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칼라파타르/ 베이스캠프 트랙킹 15일 여행 일정 : 2011년 4월 14일부터 28일까지 모집여행사: 혜초여행사 : 참가인원 19명 모집금액 :2,750,00원 +현지 비자피 25$ +팁120$
4월 14일 (제1일) 김포공항에는 붉은 여행용 색을 밀고 오는 혜초팀들이 있다. 그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니 언행을 조심하여 나서지 말고 중간은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현지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도착하니 한국과 시차가 3시간 15분이란다. 그리고 happy-new year 하여 놀랐지만 이날이 신정이란다. 공항의 입국작업이 수동으로 무척 길게 줄을 서서 1시간을 서있어야 한다. 현지 가이드인 통통한 리마 라는 사람이 한국말을 잘한다. 우리나라에 귀한 만년초 같은 붉은 꽃이 랄루까떼(랄리브리스=네팔 국화)는 진홍색으로 아름답다. 길건너 식당을 거쳐 나오니 길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약장수 려니 하였더니 벽돌을 머리로 깨며 여자애가 노래를 불러 사람을 모으지만 이내 잠시 비가 오니 모두 흐터진다. 식후에 숙소에 들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현지 시장인 타멜시장을 방문하여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사람과 오토바이 차량이 범벅인 이런 무법천지의 길 가운데서 우리는 자유시간을 얻어 구경을 하지만 모두 중국 물건의 짝퉁들이 늘비하고 저렴하여 오히려 물건이 이상하다. 나도 챙이 큰 콜럼비아 모자를 7$에 사고 야크털로 짠 장갑을 사기도 한다. 호텔은 샹그릴라로 수준급이다.
4월 15일 (제2일째) 새벽 4시 기상하여 5시 공항에 도착하여 첫 비행기를 타야 순조롭다고 하여 서두른다. 아침을 빵으로 간단히 도시락을 준다. 겁을 무척 먹은 쌍발 소형비행기에 15명이 타고 머리를 숙이며 올라앉지만 편안하고 조용하게 40여분 비행하여 산맥을 넘고 현지 2,800m의 루크라(Lulka) 비행장에 살푼이 내려 앉으니 담장 밖에는 현지인들이 마중인지 포터로 고용되기 위해서인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조금 걸어서 롯지에 짐을 풀고 아침 차를 마시며 침낭을 배분받아 쌕(Sac)에 동여 매여 놔두니 소들이 와서 두 개씩 짝을 지어 싣는다. 08시 30분 출발하여 동네 작을 돌담길을 걸어가면서 상가들은 지나는데 마지막 끝에는 아치문위에 여자의 동상이 있고, 그분이 여자로 포터를 하여 에베레스트를 다녀오다가 사망하였다고 하여 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여준다.
조금 길을 내려서더니 좌측 벼랑 아래로 계단식 밭들이 잘 보인다. 협곡을 가는 것이다. 가는 길에는 커다란 고목이 두 개나 서있는데 무척 오래된 떡갈나무과이다. 우리가 가는 좌측 높은 곳에는 꽁테라는 산이 6,800m를 넘는 것이 눈을 덮어 쓰고 웅장하게 서있다. 늘 이름과 높이를 물어 보는 것이 습성이다. 나는 우리일행 중 처음 해외원정을 온 여자분 명희씨를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가는 것을 익숙시켜 가며 천천히 대열 중간을 간다. 늘 1시간을 가고 나면 휴식을 하고 물을 먹으란다. 고소에 걸리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귀가 아프게 듣는다. 오르락 거리며 마을을 지나고 돌로 된 불경을 쌓아놓은 탑을 지나고 회전불경을 오른쪽에서 돌려가며 가는 것도 진풍경이다. 멀리 산길을 가는 팀들이 보이니 우리도 저리로 가겠지 하며 걸어가니 중간 중간 마을에 돌담을 쌓아 마늘과 채소를 기르는 집들을 돌아가지만 늘 돌담의 곁에는 포터들이 언제라도 쉬도록 허리높이의 쉼대(stand)가 길게 드리워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마스테- (안녕)을 하며 어설픈 미소의 답을 받고 지나가지만, 등산객들의 짐을 실은 말이나 소, 또는 포터가 지나가는 것이 우선이라 딸랑 거리는 방울소리가 나면 옆으로 비켜서야 한다. 