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시인의 집념
– 시로 살아나는 대구지방 입말의 쫀득쫀득함에 대하여
- 시집 『오솔길 끝에 막은안창집에는 할매 혼자 산다』를 읽고
김삼환(시인)
한 노시인의 집념어린 시집 『大邱⦁達城詩誌』 제8집 『오솔길 끝에 막은안창집에는 할매 혼자 산다』가 새로 나왔다. 그는 2010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모어로 쓰는 연작 장시 『大邱詩誌』 제1집 『대구』를 2012년 5월에 출간했다. 햇수로 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주제 매달려 시간의 두께만큼 가치가 묵직한 시집을 연이어 내고 있다. 제1집 『대구』, 제2집 『추석 대목 장날』, 제3집 『노곡동 징검다리』, 제4집 『권투선수 정복수』, 제5집 『개살이 똑똑 듣는다』, 제6집 『동화사 부도암의 홍매법문』, 제7집 『신발 거꾸로 신고 나온 시에미』에 이어 이번 시집이 제8집이다. 그가 당초 목표로 한 10집까지 내려면 이제 두 권의 시집이 남아 있다. 남은 두 권의 시집도 이미 구상은 다 끝나 있어서 마무리 작업인 정리와 다듬기 과정만 남아 있으니 이 노시인의 집념을 뭐라고 명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시로 다시 살아나는 대구지방 입말의 쫀득쫀득한 말맛과 글맛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언감생심 그 말의 맛을 살려내기엔 역부족이므로 옆에서 지켜본 시인의 노고에 대해 위로를 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엄청난 작업을 하면서 좋은 작품을 탈고하거나 때로 마음이 허전해지실 때 근처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김 형, 별일 없으면 소주나 한잔합시데이.” 하며 나를 불러 간간히 속내를 털어놓으신, 노 시인을 관찰한 기록이자, 새로 출간한 시집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담은 나의 독후감임을 밝혀둔다. 오래 전 내 시집에 발문을 써주신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한 나로서는 이 글로나마 작은 위로라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는 1942년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쳐서 올해 78세에 이른 상희구 선생이시다. 선생이 까마득한 후배인 내게 김 형이라 불러 주실 때 나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다 물리치고 선생을 만나러 갔다.
내가 알기로 선생은 그동안 다른 원로 시인들의 회갑이나 고희, 희수, 팔순을 일일이 다 챙겨 주시고 뒷바라지해 오셨으나 정작 본인은 근 팔순에 이르기까지 주변 시인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신 적이 없다. 아직도 지하철 계단을 팔팔하게 오르내리시고 아주 작은 규모의 사업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젊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연세로 보나 해 오신 문학적 업적으로 보나 문단에서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신 것은 타고난 겸손한 품격에다가 문단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속 없는 허세를 경계하려 하심이 분명하다.
『대구시지』 제5집을 출간하고 나서 선생 주위에 자주 모이는 몇몇 시인들이 소담한 자리를 마련하여 걱정과 염려를 전한 적이 있다. 연세도 연만하신데 이렇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놓으면 건강이 염려되니 당분간 집필을 중단하고 쉬시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목표로 한 10집까지는 중단 없이 계속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선생은 늘 그렇듯이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할 때 이미 다음 시집 집필을 거의 끝내놓고 있기 때문에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는 벌써 다음에 출간할 시집 얘기를 막힘없이 하고 계신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분량이지만 한 편 한 편의 시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도 지난한 집중력과 번뇌를 수반한다. 선생은 태어나서 청년시절까지 대구에서 성장하고 생활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대구를 떠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지방의 쫀득쫀득하고 쫄깃쫄깃한 입말에 대한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내고 있다. 시에 나오는 그 말들은 별도의 기억 장치에 저장했다가 스위치를 눌러 그대로 풀어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대구 709)」 - 죽이 맞다
보통 시에미캉, 미느리캉은 예전부터 고부지간(姑婦之間)이라 캐가주고 서로가 앙숙이라, 둘 사이에 쪼맨한 티꺼풀만 있어도, 서로가 깔짝거리다가, 짜그락거리쌓다가 이카는데. 재철네 집은 안 그렇다.
고부간에 얼매나 이가 좋던지, 하도 죽이 착착 잘도 맞아서, 이집 시너부가 새로 낼 지경이라니까
하리는 시에미가
- 아가, 우리 나박짐치 담아 무까? 곽중에 나박짐치가 묵꾸집네
- 아이고 어무이예, 지도 방금 그칼라 캤는데, 나박짐치가 묵고 집다고. 어무이가 한 발짝 먼저 그카시네예
이래 죽이 맞고
또 하리는
- 어무이예, 지 포원을 하나 들어 주이소
- 아이고 그래, 캐바라. 포원이 먼데?
- 지가 노랑 조고리, 빨간 치매로 입고집어 죽겠심더. 그래, 신랑이 키 크고, 낯짝 희멀건 거만보고, 거게 빠져서, 살림부터 채리놨시이, 둘이 올키 식도 몬 올리고, 시집이라꼬 처음 오던 날 , 노랑 조고리, 빨간 치매로 입어야 되는데, 그래, 의관도 지대로 못 갖추고, 친정서 입던, 낡은 간다후꾸 한 불, 달랑 입고 안 왔십디꺼? 노랑 조고리 빨간 치매가 지한테는 포원이 졌심니더
- 아이구얐끼네라! 아가가 우째 내하고 고래 딱딱 맞추노? 안 그래도, 내가 진작, 아가한데 노랑 조고리, 뺄간 치매 한 불 해입힐라꼬 옷감을 뜨다 놨다, 그렇고 저렇고 했던 기이, 마음이 아파서
- ??
