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일)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용산 재개발 지구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살인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드린다.
이번 참사의 일차적인 원인은 철거민들과 어떠한 대화 노력 없이 25시간 만에 특공대까지 투입한 경찰의 살인진압에 있다. 공권력 남용에 따른 인명의 피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찰의 살인진압 ‘배후’에는 이명박 정권의 ‘불도저식 공안통치’가 자리 잡고 있다.
1%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법질서’를 운운하며 비판의 목소리는 옥죄려드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경찰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겠는가? 촛불집회에서 ‘인간사냥’ 논란을 일으킨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경찰청장으로 중용한 것은 또 어떤 ‘메시지’를 주었겠는가? 이명박 정권은 일선 경찰들을 향해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쯤은 ‘법치’의 이름으로 마구 짓밟아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살인진압은 이런 비뚤어진 인식의 결과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기댈 데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제 주장을 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고 국정 운영 전반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참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오늘(21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참사의 근본 원인에 눈감은 채 ‘과격시위’를 강조해 살인진압의 책임을 ‘물타기’하고 사건의 파장을 축소시키는 데 급급했다. 반면 한겨레·경향신문은 참사의 일차적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오만과 독선, 재벌이 주도하는 대책 없는 뉴타운 개발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중동, 철거민 ‘과격시위’ 부각해 살인진압 ‘물타기’
21일 주요 신문들의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기사 건수는 표 1과 같다. 다른 신문들에 비해 조선일보의 기사 건수가 눈에 띄게 적다. 사건의 파장을 애써 축소시키려는 듯한 모습이다.
표 1. 주요 신문 21일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기사 수 |
-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 |
한겨레신문 |
경향신문 |
기사수 |
9 |
15 |
16 |
16 |
16 |
이러한 조선일보의 행태는 지면 편집에서도 드러났다. 다른 신문들은 용산 철거민 참사를 1면 톱으로 뽑았으나 조선일보만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1면 톱으로 배치했다.
철거민의 ‘과격시위’를 부각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과 기계적으로 대비시키는 행태에서는 조중동이 비슷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철거민 진압작전의 가슴 아픈 결말>에서 철거민들의 ‘과격시위’ 양상과 경찰의 대응을 상세히 전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 법과 원칙에 따라 법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경찰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해야 했다’는 게 조선일보의 논리다. 조선일보는 ‘농성 25시간밖에 안 지난 시점에 경찰특공대원까지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경제가 어렵고 국민사정이 절박하니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경찰이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응”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범정부적 사회안정대책”을 당부하는 데 그쳤다.
2면 ‘신경무 만평’에서도 제목을 <‘불법’과 ‘무데뽀’…>로 달아 시너와 합판망루 등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농성장에서 화염병을 들고 “에이 설마…”하는 철거민들과 “돌격!!!”을 외치는 경찰 특공대가 대치하는 모습을 그렸다. 철거민의 ‘과격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을 나란히 놓고 양비론적인 시각을 편 것이다.
10면 <농성 25시간 만에 특공대 투입… 철거민들 화염병 저항>에서도 철거민들이 화염병과 새총을 들고 경찰과 대치하는 사진을 크게 편집해 ‘과격시위’를 부각했다.
중앙일보도 사설 <수도 한복판서 벌어진 부끄러운 참극>에서 “경찰의 설명대로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진압의 정당성부터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점거 농성에 참여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경찰과 철거민 양쪽에 책임을 물었다.
1면 톱기사 제목도 <화염병 시위 중 시너폭발 농성자 5명 경찰 1명 사망>으로 뽑아 참사의 원인이 ‘화염병 시위’에 있는 것처럼 부각시켰다.
