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굴
고려 시대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불교는 전하는 자료가 소략하여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 정지상(鄭知常)[?~1135]의 시에 소래사(蘇來寺)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부안에 소래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중기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를 통해 부안 지역에 원효방(元曉房)[원효굴], 부사의방장 등이 불교 신앙의 수도처이자 기도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문필가 김극기(金克己)가 의상암을 찾아와 쓴 시를 통해도 의상암이 당시 부안 지역 불교의 수행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성황사(城隍寺)가 고려 중엽에 원광 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부사의방장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은 통일 신라 때 고승인 진표 율사(眞表律師)가 수행처로 삼았다고 하는 암자 터이다. 규모는 가로 5m, 세로 4m 정도로 진표 율사가 수행한 이후 많은 수도승들이 수행처로 삼았던 곳으로 전한다. 여기서 부사의(不思議)란 ‘보통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하고, 방장은 ‘고승들이 거처하는 처소’를 뜻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이 암자에 대해 “신라의 승려 진표 율사가 우거하던 곳인데 백 척[약 30m] 높이의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방장에 이를 수가 있는데 그 아래는 측량할 수 없는 골짜기이다. 쇠줄로 그 집을 매어 바위에 못질을 하였는데 세상에서는 바다의 용이 한 짓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치
변산반도의 최고봉인 의상봉 동쪽 절벽 중간에 자리한다. 의상봉 동쪽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으로 절벽 아래는 낭떠러지이다. 이 절벽에서 아래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편평한 암반이 자리하는데 이곳에 부사의방장을 짓고 암벽에 쇠말뚝을 박아 바람에 견디도록 하였다고 한다.
현황
현재 암자는 없고 그 터인 암반만이 노출되어 있다. 2m 정도 위의 암벽에는 암자를 고정시켰다는 굵은 쇠못이 박힌 흔적이 있다. 13㎡ 남짓한 반석 가장자리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주변에는 조선 시대의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사의방장 암반의 한쪽에는 가로 30㎝, 세로 25㎝, 깊이 10㎝ 정도의 사각형 모양의 홈이 파여 있어 암벽 틈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자연스럽게 고이도록 되어 있다. 이곳은 접근이 쉽지 않은 상태여서 현재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한편, 부사의방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길로 90m 정도 진행하다가 암벽 사이로 내려가면 세 개의 동굴이 위치하며 이곳에서 서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는 자연 동굴이 자리하는데 의상 대사(義湘大師)와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수행한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