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집시(Gipsy)와 보헤미안(Bohemian)
정열적인 집시 음악 플라멩코 공연 모습
어떤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고 조상 대대로 방랑생활을 하는 민족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민족이 집시(Gipsy)이다. 집시(Gipsy) 혹은 보헤미안(Bohemian)으로 알려진 부족인데 첫 이미지는 ‘영원한 방랑자’, ‘자유로운 영혼들’, ‘아름답고 격정적인 집시음악’, ‘강렬한 터치의 기타(Guitar) 음악’, ‘강열한 리듬의 플라멩코(Flamenco) 춤’ 등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점쟁이, 도둑질, 매춘(賣春), 불결한 위생,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 굶주림,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민족’.... 상당히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 유럽 관광객들이 출국 전, 귀에 못 박히게 듣는 말이 ‘집시들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인간의 심리는 묘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는 본능이 있는가 하면, 항상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고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자신을 감추고 싶은 본능도 있으니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Bush Man), 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들, 중동의 사막 지역에 유랑하는 베두인(Bedouin)족, 순록(馴鹿/Reindeer)을 따라 끝없이 방랑하는 스칸디나비아 북쪽 라플란드(Lapland)의 사미(Sami)족들....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민족은 이들 말고도 많이 꼽을 수 있다. 새 중에도 철새(候鳥)와 텃새(留鳥)가 있는 것처럼 인간도 본능적(Instinctive)으로 방랑하거나 소속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는 모양이니 신기하다.
집시(Gipsy)족은 코카서스(Caucasus) 인종에 속하는 소수 유랑민족으로, 기원에 대해서는 인도(印度) 북서부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나 확실한 정설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집시의 고향이 인도의 서북부, 혹은 히말라야산맥 부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들의 언어가 명백하지는 않으나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 계(系)의 언어(梵語)와 유사하여 집시어(語)의 격(格)이 산스크리트어처럼 8개의 격(格)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집시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소아시아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14~5세기에 유럽 각지로 흘러 들어가는데, 나치 시절에는 ‘집시 박멸정책’이 시행되어 유태인처럼 학살 대상이었고, 이때 50여만 명이 넘는 집시들이 학살되었다는 슬픈 기록도 있다. 집시는 방랑인 기질의 종족이지만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슬픔이 배어 나오는 정서에 다분히 예술적 기질을 지닌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집시를 부르는 명칭은 여러 가지인데 자기들 스스로는 롬(Rom)이라 부른다는데 시리아(Syria)에서는 돔(Dom), 아르메니아에서는 롬(Lo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처음, 집시를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트인(Egipcyan/이집션)이라 했는데 이 말이 두음소실(頭音消失)로 ‘E’가 떨어져 나가 ‘Gipcyan’, 다시 뒷부분이 변형되어 ‘집시(Gipsy)’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Bohemian), 북유럽과 북부 독일에서는 타타르(Tatar)인 또는 사라센(Saracen)인, 남부 독일에서는 치고이너(Zigeuner),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히따노(Gitano)...
부르는 명칭도 지역마다 다양하다.
집시 아이들 / 아름다운 집시들의 고향 보헤미아 지방 / 부제스쿠
현재 전 세계 집시 인구는 약 200만으로 추정되는데 유럽에 75만~150만, 근동(近東)에는 6~20만,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10만 내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헤미아라는 나라는 없어졌지만, 오스트리아, 독일 바이에른과 국경을 접하던 왕국이었는데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에 통합되었고 1993년부터 체코(Czech)가 다시 슬로바키아(Slovakia)와 분리되면서 지금은 루마니아(Romania) 영토가 되었다.
집시들은 가난과 멸시 속에서 살았지만, 일부 집시들은 그들의 전승수공업인 금속공예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집시의 억만장자들은 자기들의 고향이었던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에서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보헤미아 지방 부제스쿠(Buzesku)에 엄청난 호화주택을 짓고 부촌을 이루어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부자 마을로 소문이 났는데 약 800채의 호화건물들로 들어차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