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가는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늙기도 서러운데 짐조차 지시랴』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늙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늙은이'라는 말이 상대를 업신여기는 말이 아니고 좋게 쓰이는 말이라서 이참에 어른에게 쓰이는 말들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사람의 삶에는 세 가지로 나눈다. 그 세 가지가 '어린 삶' '젊은 삶' '늙은 삶'이다. 이 세 삶은 꼭 있어야 되는 것이 바로 사람살이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삶을 사는 이는 '어린이'가 되고 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젊은이'가 되며 늙은 사람을 사는 사람을 두고 '늙은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이'란 치아(齒牙)로 해석을 하기고 한다. 어린 삶을 사는 아이의 치아를 가리켜서 '어린 이(齒)', 젊은 사람의 치아는 '젊은 이(齒)', 늙은 삶을 사는 사람의 치아는 '늙은 이(齒)'라는 데서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가 유래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어찌되었던 '늙은이'란 말이 좋게 사용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늙은이라고 하면 두 가지의 뜻을 껴안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남녀 늙은이'의 통칭이고, 두 번째가 '남자 늙은이'를 일컫는 경우라고 본다. 이를 때에 '여자 늙은이'는 '안 늙은이'가 된다.
심지가 있고 효성이 있는 사람은 잘 모르는 늙은이를 보게 되면 "늙은이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심지도 없고 효성도 없는 사람은 "할아버지는 어떻게 왔어요?"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어머니'에게만 쓰는 말인데 남을 보고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내 할머니를 욕 먹이는 일이 되고 내 할아버지를 욕 먹이는 일이 된다. 영어로 말할 때에 Old man(노인)을 Grandfather(할아버지)로 말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늙은이라면 누구나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른다. 미치지 않고서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 더 미친놈은 제 '할아버지'나 제 '아버지'를 두고서 "노인네" 혹은 "노친네"라고 부른다.
'늙은이'라는 말을 중국글자(한자)로 적으면 '老人'이 된다. 우리나라 字典에는 "老"라는 글자 밑에는 꼭 "考"라는 글자를 따라붙게 한다. 그 이유는 '늙은이는 생각을 많이 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老'라는 글자는 '존경'의 뜻이 들어 있어서 '존경하는 사람'을 중국글자로 옮기면 "老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字典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의 '늙은이'가 중국글자의 "老人"으로 되었으니 '늙은이'를 '노인'으로 불러도 좋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제 부모를 두고 '늙은이'나 '노인'이라고 불러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짓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字典에 늙은이를 칭하는 '옹(翁)'이라는 글자가 있다. '옹(翁)'이라는 글자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 늙은이를 가리키는 '늙은이 옹'이 될 수도 있으며, 아내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아내 아버지 옹'이 되기도 하며, 스승을 가리키는 '스승 옹'이 되기도 한다. '아내 아버지 옹'이 '장인 옹'이다. 그런데 '옹'은 부르는 말이 아니고 일컫는 말이다. '늙은이'를 '할아버지'나 '할머니'라고 하지 말고 이름자 뒤에 '옹'을 붙이면 품위가 높아진다. '옹(翁)'이 '남자노인'에 대한 일컫는 말인 반면에 '여자노인'은 '노파(老婆)'라고 일컫는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남에게 일컬을 때에는 "어른"이라는 말을 써야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은 직접 부를 때에만 쓰는 말이다. 남에게 칭할 때에는 쓰지 않는다. "이 사람이 우리 아버지일세"라고 하면 껄끄러운 말이 된다. "이분이 우리 어른일세"라든가, "이분이 우리 바깥어른일세"라고 하면 매끄러운 말이 되어 세 사람이 모두 좋아진다. 아버지를 '바깥어른'이라 부르고 어머니를 '안 어른'이라 부른다. 언젠가 잘 아는 사람의 집에 전화를 했는데 그 집의 아이(열 살 정도)가 전화를 받고는 "어머님! 전화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제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수화기로 들렸다. '어머니'와 '어머님'의 쓰임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배운 대로 참 잘한 것이 된다. 말 같지도 않은 국어사전에 '어머님'은 '어머니의 높임말'이고 '아버님'은 '아버지'의 높임말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아이의 말은 학교식 대로는 100점이다. 요즘에 보기 드문 효자이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 국어사전이 틀렸기에 이 또한 바로 잡아야 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는 '님'을 붙여서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식이 '아버님' '어머님' '부모님'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원래 '아버님' '어머님'은 '며느리 전용 말'이다. 며느리가 시어른을 부를 때에 '시아버지' '시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한다. 