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의 「마트료시카」 감상 / 박소란
마트료시카
남지은
이사를 했다
주전자엔 새 물이 끓고 있다
익숙한 데서 옮겨와
유리잔 몇 개는 꽃병이 됐다
문득 궁금했고 자주 궁금했던 친구들과 앉을
식탁엔 꽃병을 두었다 꽃도 말도 정성으로
고르고 묶으면 화사한 자리가 되어서
곁이란 말이 볕이란 말처럼 따뜻한 데라서
홀로는 희미한 것들도 함께이면 선명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
시의 마지막 연을 반복해서 읽는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행복! 우연히 만난 이에게서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 어쩐지 선물을 내민 이는 아주 오랫동안 정성으로 고르고 묶은 것이라고 이야기해 줄 것 같다. 시인은 어떤 주문을 외듯 온 힘을 다해 이 문장을 썼을 것 같다. 불쑥 기운이 솟는다.
정말일까. “홀로”의 마음을 비우고 나면 새롭게 채워지는 것이 있을까. 새 거처에 찾아드는 새 마음, 새 친구들이 있을까. “함께”의 가능성을 믿어도 좋을까. 문득 책상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본다. 그 아래 동그란 자국이 남아 있구나. 정말. 마치 혼자인 나를 위해 누군가 살뜰히 그려 둔 듯한 그림.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에도 실은 혼자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가리키는 마트료시카. 하나인 줄 알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하나가, 하나의 하나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신비. 신비들. “함께”의 선명한 가능성. 반드시 오고야 말, 어쩌면 이미 와 있는.
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