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촐한 外出
구름이 가득하였지만 간간히 햇빛이 고개를 내미는 9월 初旬의 날씨이다. 글쎄 소나기라도 한줄기 올까? 의심쩍어 배낭에 조그마한 우산 하나 챙겨 나들이에 나선다.
오늘은 桂陽山 트레킹이기에 모임 장소는 인천지하철 1호선 桂山驛 5,6번 출구 안쪽에서 10시에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 계산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45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출구쪽으로 올라오니 이지수 회장이 맨 먼저 도착하여 손짓하며 인사를 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오늘 참석인원은 모두 4명이라 한다. 잠시후에 김종현이가 도착하고 이어서 26동기회 김철호 총무가 도착했다. 성원이 되어 곧바로 출구로 이동하여 계양산 언저리로 이동하였다.
계양산 둘레길의 시작지점에 접어들고 있었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오가는 行樂客들이 꽤나 많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자 주산(主山)이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桂陽山城)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오르는 길목에는 야자매트가 山路를 덮고 있다. 미끄럼과 負傷防止를 위하여 산길을 塗布한 것 같다. 우리가 걷는 “계양산 둘레길”은 이곳 “계양산야외공연장인 연무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산허리를 가로질러 정상 부근의 “피고개”를 지나 생태통로인 “징매이고개”를 거쳐 “중심성지”를 지나 “경인여대”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의 트레킹이다.
가끔 밟히는 발아래 흙길은 부드럽고 진한 흙내음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일행은 둘씩 짝을 지어 그간의 歡談을 나누며 오르는 발길의 무게를 가벼이 해 주었다.
이번에 同期會 總務를 맡은 철호는 곧 있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 바쁜 일정이었던 것 같았다. 제일 수고를 많이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기 회원들의 哀慶事까지 챙겨야 하는 심부름도 해야하니 그 勞苦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길가엔 어김없이 패랭이꽃 등이 계절인사를 하며 반긴다. 계양산의 대표적인 식물로는 강아지풀, 패랭이꽃, 갈퀴나물, 연잎꿩의다리, 투구꽃, 사마귀풀, 노루오줌, 각시 원추리, 동자꽃, 쑥부쟁이 등이 있고 나무는 국수나무, 계수나무, 주름조개풀, 그늘사초, 개암나무, 리기다 소나무, 노린재나무, 으름덩굴, 누리장나무, 졸참나무, 청미래덩굴, 작살나무, 까치수영, 족제비싸리, 애기나리 등의 수종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잠시 오르막길을 오르려니 平坦한 休息處가 나온다. 자연스레 배낭을 내려놓고 막걸리와 멸치안주로 산행의 疲勞를 달래었다. 여기 저기 휴식을 취하는 행락객들이 눈에 띤다.
산길은 나무데크로 만든 木柵길도 있고 야자나무로 만든 야자매트도 여기 저기 깔려 있다. 모두 산행의 편리함을 주리라 여겨진다. 이제 “목상동 솔밭” 방향으로 행선이 정해지고 언덕길과 내리막길을 몇차례 오르 내리고 나니 무척 힘이 든다.
세갈래 길에서 “피고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수가 문득 길가의 草木을 촬영한다. “산딸기”라 한다. 자세히 보니 줄기 끝에 조그마한 농익은 딸기가 달려있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하다. 이런 산중에 곱고 예쁜 산딸기가 열매를 맺히다니! 그저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평편한 산길을 계속 걸으니 길옆으로 돌탑들이 축조되어 있었다. 여기가 너덜지대라 한다. 너덜지대를 누군가가 마이탑사처럼 쌓아 이제는 둘레길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잠시 돌 하나를 올려놓고 기원하는 마음을 빌었다. 예전에 절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샘터, 물웅덩이, 그리고 밭이 있다고 지수가 알려준다.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고개 쉼터에 도착한다. 이곳이 “피고개”이다. “피고개”는 예전에 계양구에서 김포, 강화 가는 지름길인 고개로 盜賊이 많아 사람들의 돈도 뺏고 인명피해를 입어 피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주위 景觀이 맑아 보인다. 여기가 옛적에는 산도둑이 활개를 치는 곳이라 생각하니 그리 썩 欣快한 마음은 아니었다.
이제는 下山길인가 보다. 내리막길이 많다. 강아지풀이 온통 산로를 덮고 있다. 스치는 풀섶을 동무하며 계속 내려가니 오른켠으로 “징매이고개(생태통로)”가 보인다.
풀덮인 산로를 도란 도란 얘기하며 걷노라니 “衆心城址”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중심성지는 계산동과 공촌동 사이에 있는 景明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山城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고종 20년(18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방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축조하였는데 “민중들의 마음을 모아 축조하였다하여 중심성지”라 하였다고 한다.
평지를 계속 걸으려니 都心道路와 가까워 지고 있슴을 느낄 수 있다. 잠시 뒤 경인여대쪽으로의 도로에 도착한다. 지금시간이 오후 1시 50분이다. 3시간을 넘긴 트레킹이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각이다. 약 150m를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의 메뉴는 “감자탕”이다. 막걸리와 소주를 곁들여 “감자탕 전골”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비록 넷이 걸었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眞率한 對話도 오가는 뜻깊은 “단촐한 外出”이었다.
2016년 9월 3일 서남지부 리포터 석대식이가
첫댓글 다시한번 눈으로 트레킹을 하네요^^
단촐하지만 정겨움이 배어난 듯 ...
동기회 총무, 감사님이 참석했으니 1당 5명이니 12명이 참석한걸랑 진배 없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