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채꽃 만발한 청산도 언덕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그 빛깔이 아주 독특한 색깔을 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색의 공간으로 푹 빠져 들게 만드는 쪽빛 바다,
아니 어쩌면 안드로메다에서 보내온 파랑 수국꽃을 바다에 빠뜨리는 바람에 바다가 그렇게 물들었는지 모르겠다.
짙푸른 신록의 결정체가 마치 햇살에 부딪쳐 부서지는 이슬방울처럼 바다에서 반짝인다.
참으로 환상적인 풍경이다.
그래 역시 청산도,
바로 푸르른 섬이다.
그런데 그 바다,
그 푸른 바다로 넘실대며 무엇인가 닥아오고 있다.
다름아닌 소리의 물결이다.
미황사 스님들의 굿거리(군고) 장단이다.
파도는 넘실대며 오랜만에 바다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젊은 남여의 물수제비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또 그 바다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이야기 주머니를 열어 보여주며 환각에 빠지게 한다.
미황사(美黃寺) / 강제윤
스님들은 모두 달마산을 떠나 바다로 갔다
어란에서부터 배는 가뭇없이 흔들린다
출렁이는 섬들 섬들 섬들
서역에서 온 스님처럼 스님들은 가랑잎을 탔다
사십개의 몸을 실은 잎 잎 잎
저 수십 수백의 섬을 돌고 돌아 경을 외고
배는 청산도 앞에서 큰바람을 만난다
닻을 내리고 스님은 뱃머리에 올라 먼 곳을 본다
스님들은 노젓던 손을 멈춘다
저 거대한 물결 물결 물결
기립하여 사십의 스님은 목어를 친다
이제 돌아갈 때가 온 것이다
폭풍 속으로
닻줄을 자르고 스님들은 몸을 던진다
이 시는 실제 150년전 청산도 인근에서 발생한 사건을 강제윤 시인이 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150년전 청산도에서 일어난 조난사고는 과연 어떤 이야기였을까?
150여년전 미황사 스님들은 중창불사를 하려고,
‘군고’를 꾸려 해안을 돌며 일종의 공연을 하고 시주를 모았다.
그런데 어느날 설쇠를 맡은 스님이 어여쁜 여인네 꿈을 꾸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오늘은 쉬자”고 했으나 주지스님이 듣지를 않았다.
그들은 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청산도로 공연을 하러 가던중,
끝내 설장고를 맡은 스님 한분만 살아남고 나머지 스님들은 모두 죽음을 맞는다.
남은 것은 단지 절에 남은 나이든 스님 몇분과 ‘군고’를 꾸리느라 진 빛더미 뿐.
그래서 미황사는 그때부터 쪼들리고,
스님 40명 이상이 속해있던 그 위세는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대흥사 말사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온 검은 소가 점지한 절집,
천년고찰 미황사는 한때 도솔암, 문수암 등 열두 암자를 거느렸던 큰 사찰이었다.
그러나 바다의 노여움인지 미황사는 그 위세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이 있은 후부터 말이다.
그래서 미황사 아랫마을 서정리에서는 지금도 비바람치는 을씨년스런 날씨를 두고,
“미황사 스님들 궁고친다”라는 말을 속담처럼 쓰고 있다고 한다.
멀리 보적산과 범바위가 보인다.
미황사에서 보내온 전설,
이제 그 전설은 청산도에서 또다른 한으로 남아있다.
스님들이 잠들었을 그 바다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보자.
거대한 돌산 위에 어머니 젖꼭지 같은 범바위가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미황사의 지난 사건을 들먹이는 것은,
다름아닌 청산도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건의 전모를 조금만 더 유심히 실펴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스님들이 탄배가 청산도 인근에서 조난을 당했다.
그런데 정확히는 청산도 남쪽 상섬 인근 바다에서,
스님들이 탄 배가 전복되어 수장되었다는 사실이다.
범바위
평소에도 상섬 인근해역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한 흔적이 많다.
흡사 미국의 플로리다 인근 버뮤다삼각지대처럼 말이다.
1973년 미국 해안 경비대의 발표에 따르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100년 동안 약 8,000건의 조난 신호가 발생하였고 그곳에서 많은 배와 비행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버뮤다삼각지대를 4차원으로 가는 입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청산도의 상섬 인근해역이 바로 그런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지난 몇해 사이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이 지역에서 여러 건 발생했다고 한다.
