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제3권
81. 부란나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야리의 미후지 곁에 있는 중각강당에 계셨다.
그 때 마하남이라는 리차족 사람이 몇 일을 걸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그 때 그 리차족 사람은
‘만일 내가 세존께 일찍이 찾아간다면
세존과 내가 아는 비구들은 모두 선정에 들어 계실 것이다.
나는 이제 일곱 그루 암라 나무가 있는 아기비 외도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고 생각하고는 곧 부란나가섭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때 부란다가섭은 외도들의 우두머리로서
500 외도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높은 소리로 떠들면서 세속일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 때 부란나가섭은 멀리서 리차족 마하남이 오는 것을 보고
그 권속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
저 사람은 사문 구담의 제자 리차족 마하남이다.
저자는 사문 구담의 재가 제자 중에 이 비야리에서 제일 우두머리인 자이다.
그는 항상 고요함을 즐거워하고 고요함을 찬탄한다.
그는 언제나 조용한 대중이 있는 곳으로만 간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
이 때 마하남은 그 대중들 가운데 있는 부란나에게 가서
서로 인사하고 서로 위로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마하남이 부란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부란나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에게 때(垢)가 생긴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맑고 깨끗해진다’ 고 설법하신다 합니다.
세간에 이런 주장이 있으니 당신은 이를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헐뜯으려고 하는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이 말은 옳은 법입니까, 그른 법입니까?
혹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로 찾아와 힐난하고 꾸짖지는 않았습니까?”
부란나가섭은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런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함부로 퍼뜨리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이 주장은 법다운 주장입니다.
내가 설한 이 법은 모두 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찾아와 그것을 힐난하고 꾸짖은 세상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마하남이여, 나는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에게 때가 생긴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맑고 깨끗해진다’ 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마하남은 부란나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그를 꾸짖은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는
물러나 한쪽에 앉아 조금 전 부란나와 논의했던 것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리차족 사람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그 부란나의 부질없는 말은 말할 거리도 못된다.
부란나는 그처럼 어리석어 착하지 않고,
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서
‘인도 없도 연도 없이 중생들에게 때가 생긴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맑고 깨끗해진다’ 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중생들에게 때가 생기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해지기 때문이니라.
마하남아, 어떤 인과 연이 있어서 중생들에게 때가 생기고,
어떤 인과 어떤 연이 있어서 중생들이 맑고 깨끗해지는가?
마하남아, 만일 색이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즐거운 것도 아니요,
즐거움이 따라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 때문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마하남아, 색은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즐겁지 않은 것이지만,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을 자라게 하며
즐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색에 더러워져 집착하고
더러워져 집착하기 때문에 얽매이며,
얽매이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느니라.
마하남아, 수, 상, 행도 마찬가지이며,
만일 식이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즐거운 것도 아니요,
즐거움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 때문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마하남아,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즐겁지 않은 것이지만,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을 자라게 하며
즐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식에 더러워져 집착하고,
더러워져 집착하기 때문에 얽매이며,
얽매이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느니라.
마하남아, 이것이 이른바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중생들에게 때가 생긴다’ 는 것이니라.
마하남아, 어떤 인과 어떤 연이 있어서 중생들이 맑고 깨끗해지는가?
마하남아,
만일 색이 한결같이 즐거운 것으로서
괴로운 것도 아니요,
괴로움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근심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색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마하남아 색은 한결같이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요,
괴로움이 따라는 것이며,
근심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이요,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색을 싫어하여 떠나고,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으며,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느니라.
마하남아,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만일 식이 한결같이 즐거운 것으로서
괴로운 것도 아니요,
괴로움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근심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식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마하남아,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한결같이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요,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며,
근심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이요,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식을 싫어하여 떠나고,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으며,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느니라.
마하남아, 이것이 이른바
‘인도 있고 연도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해진다’ 는 것이니라.”
