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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의 만가
창밖 가지런한 시멘트 건물 위로 저만치 뾰족탑이 보인다. 나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있다. 이층이다. 창 아래 주차장엔 아직 그의 검은색 벤츠가 보이지 않는다. 브루스, 네가 타고 오는 그 차는 너의 주검을 싣고 나가는 장의차가 될 것이다. 네가 이 안젤리카에게 요구한 마지막 서명, 그 합의 서명을 위한 서류를 네가 내게 내밀 때, 너는 그런 순간에도 예의를 갖춰 두껍을 뽑아 위에 꼽고 황금빛의 펜촉을 자기 쪽으로 향하게 백팔십도 방향을 돌려 내게 건넬 그 고급 만년필을 받는 대신 나는 내 핸드백을 당겨 자연스런 동작으로 지퍼를 열겠지. 그리고 그 속에 든 스미스 앤 웨슨 반자동 소형 권총을 순식간에 두 손으로 감싸 들고 똑 바로 너의 가슴팍을 향해 대놓고 서너 발 불을 뿜을까 한다. 실내 사격장에 가서 연습도 다 마쳤다. 처음에는 좀 조용하고 은근하며 일면 세련 된 다른 방법을 택할까도 했다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저지르는 것, 준비도 간단히, 실행도 단순하게. 근데 온다는 너는 아직 안 나타나는구나. 시계는 정확히 오후 세시를 가리키는데….
안젤리카, 안젤리카 세바스치안.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내 둥그런 얼굴이 유리창에 어린다. 눈까풀은 꺼지고 그새 많이 야위었구나. 노랗게 물들인 긴 생머리가 가린 내 이마, 그 아래 지금 너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 얼마나 많은 길거리를 흝으며, 오래 된 필름이 돌리는 파노라마처럼 낡고 시달리며 지쳐 가는 세상을 달려왔던가. 그 흐릿하게 되비치는 얼굴의 너, 그 먼 옛날, 언제부터였던가, 너의 이름이 안젤리카가 된 날이.
생각난다. 급해서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지. 막상 영주권 신청은 해야 되는데 이왕이면 영어 이름을 아예 지어서 쓰자고 했지. 그래도 본래 이름과 조금은 닮게들 짓는다는데…, 내 인생행로처럼 내 본래의 이름도 여자이름으로선 좀 별났었지. 그것도 유명하다는 작명가에게서 돈 주고 지은 이름이랬는데, 장고 끝에 악수라고, 안 재림, 지금 이런 순간에도 생뚱맞게 쿠쿡, 웃음이 난다.
근데 재림이 다 뭐니? 내가 무슨 예수니? 아버지도 참, 여자 이름이 재림이 될 수나 있나요? 그 땐 예수쟁이라면 손꼽을 만치 드물 때니까 그랬는지 몰라도, 그래, 경상도 땅에서도 한층 후미지고 완고한 영양 땅 시골 선비인 내 아버지가 예수 재림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었을지 몰라. 그래서 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신청할 때 아예 새 이름을 쓰기로 한 거지. 아 참 그 때는 성도 바뀌었지. 안 재림이 독고 재림이 되었다가 서류상으로 안젤리카 제이 독고가 되었지. 근데 왜 지금은 안젤리카 제이 세바스치안인가? 물론 사연이 있지. 근데 이 브루슨지 세바스치안 변호사인지는 왜 아직 안 나타나나? 세 시 오 분.
하 참, 이름 하나 짓는 것도 만만치가 않더군. 아무 이름이나 부르기 좋고 듣기 좋으면 되잖아? 이왕이면 좀 고상틱하고…. 이러다 마침 미스터 독고가 켜 놓고 간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화면에 유튜브가 정지 돼 있더군. 그냥 생각 없이 클릭을 해서 화면을 소생시키는데 예쁘장한 서양 여자 애가, 초등학생 같아 보였는데 곧잘 한국말을 잘도 지껄이는 거야. 비디오 찍는 남자가, 그도 서양사람 말투던데 한국말로 묻더군. 안젤리카! 뭐 먹어요? 짜장면. 맛있어요? 맛있어요. 오늘 뭐 했어요? 놀았어요.
노란 생머리의 안젤리카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검은 짜장이 묻은 입술을 벌리지도 않고 수줍게 웃었지. 서양 애라도 한국에서 살면 한국 애들처럼 좀 수줍게 웃는 걸까? 안젤리카 이뻐요. 남자가 추켜 주었다. 고맙습니다아. 안젤리카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국 아이인가? 소련 아이? 하여튼 내가 그 순간 속으로 무릎을 쳤다. 안젤리카 하지 뭐. 이름 좋은데? 저 애가 한국말을 자연스레 익혔듯 나도 영어를 익혀야지.
근데 왜 브루스 놈은 코빼기가 안 보이나? 이미 죽음의 냄새를 맡은 건가? 제발 오지 마라, 다른 한 편으론 빌고 싶은 마음이다. 나라고 살생이 썩 내키기야 하겠냐만 경우가 그렇지 않지. 너는 마땅히 죽어야 할 놈이야. 창 비스듬히 건너, 마치 중세의 성가퀴처럼 모양을 낸 시멘트 건물의 널따란 벽 상단에 페인트칠로 절 이름이 큼지막하게 한글로 쓰여 있다. 동국사, 동쪽 나라의 절? 조금 기울어지는 햇살이 옥상 뾰족탑의 타일에 반사 된다. 본래는 절 건물이 아니었나 보다.
