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썸이신가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그린썸이라고 합니다. 식물을 잘 키워 손끝이 초록 물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는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손만 대면 식물을 시들게 하는 사람을 '브라운썸(brown thumb)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브라운썸입니다.
모든 식물이 제 손을 거치면 생기를 잃어 너무 고민이 돼서 그린썸인 지인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초보자들이 식물을 죽이는 가장 흔한 이유는 물을 안 줘서가 아니라,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문 많이 줘서야. 너무 물을 자주 준 거 아냐?"
돌이켜 보니 저는 식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햇빛과 그늘 중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적당히 주어야 하는지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나도 이렇게 목마른데 식물은
얼마나 목마를까.' 하며 흙이 넘치도록 물을 붓곤 했습니다.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사랑의 조건 중 하나로 '지식(knowledge)을 말합니다. 사랑은 막연한 호감이나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상대의 내면을 알고자 애쓰는 태도와 꾸준한 관심이라는 뜻입니다.
내 세계 밖으로 걸어 나와,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서툰 사람은 종종 자기감정에 취한 채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만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 안에는 정작 '상대'가 없습니다.
상대에게 어떤 것이 편한지, 무엇이 부담스러운지, 지금 무엇이 필요할지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사랑에 빠진 '나'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의 세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부모라면 부모로서의 불안과 교육관을 잠시 빠져나와 자녀의 눈으로 하루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오후 4시에 하교해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밤에 학원 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느낄까요.
부모의 하루가 사회와 일터에서의 전쟁이라면, 아이들 역시 과제와 시험, 친구 관계라는 전쟁을 치르고 여기저기 작은 상처를 안은 전사처럼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아이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어떤 말이 아이의 몸과 마음의 쉼이 될 수 있을까요. 적어도 "너 오늘 학원 또 늦었다며?
요즘 왜 이러니?",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공부야. 너처럼 매일 공부만 하면 얼마나 좋겠니." 같은 말이 마중을 나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우리는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내가 얼마나 뜨겁게 느끼는가"보다 "당신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려 애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그린썸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을 더 알고 싶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2월은 관계의 그린썸이 되어보세요.
-- 조에스더 연세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
저서) 너에게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미디어샘)
첫댓글 맞아요
사실 "이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라고 하던데.....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 할려는 노력은
얼만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기술~♡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무조건인 감정적 사랑은
짧고 지치고
돌아서기 마련
식물에게도
그 식물에 맞는
환경과
배려와
적절한 사랑만이 필요하고
사람도
마찬가지
사랑할 수록
적절한 거리에서
서로가 바라보는
배려와 베품의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나라는 자리에 당신을 앉혀 놓고
한 걸음 물러나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