이때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럿과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八一) 如是我聞。 一時。佛住毘耶離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有離車名摩訶男。日日遊行。往詣佛所。時。彼離車作是念。若我早詣世尊所者。世尊及我知識比丘皆悉禪思。我今當詣七菴羅樹阿耆毘外道所。即往詣彼富蘭那迦葉住處。
時。富蘭那迦葉。外道眾主。與五百外道前後圍遶。高聲嬉戲。論說俗事。時。富蘭那迦葉遙見離車摩訶男來。告其眷屬。令寂靜住。汝等默然。是離車摩訶男是沙門瞿曇弟子。此是沙門瞿曇白衣弟子。毘耶離中最為上首。常樂靜寂。讚歎寂靜。彼所之詣寂靜之眾。是故汝等應當寂靜。
時。摩訶男詣彼眾富蘭那所。與富蘭那共相問訊。相慰勞已。卻坐一面。時。摩訶男語富蘭那言。我聞富蘭那為諸弟子說法。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淨。世有此論。汝為審有此。為是外人相毀之言。世人所撰。為是法.為非法。頗有世人共論.難問.嫌責以不。
富蘭那迦葉言。實有此論。非世妄傳。我立此論。是如法論。我說此法。皆是順法。無有世人來共難問而呵責者。所以者何。摩訶男。我如是見.如是說。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
淨。
時。摩訶男聞富蘭那所說。心不喜樂。呵罵已。從坐起去。向世尊所。頭面禮足。卻坐一面。以向與富蘭那所論事。向佛廣說。 佛告離車摩訶男。彼富蘭那為出意語。不足記也。如是。富蘭那愚癡。不辨.不善.非因而作是說。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淨。所以者何。有因.有緣眾生有垢。有因.有緣眾生清淨。 摩訶男。何因.何緣眾生有垢。何因.何緣眾生清淨。摩訶男。若色非一向是苦.非樂.非隨樂.非樂長養.離樂者。眾生不應因此而生樂著。摩訶男。以色非一向是苦.非樂。隨樂。樂所長養。不離樂。是故眾生於色染著。染著故繫。繫故有惱。摩訶男。若受.想.行.識。非一向是苦.非樂.非隨樂.非樂長養.離樂者。眾生不應因此而生樂著。摩訶男。以識非一向是苦.非樂。隨樂.樂所長養.不離樂。是故眾生於識染著。染著故繫。繫故生惱。摩訶男。是名有因.有緣眾生有垢。 摩訶男。何因.何緣眾生清淨。摩訶男。若色一向是樂.非苦.非隨苦.非憂苦長養.離苦者。眾生不應因色而生厭離。摩訶男。以色非一向樂.是苦.隨苦.憂苦長養.不離苦。是故眾生厭離於色。厭故不樂。不樂故解脫。摩訶男。若受.想.行.識。一向是樂.非苦.非隨苦.非憂苦長養.離苦者。眾生不應因識而生厭離。摩訶男。以受.想.行.識。非一向樂.是苦.隨苦.憂苦長養.不離苦。是故眾生厭離於識。厭故不樂。不樂故解脫。摩訶男。是名有因.有緣眾生清淨。 時。摩訶男聞佛所說。歡喜隨喜。禮佛而退。
상윳따니까야 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S22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마할리 경(S22:60)
Mahāl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2. 그때 릿차위의 마할 리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의 마할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라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조건과 더불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조건과 더불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5. “세존이시여, 그러면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됩니까?”
“마할리여, 만일 물질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물질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물질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물질에는 즐거움이 있고 물질은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물질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만일 느낌에 … 인식에 … 심리현상들에 …
알음알이에 전적으로 괴로움만이 있고 알음알이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알음알이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알음알이에는 즐거움이 있고 알음알이는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알음알이에 탐닉한다. 탐닉하기 때문에 속박되고 속박되기 때문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된다.”
6. “세존이시여, 그러면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됩니까?”
“마할리여, 만일 물질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물질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물질에는 괴로움이 있고 물질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느낌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느낌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느낌에는 괴로움이 있고 느낌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느낌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인식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인식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인식에는 괴로움이 있고 인식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인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만일 형성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형성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형성에는 괴로움이 있고 형성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성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의식에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있고 의식이 즐거움에 떨어지고 즐거움에 빠져들고 괴로움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할리여, 그러나 의식에는 괴로움이 있고 의식은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빠져들고 즐거움에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떠난다. 싫어하고 떠나면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청정하게 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것에는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saṃyutta nikāya 22
6. upayavagga
60. Mahālisutta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ṃ. Atha kho mahāli licchav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 pe … ekamantaṃ nisinno kho mahāli licchavi bhagavantaṃ etadavoca:
“Pūraṇo, bhante, kassapo evamāha: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ahetū 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ahetū 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Idha bhagavā kimāhā”ti?
“Atthi, mahāl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Atthi, mahāl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Katamo pana, bhante, hetu katamo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kath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ī”ti?