눈을 가늘게 뜬다. 내 버릇이다. 서울의 중곡동,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그 삼층 짜리 상가 건물이 되어 가는 꼴을 살피며 참견을 할 때도 그랬었지.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세세히 이곳저곳을 살피면 따라 나선 현장 소장은 안절부절이었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우습게보면 안 되지. 집이, 건물이 그냥 지어지는 건가? 나는 한다면 하는 사나이, 아니 계집이다. 도대체 사나이가 할 노릇을 왜 내가 하나? 사내가 사내 노릇을 아니하니 내가 하는 거지.
근데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나의 첫 남자, 소피아와 멜라니의 아빠, 아니 얘들도 본래는 주영이와 신영이었지만, 주영이 아빠 구 중세는 하고 한날 비올라 통만 메고 다녔지. 그게 직업이었으니까. 그는 기악 전공에다 나는 미술 전공. 말이 좋아 예술가 커플이지 신혼이고 뭐고 외식 한 번 맘 놓고 해 볼 처지가 못 됐었지. 그래도 남편이란 작자는 돈이 없건 배가 고프건 자존심이 상하고 배알이 꼴리건 어쨌건 특효약이 하나 있었지. 바이올린보다 조금 큰 비올라의 딱딱하고 낡은 검은 통을 열어 악기를 꺼내 턱에 괴고 지긋이 활로 켜는 순간 만사태평에다 백결 선생이지. 이웃에서는 떡방아를 찧든 말든 마당의 널어 놓은 우케가 소낙비에 쓸려 가든 말든 다 잊어버리는 거야. 처음엔 비장하면서 멋있게도 보이더군. 근데 그것뿐이고 맨날 그 타령이야. 그래서 내가 딱 알아봤어. 더 이상을 바라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그러니 천생 내가 해야지.
하루는 밀린 사글세를 일주일만 더 미루자고 부탁하러 갔다가 못된 주인 년한테 정말 온갖 쌍소리를 실컷 들었지. 하도 어이가 없는 끝에 내가 똑바로 그년을 쳐다보면서 내뱉었지. 네가 내 집에 세들 날이 있으리라고. 흥, 콧방귀도 안 뀌더군. 아무튼 그때 발길을 돌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딴 사람이 되었지. 나는 뭐든지 한다. 그리고 뭐든지 부탁한다. 혼자서 꽁꽁 앓다 죽지 말고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라. 세상에는 도움의 손길을 우아하게 내밀고 싶어 하는 팔자 좋은 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러면서 골목길을 걸어 나오는데 마침 전파상에서 이미 한물 지난 포크송을 크게 틀어 놓았더군. ‘어서 말을 해, 어서 말을 해, 말 안 하면 무슨 소용 있나, 말 안 하면 무슨 소용 있나….’
곧바로 집으로 가는 대신 시장바닥으로 갔지. 콩나물, 멸치 사러 자주 들렀던 수더분한 어물전 주인에게 다짜고짜 말했지. 아주머니, 너무 힘드니까 나 아무 일이든 일자리 하나 주세요. 아이들은 어이 하고? 어찌 되겠지요.
그때 주영이는 세 살, 신영이는 뱃속에 금방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지.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시장 바닥에서 놀리며 가게 잡일을 도운지 일주일도 안 돼 아니 이리 고운 새댁이 이래서야 되나 하며 방 빌려 줄 테니 미술 학원이라도 하라는 이가 나타났지. 미안해하지도 않고 넙죽 받아들여 아무 것도 준비 된 게 없었지만 무조건 시작했지. 그리고 필요한 건 아무나 잡고 무조건 부탁했지. 나 이거 없어요, 이거 좀 도와 줘요, 이거 안 쓰시면 날 줘요….
처음 생각으로는 열 가지 부탁하면 하나 쯤 될까 말까일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뜻밖에도 둘 중 하나는 어떻든 되는 거야. 너무 신기한 거 있지. 착한 사람이 많아서 그랬나 아니면 세상이 보기보담 좀 어수룩한 걸까? 아니면 어린애 딸린 젊은 여자라면 누구든, 특히 남자들은 넓은 가슴으로, 본능적으로 도와주고 싶어지는 걸까? 개중엔 조금 흑심을 품고 작업 들어온 사람도 한둘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그 점을 좀 이용까지 하여 도움 받고 나선 그대로 미련 없이 잊어 버렸지.
아무튼 삼년 만에 우리는 전세 집으로 옮겨 갔었지. 그리고 다시 두 해만에 ‘새동네 미술학원’을 열었는데, 나중에 ‘뉴타운 아트 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 미술학원은 서울을 벗어나 인천에까지 뻗친, 분점이 일곱 군데나 되는 프렌차이즈로 자랐지. 그러는 사이 나는 미리 미리 앞날을 내다보았지. 그냥 미술학원 총수로 만족할 건가? 아니지. 만들려면 큰돈을 만들어야지 무슨 애들 코 묻은 푼돈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은행 지점장에게 대출을 부탁했지. 뭐가 있다고 그리 큰돈을 내게 빌려 주나?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가 누군가? 목표가 중요하지. 일단 정해지면 나머지는 억척같이 해 밀어붙인다. 거절당하면 당연히 여기고 숨도 안 돌리고 또 다른 데 부탁한다. 자고로 부탁해서 손해 볼 건 없단 말이다. 결과가 궁금한가? 당연하지. 만반의 계획 끝에 나는 중곡동 500평 대지에 삼층짜리 사무실 건물을 짓기로 하고 공사 시작 자금부터 기간 안에 거뜬히 대출 받았지. 바로 우리 동네 은행에서 말이야. 누구 힘으로? 순전히 내 힘이지. 남편은? 말도 마. 그냥 옛날 그대로 비올라 통만 안고 다녔지. 대신 자가용에 싣고 말이야. 구두도 이전보다 좀 반짝거리게 닦고.