예전에 자식은 아버지를 '아베' 어머니를 '어매'라고 불렀고, 며느리는 '아벰'과 '어맴'이라고 불렀다. 거기서 '도련님(되련님, 대련님)' '서방님' 등의 말이 나오는데 모두 여자 쪽에서 부르는 말이었다. '님'의 쓰임을 보면 '나를 길러주거나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된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어이다. '임금님' '스승님' 등에만 붙이는 접미어이다. '님'이라는 글자가 순수한 우리말이라서 중국글자 뒤에는 붙일 수가 없다. 물과 기름이다. 그러나 언어의 가변으로 스승이 선생으로 바뀌었으니 '선생님'은 허용이 된다. 이후에 불교가 성행을 하여서 '스님'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근자에 "부모님 전상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영방송국에서 우리 온 백성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란 말도 성립이 될 수 없으며 '전상서'란 말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부모'라는 말 뒤에는 '님'이 와서는 안 된다. 또한 '전상서'는 'OO전 상서(OO前 上書)'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OO앞에 바치는 글'이 되어야 바른 뜻을 싣게 된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어른에게 '아버님' '어머니'이라고 불렀으니 사위도 장인과 장모를 부를 때에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그밖에 아주 친한 친구의 부모를 부를 때에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큰 잘못이다. 벗이나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바깥 어르신' '안 어르신'이라고 하면 더욱 좋다.
2. 출생을 이르는 말
거룩해야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말들이 너무 헤프게 쓰이다보니 거룩함이 없어지고 존경이 사라졌다. 거룩함이 없어지고 존경이 사라지니 그 대상의 구분이 모호하다. 대상의 구분이 모호하니 원래의 뜻에 맞지 않게 사용되어 거룩해야 할 사람과 존경해야 할 사람이 없어졌다. 언어의 가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도 언어의 가변이라 해야 되는지 묻고 싶다.
"승용차 OOO가 탄생하다" "복제송아지의 탄생!" "00침대 탄생!" "00딸기 탄생!" "OOO가 백두장사에 등극하다" "지은이 OOO, 1956년 경북 영덕産" "……"
거룩해야 할 "탄생"이 아무것에나 함부로 쓰이고 '궁중 용어'인 "등극"이 씨름판에서 날뛴다. 그래서 잘못 쓰이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 구분을 해본다.
가. 탄생(誕生)과 인생(人生) 사람이 태어난 것을 인생(人生)이라 한다. 훗날 사람들이 판단하여 그 사람이 성인(聖人)이었다면 그 태어남을 탄생(誕生)이라 한다. 우리 겨레의 '순임금'이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공자(孔子)'가 성인이며, '석가모니'와 '세종대왕'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래서 '순임금'과 '공자', '석가모니'와 '세종대왕'의 출생을 가리켜 탄생(誕生)'이라 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탄생'이란 말을 사용할 수가 없고 '인생(人生)'이라 해야 한다. '승용차' '송아지' '침대' '딸기' 등에 "탄생"이란 말을 붙이면 "성인(聖人) 탄생"의 뜻이 사라진다.
나. 탄신(誕辰), 생신(生辰), 생일(生日), 돌날, 생(生)과 산(産) 성인이 태어난 날을 탄신(誕辰)이라 한다. '석탄일' 보다는 '석탄신(일)'이 맞다. 며칠 전에 '육사 탄신 100주년 기념'이라는 문장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의했더니 '통설(?)'이라고 얼버무리는 방송국이 있었다. '이순신 탄신'도 틀린 말이다.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제 아들을 두고 숙맥이라고 했다. 녹두와 보리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숙맥이다. 어버이가 태어난 날을 생신(生辰)이라 한다. 어버이가 태어난 날이 생신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도 저절로 생신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형제간에는 맏형이라 하더라도 생신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내가 아는 놈 중에 한 놈이 장인 생신 축하를 한다고 "祝生身"이라고 카드를 보냈기에 '잡놈'이라고 욕했다. 내 집안 일이다. '生辰'이라고 못 쓰면 '생신'이라고 써야한다. 어버이가 아닌 사람의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이라 한다. 형 생일·아우생일·누나생일·누이생일·아들생일·손자생일로 되어야 한다. 자기가 자기 태어난 날을 두고 돌날이라고 말한다. 겸손을 덕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 낮춤의 표시이다. 자기 낮추기를 잘함이 군자덕목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생(生)이라 말하고, 짐승이 태어난 것을 산(産)이라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인생(人生)이오 축산(畜産)이다. 사람에게는 산(産)을 써서는 안 되는데 책을 쓴 지은이를 소개할 때에 0000년 OO産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왕(父王)이 승하하여 그 아들 세자(世子)가 임금에 오르게 되는 것을 궁중용어로 등극(登極)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없으니 궁중용어가 필요하지 않으며 씨름 선수가 임금으로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내 것이 귀하더라도 말에는 틀려서 안 되는 말이 있고 되는 말이 있다. 안 되는 말을 되는 것으로 쓰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내 것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과장하려는 마음도 잘못이다. 말에 대한 교통정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없이 간절하다.
