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박 화 선
가난했던 유년시절, 밥 이외에는 집에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낡은 나무 대문 앞으로 가끔 지나가는 엿장수의 가위 소리에 어린 내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러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멀어져 가면 그 울렁거림도 차츰 가라앉았다.
그 날도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엿 바꿔 먹기에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집 구석구석을 뒤졌다. 큰방, 작은방을 지나 마루 밑에까지 찾아다니다 부엌 가마솥 아궁이 앞에 섰다. 아궁이에서 떼어낸 무쇠로 만들어진 녹슨 불문이 부엌 구석진 곳에 세워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걸 들고 엿장수를 기다렸다.
‘엿이오, 엿. 고장 난 시계, 고무신, 병 다 됩니다.’
가위질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엿장수의 외침 소리에 잰걸음으로 불문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불문을 본 엿장수는 날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엿을 한 바가지나 주었다.
저물녘에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아궁이의 불문을 찾았고, 나는 녹이 슬어서 버리는 줄 알고 엿을 바꿨다며 한 바가지나 되는 엿을 자랑스레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곧바로 어머니는 내 멱살을 잡고는 달랑 들어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로 던져버리겠다고 호통 치셨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머니는 그리 건강하지도 무섭지도 않으신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겁에 질려 울며 살려 달라고 어머니께 두 손을 내밀고는 싹싹 빌었다. 아무리 빌어도 어머니는 도무지 화를 가라앉히질 못하고, 날 흔들었다. 그리고는 아무 기억이 없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큰방 아랫목이었고,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빠, 남동생, 여동생이 빙 둘러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깨어났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버리겠는데,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뒤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엿 먹어라”
그러시면서 내 머리맡에 놓여 있던 엿 바가지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 날 나는 엿을 먹지 못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아궁이 불문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이었는지 철없던 그 때는 정말 몰랐었다. 오로지 엿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선뜻 내어다 준 불문, 다시 찾아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엿을 먹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아궁이 불문과 바꿔 먹으려다 어머니께 호되게 야단맞은 그 기억 때문이다. 거기다 비싸게 지불한 엿 값을 아직 어머니께 다 갚아드리지 못한 탓도 있으리라.
힘들었던 시간들, 아무리 어려워도 아궁이 불문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 당신께서는 마침내 자신이 불문이 되어 우리 가정을 오롯이 지켜 주셨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그 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 내 삶을 돌아보면서,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 양상에도 시선을 돌리게 된다. 생활고에 가족을 버려야 하는 가장, 가장의 폭력에 고통 받는 아이들, 아이들마저 포기하는 이 땅의 가엾은 어머니들, 그리고 버림받는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누가 불문으로 살아 그들의 삶을 지켜주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모으게 된다.
가슴 속에 뜨거운 불 하나쯤 품고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다독거려 줄 이가 그립기만 한 요즈음이다.
첫댓글 엿을 읽다가 갑자기 전에 읽었던 오영수 작 남이와 엿장수가 문득 생각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네요. 저도 엿 먹고 싶어서 냄비뚜껑. 공병등 가져다 바꿔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다시 축하드리며,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에 결말에 사유도 있고 보편화도 있는 것 같네요. 참 잘 읽었습니다.
구멍난 고무신도 더 신어야할...엿이 먹고싶어 바꾸어 먹었다가 대문 밖으로 쫓겨난 그때가 상기 되네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