헌데 그것뿐이야. 처음에는 내 일에, 물론 내 바깥 사업 일 말이지, 좀 참견도 하며 거들기도 해 보려던 남편이 금방 혀를 내두르고는 좀 불안해하며 지켜보기만 하다가 염려했던 바와는 달리 일이 척척 성사 돼 나가자 엄두도 못 내고 완전히 손을 놓는 거야. 어떤 때는 내가 꼭 필요해서 부탁하는 일마저 두려워하거나 건성으로 남의 일처럼 쓱싹, 대충 하거나 미뤄 버리고는 또 비올라 통만 찾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좀 해 줘야 할 일도 있는데 속이 상하더군.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내가 두 몫을 하지 뭐. 나는 무조건 몸소 챙기는 사람이라니깐.
날마다 공사판을 가서 현장에서 미주알고주알 챙겼지. 차타고 갈 것도 없어. 자전거 하나 마련해서 아침 일찍 둘러보면서 현장 소장에게 꼬치꼬치 지시했지. 처음엔 노가다 출신 곤조가 있어서 그런지 되게 싫어하더군. 그래서 내가 자전거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서 대놓고 이야기했어. 이 건물 짓기 싫으냐고. 그랬더니 그 담 부터는 고분고분, 내 맘에 안 드는 부분은 설계를 바꾸더라도 알아서 뜯어고쳤지. 반쯤은 미친년으로 악명이 높이진 건 당연하고. 그럼 어때? 내 집이고 내 건물인데.
어쨌든 건물은 앞당겨 완성 되었지. 내가 날마다 자전거 타고 가서 감독하는 바람에 아마 수천만 원은 허투루 새나가는 걸 막았을 거야. 곧바로 각종 학원들이 들어와 두세 유닛을 빼고는 거의 학원 건물이 되었지. 미술학원, 음악학원, 외국어학원, 웅변학원, 요리학원에다 유치원…. 이름이 나고 자리가 좋은지 서로 들어오려는 거야. 임대료 수입만 해도 톡톡했지. 그런데 그게 다 내 수고라고. 특히 중심에 자리한 내 직영의 미술학원은 특히 신경을 써서 인테리어든 뭐든 최고 수준으로 그럴듯하게 가다듬었지. 그래도 명색이 미술, 예술학원이잖아.
내가 미술 전공이라지만 한계가 있더군. 고백하건대 내가 실은 제대로 배우지 않고 적당히 졸업한 땡땡이, 날라리 학생이었지. 그래서 건설회사 소개로 이태리 유학파 출신 마리오 킴, 김창택을 알게 된 건 이때지.
첫 눈에 사람 참 사근사근하더군. 허우대도 이목구비도 멀쩡한 사내가 어찌나 봄바람 같은지, 좀 무심하고 소심한 남편이나 거칠고 무뚝뚝하기만 한 우리 친정 쪽 형제들만 보다가 대하니 참 별일이다 싶어 한 동안은 혹시 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 하지만 전문적인 최신의 지식과 첨단의 정보로 입맛에 싹 들게 들이미는 따끈따끈한 제안과 조언은 정말 시의적절하고 뛰어나서 사람이 달리 보이더군. 그냥 부드럽기만 한 건 아냐. 봄바람 속의 칼날이랄까, 아지랑이 속의 짙은 향기랄까. 외유내강, 뼈대가 분명한 거야. 한 마디로 스스럼없게 친근감을 주면서도 존경스러운 거지.
그때 새로 마련한 한남동 우리 집, 지하 1층 지상 이층의 집 안팎을 모조리 뜯어 고쳐 으리으리하고 우아한 저택답게 만드는 데도 실상 내 의견은 별로 쓸모도 없었어. 마리오가 이러자면 이러고 저러자면 저러고, 아무 문제 없었어. 어쨌든 가장 뛰어나고 적절했으니까. 아, 사람이 억척같이 돈만 모은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새삼 되돌아봐지는 거 있지.
어느 날 유명 화가에게서 특별히 받아 온 마지막 값비싼 유화를 둘이서 우리 침실 벽에 거는데 문득 망측한 영상이 떠오르더군. 저 그림 아래 멋지게 놓아진 커다랗고 폭신한 저 침대, 저기에 내 지치고 공허한 몸을 누인들 누가 이 저녁에도 따뜻한 팔베개를 해 줄까? 마리오라면?
그 순간 이상한 떨림이 왔고 내 목소리는 흔들렸지. 마리오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 이제 다 됐습니다. 제가 커피 한 잔 살게요. 나가서.
긴 이야기를 짧게 할게. 나는 이 날부터 마리오와 사랑에 빠졌어. 영양 출신 문디 가시나 안 재림, 이 날 부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빠져든 거야. 그 후로 얼추 한 해 동안, 나는 그와 사귀며 알게 되었지, 그 동안 나 자신 완전히 허깨비로 살아 왔었다고.
그가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날 망설임 없이, 그가 오라는 한적한 강변의 모텔을 향해 차를 몰았지. 나는 오늘 밤 부활하리라고, 그리하여 새로운 여자로 재림하리라고. 재림한 다음은? 걱정할 것 없다. 새 세상이 열리는 거지. 나는 그의 여자며, 비로소 진정하게 거듭난 여자며, 그 결과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결국 이겨내 눈에 힘주며 빳빳이 고개를 쳐들 여자이니까.
그런데 올 것은 차례대로 때늦지 않게 오더군. 어느 아침, 남편이 드물게 침착하면서도 가라앉은 어조로 나를 불러 앉히더군. 모든 것은 나, 이 재림이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소송을 통해 정리 될 것이라고 뇌까리며 주섬주섬 증거랍시고 두툼한 사진 봉투를 펼치려 할 때 나도 조용히 말했지. 인정할게. 됐어. 그까짓 빌딩, 은행잔고, 저택, 소장품, 차량, 프랜차이즈 회사, 다 필요 없다. 가져라. 대신 주영이 신영이는 내가 키운다.