해양경찰청 보고에 따르면,
2006년 2월 7일 청산도 인근에서 ‘Century Team’호가 조난당해 완도항으로 예인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2007년1월1일에는 개인 소유의 타면조종형 초경량비행장치(Micro Streakshadow)가 비행중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인근 바다에 불시착 하였으며,
조종사는 주변을 항해중인 선박의 선원들에 의해 구조되고,
사고 비행기는 바다에 침몰, 끝내 실종되었다고 한다.
범바위에서 내려다 본 '상섬'
해남군 부근 육지에서 해안으로 진출할 때 조종사는 항공기 앞바퀴 근처에서
“쿵”하는 소음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약 20분 후에 청산도 상공에서 다시 소음을 들었다는데,
스트릭쉐도우의 비행경로가 좌우로 이탈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조종사가 휴대한 GPS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스트릭쉐도우의 기수방향을 일정 방향으로 잡아놓아도 비행기는 좌나 우로 벗어났다는 것이다.
조종사는 비행기의 방향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반디지치’가 피어있는 언덕에서 상섬을 내려다 보며...
반디지치의 꽃말은 '희생'이란다.
그 꽃말 때문일까?
바로 저 바다에서 그 많은 희생들이...
거북꼬리처럼 생긴 화랑포
청산도는 자석의 자기장이 변하는, 세계에 3곳만 존재하는 장소중 하나라고 한다.
아주 커다란 바위가 하나의 큰 자석이 되어 나침판의 남북 표시가 자기 마음대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청산도 남동쪽에 위치한 범바위와 상섬.
묘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둘만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스타게이트?
어린왕자가 사라진 곳?
둘 사이에는 전자파 장애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침반은 물론이고 휴대전화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작은 배들은 운항을 꺼리는 지역이다.
청산도에서는 나침반이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항해용 지도에도 "주의!, 청산도 부근에는 지방자기의 교란이 존재함"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범바위 부근에 나침반을 놓아보면, 나침반이 범바위만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흡사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에게만 꽂히는 그 시선처럼...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변치않게 하려는 징표로서 범바위를 만들었을지도...
그런데 나침반이 교란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지구 내부의 자성이 많은 자철석 성분의 암석이 주위에 분포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청산도 앞바다는 주위나 해저가 이런 자철석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산도의 자성이 지구 자기장 보다 강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자기 오류'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서서히 청산도에 해가 진다.
차라리 어둠이 내리고 나면,
흡사 눈이 온 산하를 감추듯 청산도의 밤은 환상의 나래를 덮어쓰게 된다.
그래서 밤이 더 아름다운 곳 청산도.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 김종해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문득 어디선가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 가느냐”는 여음이 들려온다.
어두운 밤에도 진도아리랑의 여음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청산도는 또다른 상상의 세계로 변한다.
지친 상혼들은 이제 안심하고 깊은 수면을 즐겨도 좋을 것이다.
길고 하얀 미리내의 물결이 꿈길을 달려와 밤새 물결을 이루고 춤추며 안드로메다로 나를 인도한다.
아름다운 청산도에서 잠시나마 안드로메다에서 보내온 신호를 해독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SF영화에나 나옴직한 그런 일들을 직접 보고 듣고 하면서 겪게되니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산도의 진짜 매력은 공포영화처럼 괴기스러움이나 흥분 등의 단어가 아니다.
엄청난 자기장이 우리에게 방향상실과 무기력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향상실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장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멋진 신세계에 닿게 된다.
그래서 청산도에서는 언제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것이 청산도 여행의 진짜 별미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바로 그 멋진 신세계에 도달하게 되니 말이다.
무수히 많은 별들은 쏟아지다 못해,
산중턱게 겹겹이 쌓이기까지 한다.
그 별들은 온갖 벌레들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화들짝 나를 미망에서 깨우며 참된 소망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쏟아지는 유성들, 별이 쌓인 산, 빛나는 밤바다,
천지를 울리는 파도소리,
그 소리에 몸을 굴리는 갯돌,
개구리 소리,
온갖 벌레소리와 희망의 하모니...
아, 아, 아...
그저 허우적대며 탄식 소리만 내뱉을 뿐...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참으로 밝은 달빛에 맑은 밤을 가로질러 서편제의 봉화처럼,
흘쩍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바다는 빛을 내뿜고 신비로움을 더하고
보기 흉한 콘크리트 농로마져 달빛을 받아 한발한발 서둘러 내딛고 싶은 눈길로 변한다.
웃저고리를 벗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자꾸만 충동질을 한다.
어쩌면 달빛 밝은 날 청산도에서는
한밤중에 오작교에 떨구가 간 그미의 신발하나를 들고 찾아온 그이를 만날지도 모른다.
