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2세 #장례식 #성공회 #잡감 #3
운구는 윈저성 세인트 조오지 채플로 옮겼다. 장례예식은 대체로 말씀의 전례와 기도, 그리고 위탁기도와 매장으로 이어진다. 위탁(Committal) 예식은 매장과 거의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의 위탁 예식은 이번 장례예식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장엄했다. 지극한 품위와 절제가 흐르는 가운데, 고인에게 예를 다한다. 장례식의 오랜 집전 경험으로 보면, 늘 위탁과 고별의 예식이 가장 슬프고 아름다우며 엄숙하다.
언젠가, 전례 집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위탁 예식을 이끈 세인트 조오지 채플의 주임 데이빗 코너 주교의 기도 인도는 진중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같은 어조로 작년 세상을 떠난 필립 공의 위탁 기도를 같은 자리에서 이끌었다.
지난 해 필립 공의 위탁 예식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는 역시 <러시아 정교회의 별세하는 이를 위한 콘타키온>이다. 콘타키온은 두루마리 글이나 악보 양 끝의 막대를 뜻하는 말이지만, 성가 양식으로 정착했다. 영원한 안식을 비는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금을 울리면서도, 우리를 궁극적 희망으로 안내하며 위로한다.
러시아 정교회 곡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원래 탁월한 전례곡이기도 하여, 오래 전에 서방교회에서도 번역, 편곡하여 사용하기도 했으나, 필립 공이 러시아 혈통을 나누고 있기도 한 탓이다. 게다가 잉글랜드 성공회는 국교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 그리스도교 신앙을 아울러 존중하고 그 풍요로운 신앙의 유산을 보호하여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필립 공의 위탁 예식 때 부른 콘타키온의 구성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 그 절제와 단아함으로 빼어났고, 이번에는 국왕의 장엄한 장례식에 맞게 격을 갖추어 탁월했다.
나는 서툰 잡감을 콘타키온의 노랫말을 번역하여 나누는 일로 마감하려 한다. 부디, 전례를 공부하는 이들이나, 사목을 하는 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상의 삶에서 이별하는 경험을 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생명의 무게는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똑같고, 생명 자체는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하다. 화엄(華嚴)!
<별세자를 위한 콘타키온>
오 그리스도여,
주님의 성인들과 함께하는 곳에서 주님의 종에게 안식을 주소서.
그곳은 슬픔과 고통이 더는 없으니, 한숨도 없으며,
오로지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에, 주님만이 불멸하시나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 운명,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말씀하신 대로,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우리는 모두 먼지로 내려가나니,
무덤 위에서 슬피 울며 노래하나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 그리스도여,
주님의 성인들과 함께하는 곳에서 주님의 종에게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