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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16일 월요일
[(자)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영을 입은 발라암은 이스라엘에서 별 하나가 솟고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권한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수석 사제와 원로들에게 그들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당신의 말씀을 왜곡할 것임을 확인하시고 대답하지 않으신다(복음).
제1독서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물음에 의논합니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마태 21,25-26). 이들의 마음 안에는 ‘다른 이들에게 받게 되는 평가’와 ‘체면’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르겠소”(21,27).
하느님을 의식하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면 하느님 앞에서 진실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죄를 고백하면 신부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생각 때문에 용서를 청해야 할 때 “모르겠소.”라고 대답해 버립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할 순간에도, 그분의 말씀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한사코 “모르겠소.”라고 대답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21,27).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모르겠소.”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다. 만일 신앙생활이 메말라 가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 체험이 사라지고 있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의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복음에 등장하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처럼 다른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어느 대학에서 유학하셨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존경하는 선배께서 오래전 겪은 참담한 체험입니다. 한 모임에 참석하셨는데,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모임이었답니다. 거기에는 나름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모임 시작 때 쭉 돌아가면서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일 관심을 끄는 질문은 “어느 대학에서 유학하셨습니까?”이었습니다.
들어보니 다들 말로만 듣던 엄청난 대학, 국내외 유수 대학에서 오랜 세월 공부한 박사님들이었습니다. 우리 신부님 차례가 되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저는 사제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신학 공부 외에 다른 학력은 없습니다.”
그랬더니, 회의 중간에 담당자께서 조용히 신부님에게 다가오시더니, 귓속말로 그러더랍니다. “다음 모임에는 안 나오셔도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학력, 경력, 자격증, 스펙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서 가방끈 긴 사람들 중 으뜸인 사람들이 있었으니, 수석 사제들이었습니다. 유다교를 대표하는 중요인사들이자 권위자들이었습니다.
한편 백성의 원로들은 정통 율법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로서, 유다인들 사이에서 막강한 정치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비록 로마 식민 통치하에서 제한된 권력이었지만 유다 사회 전반을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예수님은 정식 율법학교 졸업생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문하생도 아니었습니다. 교수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자격자인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공식적인 허락이나 승인도 없이 성전에서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말씀 한 말씀에 백성들이 환호하고 열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기가 많이 불편해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따져댑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태 21,23)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있어서 목숨처럼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권한이었습니다. 합당한 절차와 자격, 제도와 법이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교사자격증도 없는 주제에 ‘야매’로 성전에서 가르치느냐?’며 예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질문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다시 또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 아버지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분이십니다. 지혜의 원천이신 분입니다.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분이십니다. 스승 중의 스승, 참스승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것, 모든 피조물 전체, 인류 전체에 대한 권한을 당신 손에 쥐고 계신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께 한없이 부족하고 철딱서니 없는 한 인간이 예수님의 자격유무에 대해서 따져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기가 차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5살짜리 유치원 아이가 한 분야를 완전히 터득한 대석학, 박사학위 심사를 심사하는 석좌교수에게 무슨 자격으로 가르치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을 않는 편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장난에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노림수가 분명할뿐더러 잔뜩 꼬이고 꼬인 그들의 질문이 조금도 진실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거부하십니다. 질문이 진실해야 대답도 진실할 텐데 그들의 질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려면 질문 자체가 진실된 질문이어여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성의 있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한 질문, 영혼의 구원에 도달하기 위한 질문이어야 하는데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의 질문은 한 마디로 어리석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응답(無應答)은 사실 정답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삐뚤어지지 않고 정직한 사람들은 모두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이 보내신 마지막 대예언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듯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있었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분의 성령께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며 예수님의 위격과 권한을 명백히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실 자격과 권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받고 세상 모든 인간의 권한 위에 서 계십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교회는 2025년을 ‘희망의 희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은 2025년 사목 지침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번 희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희망의 순례자’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희년의 목적과 의미는 그저 ‘전대사를 얻는 좋은 기회’에 그치지 않고, ‘구원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을 뜨겁게 하는 해로 우리를 초대함에 있습니다. 이 뜻깊은 희년에 예수님과 더욱 깊은 만남을 이어가면서, ‘우리의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에서 ‘모든 희년 행사의 근본 요소는 순례’라고 하셨습니다. ‘전통적으로, 순례 여정을 나서는 것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도보 순례는 침묵, 노력, 단순한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에 큰 보탬이 됩니다.’