天道合人心, 以(妥)〔綏〕 東夷之民, 不生邊釁, 則使命往來, 實彼國之福也。 文書到日, 國更何號, 星馳來報。’ 欽此切念小邦王氏之裔瑤, 昏迷不道, 自底於亡, 一國臣民, 推戴臣權監國事。 驚惶戰栗, 措躬無地間, 欽蒙聖慈許臣權知國事, 仍問國號, 臣與國人感喜尤切。 臣竊思惟, 有國立號, 誠非小臣所敢擅便。 謹將朝鮮、和寧等號, 聞達天聰, 伏望取自聖裁。"
初上欲遣使, 難其人, 尙質自請曰: "臣雖乏專對之才, 敢不敬承上命, 以効寸忠!" 上說。
태조 1년 임신(1392) (홍무25) 11월 29일(병오)
이와같이 이조선은 명나라를 상국, 주군으로 모시고 자신은 對명나라 사대노예국으로 하였다. 그리고 제국 고려의 강역을 명나라에게 넘기고 황제국 고려의 제도를 지워 나갔다. 이것은 자신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제국고려를 명나라에게 팔아 먹은 것이며, 자신은 반도로 만족하고 이조선 5백년동안 사대노예의 역사를 이어 온 것이다. 단군이래 한민족사에서 있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조실록, 승정원일기 그리고 이조선 양반유생들이 남겨놓은 무수한 문집들과 이 땅에 남아 있는 유물 유적 어느 것을 보더라도 이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요, 식민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것을 간파한 '한국의 재발견'의 저자 최모 선생은 '한일합방'의 일제 식민지 있기 이전에, 500년 전에 이미 우리는 '한중합방'이 되었다고 개탄하였다. 개국이념이 이러한 이조선인데 이런 정권이 어떻게 대륙을 다 차지하고 다스렸으며 심지어 지구 전체가 이조선 땅이라고 하는 것인지, 다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로 참담한 심정을 대신한다.
반도 이조선땅에서 일어난 임진왜란도-이제 까지 명명백백하게 밝혔듯이, 대륙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적이 없다.

역사를 바로 알면,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반도이조선 증명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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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렇게 명명백백하게 반도이조선임이 드러나는데도,
대륙이조선론자들은 또 뭐라고 물타기 할지 사뭇 궁금합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수령이 2~300백년 된 소나무가 땟목이 되어 북한강을 따라 한양까지 도달했겠죠.
세트장을 짓는데 그런 나무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 세트장을 지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여하튼 조빠들의 농간이 끝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강줄기 따라 뗏목으로 이동하면 너무 쉽더군요,
그런데 가물면 운반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당시 사용하던 나룻터 까지 나왔습니다.
이 부분 영상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첨부 안했습니다.
영상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대륙이조선 역사날조범들을 참역사 앞에 고발합니다.
위 게시물을 최대한 많이 여기 저기 퍼 날라 주십시오,
퍼가기가 안되는 네이버 등에는 위 영문주소 복사하기를 하면 됩니다.
대륙 조선설이 정말 문제 이군요
미친놈ㄴ은 지구 조선사 이야기 하는데
에고 우리 역사가 왜 이런지
대륙 조선설 지구조선설 전부 뻥 입니다
이거 주장 하는놈들은 조선사대에 규원사화 쓴 북애노인
보다 더 조선 잘 아니 참으로 존경 합니다
하여턴 미친놈들 많아요
아래 대륙이조선 모임 광고 나왔는데,
거기 가실분은 지금까지 제가 올린 게시물 가지고 가시거나,
여기 삼태극 국사광복단 게시판을 알려주세요,
대륙이조선, 헛물 그만 켜시라구요...
그 시간 있으면 대륙고려연구하라고 하세요...
ㅎㅎㅎ 국내의 궁궐이라 칭하는 것들이 왕과 그많은 식솔들이 살던 궁의 위엄과 살았던 흔적이 있는걸루 보이는
군상들이 참으로 많어요....^^ ^^
경주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살던 흔적은 아예없고 무슨별자리 관측을 그런 평지의 돌담 같은데서 불편하게 하는지???
무슨무슨 설들이 맞는지 틀린지는 몰것지만 우리가 교육에서 언론에서 배운게 아주 잘못되었다는것 정도는 느끼고
눈치를 챌수가 있지않을까??? 우리의 과거자료들은 부분들은 모르겠지만 전체그림으로는 맞지가 않지....^^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정확한 역사연구를 통해 의문점을 해소해나가는 방식을 추구하는것이 진정한 역사광복의 지름길일 것입니다.점필재선생의 라마라든가, 진도에 악어가 살고있다는 실록의 기록은 분명 이 반도와는 맞지않는 이야기일것입니다..
역사= 팩트+논증+인식 삼박자가 맞아야 되지요. 환단고기도. 팩트가 좀 나오기 시작하고.. 사료 판단에 근거가 생기고.. 인식은 민족중심(1민족 다국가론)이니.. 뭐가 되는 것이지요.. 저 위의 문제로 논쟁하다보면.. 중국인은..宇宙里还有什么是棒子国的?
전우주가 다 봉자(한국인을 멸시하는 호칭: 까오리 빵즈)놈들 거라며?
2014-10-18 20:11
什么都是棒子国的~그래요 무든지 한국놈들 거래~
追问
毛毛是谁的?모모 누구 거?
你的~~~~~ 니꺼야~ㅇ
조선이 사대는 했지만 노예나 합방이라 주장하는 것은 너무 몰지각한 소치다.
더군다나 왜란의 전장이 지금의 압록강 북쪽에는 없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보아하니 왜종아이들이 조작한 현재의 대한 반도만을 조선 땅이라 인식하는 모양인데,
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사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지리 곧 명.청국과의 경계선인 압록강과 요하의 위치를 찾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조선 시대 요하와 압록강은 단재 신채호가 교시한 바와 같이 지금의 란하와 동쪽 지류인 지금의 청룡하였다.
당연히 국경선은 요녕성의 노룡-쌍산자-능원을 잇는 선이였고 평양은 건창 부근, 도읍인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