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J선생(G일보 전 논설실장)과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 후엔 바람도 쏘일 겸 금산에 갔다. 특별히 무슨 볼 일이나 행사가 있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그 분과는 가끔 만나 점심을 함께 하는 사이로, 식사 후엔 으레 산책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J선생과의 인연은 과거 공직 퇴임 후 지방 일간지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칼럼을 집필할 때부터 시작됐다. 그분과 남달리 친숙하게 지내는 것은 세상사를 논하며 호흡을 맞춰 글을 써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나와 동갑인데다가 학창시절 그 분이 내 장형의 제자이기도 해서 남다른 정을 느끼면서 지내게 됐다. 물론 그분의 소탈한 인품이 좋아 종종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만남의 이유다.
오늘도 그 분의 연식 오래된 검소한(?) 승용차를 타고 대전을 벗어나 교외로 바람 쏘이러 가게 되니, 세상만사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동심처럼 즐거웠다.
그분과 한참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디 숨었다 나오는 이야기보따리인지 비밀스러운 체험담도 끝없이 이어진다. 공개 못할 ‘특종거리’일수록 더욱 재미있다. 돌이켜보니까 ‘재미있는 이야기’이지, 당시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한숨 쉬었던 삶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격변의 파란만장했던 한 시대를 그분은 신문기자로, 나는 경찰관으로 별의별 특이한 경험을 다 하면서 살아온 동년배로서 이젠 서로를 존중하면서 노년의 길을 쓸쓸하지 않게 걸어가려고 노력한다.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으랴.
세상사 담론이든지, 사소한 개인사이든지 둘 사이 오갈 수 있는 이이야기는 거리낌이 없다. 티끌만한 이해관계도 없이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점심시간에 나눈 이런 저런 ‘웃기는 얘기’를 다 소개하긴 어렵고, 돌아오는 길에 만인산萬仞山 자연휴양림에 들러 ‘호떡 사 먹은 얘기’나 할까 한다. 만인산 자연휴양림 호떡가게는 언제부턴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름도 특이하다. ‘봉이 호떡’.
그분은 어딜 가든지 ‘입가심’하길 좋아한다. 촌놈인 내가 좋아하지 않는 쓰디 쓴 아메리카노커피도 외국여행을 자주 다녀서 그런지 잘 마시고, 각종 탄산음료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점심에 과식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그분은 달랐다.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하다는 봉이 호떡을 안 사먹고 갈 순 없다면서 줄을 섰다.
호떡 한 개 사먹기 위해 노년의 언론인이 젊은이들의 뒤에서 느긋이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도 볼만(?)했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도 매우 차가웠는데 인내력을 가지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그 분이 호떡 두 개를 사들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내게로 다가왔다.
▲ 대전 만인산 ‘봉이 호떡’
나무 의자에 마주앉았다. 방금 철판에서 나온 호떡이라 매우 뜨거웠다. 조심스럽게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분은 마치 동심(?)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거의 다 먹어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유명한 호떡이라 그런지 식감이 바싹하고, 고소하네요. 속에 잣도 들어있네요. 그런데 호떡이란 것은 속에 뜨거운 단물이 있어 조심해서 먹지 않으면 자칫 낭패 보게 되지요. 검은 설탕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무수히 경험했던 낭패 담을 마치 혼자만 알고 있는 듯 ‘주의사항 당부’처럼 말하자, 그 분도 (‘나도 잘 알아요, 조심할 게요’라고 속으로 말하고 싶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앗!”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의 ‘주의사항’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그분이 소릴 질렀다. 호떡 한 개를 거의 다 먹어갈 즈음, 호떡에서 나온 검은 설탕물이 주르륵 바짓가랑이로 흘러내렸다.
순간,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물티슈도, 화장지도 없어 난감하기에 응급조치로 내가 들고 있던 호떡 담아온 사각의 종이그릇으로 우선 급한 대로 옷에 흥건히 고인 설탕물을 닦았으나 ‘찐득한 액체’는 바지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분은 평소 소탈하고 호방한 성품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지만 조금만 웃었다. 남의 낭패를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호떡을 다 먹고 나서 경관 좋은 멋진 산책로를 함께 걷고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그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주차장 쪽에서 그분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차량에 비치된 물티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분은 옷을 손질했고, 나는 길가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정훈시비 머들령’을 크게 낭송했다.
▲ 정훈 시비 <머들령>
요강원을 지나 / 머들령 /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내리고 / 등짐장사 쉬어 넘고 / 도적이 목 지키던 곳 /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 뻐꾸기 자꾸 울던 날 /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 파랑 갑사댕기 / 손에 감고 울었더니 / 흘러간 서른해 /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명시名詩다. 대전 출신 정훈丁薰 시인(1911~1992)의 대표작이다. 시구詩句에 나오는 ‘도적이 목 지키던 곳’ 대목을 다시 읊으며 우리는 그 옛날 바로 요 자리에서 도적에게 돈 뺏기던 장꾼들의 허탈과 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시 한수 음미하고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그분이 정작 안내하고 싶은 곳은 따로 있는 듯했다. 내가 처음 가보는 숲 속의 ‘민속박물관’이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좁디좁은 산골짜기로 들어가니, 널따란 주차장엔 차들이 꽉 찼다.