그래 또 또 하리는 시에미가 친정 잔치에 갈라꼬 카는데 갑재기
- 아이구얐꼬! 이래, 부tjzdptj 불 때다가 윈짝 버선 한 짹이로 태야문 거로, 깜빡 준비로 몬 했구나
- 어무이예, 걱정마시이소. 지한테 윈짝 버선 한짹이 있심더. 알라 에비가 담뱃불로 고만예, 지 오른짝 버선 한 짹이로 태야묵는 바람에, 딱 한 분 신은 윈짝 버선짹이가 하나가 여불로 있임니더
- 그 버선이 내 발에 맞을랑강?
- 맞심니더. 여태꺼정 어무이캉 내캉 뭐어던지 안 맞은 기이 하나라도 있입디꺼?
그래. 희안하기도 미느리 버선이 시에미 발에 딱 맞았다
시에미, 미느리 고부 간에 서로 맞는 거는 이거뿐이 아니었다
버선 말고도
신발이 서로 맞고
옷도 맞고
속곳꺼정도 맞고
입맛도 맞고
손꾸락 굵기도 같은 강, 까락지도 고부가 서로 돌아가미 바꽈 낀다
미느리 시에미 간에 이룩쿰 죽이 착착 맞는 일은 시상에서 아주 드문 일이다
- 「죽이 맞다」 전문.
선생은 시인의 말을 통해 “경상도 사람들은 투박하고 무뚝뚝한 성정에 비하여 사용하는 언어는 의외로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섬세, 세밀하여, 말을 할 때는 옷섶에 정감이 뚝뚝 묻어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라고 썼다. 선생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작품에 등장하는 입말 하나하나를 곰곰이 씹고 있다 보면 입안에서 감도는 쫀득쫀득한 말의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시에미캉, 미느리캉, 무까?, 묵꾸집네, 그칼라 캤는데, 그카시네예, 캐바라, 채리놨시이, 태야묵는, 어무이캉, 내캉, 바꽈, 이룩쿰’ 우선 보이는 대로 몇 개 입말만 집어들어도 살아서 펄떡펄떡 움직이는 입말의 맛을 느낄 수가 있다. ‘미느리’와 ‘시에미’ 즉, 고부간의 대화가 이렇게 착착 감기며 죽이 맞는 경우를 시가 아니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싶다. 고부간에 죽이 맞는 사례가 실제로는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대구 사람들이 쓰는 입말을 통해 구체화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선생의 작품을 보면 실제로 어느 시골 마을에 이런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믿을 수밖에 없다. 다소 길다 싶은 작품이지만 입말의 생생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옮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참 오랜만에, 옛날 한 이부제에 살던, 만복이 할매캉 순자 할매캉 만냈다
만복이 할매가 참 반갑어서
- 아이고 여게가 순자 할매 앙이가?
- 맞구마
- 그래, 요새 거석해서 머석하지요?
- 야, 머석해서 거석하구마
- 그라마, 할배는 머석하다 카시디이?
- 아이고 그래, 다 알고 기시네
- 이래, 할배가 머석하시다가, 빙석에서 몬 일라시고, 고마 가싰구매
- 아이고 여태 그거로 몰랐구나!
- 저런 바뿌신 갑다. 얼푼 가보소
- 야, 잘 가소. 내 거석하마 기별 하꺼시
- 야
- 「요새, 거석해서 머석하지요? 야, 머석해서 거석하구마」 전문
이번 시집에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쓰이는지에 관한 해설을 상세하게 달아 놓았다. 말하자면 작품 말미에 붙인 해설도 작품의 일부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상도 입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은 말미의 해설까지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대로 말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사무실은 무질서의 질서 속에 세 가지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꿈의 공장이다. 하나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읽고 필사하는 자료 뭉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또 하나는 자료 뭉치 속에서 시의 씨앗을 발견하고 다듬고 키워서 한 편의 시를 완성시켜 컴퓨터에 저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하나는 그 사이 사이에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전화를 받고 납품 일정을 상의하고 조정하는 메모지로 가득 쌓여 있다. 겉으로 보면 무질서한 것 같지만 선생의 머릿속에는 이미 모든 것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당초 구상대로 시집이 출간되고, 정해진 일정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납품이 이루어진다. 그 외에도 각종 문학지와 신문에 연재한 작품들과 보도 자료와 인터뷰기사까지 빼곡하게 모아놓은 자료가 묵직하게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문학의 산실이다. 선생의 문학적 성과를 연구하는 후생들은 을지로3가 인쇄골목 허름한 건물 2층의 이 공간의 의미를 소홀히 다루면 안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출간한 『大邱⦁達城詩誌』 제8집 『오솔길 끝에 막은안창집에는 할매 혼자 산다』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서쪽 끝 작은 도시 누쿠스까지 배달되어 왔다. 올해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 초이튿날 이곳에 와서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이 살고 있는 내게 선생은 시집을 포장하고 우체국에 가서 주소와 이름을 써넣고 비싼 국제 우편료를 부담하면서 이곳까지 보내주셨으니 내 어찌 이 시집을 가벼이 할 수 있겠는가. 이 시집에 대한 구상과 내용은 이미 진즉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 권의 두툼한 시집으로 출간하였기에 가까이 있었으면 몇 번 더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회를 풀어내셨을 텐데 하는 생각에 이르자 뭉클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대구 달성의 전설과 설화를 포함하여 경상도 지방언어에서 접두어와 접미어로 쓰인 형용사 부사 동사 명사를 망라한 시집이자 언어자료집이다. 이렇게 모은 자료는 지방언어를 연구하는 국어연구자들께도 귀중한 텍스트가 되리라 믿는다.
ㅡ『우리詩』 202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