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슬픔이 고단하다(작가마을)
정선영
2001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현대시인협회, 영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우울한 날에는 꽃을 산다』, 『홀로그램』, 『디오니소스를 만나다』, 『달의 다이어트』가 있다.
詩를 읽는 일은, 詩人의 삶, 思惟와 感性의 속 깊은 결을 따라 함께 걷거나 머무는 일일 것이다. 정선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겪는 일도 그러하다. 때때로 구불구불한 길, 길도 없는 벌판,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이거나 가 보지 않은 길, 생각해 본 적 없는 생각, 다른 세계의 낯선 땅을 딛기도 하고, 생각 밖의 생각, 두려움과 불안과 외로움, 애써 아는 척 해도 여전한 삶의 혼돈과 모순과 무의미-그런 것들을 대면케 한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잃어버렸다는 생각
주머니가 비고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눈이 뻑뻑하고 머릿속이 스산하다 가슴이 바스락거린다
물기 없는 막막함 화르르 재가 될 시간이다
-「마른 시간」일부
잃어버린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 상실감 앞에서 시인의 가슴은 바스락거리고 막막함으로 재가 된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것보다는 그 잃어버린 삶이 중심이 된다.
그늘은 살아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그늘을 남긴다.
-「그늘에 대한 思惟 2」일부
「그늘에 대한 사유」라는 제목의 시 여러 편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그늘을 빛의 대척점이 아니라 생명의 힘으로 보아낸다. 오래 바라보고 독특한 상상력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는 발상의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안과 밖이 덜그럭거린다 타거나 녹슬거나 둘 중 하나다 한 번의 상처에도 죄의식에 갇히고 아가리 벌린 심연을 보아 버린 눈이 멀어 버렸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생이여.
-「독백」일부
흘려보내고 흐르면서 사는 거다/ 꽃이거나 잎이거나/ 빈 나뭇가지이거나.
-「흘려보내면서 사는 거다」일부
시인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生, 그 심연을 바라보면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삶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위에서 본 대로 그의 詩作은 자기 인식의 길을 걷는, 求道者를 닮아 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어
누구도 나를 무엇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이 나고 이것이 나다
그가 나고 내가 그다.
-「나를 어떤 사람이라 말하지 말라」일부
자명하다 여겨져 온 사실들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의 탈피, 회의와 부정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시인의 행로는 마치 주어진 테에제에 대한 안티 테에제, 진테에제를 찾아가는 변증법적 구도와 닮아 있다. 그 길 위에서 그 또한 또 다른 테에제일 수밖에 없음을 예감할 때의 절망감과 슬픔이 그를 슬픔 위의 떠돌이별이 되게 한다.
-배동욱 시인, 시집발문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과 삶」 중에서
첫댓글 오랜 시간 시집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나왔네요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정선영 시인님의 펜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