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 une chanson dans la nuit
에세이 요약 : 작가는 여름을 사랑해서 가을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나뭇잎과 꽃들의 개화를 언제나 기다리며 여름이 아닌 계절들은 여름을 위해 존재하며 여름이 아닌 시간의 세계는 죽어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여름이 아닌 시간도 생의 일부임을 받아들여 생을 살아내겠다는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나의 감상>
여름 찬가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여름을 사랑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담은 글을 이렇게나 다채롭고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문장으로 꾸렸다는 것이다. 여름의 끝이 오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고 여름의 끝을 알리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광경을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여름이 아닌 계절의 나무, 땅이 죽어있다고 생각하는 등 여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낸다. 여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자연물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보여주는 표현들은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여름을 대상으로 설정해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가을과 봄을 대상으로 여름의 특성을 드러내고, 여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함으로서 은유성을 확보한 점이 작가가 가진 여름에 대한 낭만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글의 후반부에서 여름이 아닌 시간들도 삶의 일부라는 점을 짚으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계절은 순환하고 다시 여름이 온다는 구절들에서는 최근 한국에 귀화한 파비앙의 ‘프랑스인들은 일 하는 시간을 바캉스를 위해, 퇴근 후의 일상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사회에 파는 것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작가가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다른 세 계절을 ’여름을 그리며‘ 지나 보내는 것이 달콤한 퇴근과 휴식을 위해 일하는 프랑스인들의 정서를 투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글을 읽으면서 맹목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조건적인 여름에 대한 작가의 사랑에 감탄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공감이 잘 가지 않기도 했는데, 더운 것, 습한 것을 정말 싫어하는 나로서는 ‘프랑스인이나 여름이 좋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인인 작가는 여름에 자라나는 싱그러운 잎사귀들과 길고 긴 휴가, 여름의 생명력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름’ 하면 지글지글 끓는 아지랑이와 무겁고 뜨거운 공기, 그리고 그 원인인 강렬한 햇빛이 떠오른다. 나는 프랑스의 여름을 떠올리면 청량하고 쾌적한 바닷바람과 바캉스를 즐기는 밀짚모자 쓴 사람들이 연상되지만 한국의 여름은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과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땀에 젖은 와이셔츠나 지글지글 끓는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가 떠오른다. 한국은 프랑스에 비해 훨씬 더 더운 날씨와 습기로 인해 불쾌 지수가 치솟을 뿐 아니라 한국에는 프랑스인들의 삶의 목적이라는 긴 바캉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여름에는, 죽어버린 검은 나무들이 여름 햇빛을 만나 생생하고 부드러운 잎사귀를 내밀고 대지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아름다운 어휘와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렸다.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머무는 한 젊은 여자가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사계절을 지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여름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지난 몇 년간 여름을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다시 돌아보면 여름 속의 나도 즐거웠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푹푹 찌는 날씨도, 끈적한 땀도, 빨간 볼도, 살짝 그을리는 피부도 모두 지난 후 다시 돌이켜 보면 찬란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추억이 된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나서 나는 인간은 기억으로, 추억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는 행복한 여름의 기억을 사랑하고 있고 나는 당장 땀이 나는 더운 여름이 싫다가도 여름 속에 자리한 나의 사랑하는 순간들의 기억으로 여름을 살아낸다. 점점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게 너무 싫었는데, 작가의 여름을 읽으면서 나의 여름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나의 여름에 대한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글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