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은 의병의 날
"뭉쳐야 산다!"… 스스로 나라 위해 싸운 백성
충주성 전투 이끈 승려 김윤후, 백성과 힘을 합쳐 몽골군 물리쳐
임진왜란 때 곽재우·정인홍 등 의병장 지휘 아래 모인 백성들, 신분·계급 없이 나라 위해 싸웠어요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에요. 호국 보훈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과 공로에 보답하는 것을 말해요.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정한 것은 6월에 현충일과 6·25전쟁이 일어난 날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호국 보훈의 달에는 의병의 날도 있어요. 호국 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이죠. 의병의 날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정한 날이에요. 오늘은 의병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 외적 침입을 막기 위해 백성이 스스로 일어나다.
옳을 의(義), 병사 병(兵). 의병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옳은 것을 위해서 일어난 병사를 말해요. 역사적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백성이 스스로 조직한 군대나 병사를 말하고요.
우리 역사에서 외적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의병이 전투에 나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일은 많아요.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고려시대 대몽 항쟁 때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을 들 수 있지요.
대몽 항쟁은 고려가 몽골과 맞서 싸운 전쟁을 일컫는데, 주로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싸운 전쟁을 말해요. 그중에 제2차 침입 때인 1232년에 벌어진 처인성 전투와 5차 침입 때인 1253년에 벌어진 충주성 전투에서 의병들의 활약이 대단했지요.
1232년 고려 정부가 몽골에 대항하려고 강화로 도읍지를 옮겼어요. 그러자 장수 살리타가 이끈 몽골군은 고려 정부에게 개경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요구하면서 두 번째로 고려를 침입했어요.
◇ 대몽 항쟁 때의 의병
살리타가 이끄는 군대가 개경을 거쳐 경기도 광주에 이르러 광주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다시 수주에 딸린 작은 고을이었던 처인부곡에 이르게 돼요. 수주는 지금의 경기도 수원, 처인부곡은 지금의 경기도 용인이에요. 이때 처인부곡에 살던 백성이 처인성에 모여 승려 김윤후의 지휘 아래 몽골군과 전투를 벌여요. 전투에서 살리타가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자 몽골군은 고려에서 철수하게 되었고요.
1253년 고려를 5차로 침입한 몽골군이 충주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였어요. 충주성을 지키고 있던 지휘관은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였고요. 몽골군은 70여 일 동안 충주성을 위협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나 충주성을 지키던 군사와 백성은 식량이 떨어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고요. 그러자 김윤후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하며 노비들의 문서를 불사르고 백성에게 소와 말을 나누어주었어요. 이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사기까지 오른 백성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적을 물리쳤어요.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나라가 위태로운데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간다면 후손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이오."
"그렇소. 우리도 모여서 힘을 합쳐 함부로 우리 땅에 침략한 왜놈들을 혼내줍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이 수십 일 사이에 조선의 국토와 백성을 짓밟는데도 관군은 힘없이 무너져 맞서지 못하자 나라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어요.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이나 신분 구별 없이 스스로 모였지요. 이들을 앞장서서 지휘한 사람은 의병장들이었고요.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운 고경명과 김덕령,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한양과 진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운 김천일 등이 의병장으로 큰 활약을 했어요. 경상도 지역에서는 의령에서 의병을 모은 곽재우, 합천에서 의병을 모은 정인홍 등이 활약했고. 황해도에서는 이조참의라는 벼슬을 했던 이정암, 함경도에서는 정문부라는 인물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지요. 또 충청도에서는 조헌과 의병 700명이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기도 했지요.
◇ 홍의장군과 의병의 날
이 의병장 중에서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10일도 지나지 않은 1592년 4월 22일에 의병을 일으켰어요.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 부대는 여러 차례 일본군과 벌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5월 18일에는 의령의 기강이라는 나루에서, 5월 24일에는 정암진에서 일본군을 물리쳤어요.
정암진은 남강 북쪽 기슭으로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전투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요. 이후에는 현풍·창녕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고, 10월에는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전투의 승리에 힘을 보탰어요. 곽재우는 홍의(紅衣) 즉 붉은 옷을 입고 의병을 지휘하며 일본군을 무찔러 홍의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지요.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고쳐 계산하여 호국 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정한 것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