너무 순순히, 말도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다 포기한다고 나오니까 주영이 아빠가 뜻밖이라는 듯 주춤하더니 조금 있다 입술 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말하더군. 한 푼도 네게 줄 생각이 진작부터 없었다고, 주영이 신영이 데려 가고 싶으면 데려가라고, 그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이 순간, 이 인간은 벌써 큰 재산 챙겨서 처녀장가 들 생각이나 하는가 하고 비웃어졌으나 그게 이제 나와 무슨 상관이람. 그런데 아무리 딸자식들이라지만 자기네 핏줄도 거두어 챙기지 않으려는 걸 보니 평소에 걸핏하면 무슨 구씨 뼈대가 어떻고 하며 오금을 박거나 말을 거들던 당신 어멈, 조금 전까지의 내 시어머니였던 그 여자의 허락이나 받고 지금 내게 하시는 말인가, 구 중세씨?
나는 그 길로 입은 옷, 신은 신 그대로, 끄는 옷가방 달랑 하나에, 오늘 밤은 우선 아무 여관방에서나 묵기로 하고 집앞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전에 마리오에게 전화부터 걸었지. 이제야 시원하게 굴레를 벗었구나, 기지개를 켜며.
그런데 이상하게도 핸드폰으로 신호는 가는데 통화가 안 되는 거 있지. 설마 뭐가 틀어질 리야 일을라구. 마리오는 그저께도 내게 속삭이면서 아이 엄마와 갈라서기로 서로 합의가 다 됐다고 했잖아.
여관을 잡고 가방을 푸는데 주영이가 중얼대더군. 숙제 해 놓은 걸 안 가져 왔다고, 아빠한테 갖다 달라고 할까보다고. 신영이는 두고 온 해피 밥 줘야 된다고 훌쩍이고.
마리오에게 전화를 두 번이나 더 걸었는데 아예 신호가 가지 않더군. 스산한 예감에 여관방에 쪼그리고 앉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웠지. 이튿날 출근 시간을 기다려 마리오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까 하는데 다행히 먼저 연락이 오더군.
그 후로 벌어진 긴 이야기를 다시 줄이자면 마리오가 그냥 돌아선 거야. 자기 마누라와 이혼 소송으로 가는 대신 법원의 화해 조정을 받아들여 다시 본래 대로 살기로 했다는 거야. 자기는 마누라와 자식을 버릴 수 없다면서. 마누라는 한술 더 떠 자기는 이전보다 애 아빠를 한없이 더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둥…, 아이고 신파극에 순애보 터졌네. 미친놈아, 그런데 전화는 왜 잘 안 받니? 그렇더라도 한 번은 만나서 얘기를 해얄 거 아냐? 나하고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일단 그렇게 틀어지자 그 동안의 봄바람은 간데없고 어렵사리 만났는데도 말투부터 싹 바뀌어 이건 뭐 한겨울 돌개바람보다 더했다. 그러다 한참 만에 본래의 제 목소리로 돌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돌이켜보니 자기는 한 때의 불장난이었다나 어쨌다나. 그럼 내가 하찮은 불쏘시개였단 말인가.
그래 좋다. 그럼 됐다. 염려 놓아라 쪼잔한 봄바람아, 내 가슴을 사르르 녹이던 아지랭이야, 철부지 오줌싸개야. 아무튼 잊어 줄게. 나는 다시 본래대로 일어선다. 혼자서. 익히 해 온 대로 나의 공약 삼장, 먼저 목표를 정한다, 직접 몸으로 챙긴다, 무조건 부탁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일어선다.
나는 여관에 놓인 신문 광고판부터 훑었다. 이 지경에 덮어놓고 화냥년 취급하는 영양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겠고, 일단 서울에 남아 어쨌든 부딪힌다.
그 후로 어느덧 두 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날마다 내가 누구냐며 공약삼장을 되뇌며 헤매고 헤매었지만 정말 이 좁은 나라에는 내 굴레를 완전히 벗겨줄 곳이 없었다. 아니 조금씩 더 숨통을 조여 왔다. 그 심난한 이년이 지났을 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중국집 식당 뒤편 좁은 단칸방에 주인을 붙이며 고단한 몸을 누이기 전 자정이 넘은 이 시간, 하루 종일 물에 담갔던 손가락을 주물러 다시 펴며 주영이의 컴퓨터를 켰다. 물 건너 크리스와의 채팅 시간이다. 이 누더기 방에서도 컴퓨터가 없이는 못 살고 어쨌든 바깥과 연결이 된 것은 참 세상이 많이 변한 까닭이다.
크리스와 알게 된 건 반년이 넘었다. 물론 온라인으로다. 한국 이름 박 길수, 교포 1.5세. 그런데도 곧잘 한글로 메시지를 보내왔고 내가 쓰는 문장도 거의 오해 없이 읽었다. 캘리포니아에는 한국 사람이 많다더니 정말 대단하네. 여러 부모형제가 한 집에서 한국말 하면서 산다지만.
하지만 자기는 미국식으로 오픈 마인드라고 하는 총각이다. 나이를 따져보니 여덟 살 아래다. 그런데도 그저께 처음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 내가 자판을 두드렸다. 미국 갈까? 어서 와요, 보고 싶어요. 가면 어떡할라구? 같이 살아요. 주영이 신영이도 있는데? 부모님이 싫어하실 텐데? 괜찮아요, 다 같이 살아요, 엄마 설득하면 돼요, 여기서 같이 얼마나 좋아요. 정말? 정말이에요, 날 믿어요. 보고 싶어요, 크리스, 외로워요. 보고 싶어요, Jailim, I Love You.