길가에는 소똥이 늘비하여 밟지 않으려고 잘 피하여 가야 한다. 다시 1시간 10여분을 가니 작은 마을이 나오고 한국사단법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히말리야 자선진료소”를 설립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하면서 한국말이 쓰인 box들을 보고 국력을 실감한다. 길가에는 송판으로 된 변소가 있는데 가끔 자물쇠를 채워놔서 자기네 tea-house의 손님만 사용하란다. 그리고 어떤 데는 변을 본 후 솔잎을 덮어서 냄새와 파리의 자생을 원시적으로 차단하는 것도 그들만의 지혜라 생각한다 길가의 모든 돌에는 불경을 흰 글씨로 새겨 둔것이 무척 역사가 있다 싶기도 한 진경이다. 10시50분 출렁다리를 건너 Thadokoshi-vilage의 길가 식당에서 휴식을 하며 점심을 먹고 간다, 나는 시간이 나면 등산화를 벋어 발에 산소통풍을 시킨다. 꼬불거리는 길을 따라 얼마를 가니 2,600m의 팍딩이란 마을의 숙소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산꾼이 되어 가는 길이라 식사만 하면 누어야 한다. 그러나 고소를 피하려면 머리의 열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야크모자를 사서 나도 한 개를 사서 덮어 쓰지만 털이 깔끈 거린다. 팍딩의 저녁은 그래도 경관도 좋고 출렁다리도 있고 저녁이 되니 운무가 끼기도 하고 루크라 보다 200m나 내려와서 춥지는 않다. 한식을 늘 넓은 식당에서 배분받아 동행하는 조리사들이 준비하여 주는 대로 먹지만 벌써 김치를 종로광장시장의 것이라고 아는 사람이 알려준다. 그래도 늘 물가라서 물이 있고 세수는 생략하여도 양치는 잘한다. 첫날을 롯지에서 자는 나의 룸메이트와는 서울마운틴의 장기간 아는 경상도 봉길씨, 부지런하고 만물을 준비하여온 사람이라 편하다. 그들은 석식을 하고 주변을 돌다 왔다고 한다. 침실에는 그래도 전등이 켜진다. 다행이다. 침실은 겉은 돌로 잘 쌓은 2층집들이나 마루바닥이 나무이고 벽도 나무로 칸막이를 하여 옆방의 사람이 방구를 뀌어도 들린다. 침대는 나무로 짜서 투윈이고 가운데 통로가 있다. 우리가 늘 도착하면 포터인 소가 갖고 온 우리의 짐이 방에 놓여 있다. 침낭을 펴고 살며시 쏙들어가 이리저리 자리를 잡고 불편한 첫 롯지의 잠을 자본다. 아직 고소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이드는 약을 나누어 준다. 이 침낭과 싸움은 12일 간 계속된다. 아침마다 그 침낭을 잘 개서 자루에 넣은 것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나는 늘 밤이면 나와서 별을 보고 동서남북을 가름하지만 이곳은 오리온좌의 Sirius가 잘 나와 있고 북두칠성은 산봉에 걸려 있다. 첫날은 짧은 거리를 너무 천천히 걸어서 정신적 부담만 덜면 아주 쉬운 하루였으며, 그렇게 천천히 걸었는데도 멀리 왔구나 생각이 든다..
4월 16일 (3일 째) phakding 롯치에서 6,7,8,로 시작한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 ) 저녁과 밤엔 낮에 올라가 온도로 소나기가 지나가서 아침에는 상쾌하다. 여행중에 비를 만나면 가장 어려운데 아침 마다 상쾌하여 다행이다. 동쪽 해를 받은 산봉우리가 황금색이다. 이건 높은 산에서만 보는 진경이다. 팍딩에서 출발하며 바로 길가에 남체가는 길이란 표시가 있고 역시 물가를 따라 왼쪽 길을 처천히 간다. 나는 오늘도 명희씨를 대동하며 보호자 역을 하고 중간을 따라간다, 9시경에는 함세루크라는 6,800m의 봉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10시45분에는 깔닥고개를 지나 마을 국립공원 입구 sagaramath national park에서 입산 신고 후 계단을 내려가려니 또 커다란 돌에 불경이 새겨있고 길가의 국화 붉은색의 랄리부르스가 잘 피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국립공원이란다. 이지역이 조살레 2,805m란다. 정문을 나서자 바로 앞에 검은 산이 보이는데 쿰비울라라고 이곳현지인 셀파족들이 성산으로 받드는 산이란다. 그래서 이산은 성산이므로 등산을 불허한단다. 