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신문과 관계된 일을 수십 년 하면서도 기자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고, 굳이 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교회를 다니다 20대 초반에 신학생이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방황도 했지만 3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기에 더더구나 기자가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잘 알고 있던 여 목회자 한 분이 “꿈에 기자가 되더라”고 전해서 그 얘기를 듣고 “턱도 없는 일”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분의 꿈이 현실이 돼 버렸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5년 전 중구청에서 발행하는 중구뉴스 기자 모집광고를 보고 서류접수를 하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꿈을 꾸게 되었는데 기이했다.
중구뉴스에 합격하여 기자증을 들고 있는 나에게 각종 방송사가 서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인터뷰를 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한편 나는 중구뉴스 기자로 있을 때 지역신문에 칼럼기고요청을 받고 글을 써 보냈다. 그 후 ˹굿뉴스메모˼라는 칼럼과 기명칼럼으로 지역신문 두 곳에 기고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다섯 명의 사람을 필진으로 두 신문사에 소개하기도 했다.
굿뉴스울산 창간 초기 발행인 및 편집인을 비롯한 각 부서장의 이름이 기록된 A4용지 한 장을 들고 발행인과 내가 동분서주할 때 ‘돈도 없고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감당할까’하는 주변의 눈초리를 느꼈다. 이제 그런 단계를 넘어 취재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내실도 많이 다졌다. 한편 지금까지 쭈욱 돌아가는 사정을 헤하려보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고 있다.
굿뉴스울산의 편집장으로서 취재현장에서 취재하며 사진까지 찍어야 한다. 물론 사진부장이 현장취재를 거들어 고급한 사진을 찍어줘도 월급주고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서 부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진을 겸하여 찍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 삼성갤럭시 카메라로 수 만장의 컷을 남겼다. 그것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 저장하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했다.
이제 예전 필름카메라를 쓸 때처럼 인화해서 사진을 앨범에 남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졌다. 그동안 몇 년간 썼던 갤럭시 카메라의 렌즈가 닳았고, 판매가 중단됐다. 그래서 부득이 일전에 소니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리고 카메라 작동법도 익힐 겸 현장사진을 닮기 위해 고래문화특구를 찾았다. 입춘을 전후한 장생포 사진을 공유하고 싶어 이번 지면편집에 반영했다.
2002년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쳤고, 히딩크 감독의 환상적인 전술과 태극전사들의 투혼이 빚어낸 결과가 꿈같던 4강 진출이었다. 경기장의 태극전사를 응원하던 관중석 위로 물결치듯 대형태극기가 스르르 지나갔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선명한 문구의 글씨도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꿈꾸지 않아도 인생은 흘러간다. 인생의 복잡다단, 파란만장한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흘러내리듯,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듯, 저녁노을로 태양이 이울 듯, 나뭇잎이 떨어져 낙엽이 되듯 그렇게 시간은 스쳐 지난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꿈꾸는 자가 되어야한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꿈꾸는 자의 언어는 때로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허황되고 거짓말처럼 허탄하다. 그러나 꿈꾸는 자는 희망의 말로 긍정적인 인생의 에너지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글, 사진-박정관 편집장
한 때 2000명의 재학생을 자랑하던 장생포초등학교 정문
장생포 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을 백구가 거닐고 있다.
장생포초등학교 골목길
전국 유일 고래관경의 고래바다여행선
퇴역한 울산함이 3월에 개방하느라 준비가 한창이다.
겨울의 끝자락 지나 봄편지처럼 피어나는 고래광장의 한 켠의 매화
고래광장 고래조각정원 안내판
고래광장 뒤로 울산대교 주탑이 보인다.
고래광장에서 바라본 울산미포조선(대형크레인이 보인다)
고래광장의 귀신고래
고래문화마을 고래광장 대왕고래
향고래 등위로 노을지다
혹등고래 엄마와 새끼
범고래 포토존
고래박물관과 진양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동상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외벽에서 이금희 발행인이 포즈를 취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