이때부터 나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미국 간다, 크리스 만나러. 백 프로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결혼하자면 그 총각하고 결혼한다. 아니라도 할 수 없다. 영어도 못하면서 간다고? 관계없다. 내 몸짓, 내 웃음, 백만 불짜리 내 눈빛이 있지 않나. 일단 간다. 내가 누군가? 목표를 세우고, 챙기고, 서슴없이 부탁하는 안 재림과 그의 두 딸, 말귀를 잘 알아듣는 내 두 딸에게도 날마다 조금씩 시간을 쪼개서 미국에서 살아갈 주입식 정훈 교육, 생존교육 몰래교육이다, 장궤 주인 눈치 채지 못하게.
이민 브로커, 정확하게 말하면 밀입국 브로커를 만났다. 청계천 허름한 이층 사무실에서 미스터 함이 말했다. 아무리 깎아도 셋이니까 백오십 씩, 사백오십은 받아야 착수할 수 있어요.
막판이었다. 내가 탁 깨놓고 말했다. 나 그 돈 없어요. 나 여기서 못 살아요, 시들어 죽어요. 나 이백 밖에 없어요. 파 다듬어 모았어요. 이 손톱을 보세요. 도와주세요. 뭘 더 드릴 수 있을까요?
물끄러미 한참을 내려보던 미스터 함이 기다리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밝아진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주머니, 나도 좋은 일 한 번 합시다. 떠나려면 아직 석 달이 남았으니 그 동안 이백은 꼭 채우세요. 그리고 가욋돈도 좀 필요할 것 아니에요?
실상 지금 내게 그 동안 먹고 쓰고 근근이 모인 돈은 백오십 남짓했다.
아무튼 그 해 추석 다음날, 우리 셋은 어쨌든 손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바람에 불려 가다 어느 바다, 어느 물결 위에 떨어질 낙엽 같은 신세인 줄도 모른 채.
세 번을 갈아타고 내린 곳은 캐나다의 서쪽 뱅쿠버였다. 여기까지의 자세한 경로는 물론 그 후의 루트와 침투 절차는 밝힐 수가 없다. 내가 내 목적을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고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다 내어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무리 그래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고, 그 지킴 중에는 다른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이 경우 도리를 지켜야 할 상대 인간이란 구체적으로는 미스터 함인데 그는 중간중간 절체절명의 고비마다, 정말 친 누님의 일처럼, 친동생의 일처럼 잠 안자고 그 멀리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챙겨 주고 발 벗고 나서 준 것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이제는 더욱 확실히 안다. 자기 돈도 꽤나 나를 위해 썼다는 것을. 왜 그랬을까?
하여튼 나는 천신만고 끝에 온전히 두 아이를 손잡고 로스앤젤레스 한인촌 대로변에 있는 한국 식품점의 큰 주차장 입구에 우뚝 들어섰다. 눈앞에 빽빽이 차들이 대어져 있고 굼실굼실 드나드는 차량과 사람의 무리들이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거의가 머리 까만 한국 사람들이다. 여기가 미국 맞나?
내가 왜 하필 이리로 왔냐면 캐나다에서 만난 같은 패거리 중 한 사람이 일러주길, LA로 가서 아무 연고가 없으면 무조건 이 그로서리 마켓, 그 때는 그로서리란 말도 낯설었다, 그 마켓 앞으로 가면 신문 가판대가 있는데 거기에 공짜 신문들이 놓여 있을 테니 그걸 보고 일자리를 찾고, 사정이 급하면 아무 한국 사람이나 붙잡고 물어 보고 부탁하면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 대로 마켓 앞 신문 가판대로 가니까 정말로 공짜 신문인지 인쇄물들이 아무나 가져가게 놓여 있었다. 하나를 집어 넘겨보니 구인 광고란이 수두룩하게 있는데 무슨 조화인지 하필이면 숙식제공, 공양주 구함이라고 돼 있는 게 얼핏 눈에 들었다. 공양주가 뭐야? 양공주? 아니겠지. 자세히 보니 절 같은데? 절에도 사람을 쓰나? 우선 숙식이 급하다. 그런데 전화기도 없고 전화 걸 줄도 모르는데?
모른다고 망설이면 뭣 하나? 한 가득 카트를 밀고 나오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그는 성가셨는지 손을 내저어 무조건 피하였다. 몇 사람에게 같은 시도를 하는데 중간에 스쳐 지나던 할머니가 듣고 반색을 했다. 내가 그 절에 댕긴다꼬. 내캉 가 보자꼬.
그리하여 그 할머니의 호의로 버스를 갈아타 가며 절이라는 데를 따라갔는데 도무지 내가 생각했던 절 같지가 않아 보여서, 하기야 평생에 일부러 절을 찾아간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혹시 속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에게 연락을 하자면 어디든 일단 짐부터 풀어야 할 게 아닌가. 짐이래야 각자 울러멘 등가방 하나씩뿐이었지만.
한문으로 세로로 새긴 작은 나무 간판을 건 동국사라는 데의 현관을 들어서니 비로소 내부의 모습이 보이고 불상이나 여러 가지 불교 냄새가 났다. 주지 스님이라는 분이 나와 얘기를 들어 보더니 쯧쯧, 우리는 보살 한 사람이면 되는데…, 딱하지만 애들까지 있어서 있을 자리가 없는데 어떡하나, 다 인연이지만 하고 혀를 찼다. 내가 순발력 있게, 어색하게 합장을 흉내 내며 매달렸다. 주지 스님, 사정이 그러시면 며칠만 여기 머무르게 봐 주세요. 저도 곧 연고를 찾아보겠습니다. 절대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이리하여 일단 내쫓기지는 않고 절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스님께 물어서 전화 거는 법을 설익히고 전화기를 빌려 어렵사리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헬로우!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크리스 박씨 있어요? 전데요, 누구시죠? 저요, 안 재림. 재림? 한국? 아니요, 여기 미국. 미국? 정말? 정말 왔다고요? 네, 맞아요, 여기 LA. ….그래요? 정말 왔다고요? 정말이에요. 빨리 봐요. 크리스, 듣고 있어요? 예,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크리스는 충격을 먹은 것 같았다. 예상 대로군. 아마도 내가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정말 제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겠지. 그런데 아까 그 목소리는 반갑다는 걸까, 겁난다는 걸까?
