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뵐 수 있겠지
정명 김남권(淨明 金南權)|前 상원상공주식회사 회장
어릴 때 자주 할머니를 따라 통도사엘 갔다. 내 할머니께선 일 년에 한번 대웅전 앞 큰 탑을 돌았다. 탑돌이에 실어 보냈던 그분의 염원은 이러했다.
“사흘만 앓다가 죽게 해주세요, 부처님.”
그리고 두 손을 모은 채 세 바퀴를 돌았다. 한 바퀴를 돌면 하루를 앓다가, 두 바퀴를 돌면 이틀을 앓다가 죽는다는 것이 할머니의 믿음이었다. 할머니께선 아마도 반드시 생로병사를 거쳐야 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병고를 치러야 할 시간이 길어질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다.
왜 안 그러했겠는가. 어느덧 세월이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 내 나이 여든셋. 할머니의 세월에 와 있는 지금, 그때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셨던 할머니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병고의 세월이 생략될 수 있거나, 아니면 아주 짧게 단축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보다 더 큰 복이 있겠는가. 가야 할 날이 멀지 않은 지금, 선현들이 인간사 오복의 하나로 고종명(考終命)을 들었던 것이 뼈저리게 실감된다. 몸이 좋지 않아 매일 올리던 예불을 드릴 수 없는 처지에 있어서인지 요즘 들어 부쩍 할머니의 그 염원이 자꾸 생각난다.
할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를 부처님께서 들어주셨는지, 나중에 할머닌 정말 꼭 사흘을 앓고 돌아가셨다. 손자를 대동하고 두 손을 꼭 모으신 채 탑돌이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아마도 내 불연의 단초(端初)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젊어서부터 『천수경』,『금강경』을 읽으며 불교와 함께 했고, 아내를 따라 성남의 어느 절에 다니다가 1981년 12월 20일 광덕 큰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내 나이 이미 예순을 넘었을 때였다.
큰스님께서 종로 봉익동 대각사 뒷방 하나를 빌려서 법회를 열고 계실 때였다. 내 둘째 며느리의 이모인 안보살의 안내로 큰스님을 뵙게 되었는데, 인자한 모습의 스님이 마음속 깊이 남았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스님의 인상이 얼마나 가슴속 깊이 남아 있었던지 스님을 뵙고 온 그날 밤, 꿈속에서 ‘광덕스님’을 간절히 불렀는지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왜 광덕스님의 이름을 그리 부르느냐’고 했을 만큼 그렇게 단 한 번의 만남에 스님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대각사 법회에 나갔다. 불법에 대한 스님의 간절하고도 깊은 법문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6개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입던 옷가지를 이웃에 나눠주는 등 신변을 정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녘에 꿈을 꿨는데, 큰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내 얼굴을 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스님 한 분이 오셔서 용의 목을 잡고 ‘이빨을 빼게 집게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땀을 흘리며 일어나 앉았다.
그런 꿈을 꾸고 큰스님을 친견하여 꿈속에 나타났던 분이 스님이 아니신가 말씀 드렸더니, “그건 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나타나셨으니 돌아가시진 않겠습니다.”하셨다. 그리곤 지극한 마음으로 불경을 읽으라고 권하셨다. 그런 말씀을 듣고 읽고 있던 『지장경』을 온 마음을 다해 수지독송했다.
나중에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스님께서 문병을 와 주셨다. 마침 밤만 되면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돈을 달라고 하던 때였다.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었다. 처음에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곱 번, 그리고 ‘반야심경’을 일곱 번, 그리고 마지막에 진언을 해주셨다. 땀을 뻘뻘 흘리시며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기도해 주시던, 그 초가을 햇살 속 자비한 모습의 스님을 잊을 수가 없다. 스님의 기도 덕분으로 밤마다 보이던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날부터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스님의 도력에 정말 감격했다.
훗날 들으니 스님의 진언은 유명하다고 했다. 스님의 진언에 없어지지 않는 마귀는 없었다고 한다. 내가 들은 얘기로는, 스님께서 범어사에 계실 때 친구분들이 놀러왔다고 한다. 낮에 솔밭에 앉아 담소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온몸을 떨며 넘어가더라는 것이다. 그때 스님은 진언을 만들어 가며 읽으셨다고 한다. 그러자 곧 친구가 깨어나더니, ‘잠깐 잤다’고 하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스님에 대해 가장 인상 깊고 감명을 받았던 것은 ‘절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여유 있는 사람만 오는 절이라면 그건 부당하다는 말씀이었다.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그냥 축원도 해주고 재(齋)도 그냥 지내줘야 한다고 늘상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내게 병문안을 와 주셨을 때 감사한 마음을 전했더니,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부담이 됩니다.”하시면서 일부 돌려주시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스님께선 봉투에 이름을 쓰면 “내 돈이 아닙니다.”하시면서 절에 가져다 주라고 했고,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고맙습니다.”하시면서 받으셨다. ‘여유가 있는 사람만 오는 절이라면 절에 사람이 오지 않게 된다’며 누구든 반갑게 지극한 마음으로 맞았던 스님이셨다.
나는 절에 축원카드를 만들지 않은 채 불광법회에 나갔다. ‘상(相)을 내지 말라’는 스님의 무언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가 경영하던 회사의 직원이 부모상을 당해 근처 비구니스님이 상주하는 절에서 49재를 올린다기에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남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도를 닦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근방에서 지내라고 말씀해 주셨던 일도 생각난다.