3. 죽음의 구분
가. 부모의 죽음 부모의 죽음을 가리켜서 "잃었다."라고 한다. 부모의 죽음은 사자(死者)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말한다. 부모는 그 자체가 아주 고귀하므로 직접 말하지 않고 자식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예의다. '부모를 잃은 고아' '나는 몇 해 전에 어버이를 잃었다.'라고 쓰는 것이 맞는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부모를 욕되게 하는 말이 된다.
나. 조부모의 죽음 조부모의 죽음을 가리켜서 "잃어버렸다."라고 한다. 조부모를 포함한 직계존속은 부모와 동등하다. 이 역시 사자(死者)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부모를 잃어버린 설움' '나는 몇십 년 전에 조부를 잃어버렸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몇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틀린 말이 된다.
다. 백부모, 숙부모의 죽음 백·숙부모의 죽음을 가리켜서는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백·숙부모는 직계가 아니고 나와 같이 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 죽음을 가리켜서 '돌아가셨다.'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나와 같이 살지 않으므로 우리 집에 오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돌아가신 백모는 생전에 나를 아주 귀여워해 주였다.'라는 표현을 하면 맞는 말이다.
라. 형제의 죽음 형제의 죽음을 가리켜서는 '떠났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형제이므로 같은 집에서 살아오다 죽었기에 '떠났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내 형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형을 떠나보낸 아우의 심정'이라는 말이 맞다.
부모의 죽음을 두고 '우리 어른은 두 해 전에 세상을 버렸다.'라고 말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직계 존속은 당사자가 아닌 "내" 입장에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는 것은 당사자를 욕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4. 목숨이란?
우리말 사전에서는 목숨을 '살아있는 힘' '생명' '수명'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저 '아 그렇구나!'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왜 그런지 그 진위를 풀어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목숨은 '목'과 '숨'이 결합한 복합이름 씨이다. 즉 목에서 쉬는 숨을 우리는 목숨이라고 정하고, 목에서 쉬는 숨이 끊어지면 곧 '명'을 마감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면 목에서 쉬는 숨 이외에 또 다른 숨쉬기가 있다는 말인가? 배숨이 있다. 배숨을 복식호흡이라고 하는데 윗배 숨쉬기와 아랫배 숨쉬기가 있다. 우리는 통상 아랫배 숨쉬기를 단전호흡이라고 하여 각종 질병의 치료나 건강유지에 많이 권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래로 내려갈수록 좋은 숨쉬기가 되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배로 숨을 쉰다. 그것도 단전호흡을 한다. 그러던 것이 차츰 자라고 성장을 하면서 위로 올라와 죽을 때에는 목숨으로 끝을 맺는다. "네 이놈! 목숨이라도 부지하려거든 이실직고하렷다." 관아에 끌려간 죄인이 취조하는 사또로부터 죄의 실토를 요구하는 소리로 우리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끔 들었다. 역시 목숨은 마지막에 쉬는 숨인 게 분명한 모양이다. 아이가 갓 태어나면 아랫배로 숨을 쉬므로 숨을 쉴 때는 배꼽 아랫배가 오르락내리락 그린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하면 목으로 숨을 쉬므로 목젖만 미동을 한다. 나는 이 현상을 이번 아내의 병간호를 하면서 겪었다. 아내는 최악의 상태에서 목숨만을 쉬었다. 심한 딸꾹질 때문에 배숨이 안 되자 목숨을 쉬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내는 임종 직전까지 간 셈이었다. 이로써 '목숨'은 임종이 가까운 사람이 쉬는 숨으로 확인을 하였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배숨을 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