그럼 그렇지, 미리 한 자락을 깔기를 잘 했었지. 이 안 재림도 이젠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는다니깐. 그래서, 초라한 겉모습이지만 한결 능란해 보이는 성숙한 여인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크리스에게 내 처지를 잠시 잊고 도리어 짠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 바쁘고 쪼들릴 때는 시간을 절약해야 하지 않겠어?
크리스 총각, 걱정 말아요. 그 동안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짐스러워 마세요. 덕분에 미국까지 오게 됐으니 아무 염려 말고 하던 대학원 공부 잘 마치세요. 부모님께는 우리 얘기 알린 적 없죠?
불쌍하고 귀엽고 순진하고 아까운 박총각. 서둘러 계산대로 행하는 그의 옆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 다시 숨을 골랐다. 다음은 누구에게 부탁하나?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절에 돌아온 나는 딱 닷새를 법당에서 머물렀다. 나이 드신 스님은 점잖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좀 바늘방석이었다.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신영이는 법당 구석, 바닥의 방석 위에서 자는 것이 무섭다고 울었다. 그 사이 한 번 일요일이 끼어 법회가 있었는데, 작은 부엌에서 밥을 푸면서도 법당의 설법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불교도의 계에 대한 말씀 같았다. 살생의 업을 짓지 마라, 도적질 하지 마라, 뭐 이런 내용들인 것 같았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씀 같긴 하군. 근데 미국에선 살생이 더 잦은가 보지?
며칠을 두고 스님과 간간히 주고받고 신도들과 말을 나누며 도대체 절이란 곳은, 이 LA 한인사회라는 곳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발을 붙여야 할 것인가 하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재빨리 내린 결론, 절은 가난하고 여유가 별로 없다. 여긴 기독교가 성한 곳이다. 뭘 얻어먹고 도움을 받으려면 차라리 그리로 가는 게 낫다.
서울에서도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미국 교포 사회는 기독교 천지라고. 코리아타운을 지나오면서도 교회 간판이 몇 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그리로 가서 부탁하자.
결론을 내렸으면 즉시 행동, 등가방을 메고 주지 스님께 나란히 인사를 드렸다. 스님 그 동안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겠습니다. 갈 데는 있는고? 예, 염려 마세요. 다행이로군, 가만 보자, 좀 기다리게. 스님은 몸을 돌려 안에서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이거 적지만 차비에라도 보태게. 그 봉투를 내게 건넨 다음 합장을 했다. 성불하세요, 애들도 몸조심하고. 나도 아이들도 어색한 합장으로 답례를 했다. 지금 수중엔 땡전 한 푼 없는데 길거리에 나오는 길로 열어 보니 고맙게도 그 봉투엔 20불짜리가 다섯 장 들어 있었다.
우리 셋은 절을 나와 무조건 큰길을 따라 걸었다. 몇 구역만 걸어가면 되겠지. 실은 신호등 두 개를 안 지나서 한글로 된 교회 간판이 나왔다. 하지만 상가 건물 이층에 있어 보이는 그 교회를 올려보다가 단안을 내렸다. 아니야, 좀 더 가보자. 그런데 거기서 정말 한 블록을 더 가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대형 교회가 길가에 길게 뻗어 있었다. 즉각 단안을 내렸다. 들어가자.
다시 긴 이야기를 줄여야겠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 교회의 어느 전도사를 거쳐 다음 날 부목사에게 인도 되었다. 내가 부목사님께 숨김없이 깨놓고 말했다. 나 이러이러한 사람이니 살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그리하여 그날부터 한 열흘 동안 우리는 교회에서 잡일도 거들면서 교회에 딸린 침대방에서 자누웠다. 그리고 일요일, 신도들에게 소개 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교회를 떠나 바깥의 일자리, 여기 말로 잡을 얻었다.
내 전력을 살려 식당 뒤편에서 그릇 씻고 파 다듬는 일이었다. 하여튼 그 뒤로 여기저기, 채소란 채소는 다 다듬어 보고 생선이란 생선은 다 썰어 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여러 일자리에서 쓰였다가 잘렸다가, 온갖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신분상의 제약으로 늘 빠듯하고 위태롭고 힘겨운 건 마찬가지였다. 부당하게 당할 뻔한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끈과 보금자리는 교회였다. 최소한의 보호막과 기회는 그곳에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폭폭하게 지내면서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어쨌든 아이들을 학교에 집어넣을 수가 있었고 셋 중 아무도 크게 병들거나 굶어 죽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교인들 사이에 내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젠 좀 지겹기도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야. 더 늦기 전에 정신 가다듬어 잘 골라야지, 애들을 생각해서도 말이야. 그러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피곤한 하루 일을 마치고 올림픽 가에서 아이들이 있는 원 베드룸의 내 아파트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느 남자가 내가 타고 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 올라서 밖을 내다보는데 밖에 내린 그 남자가 바로 독고씨가 아닌가! 어머머! 나는 떠나려는 버스에서 황급히 도로 내렸다.