라는 교황님의 말씀대로, 순례는 ‘우리 인생이 바로 순례하는 여정’임을 묵상케 합니다. 도보 순례에서 흘리는 땀방울을 통해 우리네 삶에서 땀 흘리는 수고로움의 고귀한 의미도 되새기게 되고, 순례 여정을 함께 하는 우리가 모두 영원한 생명을 향해 시노드 여정을 함께하는 길동무임을 새삼 고맙게 느끼게도 됩니다. 나아가, 도보 순례는 이 세상에서 ‘지나가는 것’과 ‘영원한 것’을 묵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읽고 있습니다. 2025년의 ‘화두’는 ‘지킴과 바꿈’이라고 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지킴’이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그 경쟁력을 잘 보여준 나라가 일본입니다. 일본은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이 시골의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식당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일본은 200년,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일본은 그런 장인 정신으로 제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한번 기업에 들어가면 평생, 직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기업도 그런 직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1980년대에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그런 일본을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의 문화, 예술, 경제는 일본을 모방하였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바꿈’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지킴으로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한국은 과감하게 ‘혁신과 개혁’을 선택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아내 말고는 다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디지털의 생태계에서 변화와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블루오션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팩스와 도장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반면 한국은 전자결재와 인터넷으로 기업을 운영합니다. 일본은 아직도 음반 판매로 음악시장을 이끌어가는데 한국은 음원과 유튜브로 음악시장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BTS, 유진스와 같은 가수들이 세계 음악시장에서 성공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선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신비와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관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유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개혁과 혁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들에게 권위의 근거는 전통과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전통과 율법을 뛰어넘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율법과 전통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지는 형제와 자매의 ‘틀’도 과감하게 바꾸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모두 형제요 자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풀잎 끝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 같은 인생을, 피었다가 지고 마는 꽃잎 같은 인생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벌의 도구였던 십자가를 영원한 생명의 표징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신학교에서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을 배웠습니다. 교회는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복음의 메시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전통을 유지하거나 변화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완전히 드러내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소명을 뜻합니다. 교회가 항상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성찰하고 새로워지는 공동체로 남아야 함을 상기시키는 신학적 원리입니다. 이는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과 시대적 책임, 그리고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의 지속적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 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이런 사람이고 싶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마태 21,24)
약한 사람
앞에서
약해지는 사람
강한 사람
앞에서
강해지는 사람
작은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
큰 사람
앞에서
커지는 사람
낮은 사람
앞에서
낮아지는 사람
높은 사람
앞에서
높아지는 사람
없는 사람
앞에서
비워지는 사람
가진 사람
앞에서
채워지는 사람
무른 사람
앞에서
물러지는 사람
센 사람
앞에서
꼿꼿해지는 사람
오늘의 성인
성 아나니야 (Ananias)
성 아자리야 (Azarias)
성 미사엘 (Misael)
신분 : 구약인물, 증거자
활동지역 : 바빌론
활동연도 : BC 7세기경
¹같은이름 : 아나니아, 아나니아스, 하나니아스, 하나니야, 하난야
²같은이름 : 아자르야, 아자리아스
³같은이름 : 미사이엘, 미싸엘
성 아나니야(Ananias)와 성 아자리야(Azarias) 그리고 성 미사엘은 바빌론의 왕 느브갓네살(또는 네부카드네자르)의 박해 때 가마 속에 던져졌으나 그 가마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했던 바빌로니아(Babylonia) 근교에 살던 세 명의 젊은이들이다(다니 3,1-50. 88).
그들은 결국 바빌론 왕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어냈다.
아나니아는 '야훼는 은혜로우시다', '야훼께서 나타나심', '야훼께서 보호하심'이란 뜻이다
성녀 알비나 (Albi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250년
같은이름 :
성녀는 데치오(Decio)의 신앙포기 요구를 거부 하다가 순교를 당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어떤 배 안에 버려졌으며, 그러다가 스카우리(Scauri) 어항에 당도하였다.
여기서 성녀의 시신이 가에따(Gaeta)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가에따 성당에 모셔져 있는 에라스모 성인 유해 곁에 안치하였다.
성녀 아델라이드 (Adelaide)
활동년도 : 931-999년
신분 : 황후
지역 :
같은 이름 : 아델라이다
950년 이탈리아 왕 로타르(Lothair)의 아내였던 성녀 아델라이드는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오토 대제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962년 교황 요한 11세(Joannes XI)에 의하여 황녀로 대관하고, 973년에 오토 대제가 사망하자 거의 20여 년 동안 가계와 정치 분쟁에 휘말렸다. 그녀의 아들 오토 2세조차 그의 그리스인 아내 테오파누스의 조작에 따라 자신에게 반기를 들게 되자 잠시 궁중을 떠나 부르고뉴(Bourgogne)에서 지냈다. 비슷한 일이 그의 손자 때에도 발발하여, 995년부터 그녀는 평화스런 생활을 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6월 20일), 마인츠(Mainz)의 성 빌리지스(Willigis, 2월 23일) 같은 사람들의 우정과 권고로부터 영웅적인 힘을 얻었다. 그녀는 알자스(Alsace)에 셀츠(Seltz)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곳에서 영면하였다. 성녀 아델라이드는 1097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세바스티아노 마기 (Sebastian Maggi)
신분 : 수사
지역 : 브레시아(Brescia)
활동년도 : +1496년
같은 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세바스티아누스 마기(Sebastianus Maggi, 또는 세바스티아노 마기)는 브레시아 출신으로 15세 때에 설교자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의 선교는 대성공이었고, 수많은 죄인을 회개시켰으며 불화 속에 신음하는 가정에게 화목을 심어 주었다. 그는 뛰어난 설교자였고, 당시의 최고 성인으로 꼽히던 히에로니무스 사보나롤라(Hieronymus Savonarola) 신부의 자질과 덕행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덕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불과 29세의 나이로 볼로냐(Bologna) 수도원의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관구를 순회하며 형제들을 방문하던 중에 제노바(Genova) 수도원에서 병이 들어 운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