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연수사(紺岳山演水寺) / 전통사찰
- 경남 거창군 남상면
신라 40대 애장왕(재위:800~809) 3년(802) 감악조사가 창건.하여 이후
조선 숙종(재위:1674~1720) 때 벽암선사(碧巖禪師 1575~1660)가 중수, 주위 암자를 10여 곳 두었다고 한다.
연수사 샘물은 신라 헌강왕(재위:875~886)의 중풍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고 사시사철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
절 앞 은행나무는 고려 말 왕 씨에게 시집 가서 유복자를 낳고 이 절에 들어온 여인이 아들을 위해 심었다고 한다.
여인은 승려가 되어 억울하게 죽은 고려 왕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지냈다고 한다.
(연수사 안내문에 적힌 내용을 정리)
감악산, 감악사, 감악마을 등 모두가 감악조사 이름을 따르고 있지만 감악조사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절은 조용하다. 머물고 있는 승려의 인기척조차 없다.
거창 읍내가 보이는 시원한 절이다.
슬픈 전설은 가진 600년 산 은행나무. 짝은 산 아래 마을에 있다고 한다.
대웅전
종무소 겸 요사로 쓰고 있는 각, 물 맛이 좋다.
범종루
산신각, 칠성각
대웅전 안
대웅전 좌우에 나한상이 있다.
연수사 주위에 감악사지 부도가 있는 줄 알고 감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들었다.
'물 맞는 약수탕'은 연수사에서 100여m 떨어져 있다. 정상까지 가다가 아닌 것 같아 되돌아 왔다.
남탕엔 물이 흐른다. 여탕은 물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후 6시, 춥지가 않고 시원하다. 올 들어서 처음 계곡물로 목욕을 했다. 긴 머리도 감았다.
연수사에서 정상까지 차로 그리 멀지 않다. 고원이다. 해발 900m쯤.
노을을 보려고 했지만 날씨가 맞지 않는다. 황매산이 잘 보이는 곳이다.
박무지만 거창읍이 보인다.
여름과 가을에 오면 꽃밭이겠다.
감악사지 부도 / 경남 유형문화재 제323호
- 경남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감악산 정상에서 남상면 쪽에 연수사가 있고 그 반대편인 신원면에 부도가 있다.
감악사지는 현재 연수사 주위가 아니고 이 부도가 있는 이곳이란 의미이다. 청소를 하였는지 이끼도 없이 깨긋하다.
감악사를 창건한 신라 때 승려 감악조사 부도로 추정한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신라시대를 계승한 고려시대 부도로 추정한다.
우두산 고견사(牛頭山古見寺) / 전통사찰
- 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667년(문무왕 7) 원효대사가 창건,
원효가 이곳에 와 보고 자신의 전생을 보았다고 하여 견암, 견암선사, 견암사(見岩寺) 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해인사를 창건한 승려 순응(順應)과 이정(理貞), 거창 출신 희랑대사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공민왕 7년(1358) 승려 지희가 중수하였다.(고견사 안내문)
공민왕 9년(1360) 달순(達順)과 소산(小山)이 김신좌(金臣佐)와 함께 중건하였다.
조선 왕실에서 고려 왕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전결을 내렸고, 매년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1630년 승려 설현(雪賢), 금복(金福), 종해(宗海) 등이 중건하고 고견사로 개칭.
일제강점기 때인 1935년 승려 예운(禮雲)이 대웅전과 칠성각을 중수.
한국전쟁으로 폐허, 1988년 승려 성법과 재일교포 배익천 선생이 대웅전과 종각을 중건.
1995년 승려 원각이 나한전, 요사채, 약사전 신축.
2006년 승려 무영이 대웅전 닫집, 천성문, 금강문 등 신축.
(인터넷 검색한 내용과 고견사 안내문을 조합)
고견사는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다.
1km 조금 넘는다. 절에 갈 때는 걸어야 한다. 걸어야 생각한다.
잡을 화두는 없고, 생각이 일어나는 대로 좇아 다녔다. 1000년 은행나무가 고개를 들게 한다.
금강문.
좌우에 금강역사 조각상이 있다.
산 경사면과 잘 어울리게 전각이 자리를 잘 잡고 있다.
시주한 배익천 선생 사적비이다.
몇 그루 전나무, 1000년 은행나무만큼이나 키가 크다.
요사채 앞에 있는 원주 돌기둥.
솟을대문이다.
석축 위에 놓인 종각은 날렵하다.
금강문 뒤 1000년 은행나무, 가을엔 환상이겠다.
사천왕일까?
대웅전
석불 / 경남 유형문화재 제263호
전체 마모가 심하다. 특히 얼굴은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다. 고려시대 석불로 추정한다.
사성각
나한전
대웅전 닫집
고견사 동종 / 보물 제1700호. 1630(조선 인조 8) 작품
강생원 현판을 놓쳤다.
이 불상은 고견사에서 의상봉 오르는 길, 바위 아래에 있다.
의상봉에서 마장재 가는 길에서 본 고견사 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