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재경함양군향우회.재경함양군산악회.각읍면향우회.산악회
 
 
 
 
 
카페 게시글
[청암/정일상 원로칼럼란] 스크랩 국화 꽃잎에 쓰는 편지
청암/정일상 추천 0 조회 38 11.09.18 23:0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소리·죽비소리·철부지소리(141)        

 

            국화 꽃잎에 쓰는 편지


   가을에 접어들어 계절의 여왕이란 국화꽃을 대할 때면 언제나 마음에 담겨있는 저릿저릿한 아픔이 있다. 그 저릿저릿한 아픔의 뒤 안에는 나의 삶과 깊은 사연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이란 이미 국화과에 속하는 구절초나 노란 꽃술을 띤 국화를 더욱 사랑했던 내 짝지 때문이다. 국화과에 속하는 꽃으로는 먼저 야산에 피는 구절초가 있고, 흰색, 금색과 노랑, 분홍 등 갖가지 색을 띈 국화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화려한 금색국화(金菊)를 그녀는 더욱 사랑했었다.

 

  향이 짙으면서 국화는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을 참으며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그 인내와 지조를 꽃피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짝지인 아내가 국화를 평생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내력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와 아내가 처녀 총각 때 일이다. 내가 그녀에게 무촌관계가 되자며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 야산에서 구절초 다발을 한 묶음 꺾어다 안겨주면서 어떤 꽃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녀 역시 국화꽃을 제일 좋아한다며 구절초다발을 받아 코끝에 대고 향을 맞던 그녀의 얼굴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때 눈으로 마음으로 찍어 둔 사진의 기억이 평생토록 내 뇌리에 각인되어 가을이면 떠오르곤 한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숭고한 여러 순간의 기억들 중에 가을의 국향과 지조 높은 절개를 우리의 사랑의 인연과 연상이라도 하듯 언제나 잊은 적이 없이 그녀는 평생토록 일상생활 속에서도 국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또 하나의 사연은 나와 무촌관계가 되자고 고백하던 날 말고도 내 짝지가 될 그녀가 처녀시절 어느 대학에 부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한번은 느닷없이 그녀의 대학 연구실을 찾아 간 일이 있었다. 늦가을의 오후 시간대 이었다. 그녀의 연구실 문 앞에 다다라 노크를 하니 “네”하고 답이 들리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연구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10분 이내로 연구실로 찾아 가겠다고 전화로 미리 연락을 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 연구실 응접테이블위에 노란 국화 화분이 놓여있었다. 국향이 연구실을 덮고 있었기에

  “야! 국화 향이 온방을 점령해버렸네요.”

라고 말을 건네니

  “벌써 두 번째 화분인걸요.”라 대답한다.

나는 그녀의 연구실에 찾아 들기 전에 강둑과 습지대에서 코발트색과 노랑, 분홍 등이 섞인 구절초 한 묶음을 꺾어 백로지 한 장을 문방구에서 구해 꽃을 예쁘게 싸서 들고 갔었다. 

  “자! 선물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흰 종이에 쌓인 꽃다발을 내 밀었더니 풀어 헤치고선 한참 꽃다발을 코에 대고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그 향에 취한 듯

  “감사합니다. 꽃잎도 향도 너무 좋아요.”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언제나 계절이 가을로만 머물러 있으면 좋겠네요.”

  “...........? ”

  “항상 국화꽃을 꺾어다 안겨주고 국향(國香)에 취해 있게 말이에요.”

  “그래요, 기대할게요. 언제나 가을은 순환해 찾아오고 있잖아요.”

그리고 나직한 말로 눈웃음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재빨리 유리병을 찾아 물을 떠와서 곧 자기 책상위에 놓는다. 웃음을 계속 띤다. 그 순간 나도 흐뭇해했다.


  그런 깊은 국화와의 인연 탓 이었을까? 인연이란 게 참 묘하게도 신비하고 사람을 묶어버리는 힘이 있어 그녀의 국화 예찬은 지극했는데 그것은 우리 사이가 사랑으로 엮어 질 때 국화꽃이 상징적 매개체였던 인연이 되어 그 인연의 힘과 끈이 이어져 갔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평생을 통해 난에 심취하여 일반 화분이나 꽃은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나의 짝지인 아내는 평생 생활을 해 오면서 꽃을 사 올 때면 항상 국화꽃 화분만을 사왔고 국화꽃을 가까이 했다. 그런 탓에 우리 아들 딸 들도 어머니가 국화꽃을 좋아한다고 늘 국화꽃을 사 와서 저희 어머니 곁에 두고 함께 감상하고 즐겼다.


