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염보라
“포도씨앗이 열렸는데, 열렸는데”
또 그 소리였다. 포도씨앗 속에서 만났다는 엄지공주 이야기. 엄마는 베란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내게 읊조렸다. 눈은 창문 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엄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새벽 두시야. 나 내일 학교발표라고”
베란다 창문 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도 요동치고 있었다.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수면제를 세알이나 드셨지만 엄마는 멍한 상태만 몸소 느낄 뿐 엄마의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때 내 나이는 22살이었다. 부모님의 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운 나이였다. 엄지공구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를 흔들었다. 제발 그 말도 안 되는 꿈속에서 깨어나라고, 그런 동화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아빠는 그 모든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거실 한 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작게나마 티격태격 싸움이 있었던 가족이기는 했지만 이혼이라는 말이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부모님은 거의 전 재산을 채권과 증권에 투자를 했다. 하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더 이상 그 재산은 우리가족의 몫이 아니었다.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2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며, 돈을 아끼며 쓰고 싶은 것 한번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아빠의 감정은 더 이상 본인이 조절하고 감싸 안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우리 가정은 끝났다며, 가정주부로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아프다는 핑계로 약만 먹고 있지 않았느냐며 아빠와 엄마는 늘 살얼음판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부터였다.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우연히 포도씨앗을 뱉었는데 포도씨앗 속이 훤히 보이는 거야 포도씨앗 속에 잠들어있는 태아가 보이더라고, 그리고 엄지만한 여자가 태어났어”
엄마의 곁에는 엄지공주가 따라다녔다. 엄마는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도 “엄지공주가 꽃이 참 예쁘다고 하네. 꽃아, 안녕” 엄마는 평상시 문학소녀와 같이 지내왔다. 전공이 문학도 아니면서 감수성이 풍부했고 자연을 사랑했다.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이 늘 못마땅했다. 꽃에게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늘 신경이 쓰였다. 지병이 있으면 운동이나 하고 약을 잘 먹고 보통 엄마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엄지공주는 엄마의 평상시 문학적 감수성이 합쳐진 여성상 같았다. 엄마는 틈만 나면 엄지공주 이야기를 했다. 특히 아빠와 싸우고 나면 엄지공주는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모든 남성들이 우러러보는 여성상으로.
엄마는 우울증의 강도가 심해져 갔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해를 하려고 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엄마는 벌벌 떨었다. 자리에서 않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나가야 돼 너무 답답해, 이모네 가 있을게”
엄마는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는 집을 나가려 했다.
“엄마 정신 좀 차려 엄마는 엄마만 보여?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엄마에게 혹시라도 상처를 줄까 봐 참았던 마음이 토마토가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나도 안아줄 존재가 필요했다.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엄마가 되어서 지병을 갖고 있는 것을, 아빠보다 더 잘나지 못한 것을 도리어 내게 죄를 묻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엄마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는 나를 보며 수많은 나의 언어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너도 똑같구나.”
엄마의‘똑같구나’라는 말이 아프게 흔들렸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잘 알아주는 것 아니냐고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내게 엄지공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베란다 밖을 보며 혼잣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는 이모네 집으로 갔다.
냉랭한 집안이었다. 아빠도 나도, 이모네 집에 간 엄마도 각자의 방으로 숨어 들었다.
나는 엄마를 부정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잘못한 거라고.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기 되었다. “약”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와 모처럼 만나기로 한 날, 친구들은 토실토실한 살결을 유지한 채 청춘 그 자체였다는 글이었다. 왜이리 얼굴에 분칠을 해도 얼굴은 상해있는지, 약 먹는 모습까지 보이면 마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화장실에 몰래 가서 저녁 약을 삼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달의 등록금”과 “한 달 치 생활용품 지출” 내역들이 적혀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늘 나의 엄마로, 아빠의 아내로 살아왔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온 결과는 병을 가진 한 여성의 삶 이었다.
꼬박꼬박 열알도 넘는 약을 삼키며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지켜왔는데 왜 나는 그걸 잊고 있었던 걸까. 여행가고 싶고 대학에 가고 싶어 했던 엄마의 작은 읊조림은 매번 외면당하고 있었다. 엄마의 작은 소망이 모이고 모여 엄지공주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상의 인물조차도 거부와 외면을 당했다.
며칠 후 이모에게서 엄마가 없어졌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나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순간순간이 괴로웠다.
엄마는 답답했을 것이다. 벗어나려 해도 깊게 빠져드는 늪에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고 자신을 잃었으니까. 멀어질수록 엄마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아빠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든지 못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그때였다. 아파트 현관에서 경찰을 기다리던 나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더운 여름인데도 잠바를 두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경찰도, 이모도 아닌 아빠가 있었다.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아낸 것이다. 엄마와 아빠를 보는 순간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미안해”
아빠의 눈에도, 엄마의 눈에도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맺혔다.
가만히 엄마의 품에 아빠의 품에 안겼다. 엄마와 아빠의 품은 따뜻했다.
조용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