여기서 얼마를 가니 마을을 지나는데 벗꼿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높이에 벚꽃이 피고 파란 배추를 기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며 늘 마늘 밭이 있기도 하다. 또 개울 출렁다리를 건넌다. 나는 사람이 가는 것은 이해하지만 야크나 말, 소들이 짐을 지고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 신기하다. 출렁다리 건너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또 출발을 하여 출렁다리를 건너 긴 계곡을 잠시 가니 바위돌이 많이 있어 쉬어 가야 한다. 이런 곳의 음페된 곳은 언제나 화장실로 사용되어 휴지와 지래가 즐비하여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합수점을 지나면 커다란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협곡을 이은 다리가 무척 길고 그 난간의 로푸에는 늘 색색이 헝겊이 날리고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깃발에는 경전이 쓰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안 것이지만 5가지 색으로 나누어 있다고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니 이제부터는 뱀꼬리를 밟듯이 꼬불거리는 절벽길을 천천히 올라간다. 건조하여 길이 먼지가 많이 나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포터와 소떼들의 뒤를 따라 가야 한다. 나는 7부 쯤 가니 명회씨가 조금 쳐진다. 나야 고산을 경험하여 천천히 가면서 호홉과 속도를 조절하지만 그래도 초보를 꼬리에 달고 가니 너무 느려 지친다. 그래서 앞으로 나서 나의 페이스를 찾아 가니 힘이 나고 마지막 남체입구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함께 시장을 지나서 숙소까지 돌계단을 올라간다. 롯지의 2층방을 배정받고 보니 4시가 되었으며 벌써 3,400m에 올라와 있다. 3층 117호는 전망이 좋다. 5시에 티-타임을 하고 저녁은 6시에 한다. 역시 한식으로 한다. 저녁을 먹고 동네시장을 한바퀴 돌며 짝퉁 비옷하의를 하나씩 구입한다. 에베레스트 그림이 너무 좋아 구경하지만 Fixed-price라고 써서 흥정을 말란다. 밤중에 10시 좀 넘어서 뒷골이 아파서 나는 가이드가 준 약(다이맥신)을 반 알을 먹고 누었더니 바로효과 있어 상쾌한 잠을 잤다.
4월17일 (4일째) 7,8,9로 늦게까지 누어 있다가 아침 후 우리는 일정을 바꾸어 오늘은 이곳 남체에서 고소적응을 위하여 Khumjung까지 한나절만 등산을 하고 와서 오후는 쉰단다. 동쪽에 해가 뜨니 콩데산이 눈 덮인 모습이 장관이다. 보통 때는 암산인데 2일전 눈이 와서 희게 상부만 덮여있다. 밝은 해가 하얀봉을 비추는 것이 쾌청하고 장관이다. 6,800m 정도라고 하여 한번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왼쪽 멀리 헬기장 너머로 계곡위에 길이 보이고 능선에 롯치와 베이스 캠프도 보인다. 마지막에는 비박을 하고 로푸를 잡고 빙산을 올라야 하므로 동계장비를 갖추어야 한단다. 부럽게도 돈 많은 유럽 사람들은 이곳까지 헬기를 타고 와서 내리고 구경을 한후 또 비행기로 간단다. 경비행기도 있지만 헬기가 거의 사용된다. 이곳에 오는데 편도 2천불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오늘은 깐샤라는 가이드가 경험이 많은 듯 천천히 앞장을 선다, 말발굽 모냥 생긴 남체를 위에서 보면서 마을을 돌아 우측으로 오른다. 그 오른편 언덕에는 군사시설이 있다 늘 하듯이 30분을 가서 쉬고 물을 먹으란다. 이제부터 나는 선두를 고수하며 가이드와 주고받으며 걸음을 천천히 걷는다. 이곳 주변에는 6,000m이상의 산이 수없이 많고 이름 없는 봉이 거의 다란다. 한 고개를 천천히 오르고 나니 경비행장의 비포장면을 지나고 넓은 둔덕을 오르니 건물이 큰것이 하나있고 그 옆을 돌아가니 쿵부일대가 잘보이는 전망대에 도달하여 보니, 이곳이 히말리야 하이라이트 전망대란다. 