한밤중 산길을 걸어도 무섭지 않은,
흥이 나는 길이 있는 섬,
청산도.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미리내로 접어드는 곳
청산도
‘돌담길’ 만큼이나 청산도의 매력을 지닌 것은 이 섬에 대한 ‘풍수지리’이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 신화를 바탕으로 하듯, 청산도의 역사도 신화에서 시작을 해야 하겠지...
사라진 신들의 섬 아틀란티스처럼 청산도도 어쩌면 신들의 섬이었는지 모른다.
그 옛날 청산도는 사슴과 노루가 뛰어놀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그런 섬이었을 것이다.
마치 내 고향 안드로메다처럼...^^
그래서 ‘청산도’가 아니었을까?
달빛, 그리고 범바위
풍수지리가들은 청산도를 한 마리 거대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해뜨는 진산리가 머리부분이고 해지는 화랑포가 꼬리에 해당한단다.
어쩌면 그 옛날 하늘의 신들이 우주를 지배하던 시절,
조물주 몰래 사랑하다 하늘에서 쫓겨난 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늘나라의 경비병인 거북을 청산도로 내려 보내주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단순한 기우일까?
분명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서 내곁을 따라다니며 나를 지키던 거북이 어딘가로 멀리 떠난다는 소식에,
나는 몹시도 슬퍼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거북이 이제 ‘청산도’가 되어 나를 반기고 있다니...^^
청산도는 어느 곳에서든지 바다쪽 포구를 바라보면,
대부분 거북이 형상으로 보인다.
다른 섬에서 볼 수 없는 참으로 특이한 모습이다.
청산도 남서쪽에 위치한 화랑포를 권덕리마을의 범바위나 구장리마을의 앞개에서 바라보면 누구나 거북이 형상이라고 금방 알수 있다.
거북이는 영묘한 동물이다
.
‘물명고’에는 머리, 꼬리, 네 발을 한꺼번에 감출 수 있다하여 ‘장육(臧六)’이라 하였고
‘거복(居福)’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살아있는 복덩어리라는 뜻이다.
거북은 장수와 부귀를 상징하는 십장생의 하나이다.
풍수의 속설에 거북이 꼬리 부분에 접하는 마을이 잘된다고 했다.
거북은 꼬리 부분에서 알을 낳기 때문에 그 정기를 받아야만 다산과 풍요를 약속받을 수 있다고 한다.
청산도는 화랑포라는 금거북 꼬리에 마을들이 매달린 형국이란다.
알을 낳기 위해 뭍에 오른 거북이 청산도라는 알무더기를 낳고,
바다를 바라보는 영구망해형(靈龜望海形)이요,
금구망란형(金龜望卵形)의 빼어난 길지라는 것이다.
해뜨는 마을 진산리에서
청산도의 매봉산 매와 보적산 범바위의 호랑이는 금거북이 알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일지 모른다.
하늘에서 날아드는 알도둑은 매봉산의 해동청 보라매가 지켜내고,
뭍이나 물에서 달려드는 적은 범바위의 산중호걸 호랑이가 지켜낸다.
풍수에서는 이렇게 격이 어울리는 형세가 구비되어야 승지(勝地)요 명당이란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아쉽게도 청산도의 그 멋진 풍광이 파헤쳐진 현장을 만난다.
청산도 화랑포의 해안절경을 따라 시멘트 포장공사를 하면서 일주도로를 내겠다고 거북의 알이 달그락 거리는 해안가를 온통 시멘트로 발라댔다.
그것도 듬성듬성 포장을 하다말아, 앞으로 나머지 구간을 어떻게 발라댈 것인지 심히 우려가 된다.
훼손되지 않은 산책길을 만들수는 없는걸까?
그놈의 둘레길이 뭔지...
그래서 관광객이 넘쳐나기만 하면 좋다는건지...
한밤의 축제가 서서히 끝나갈 무렵
온갖 욕정을 이겨내자 이내 동이 터온다.
청보리밭 위로 물드는 태양의 행보는 또다른 감흥을 준다.
이른 아침 해뜨는 마을 진산리에서 맞는 태양,
바로 내일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황금마차이다.
찬란한 태양이 중천에 걸리고 나서야 진도아리랑의 여음은
잠시 허공을 맴돌다 바다로 스며들어가 숨는다.
하지만 이내 그 여음은
또다시 달그락 대며 갯돌구르는 소리로 변한다.
수국빛 바다에 유영하는 진도아리랑,
그리고 대금산조,
돌담길, 바람소리, 유채꽃, 여인네의 손길들,..
그리고 미황사 스님들의 군고치는 소리,
진도아리랑의 여음...
저 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오늘도 그렇게 청산도는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