독고씨가 누군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겠네. 뉴타운 아트 센터 1층 끝에 세 들었던 오퍼상 사장이지. 장사가 안 돼 죽을 쓰는 학원들도 돈 잘 버는 학원들도 함께 있은 건물이지만 사람 좋고 성실한 수입상인 독고씨는 은근히 알부자로 소문이 났었지. 그러면서도 늘 겸손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아니에요 괜히들 그래요, 별로 못 벌어요 하며 웃던 독고씨와 그의 아내, 금슬이 좋아 보였는데 글쎄 그 새 이혼을 하고 혼자 LA에 와서 산단다. 아이엠에프 때 말아먹고 그로 인해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LA에 날아와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전자기기 수출상이라고, 영주권도 땄다고, 시민권도 곧 나온다고.
그래, 그 구석도 돈이 원수였구나. 아무튼 그보다도 신분이 확실한 성실한 독신남, 좌고우면할 것 있나? 안 그래도 몇 군데 답을 재촉 받고 있었는데.
이리하여 나는 몇 달 뒤 독고씨와 결혼하였다. 둘 다 재혼이지만, 내가 좀 철이 없이 한 첫 번째 것을 제하면 내게 있어 진정한 첫 결혼이었다. 맨날 비올라 통을 먼저 챙긴 애들 친아빠보다 더 우리 아이들을 챙기는 자상한 아빠가 되어 그도 우리도 오랜만에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남편의 사업은 꽤 잘 되는 모양이었고 나도 이제 흔들리지 않는 여유를 찾는가 보다 하였다.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우리 사이에 새 아이를 원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빨리 잘 안 되는 것, 그것만이 행복한 고민이었다.
어느 날 부목사님은 나에게 간증에 나서 줄 것을 부탁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간증인가요? 있는 그대로, 하느님 은혜 받은 것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하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아직은 진정한 크리스천도 아닌데다가 자기 얘기를 대중에게 까발리는 것이 좀 쑥스러웠지만, 어쨌든 제안을 받아들였다. 심령대부흥 주간에 나는 몇 사람과 함께 차례로 무대에 올라 간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다른 곳에서도 자주 불려 다니는 유명 간증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절에서 뛰쳐나온 대목에서 더욱 할렐루야를 외치고 박수를 치며 스님의 인자함에 대해 말할 때에는 대부분 반응이 좀 시큰둥하다는 것을. 그래서 내 나름으로 좀 보태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부풀리기도 하고 지어 넣기도 했는데 그게 무슨 대수며 큰 죄랴? 일종의 서비스고 예의지. 한참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어느 것이 정확한 진짜였는지 기억이 헷갈리기조차 하였다. 아무튼 나에게는 좀 바쁘고 고되기는 해도 행복하고 걱정거리 없는 나날이었다.
남편은 사업차 한 해에 서너 차례 한국이며 일본 중국 등지로 장기 출장을 다녀왔다. 일일이 말은 안 하지만 전처에게서 난 딸자식 하나를 보고 오는 것이 중요한 일정의 하나인 것 같았다. 더러는 생활이 어려워진 홀로 사는 전처에게 얼마간의 돈도 집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라지 뭐, 내가 누군가, 이제는 더욱 담대해진 여자, 안젤리카 제이 독고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우연찮게 발견한 열쇠말을 가지고 들어가 본 남편의 컴퓨터에는 제삼의 여인과 얽힌 많고도 많은 사연들이 한 쪽 구석에 쌓여 지금도 진행 중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너무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한 동안은 멍하니 벽에 기대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다 이런가? 한국남자들은 다 그런가?
그는 수년 째 중국 거래처가 있는 곳에 조선족인지 중국여자인지 모를 젊은 현지처를 두고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아니 얼마를 어디에 빼돌려 놓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떡해야지?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저녁까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정말 귀찮고 싫지만 다시 단안이다. 챙기고 갈라서고 새로 시작하자. 조용히, 마지막 순간에도 쿨하게.
그리하여 나는 일부러 한인 타운을 피하여 베벌리 힐즈의 유명 로펌을 찾아갔다. 거기서 나를 맞은 이는 노련하고 인상 좋은 구레나룻의 브루스 세바스치안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접촉하며, 아직은 서투른 영어지만 차분히 내 형편과 속사정을 이야기하고 특별한 부탁을 하는 중에 그가 내밀며 설명하는 서류들에 여러 번 서명을 했다.
남편은 그 즈음에도 뻔질나게 중국이며 한국을 드나들었지만 우리의 이 모든 작업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드러나는 남편의 재산은 생각보다 쏠쏠했는데 살고 있는 미국에도 가까이 멀리 여러 군데 투자를 해 놓고 있었다. 어쩌다 묻는 내개는 건성으로만 귀띔했었고 나도 그저 모든 걸 믿고 맡겨 놓았었는데, 정말 야무지고 앙큼한 사람이었구먼.
브루스의 사무실을 자주 들락거리는데 언젠가부터는 사정이 있으면 바깥에서도 둘이 따로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그는 정말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는 깔끔한 신사였다. 일에든 인간관계든 도대체 군더더기가 없고 신사적이며 향기가 배어 있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그러니 변호사를 하는 상류 사회의 인사겠지. 내가 겪어온 저 극동의 악바리 지저분한 동포 남자들과는 확실히 격조와 차원이 달랐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가 교회에 일이 있어 지금 멀리 갈 수 없다고 하자 자기가 내가 있는 근처, 이 카페로 몸소 오겠다고 했다.
이제 그는 주로 이 카페로 나를 사사로이 불러내어 인간적인 말투로 조언을 해 주기를 즐겨했다. 그것도 자존심 상하지 않게, 굴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의 쉬운 영어로. 나는 그가 말하는 내용보다도 구수하게 구르는 그 목소리의 감미로움에 잠깐씩 빠져들곤 했다.