작은 민속박물관이지만 옛 사람들의 각종 장신구에다 크고 작은 수많은 맷돌, 다듬잇돌, 돌확 등은 이곳만큼 다량으로 잘 보존돼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특히 엄청난 수량의 다듬잇돌을 마치 돌탑처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곳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대전에서 40년 넘게 살았는데도 이런 산골짜기에 민속박물관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 옛터 민속박물관
생소했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 온 것처럼 내 눈엔 신기한 볼거리도 많았다. 기행紀行이란 새로운 여행정보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느끼지 못한 나만의 경이로운 발견이나 신선한 깨달음도 중요하고 값진 것이다.
60대 후반 노년의 두 남자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호떡 한 개 사 먹고, 외딴 산속에 숨어 있는 민속박물관을 찾아 다듬잇돌과 맷돌 등을 살펴보면서 옛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새삼 느껴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두들기고 두들겨서 닳고 닳은 수많은 다듬잇돌. 찧고 찧어서 원형이 기형으로 변형된 수많은 돌절구. 갈고 갈아서 움푹 파이고 납작해진 맷돌도 있었다.
이 많은 돌기구들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드넓은 한밭[大田]고을 전 지역에서 모조리 수집해 놓은 것만 같은 엄청난 수량의 돌기구들이었다. 그 분과 나는 특히 탑을 쌓듯 쌓아 놓은 다듬잇돌 앞에서 숙연해졌다. 옛 여인네들의 고단한 일상과 남모르는 한이 서려 있는 다듬잇돌. 방망이로 얼마나 두들겼으면 저리도 닳고 닳았을까.
돌확은 또 어떤가. 내 고향 청양지방에서는 ‘학독’이라고도 불렀다. 그 단단한 화강암이 닳고 닳아 변형된 것도 많았다. 저 닳고 닳은 수많은 돌 기구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가.
집집마다 첨단 전자 제품이 그득하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누리고 사는 이 편리한 시대에 닳고 닳아 원형조차 상실해 가는 저 돌기구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단순한 관광지 장식품인가, 특이한 볼거리인가. 그렇지 않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역사다.
보리쌀 찧고, 매운 고춧가루 빻으면서 빈궁한 여인네들이 저 돌확 앞에서 흘린 눈물의 양量이 얼마인가. 저 서러운 돌 기구 속에 맺힌 옛 어머니, 누님들의 한과 눈물은 몇 동이였겠는가.
이제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우리 두 노년의 남자는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우리 두 남자는 이런 사연 많은 ‘옛터’를 예사로 지나치기 어려웠다.
세상은 놀랍게 발전하고 의식도 변했으나,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웃을 일이 없는 우울한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린아이처럼 호떡 한 개 입에 물고, 희희낙락했던 웃음이 그래서 사소하지만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이색 볼거리를 안내해주고, ‘별난 호떡’ 맛의 여운이 오래 남도록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든 언론인 J선생께 감사드린다. (2018.12.18.)
첫댓글 대전에 가면 봉이호떡 맛보아야겠네요~~
봉이호떡을 사먹고나서 바로 근방에 있는 민속박물관 '다듬잇돌 탑'을 둘러 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글 후반부에 그 얘기를 추가 보강했습니다.
'문화역사탐방' 란에 옮겨 올리니 150여몀이 읽었습니다. 이는 물론 좋은 글이기 때문이죠. 문학하시는 분이 참여하시니 역사카페가 날개를 단듯 발전하는 모습이 예상됩니다. 장천선생 감사합니다. 장천성생은 역사평론에 글을 남겨주실 수 있는 특별회원이십니다. 세상을 바로가도록 하고 국민의 주체사상, 자유민주주의 뜻을 담은 시론을 간간이 써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과찬이십니다. 조회수가 정상이 아닌듯합니다.
글 후반부에서 다듬잇돌 탑과 돌확의 의미를 추가 보완했습니다.
먼저 올린 저의 댓글이 없어졌네요. 갈 기회가 있으면 봉이호떡도 사 먹으면서 본 기행문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민속박물관도 방문하고 이에 대한 기행문을 올리고 싶습니다. 좋은 기행문 감사합니다.
박사님이 쓰신 댓글은 새로 개설한 비공개 게시판에 쓰신 댓글입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댓글은 다른 사람이 삭제 불가능합니다.
아쉬운 것은 다듬잇돌탑 사진을 미쳐 찍어 오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그 사진을 찍어와야겠습니다.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올사모 정회원만이 보는 란에는 남아 있군요 .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