4면 기사 <[쟁점 1 피해 왜 커졌나] 철거민 농성 두 달도 기다리더니 이번엔 25시간만에 진압>에서는 “망루 위에 있던 시위대가 또다시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염병의 불꽃은 시너를 타고 화염으로 변했고 순식간에 망루 아래 쌓여 있던 70여개의 시너통에 옮겨 붙었다”며 철거민의 화염병 투척이 발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5면 기사 <[쟁점 4 농성자들은 누구] 경찰 “연행자 28명 중 세입자는 7명”… 나머지는 원정 시위대>에서도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의 ‘과격시위’를 참사의 한 원인인 양 다뤘다.
동아일보는 사설 <용산 참사, 책임 소재 가리되 정쟁화는 안 된다>에서 노골적으로 용산 철거민 참사의 일차적 원인이 ‘과격시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갔다. 사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인화물질 반입 주동자와 불을 붙인 방화범을 잡아야 한다. ‘전국철거민연합’이 이번 과격 시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살인진압’에 대해서는 단지 “경찰의 미숙한 작전에도 잘못이 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정당한 법 집행조차도 정쟁과 사태 악화의 빌미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개탄’을 덧붙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면 톱기사 제목도 <극한 충돌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로 달아 철거민의 ‘과격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이 충돌해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는 식으로 몰았다.
반면 한겨레·경향신문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심층 보도하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 <이명박식 강압 통치의 예고된 참사>에서 “참극의 일차 책임은 과잉 진압을 서두른 경찰에 있다”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이어 “철거민들의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25시간 만에 경찰이 진압에 나선 것도 정상적이진 않다”면서 “국민의 생명보호를 본분으로 하는 경찰이 국민을 공격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1면 톱기사 <‘토끼몰이 진압’ 철거민 참사 키웠다>에서도 “경찰의 성급하고 무리한 진압작전이 대규모 희생을 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3면 <목격자 “화염병 물대포 맞고 시너에 떨어져”>에서는 발화 원인과 관련 경찰과 농성자 측의 주장 모두를 균형 있게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사설 <불도저 정권의 ‘밀어붙이기’가 빚은 참사>에서 “우선 지적할 것은 공권력의 무리한 개입”이라고 지적한 후 “사회취약 계층에 불과한 철거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을 했다고 비판했다.
1면 <철거민 진압 6명 사망… ‘공안통치’ 참사>, 3면 <1600명 투입… 전쟁하듯 진입… ‘130분간의 악몽’>, <김석기, 특공대 투입 결정> 등에서도 화재 대비도 없이 25시간 만에 대테러부대를 투입하며 살인진압에 나선 경찰의 행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조중동, 이명박 정권과 ‘MB악법’에 ‘불똥’ 튈까 전전긍긍
조중동은 용산 철거민 참사의 본질적 배경인 이명박 정권의 ‘불도저식 공안통치’와 재벌이 주도하는 대책 없고 폭력적인 뉴타운 재개발 문제점도 외면했다. 그러면서 참사의 파장이 이명박 정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경찰의 “지혜로운 대응”을 요구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다. “경찰의 강격 대응과 진압 대상과의 충돌이 불꽃을 튀기면 그 불길은 사회 바닥에 깔린 불만과 불안의 인화물질로 옮아 붙어 사회 전체를 태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경찰의 ‘법질서 확립’은 정당하나, 섣부른 대응이 국민적 저항으로 확대되어 정권에까지 화가 미칠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의미다.