여기서 또 한 번 긴 이야기를 줄이자. 외로움에 지친데다가 그 동안 참아 왔던 생의 가치와 믿음이 무너져 내린 아픔, 그리고 내게만 자꾸 찾아드는 불행에 대한 반발심이 서럽게 겹치면서 목울대 끝까지 복받친 어느 저녁, 브루스가 권하는 포도주 한 잔에 취해 그의 가슴팍에 그만 고개를 기대 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는 뻔하지 않나. 이 천하의 안 재림이 그의 꼬임에 넘어가, 아, 이제 생각하니 한국 여자들에게 흔한 치명적인 취약점이랄까, 한국 남자들의 거의 보편적이랄 수도 있는 잘못 때문이랄까, 서양 남자라면 쉽게 넘어가 버리는 그것, 다들 잘못 알고 있는 마냥 멋있게 보이는 그것이겠지. 나도 그가 던지는 매력의 그물, 애욕의 올가미에 걸려 어이없게 사로잡히는 한낱 물고기가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어느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함께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찻간에서, 운전대를 잡은 독고 장로에게 나는 남의 일인 양 조용하게 말했다. 우리 이혼 서류 준비됐어요. 변호사가 곧 연락할 거예요.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 나는 미세스 안젤리카 제이 세바스치안이 되었다.
해가 저녁이 가까우면 더 빨리 떨어지는 걸까? 이제 더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줄여야겠다.
우리 세 식구가 브루스가 혼자 살고 있는 말리부의 저택으로 옮겨가 산 지 세 해도 지나지 않아서지. 함께 저 멀리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나 안젤리카에게 말해 줄 게 있어. 다른 여자 만나고 있어.
뭐? 또야? 아이구 두야!
나는 차마 고개를 돌려 수평선이 끝나고 뭍이 시작되는 이 세상을 바라볼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쳐 말했다. 당신의 재산은 콘도 한 채야. 나머지는 다 로펌으로 들어갔어.
무슨 소리야! 그제야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 후로 내 딴엔 남은 기력을 다해 챙기고 뒤지고 해 봤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이 날고 기는 전문가, 천재 변호사가 얽어 놓은 깨알 같고 거미줄 같은 서류의 정글 속에서는 오리무중이었다. 정말 내게 남은 것은 달랑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 투 베드룸 콘도 한 채였다.
말은 어느 정도 하겠는데 이놈의 미술학도는 정말이지 깨알 같은 영문 서류를 독해할 능력도 없었고 취미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 야차 같은 놈은, 내가 최종 승인만 해 준다면, 그래서 그 서류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고 서명만 쓱싹 해 준다면 그대로 조용히 끝내겠단다. 좀 더 시끄럽게 군다면 그 나마의 콘도마저 날아갈 지도 모른단다.
이 댄디 젊은이 흉내 내는 능구렁이 영감탱이가 누굴 바보천치로 아나? 나의 장기는 확고한 결심과 몸으로 챙김, 그리고 서슴없는 부탁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부탁, 이젠 더 이상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 이때까지의 방식으로는, 도대체 이 동네에선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못 할 줄 알고? 영양 가시나 독한 맛을 못 봤구나! 좋다. 내가 누군가. 다 벗어던진다. 천하의 안 재림. 이제부턴 양코백이 너보다 더욱 쿨하게.
그런데 지난 일요일 저녁, 정말 이성을 잃을 만치 피가 솟구쳤다. 멜라니 때문이었다. 브루스에게로 합쳐 온 이후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우울증에 시달린 아이인데 너무 호젓하고 경치 좋은 주변 환경 때문인가도 하였다. 하지만 의사에게, 병원에 데려 가도 호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지나다 제 방에서 흘러나온 잠꼬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놀랍게도 브루스에 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거부 반응을 하는 소리였다. 그랬었구나! 은근히 다그치고 유도해도 말문을 열지 않더니만 그 동안 의부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직감이며 확신이다. 그 짐승 같은 영감탱이가, 지속적으로 무슨 일을 이 아이에게 저지른 게 틀림없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너는 죽었다. 몇 번이나 찾아갈수록 여우같은 비서를 시켜 외출했다며 어디 갔다며 요리조리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하며 아예 만나 주지를 않는 그에게 이메일로 짤막한 쪽지를 띄웠었지. 생각을 고쳐먹었으니 이제 최종 이혼 합의 서류에 동의를 하겠다고. 네 사무실에는 가기 싫으니 이리 나오라고. 우리 처음에 바깥에서 만났던 그 카페, 교회에서 가깝고 절의 지붕이 비스듬히 보이는 이층집 그곳.
해는 설핏 기울어, 언제부터 매달렸는지도 모를 저 절집 지붕의 연등들도 볕에 시든 듯 오후의 햇살 속에 쳐져 있다. 그런데 벌써 이십 분이나 지났는데, 약속과 달리 안 오기로 한 건가. 얼핏 의혹이 드리우는 그 때, 나는 난데없이 문득 가슴에서 피어올라 눈망울에 고이는 한 가닥 즉흥의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렸다. 이 노래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나 살고 싶어요 아버지
나 살고 싶어요 어머니
그런데 이제 더는 안 되겠어요
이제 여기서 그만 멈추려 해요
나 가고 싶어요 아버지
나 돌아가고 싶어요 어머니
그런데 갈 수 없어요, 갈 수 없어요 어머니
나 여기서 멈출래요
여기서 멈출래요 엄마, 엄마
영원히
이 자리에서 멈출래요
노래를 가까스로 추슬러 마치는데 어느덧 두 눈에 눈물이 아롱졌다.
그 아롱진 눈물방울이 이지러져 흘러내리면서 창밖 풍경을 흐리는데 그때 저 아래 주차 공간에 검은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와 내 발 끝에 코를 박고 멈추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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