“Rūpañ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aṃ abhavissa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nayidaṃ sattā rūpasmiṃ sārajj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rūpaṃ sukhaṃ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tasmā sattā rūpasmiṃ sārajjanti; sārāgā saṃyujjanti; saṃyogā saṅkilissanti.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ev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Vedanā 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ā abhavissa dukkhānupatitā dukkhāvakkantā anavakkantā sukhena, nayidaṃ sattā vedanāya sārajj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vedanā sukhā sukhānupatitā sukhāvakkantā anavakkantā dukkhena, tasmā sattā vedanāya sārajjanti; sārāgā saṃyujjanti; saṃyogā saṅkilissanti.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Saññā ca hidaṃ, mahāli … pe … saṅkhārā 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ā abhavissaṃsu dukkhānupatitā dukkhāvakkantā anavakkantā sukhena, nayidaṃ sattā saṅkhāresu sārajj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saṅkhārā sukhā sukhānupatitā sukhāvakkantā anavakkantā dukkhena, tasmā sattā saṅkhāresu sārajjanti; sārāgā saṃyujjanti; saṃyogā saṅkilissanti.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i.
Viññāṇañ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aṃ abhavissa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nayidaṃ sattā viññāṇasmiṃ sārajj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viññāṇaṃ sukhaṃ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tasmā sattā viññāṇasmiṃ sārajjanti; sārāgā saṃyujjanti; saṃyogā saṅkilissanti.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ṅkilesāya.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ṅkilissantī”ti.
“Katamo pana, bhante, hetu katamo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kath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Rūpañca hidaṃ, mahāli, ekantasukhaṃ abhavissa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nayidaṃ sattā rūpasmiṃ nibbind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rūpaṃ dukkhaṃ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tasmā sattā rūpasmiṃ nibbindanti; nibbindaṃ virajjanti; virāgā visujjhanti.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Ev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Vedanā ca hidaṃ, mahāli, ekantasukhā abhavissa … pe … saññā ca hidaṃ, mahāli … pe … saṅkhārā ca hidaṃ, mahāli, ekantasukhā abhavissaṃsu … pe … viññāṇañca hidaṃ, mahāli, ekantasukhaṃ abhavissa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nayidaṃ sattā viññāṇasmiṃ nibbindeyyuṃ. Yasmā ca kho, mahāli, viññāṇaṃ dukkhaṃ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tasmā sattā viññāṇasmiṃ nibbindanti; nibbindaṃ virajjanti; virāgā visujjhanti.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saṃyutta nikāya 22
connected discourses on the aggregates
60. Mahali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t Vesali in the Great Wood in the Hall with the Peaked Roof. Then Mahali the Licchavi approached the Blessed One … and said to him:
“Venerable sir, Pūraṇa Kassapa speaks thus: ‘There is no cause or condition for the defilement of beings; beings are defiled without cause or condition. There is no cause or condition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beings are purified without cause or condition. ’ What does the Blessed One say about this?”
“There is, Mahali,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defilement of beings; beings are defiled with cause and condition. There is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beings are purified with cause and condition.”
“But, venerable sir, what is the cause and condition for the defilement of beings? How is it that beings are defiled with cause and condition?”
“If, Mahali, this form were exclusively suffering, immersed in suffering, steeped in suffering, and if it were not also steeped in pleasure, beings would not become enamoured with it. But because form is pleasurable, immersed in pleasure, steeped in pleasure, and is not steeped only in suffering, beings become enamoured with it. By being enamoured with it, they are captivated by it, and by being captivated by it they are defiled. This, Mahali, is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defilement of beings; it is thus that beings are defiled with cause and condition.
“If, Mahali, this feeling were exclusively suffering … If this perception … these volitional formations … … this consciousness were exclusively suffering … beings would not become enamoured with it. But because consciousness is pleasurable … beings become enamoured with it. By being enamoured with it, they are captivated by it, and by being captivated by it they are defiled. This too, Mahali, is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defilement of beings; it is thus that beings are defiled with cause and condition.”
“But, venerable sir, what is the cause and condition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How is it that beings are purified with cause and condition?”
“If, Mahali, this form were exclusively pleasurable, immersed in pleasure, steeped in pleasure, and if it were not also steeped in suffering, beings would not experience revulsion towards it. But because form is suffering, immersed in suffering, steeped in suffering, and is not steeped only in pleasure, beings experience revulsion towards it. Experiencing revulsion, they become dispassionate, and through dispassion they are purified. This, Mahali, is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it is thus that beings are purified with cause and condition.
“If, Mahali, this feeling were exclusively pleasurable … If this perception … these volitional formations … this consciousness were exclusively pleasurable … beings would not experience revulsion towards it. But because consciousness is suffering … beings experience revulsion towards it. Experiencing revulsion, they become dispassionate, and through dispassion they are purified. This too, Mahali, is a cause and condition for the purification of beings; it is thus that beings are purified with cause and con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