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신라 금관, 예식용인가 장의용인가
몇 달 전 미국 황제 트럼프가 와서 신라 금관 복제품을 선물로 받고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신문 지상에서 보았다.
오늘 불현듯 그 선물이 순금인지 아니면 도금한 물건인지 의문이 생겼다. 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확인해 본 즉, 도금한 물건이란다. 그 금관을 제작한 금속공예장인 김진배(63)씨의 말에 의하면 적동(赤銅)-동에 소량의 금을 섞은 것-에 도금한 금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소량이란 것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이 들지만 그저 금관의 소재에서 금이 동보다는 많지 않다는 언급이라고 이해하고 납득하며 넘어가려한다.
조선왕조 초에 명나라로부터 금을 조공품으로 바치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조선은 금이 산출되지 않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복명하고, 국내의 금광 채굴을 금지한 역사에 비추어, 대국인 미국 황제에게 순금 왕관을 증정함은 국민감정에 어긋난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금시장에서 금괴를 사들일 정도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졌고, 트럼프에게 금관을 주면 분명 그가 매우 기뻐하고 대미 협상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이 있었기에 금관을 선물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도금된 왕관을 선물해서 트럼프를 기쁘게 했음은 절충의 묘를 살렸다고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이왕 인터넷에 들어간 김에 신라 금관에 대해 조금 훓어보았더니 그 금관이 예식용인지 아니면 장의용(葬儀用)인지 두 견해가 대립하고 학계의 다수설은 장의용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금관(금동관 포함)이 장의용으로 데스마스크라는 설은 두 가지 근거를 내세운다.
첫째, 금관이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쓰고 다니기에는 너무 취약한 구조이며 제작 기법도 매우 거칠다는 점.
둘째, 출토 당시 금관이 피장자의 머리에 씌어져 있지 아니하고 얼굴 전체를 감싸는 모양새로 눌려서 펼쳐져 있었던 점.(금관이 짜부라져 있던 것은 무덤 조성 후 복토나 석재의 낙하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한편, 금관이 생전에 예식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는 다음에 근거한다.
금관은 그 성분이 순금에 약간의 은을 섞어서 19.3 내지 21.1K급으로 제작되었는데, 순금으로 제작한 관은 너무 물러서 착용하기가 어려우므로 강도를 더하기 위해 은을 소량 섞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견해는 금관이 데스마스크용이라면 순금에 굳이 은을 섞어 강도를 높힐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어느 설이 타당할까?
나는 생전 예식용이라는 설이 맞다고 생각하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금관이 장의용이라면 그것은 피장자가 죽은 후에 제작되는 것이 통상의 예일 것인데 금관의 제작에는 앞에서 언급한 김진배 장인에 의하면 20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시신을 모신 후 20일 동안 금관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이상하다. 금관이 시베리아 유목민에서 연유했다면 그렇게 오랜 장사기간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왕과 왕비의 금관을 생전에 제작해 두는 방법이 있다. 파라오의 생전에 피라미드가 건설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신라의 금동관 중에는 소년 왕자를 위한 사이즈가 작은 관도 출토되어 있다. 장의용설에 따르면 왕자가 죽은 다음 부모는 20일 간 금동관 제작을 기다려 장사를 지내거나, 또는 왕자의 성장에 따라 수시로 머리에 맞는 사이즈의 금동관을 만든다, 그래서 아들의 요절에 대비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므로 대단히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 설명이라서 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금관은 생전 예식용이라는 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럼 왜 금관을 짜부려뜨렸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설명하겠다.
“내 부친의 장례는 집에서 치렀는데 출관 시 숙부가 눈물을 흘리며 바가지를 밟아 깨뜨렸다. 아마 현세의 생은 깨지고 내세로 넘어간다는 어떤 상징이리라. 이런 장례 의례의 원류와 짜브라진 신라 금관이 연관이 있지 않을까, 즉 ”마립간이시어! 당신은 이제 이 금관을 머리에 쓰시던 현세의 생은 끝났습니다. 보십시오, 찌브러진 왕관을! 당신께서 죽었음을 깨닫고 내세로 평안히 가십시오.“ 이런 뜻을 전달하는 상징이 아닐까?
이상 39도 폭염을 무사히 견디어낸 구로 노인의 한담이었습니다. (끝)
첫댓글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최악의 폭염은 지나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