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당시에 가장 번영했던 도시이자, 문화예술의 전통이 깊은 라이프치히를 둘러봅니다.
우리는 라이프치히에서 1989년 독일 통일을 염원하는 시민항쟁의 기폭제가 된 평화기도회 현장인 니콜라이교회,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니며 공부한 괴테와 그가 쓴 소설 <파우스트>의 흔적, 바흐가 20년 넘게 음악활동을 한 성토마스교회를 답사하였습니다. 라이프치히 답사의 마무리는 괴테, 바그너, 리스트 등 내노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던 카페 바움을 찾아 맥주나 커피, 아이스크림 등을 맛보는 것입니다. 시간여행을 떠난듯 100년 전 혹은 200년 전 그들이 앉았을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첫번째로 방문한 니콜라이교회.
1989년 10월 7일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기도회에 모인 3천명의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평화시위를 벌였고, 시민항쟁은 라이프치히를 시작으로 동독 전역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가 드디어 11월 베를린장벽은 무너집니다. 작은 평화기도회와 이에 호응한 시민들이 역사의 큰 변화를 이끌어낸 현장이라 더 새롭게 나가온 곳이었습니다.





뭔가 묵직하면서도 예술적인 흔적과 감성이 느껴지는 라이프치히의 거리를 걸어봅니다. 길과 길 사이에 있는 건물들이 마치 지하통로처럼 길로 연결되어 있는 점도 재밌습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한 괴테의 동상.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술집이 아직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들러 파사주라는 복합상가건물 지하에 현재도 주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게 앞에 파우스트의 인물상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성토마스 교회는 바흐의 무덤이 안치된 곳이자 마틴 루터가 종신서원을 하고 1539년 성령강림정 기념설교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바흐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인데, 바흐는 이 교회에서 1723년부터 1750년 6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27년간 음악감독으로 일한 직장이기도 합니다. 오르가니스트겸 합창지휘자로 근무했고 마태수난곡 등 자신의 작품들 상당수를 작곡해 이곳에서 연주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흐의 유해는 1950년부터 이곳 토마스교회에 안치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의 스테인글라스를 보니 바흐, 루터, 멘델스존을 주인공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토마스교회 앞에 세워진 바흐의 동상. 자세히 보면 바흐가 입고 있는 외투의 왼쪽주머니가 밖으로 빠져나와있습니다. 해설사 말로는 흙수저였던 바흐, 가난했던 바흐를 표현한 거라는데 정설인지는 글쎄 모르겠습니다. ㅋ
어찌되었든 거의 평생을 교회를 위해 일하며 여행조차 하지못하고 매여있던 바흐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인정도 그가 죽고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조명되고 빛을 보게 되었지요.

토마스교회 밖 한켠에 있는 멘델스존 동상.
누구보다 빨리 바흐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은 멘델스존이라고 합니다. 멘델스존은 직접 나서서 기금을 모아 바흐를 위한 동상을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아래의 또 다른 바흐동상이 바로 멘델스존의 주도로 제작된 그 바흐 동상입니다.



괴테와 리스트 등 예술가와 문인들이 즐겨찾았다는 카페바움에 앉아 우리도 차를 마십니다. 정확히는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드셨지요..
원래는 그들이 앉았던 2층과 3층 실내공간에 앉아볼까 했는데 가보니 에어컨도 없는 독일카페에 날은 30도가 넘는 무더위라 모두들 혀를 내두르고는 야외에 앉아 쉬며 즐기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