5면에는 <철거민 참사로 2월 ‘인사청문회 전쟁’ 예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2월 국회에서 MB악법 강행처리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도했다. 같은 면 <여권 “어쩌나…”>에서도 여권의 당혹감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또 조선일보는 삼성물산·대림개발·포스코 등 재벌이 주도하는 뉴타운 재개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10면 3단짜리 단신 <[용산 4구역은] 용산개발 노른자위 땅… 세입자 127명 이주 거부>에서 간략하게 다뤘다. 사설에서는 “서울에선 앞으로 26개 지구 219 구역의 뉴타운 대상지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계획되어 있다”면서 “재개발·재건축은 철거 대상 세입자들이 일방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진행돼야 한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중앙일보는 아예 사설에서 “이번 참사가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또 3면 <‘제2촛불’ 긴장하는 청와대·정부>, <충격 휩싸인 정치권>에서도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이명박 정권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여권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다. 뉴타운 재개발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5면 <농성 왜 벌어졌나>에서 “더 달라”(세입자), “못 준다”(사업시행자)의 갈등이 용산 철거민 농성의 원인이라는 식의 간략한 기사 외에 다루지 않았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야당도 진상 규명을 지켜보고 이런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돕는 게 책임 있는 자세”라며 “이 사고를 구실로 사회갈등을 부추기거나 제2의 촛불로 확산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면 의도가 불순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처음부터 ‘정치공세’로 못 박아 사태의 파장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나아가 사설은 “법과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지면 결국은 절대 다수의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며 이명박 정권의 ‘법 질서 확립’ 기조에 힘을 실어주는 태도마저 보였다.
5면 <[정국 소용돌이] “개각 하루만에…” 인사청문회-법안전쟁 시계제로>에서도 2월 임시국회에서 MB악법 강행처리에 걸림돌이 생겼다는 점을 우려하는 보도를 했다. 재벌이 주도하는 뉴타운 재개발의 문제점은 4면 2단 기사 <농성 원인과 영향>에서 간략하게 다뤘을 뿐이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참사의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책임을 ‘과격시위’로 돌리려는 청와대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참극은 그런 폭압적 정권 운용에선 진작부터 예고된 재앙”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민 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이번 참극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경찰청장 내정 철회 및 해임도 요구했다.
3면 <생존권 요구가 테러범? 경찰특공대 투입 ‘참사’ 자초>에서는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는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에 철권을 휘둘러 온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행정력이나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들까지 ‘공안’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공권력과 시민의 충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4면 <서울시 무분별한 재개발의 비극>, <사망자 2명 음식점 등 운영…“장사터전 지키고 싶었을뿐”>에서는 “서울 용산 재개발 철거 현장의 참사는 근본적으로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광풍을 일으킨 무분별한 도시정비사업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12면 <추모 촛불집회도 물대포 강경 대응>에서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에도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밀어붙이며 강제 해산에 나서는 경찰의 폭력 진압 행태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권의 밀어붙이기 식 ‘공안통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참화”로 규정하고, “경찰 지휘부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만 정권 차원에서도 국민 앞에 진심어린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면 <서민들만 ‘떼법척결’… MB식 ‘일방법칙’ 화 불러>에서는 “이 대통령이 틈만 나면 ‘준법’을 강조하면서 검경이 과잉대응하고 대화 설득보다 공권력 밀어붙이기만 우선했다”고 분석했다.
4면 <세입자 보호 대책없이 몰아내기에만 급급>, <불상사 반복…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다>에서는 재벌이 주도하는 뉴타운 재개발의 문제점을 다뤘다. 이 기사들을 통해 경향신문은 “도심 재개발 사업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접근하는 건설사들과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활용한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12면 <사지로 내모는 ‘겨울철 강제철거’>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겨울철 강제철거가 버젓이 자행되는 현실을 보도했다.
2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MB악법’을 강행처리 할 것을 오매불망 바라고 있는 조중동으로서는 살인진압의 파장이 정권으로 번지는 것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폭력시위’, ‘화염병시위’를 부각해 살인진압을 물타기 하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닌가?
그러나 6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과격시위’를 했다한들 국민 목숨을 이토록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들의 요구는 절박한 ‘생존권 보장’이었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한 치의 고려 없이 살인진압으로 맞선 것은 어떤 핑계를 들이대도 합리화할 수 없으며, 이명박 정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을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빼내려는 얄팍한 시도를 중단하라.
아울러 이명박 정권에 경고한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 관련 책임자를 당장 해임하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국민을 ‘적’으로 돌린 정권은 반드시 심판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