스님께선 기도를 할 때 꼭 성현들과 조상님들에 대한 기도를 먼저 하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축원도 잊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어야 부처님께서 발원을 들어주신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으니, 불자라면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나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나는 가슴 깊이 새겼다.
몸이 말을 들었던 최근까지 나는 새벽 세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씻은 다음 예불을 시작으로 하루를 열었다. 그리곤 『천수경』,『반야심경』을 읽고 『금강경』전체를 독송하거나, 아니면 『지장십륜경』서품을 독송하곤 했다. 그리고 가족 축원과 함께 스님의 가르침대로 성인 성현 조상님에 대한 기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축원을 잊지 않았다.
돌아보면, 스님을 만나 정법에 눈을 뜨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행 정진 할 수 있었던 복된 인연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스님이 가시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다. 스님은 늘 몸이 편찮으셨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전을 내가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보내 약을 보내게 했다. 약이 떨어지면 큰일난다 싶어 늘 분량이나 날짜를 한두 달 여유있게 인편이나 공항화물로 보내게 했다. 이것저것 인연 닿는 대로 스님께 좋겠다 싶은 것을 가져다 드렸는데, 때로는 많이 좋아지셔서 산보를 다니실 정도가 될 때에는 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몸이 편찮으셔도 내가 찾아뵈면 “거사님, 오셨습니까?”하시곤 일어나 앉으셨던 스님께서 하루는 병원으로 찾아뵈니 그러셨다.“이젠 그만해도 됩니다. 이제까지 내게 보냈던 공덕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젠 ‘그만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상당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1~2주 후 퇴원을 하셨고 면회 중지가 되어 찾아뵙지도 못했던, 몇 일 후 영원히 우리 켵을 떠나시고 말았다.
생사가 하나라고 하나, 우리 범부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던가. 사라짐 아니던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음 아닌가. 나이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윤회의 순환인 생로병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으려니, 그 옛날 병원으로 찾아오셔서 따뜻한 눈길로, 지극 정성으로 기도해 주시던 스님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다음 생, 혹은 어느 생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뵐 수 있겠지, 요즘 나는 그리 기도한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
첫댓글 절문턱을 낮추어야 한다는 큰스님의 말씀과 실천으로 불광사를 처음 지을 대 시주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늘날 3~5만원의 보시금을 올린 분인데도 큰 돈을 올린 분을 대하듯 가림이 없이 똑 같이 감사히 받으셨다는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윗 글 중 "여유가 있는 사람만 오는 절이라면 절에 사람이 오지 않게 된다’며 누구든 반갑게 지극한 마음으로 맞았던 스님이셨다." 옮깁니다.
지극정성으로 병문안을 오셔서 기도하시는 장면도 감동입니다. 그 때 했던 진언이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이 아니었을까요?
기도후 성현들과 조상님들에 대한 기도를 먼저 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축원을 꼭 하라시는 큰스님!
보현행원품의 앞 부분 기도문의 내용이 바로 여기 있네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제가 댓글 말씀 안 드리면 이 귀한 글도 보시는 분들이 별로이실 것이고, 또 보시더라도 이 글 속에 깃든 여러 공부거리를 못보실 것 같아 내키지 않지만 몇 말씀드립니다. 부디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휘익~하고 겉핧기로 보고 가시진 말기를... 하기사 보시는 분도 별로 아니 계시지만...
1.사흘만 앓다 죽게 핼 달라던 할머니-여생이 얼마 안 남은 분들은 꼭 이렇게 발원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원이 없이 가시는 분과 원을 가지고 가시는 분은 임종이 다릅니다.꼭 명심하시길.
2.꿈에 나타난 큰스님-큰스님이 정확히 짚으셨듯, 이것은 큰스님 영험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지는 한번 사유해 보십시요.
3.입원 시 밤만 되면 나타나던 시커먼 이-병원에는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혼령들이 많이 떠돕니다. 그 중 일부가 그렇게 환자들에게 빙의하려 나타나지요. 이런 영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밝은 경을 읽거나 염불입니다. 당사자가 잘 못할 땐 법력 있는 분들이 대신해 주시면 효과가 있지요. 여기서는 큰스님이 주력을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환자가 아닌 경우엔 당사자가 주력을 하면 귀신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기력이 미약한 환자일 경우는 주력이 위험할 수 있어요. 법사가 해 주시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4.절문턱을 낮춰야 한다-큰스님의 佛事 지으시는 모습을 잘 보시길.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꼭 큰스님의 불사 방법을 보시고 또 배우시길.
5. 기도 시 성현 조상들에 대한 감사-이 부분도 눈여겨 보시길.
고맙습니다._()()()_
공양 감사드리고 보현선생님 댓글 가르침 감사합니다. 눈여겨 보고 배웁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공양 고맙습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새롭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오늘 보살님들과 나눴던 얘기가 여기 있네요. 마하반야바라밀 _()()()_
마음에 와 닿는 고귀하신 말씀 ㄱᆞ맙습니다. 저도 몸이 너무 허하여 꿈에서
발버둥 치는겄이 잤읍니다.
고견을 실천토록 다짐합니다.
니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