  나로서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준비도 없었는데 아내가 오랜 병고 끝에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버린 후 내가 휘청거리고 정신이 멍해지면 가을이 오기가 무섭게 국화 분을 사 와서 집안에 놓아두고 향과 그 자태를 감상하고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듯 사랑하곤 한다. 오늘도 국화 꽃 분을 하나 사 와서 책상위에 놓아두었다.

 

  그녀 내 짝지는 시간의 강물이 몇 번을 굽이쳐 흐르고 흘러갔었지만 평생을 통해 사랑한 꽃이 국화류였고 그녀의 마음속에 피어있던 국화꽃은 그녀가 떠난 이 시간에도 내 가슴속에서조차 시들지 않고  눈물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나는 내 짝지인 아내를 진정 사랑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언제나 함께 하리라고만 믿어 왔지 그녀가 아픔으로 고통을 받고 나와의 이별이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내가 때때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갖는 것은 오랜 병고로 언젠가는 사별이란 이름으로 이별의 아픔을 맞보아야 한다고 마음다짐을 해 두었었는데도, 또 이별은 사랑의 결과이니, 이별 까지도 사랑이라고 아무리 마음속에 되뇌어도 사랑이 이별을 준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래서 지금도 이별을 슬퍼한다. 아직도 사랑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내의 국화꽃에 얽힌 사연과 국화꽃을 좋아했던 인연과 사연으로 그의 무덤을 찾을 때면 으레 국화꽃을 사들고 간다. 그녀의 무덤 앞엔 국화가 피어 있길 소망하여 무덤 앞엔 국화꽃 화분을 사다 심어두어 일년 내내 자생적으로 피어 있길 바라고 노력 해 봤지만 워낙 메마른 땅이라 잘 자라지 않아서 그저 마음의 국화꽃만 심어 둔 격이다. 그 화분이 자라고 있어도 피어오른 꽃송이가 단추 크기만큼 작고 볼품이 없이 가녀린 모습이다. 꽃을 피우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마치 구절초의 사촌인양 그 형상을 닮아 있다.

 

  며칠 전 아내의 무덤을 찾았을 때도 국화 꽃 다발을 사들고 갔다. 그리고 작년에 무덤 앞에 심어둔 국화꽃마저도 봄과 여름의 그 좋은 계절을 한사코 마다하고 만물이 시들고 퇴락해 가는 시절에 홀로 피어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이기고 피어난 국화의 자태를 보았을 때 현세를 외면하며 사는 품위 있는 자의 모습이나 오상고절(傲霜孤節)한 자태를 영상케 하듯 그녀의 살아생전의 마음과 모습을 닮아 있었다.

 

나는 이 가을에 하늘에 있을 아내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쓸 것이다.

  “이 가을에 보랏빛 향기가 날리는 황금색 꽃잎을 따서 그 위에 보고 싶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글을 써

외로움에 지쳐있을 그녀에게 가을 편지를 띄우리라. 파아란 하늘아래 갈색바람이 불어오거든 내가 보낸 편지가

실려 전해 질 것인즉 그대의 영혼이 반기리라고“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1.09.18 23:08

    첫댓글 이 수필은 해송문학지에 기고하고, 또 내 불록에 올려진 수필입니다.

  • 11.09.20 22:25

    이 가을, 애틋한 정을 전하는 편지,
    가을바람에 실려 님의 처소로 전해지겠지요.
    국화의 향을 담아 꽃술에 글을 써서 보내고자 하는 마음,
    저 천국에 잠드신 부인께서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 11.09.22 15:17

    노오랗고 보라빛 향이 풍기는 국화꽃잎에 편지를 써 보내드린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읽고 저 하늘 나라의 님께서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 11.09.23 23:20

    남자의 계절이란 가을에 하늘에 계시는 부인께 보내는 편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보고싶다는 말을 써 보내신다니 참으로 그 사랑.
    고귀해 보입니다. 글 잘 읽었읍니다. 건강하세요. 청암선생님.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