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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의 담론대론] 13. 유식학파의 논쟁 유식학파는 유가행(瑜伽行)파라고도 불린다. 유가행에서 요가란 말이 들어 있는 것처럼 선정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창시자로 미륵이 이야기되나 실질적으로는 무착(無着: 아상가)이며 그의 동생 세친은 이에 가세하였다. 세친의 연대를 대략 400~480년 또는 320~400년경으로 볼 때 유식학파는 중관학파 이후 중기대승경전이 성립해가던 시기에 등장한다. 세친 이후 다시 유식학파 내에서는 안혜와 호법을 필두로 무상유식(無相有識)파와 유상유식(有相唯識)파으로 각각 나누어져 대립한다. 전자는 아뢰야식의 실재를 부정하는 반면 후자는 인정한다. 소의경전으로 <해심밀경>이며, 주요 논서(論書)로는 미륵의 <유가사지론>, 무착의 <섭대승론> 그리고 세친의 <유식삼십송> 등이 있다. 유식학파의 주요주제는 선수행을 통한 의식의 문제이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한마디 말로 이 학파의 전체적인 교의가 압축되며, 그러하기에 또한 학파의 이름으로까지 자리잡게 된 것이다. 흥기 동기로는 공사상의 중관학파가 ‘허무론자’로 비판받는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중관의 공사상을 수용하면서도 유식의 입장으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식으로만 대치․환원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중관학파가 허무론자로 오해되었던 것처럼 유식은 ‘주관적 관념론자’로 비판받아왔다. 유부 소속의 비바사(毘婆沙)는 대상세계는 우리에게 나타난 그대로 실재한다고 하여 존재의 궁극적인 구성요소로서 법은 우리 의식으로부터 독립적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경량부에서도 대상세계와 이를 파악하는 의식 또한 모두 실재한다고 한다. 양자의 차이라면 비바사는 외물의 직접 지각을 주장하는 반면에 경량부는 외물의 표상인 지각으로부터 추리된다고 한다. 유식학파는 이러한 비바사와 경량부의 외물의 독립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을 비판 부정한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 그것이다. 오직 식(識)뿐이고 외계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외계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같은 대승의 중관학파의 비판으로 오히려 비바사와 경량부보다도 더 혹독하다. 대표적으로 ‘유가사지론’에 의하면 “대승과 관련되어 있는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은 공성(空性)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체는 오직 이름뿐이며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이같이 보는 것이 바른 관찰이다.’라고…하지만 다만 이름일 뿐이라면 진실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름과 진실 모두를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최고의 ‘허무론자’들이다. 이에 석존은 실체적인 아견(我見)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악취공자(惡取空者)’보다 낫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공성과 일체는 이름뿐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는 바로 중관학파를 지시하는 것으로 유식과의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결국 중관을 실체적인 아견을 주장하는 외도보다도 더 못하다고 석존의 이름을 빌어서까지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악취공에 반한 자신들의 선취공(善取空)으로서는 일체가 공인데도 불구하고 공이라고 바르게 관찰하고 말할 수 있는 진실한 것이 실재로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식은 중관의 공사상을 말하고는 있지만 과연 중관이 말하는 공사상을 바로 이해하고서 비판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유식의 이같은 공사상 비판은 곡해로 이야기되고 있다. 중관의 공은 초기불교의 맥락에 따라 연기하기에 무자성이라는 의미로 욕망의 실체론적 세계관을 파사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강조되었다. 유식이 말하는 식의 실재론적 차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중관학파의 논사들의 계속적인 도전을 받게된다. 조 준 호 (동국대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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