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은 무슨…희망을 쏘는 중소기업 / ①
한진피앤씨◆
언제 끝날지 모를 불황이 시작됐다. 기업들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황무지에서도, 동토에서도 기업은 생겨나고 성장한다. 오히려 불황은 무슨 불황이냐며 아랑곳하지 않고 쑥쑥 커가는 기업이 있다. 이들 기업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좋은 인재를 뽑고 시장 관리를 잘하고 다각화에 눈을 부릅뜬 곳이다. 이들 '희망을 쏘는 기업'이 전해주는 불황 극복의 비결을 소개한다.
불황이 깊어지면 대부분 기업이 함께 그 늪으로 빠져들지만 오히려 펄펄 나는 기업도 있다.
한진피앤씨(대표 이종상ㆍ이수영)처럼 변신의 DNA가 종횡무진 힘을 발휘하는 기업이다.
한진은 2006년 337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00% 이상 뛰어 68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경기 침체가 무슨 말이냐'는 듯 85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비결은 37년간 주력 업종을 네 번이나 바꾸면서 변신을 거듭한 데 있다.
이 회사는 호경기에 사방이 흥청거릴 때 신규 사업의 씨앗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불경기가 닥치면 눈을 틔워 시장을 잡아먹어 들어가는 발 빠른 사업다각화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은 인쇄소로 출발해 포장용 종이상자를 만들다가 공기가 쉽게 통하는 기저귀용 통기성 필름을 생산한 데 이어 LCD 패널을 긁힘에서 보호해주는 필름까지 개발했다.
특히 기존 사업과 기술적 연결고리는 부족하더라도 구매력을 이용해 영업망을 쉽게 확보하거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틈새시장이면 투자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과감히 뛰어들어 성공을 이끌어냈다.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진피앤씨 본사를 찾으니 샘플을 전시한 쇼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수영 대표(46ㆍ사진)는 "얼마 전 LCD 백라이트유닛(BLU) 시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옵티컬 보호필름 개발을 마쳤다"며 "올해가 가기 전에 제품을 양산해 샘플도 저곳에 둘 계획"이라며 한쪽 벽장을 가리켰다.
1971년 이종상 회장(72)이 창업한
한진피앤씨는 당시 작은 인쇄업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제나 변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워왔고 몇 년 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과자 와인 티슈 등 제품을 포장하는 판지상자 업체로 탈바꿈했다.
1989년 아들 이수영 대표가 입사하면서 이러한 변신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1994년 이름도 생소한 통기성 필름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당시 기저귀 시장은 공기가 잘 통하는 통기성 제품이 속속 출시될 무렵이었다. 하지만 핵심 소재인 통기성 필름은 대다수 외국산이었다.
이 대표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고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주변 여건도 좋았다. 포장용 판지상자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양의 제지를 구입하고 있던 터라 기저귀를 생산하는 제지회사에 대응하는 협상력을 갖춘 상태였다.
하지만 필름 특성상 원료 배합이 관건이었다. 연구인력 30명이 밤낮으로 매달렸다.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과 탄산칼슘을 적합한 배율로 배합하고 이 원료를 눌러서 적절한 두께로 뽑아내는 압출연신 과정을 수백 차례 반복했다. 집념의 결과 결국 2년 만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통기성 필름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졌지만 이듬해 이 회사는 중소기업 유공자 대통령 표창과 무역의 날 '1000만불 수출탑'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이 대표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위기를 잘 넘겼다"며 "기업이 잘될 때 연구개발(R&D)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때 체득했다"고 설명했다.
불황에 대비한 기술투자는 계속됐다.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통기성 필름의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할 무렵, 다시 새 아이템을 찾아 나섰던 것.
이 대표는 국내에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블루오션과
한진피앤씨가 갖춘 특유의 필름 기술을 접목할 영역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2003년 시작된 LCD 보호필름 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LCD 보호필름은 LCD 제조 과정에서 미세한 먼지에도 타격을 받는 패널을 덮어주는 보호용 필름. 지금껏 전량 미국에 의존해 왔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필름에 대한 노하우를 갖췄기 때문에 1년 내 제품을 출시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황금빛으로 알고 덤볐던 사업은 온통 지뢰밭이었다. 통기성 제품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상당액을 개발자금으로 털어 넣었다. 장비를 새로 사고 인력도 50명이나 더 투입했다. 중소기업으로는 적지 않은 150억원이나 들어간 대모험이었다.
대기업과 공동으로 시작했던 LCD 보호필름 개발은 3년이 지난 지난해가 돼서 빛을 봤다.
이 대표는 "단 한 제품이라도 일류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
한진피앤씨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첨단 필름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회사가 모든 것을 바꿔도 단 하나 지키는 것이 있다. 직원 사랑이다. 불경기에 상당수 중소기업이 인력을 감축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업종 다각화를 통해 사양산업 부서에 종사하는 인력을 신규 사업 부서로 옮기면서 감원 한파를 피하고 있다. 오히려 추가 채용을 통해 2006년 285명이던 근로자 수를 2008년 현재 305명으로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