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최용현(수필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은 19세기의 콩고를 배경으로 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베트남 전쟁으로 각색하여 제작과 감독까지 맡아서 완성한 영화이다. 총 제작비 3,100만 달러를 들여서 만든 당대 최고의 전쟁 블록버스터로, 촬영과 편집에 3년 이상 걸렸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북미에서만 7,88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해외까지 합하면 1억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코폴라 감독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늘어난 제작기간에 따른 비용증가로 ‘대부’(1972년)로 벌어들인 돈을 다 쓰고도 모자라 집까지 저당 잡혔기 때문에 수익의 대부분을 채권자들이 가져갔기 때문이란다.
‘지옥의 묵시록’(1979년)은 그해 칸 영화제에서 ‘양철북’(1979년)과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촬영상과 음향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100대 영화에 28위, 2007년 선정에서는 30위에 올랐다. 또 영국 BBC 선정 위대한 미국영화 순위에도 90위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된 이후인 1988년에야 수입이 되어 극장판(156분)을 개봉했고, 2001년에는 주인공 윌러드 대위(마틴 쉰 扮)가 베트남 정글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프랑스 농부들을 만나는 장면이 삽입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202분)가 개봉되었다. 또 2019년에는 개봉 40주년을 맞이하여 코폴라 감독이 직접 재편집한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 컷’(183분)이 나왔다. 극장판을 중심으로 윌러드 대위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사이공 숙소에서 무료한 일과를 보내고 있던 윌러드 대위는 해군경비정 한 척과 네 명의 병사와 함께 넝강을 거슬러 올라가 캄보디아 국경 근처의 정글 속에 잠적하여 원주민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왕처럼 지내고 있는 미군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 扮)을 암살하는 비밀임무를 맡게 된다.
윌러드 일행은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扮)이 지휘하는 헬기공습부대가 발칸포와 네이팜탄으로 베트콩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서핑광인 킬고어는 폭격을 하는 동안에도 강의 파도와 바람을 체크하면서, 부하들에게 서핑보드를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윈드서핑을 하라고 닦달한다.
다음에 마주한 곳은 위문공연 현장이다. 핫팬츠 차림의 쇼걸들이 ‘수지 큐(Susie Q)’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선정적으로 몸을 흔들어대고, 흥분한 병사들이 헌병들의 제지를 뚫고 무대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진행자가 급히 쇼걸들을 헬기에 싣고 떠나버린다. 이들 일행은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민간인 선박을 만나 검문을 하는데, 젊은 여자가 무언가를 숨기는 것을 보고 일행들을 모두 총으로 쏴 죽인다. 알고 보니 강아지를 숨긴 것이었다.
윌러드 일행은 다시 가다가 연료 2통을 주고 산 플레이걸들과 좀 놀다가(?) 캄보디아로 들어가는 관문인 돌렁 다리를 지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윌러드는 진지에서 기관총을 쏴대는 병사에게 지휘관이 누구냐고 묻는데, 그 병사는 ‘대위님 아닙니까?’ 하며 윌러드에게 되묻는다. 이곳을 지키는 부대는 도대체 누구의 지휘를 받으며 싸우는 것인지….
이들은 드디어 커츠 대령이 신처럼 추앙받고 있는 정글 속 왕국(?)에 도달한다. 포로가 된 윌러드는 커츠 대령과 대면하는데, 그는 암살자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공포 때문에 내 영혼이 갈가리 찢겨졌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버렸고, 나 자신까지도 버렸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풀려난 윌러드가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한밤중에 커츠 대령을 칼로 쳐 죽이고, 다시 함선을 타고 귀환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서 킬고어가 이끄는 헬기부대가 바그너의 악극 ‘발키리의 기행’을 틀어놓고 베트콩 마을에 네이팜탄을 퍼부으며 ‘세상에서 네이팜 냄새가 제일 좋아.’ 하고 지껄이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또, 축제가 벌어진 밤에 커츠 대령을 죽인 월러드를 새로운 신으로 모시려는 듯 원주민들이 모두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헬기 등 필요한 장비를 필리핀군에서 지원받았다. 자국 군인을 암살하려는 시나리오가 미군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미군의 협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미군의 베트남전 참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반전영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코폴라 감독은 주인공 윌러드 대위 역을 물색하기 위해 스티브 맥퀸, 제임스 칸, 잭 니콜슨, 로버트 레드포드, 알 파치노 등 쟁쟁한 배우들과 접촉했으나 모두 거절당했거나 일정이 맞지 않았다. 결국 중견배우 하비 케이틀과 첫 촬영을 진행했는데, 영상을 본 관계자들의 반응이 신통찮았다. 고심 끝에 마틴 쉰으로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출연료가 가장 비싼 말론 브란도는 촬영 막바지에 나타났는데, 엄청나게 살이 쪄 있어서 코폴라 감독이 생각한 커츠 대령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거구를 숨기려고 어둠 속에서 커츠 대령의 독백 장면을 찍었는데, 결과적으로 미스터리한 커츠 대령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그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묘수가 되었다.
명우 해리슨 포드나 데니스 호퍼도 조연으로 잠깐씩 나온다. 윌러드의 일행 중에서 클린 상병으로 나오는 어린 흑인배우는 놀랍게도 ‘매트릭스’(1999년)에서 모피어스로 나오는 로렌스 피시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영화 초반에 폭격을 퍼붓는 베트콩 마을을 촬영하면서 ‘TV에 나오니 카메라 보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소리치는 수염 텁수룩한 기자는 카메오로 출연한 코폴라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