오른쪽으로 가까이 있는 아마다브람(Ama-Dablam)) 설산과, 더 멀리 롯체, 그리고 살짝 구름이 가리운 에베레스트-그리고 더부체피크가 한 선을 잘 이루고 있으며 쿰비울라라는 봉도 잘 보인다. 아마다블람이란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롯체는 중간에 우뚝 솟아 있고 그옆에 에베레스트가 웅장하게 있는데 빙산으로 덮여 있고 이곳의 남벽은 난코스란다. 에베레스트는 늘 구름이 덮여 있어 구별이 쉽다고 하나 오늘은 잠깐 머리를 잘 내주어 사진을 찍고 경관을 스케치하기도 하였다. 비행장을 올라가는 소녀들이 어디를 가냐고 하니 병원을 간다기도 하고 힐러리스쿨에 간다고 하기도 한다. 남체에서 1시간이상 고개를 넘어 힐러리 스쿨에 다닌다는 이야기다. 다시 전경을 잘보고 내일 갈 곳이 저곳이라고 먼 능선을 조망하고 비행장을 가로질러 하산을 한다. 올라가는데 2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 좀 더 걸려 12시 15분 숙소에 도착하여 중식 후 휴식을 하고 남체시장(namche-bazar)을 구경한다. 유화점을 갤러리라고 하여 들여다보니 오늘 본 전경을 잘 그려놓은 그림이 멋이 있고 금새 여기로구나 하고 알지만 한폭에 970$ 이라고 하여 와본 사람은 가치를 알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림일 뿐이다. 어쨌던 나는 이 유화 한점만 사면 되겠다 싶지만 아무리 계산을 하여도 100만원은 싼것인지 아닌지 몰라 구매를 포기하지만 그 그림 속에 소들이 짐을 지고 늘어서 가는 정경과 히말리야 3대봉을 감상하며 마음을 접는다. 나는 가이드와 소들이 꼴부대를 지고 가는 것을 보고 한자루에 얼마를 하느냐니 14$이라며 하루 6마리의 식사량이란다. 풀만 수거해다 파는 사람도 있고 그걸 포터대장이 손으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무게를 가름하여 값을 정한다. 우리가 이날 낮에 약간 행군을 하고 캉주마에서 쉬기로 하였으나 숙소가 열악하여 하루를 여기서 편히 묵고 가도 진행에 지장이 없다고 하여 저녁은 푹 쉰다.
4월 18일 (5일째) 오늘은 남체에서 디보체(Deboche) 까지 가는 일정이란다. 오늘의 선두는 다와라는 현지 가이드가 선다. 나는 또 바로 뒤에 서서 그사람과 이야기 하며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운다. 남체 고개를 너머서서 긴 길의 사선을 갈때는 붓꽃같은 보라색의 꽃이 무리를 이루워 그나마 고산지대의 야생화를 감상한다. 1시간쯤 가니 모퉁이를 돌아서는 전망대에서 조망하며 잠시 쉬지만 모도 야전변소에 놀란다. 지래밭이기 때문이다. 10시 20분쯤 캉주마를 지날때는 야크치즈를 판다고 하여 10불어치를 사서 우리 일행 4명이 나누어 먹었다. 길가에는 늘 조잡한 수제 보석류를 늘비하게 판데기 위에 놓고 팔고 있지만 그냥 구경만하고 지나친다. 중간에 소나무 군락의 고개를 꼬불거리며 하산을 하여 계곡을 출렁다리를 건너서 길가의 노점에 쉬면서 점심을 한다. 우리가 점심을 한곳이 풍기텡가라고 한다. 점심을 하고 새로난 길을 택하여 오르막을 가는데 먼지가 무척 난다. 그런 와중에 비가 잠시 내려서 우리는 윈드-재킷을 잠시 입어야 하였다. 나는 이번에도 정영희라는 여 사진사가 우리 앞 팀으로 왔다가 하산하는 것을 만났는데 우연히 2번을 함께 했고 이번에 3번째 만나니 그래도 잠시 반가웠으나 그 여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고산에서 탄 것을 보고 놀랐다.
3,600m가 넘는 길가에는 늘 이곳 네팔의 국화인 랄리-브라스(이봉길씨가 랄리-부르스라고 하여 잊지 않기로 하였지만)가 붉게 피어있고 올라갈수록 색깔이 진하여 장관이었다. 우리나라 동백꽃은 여기 비하여 새끼도 안 된다. 늘 오른쪽에는 아마다블람6,865m)의 산이 웅장하게 보는 면마다 다른 정경을 드러내고 위에는 빙하가 덮여 있는 것이 장관이다. 그러나 여기도 등정을 하는 팀이 있단다. 한참을 힘들여 올라가니 3,850m의 지점 능선허리에 커다란 라마교사원이 있는데 이곳은 대단한 성역이란다. 다들 들어가서 참배를 하고 경내를 구경하나 나는 밖에서 사진만 찍고 후미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여기서 하산을 하여 debuche3,820m까지 가야 오늘 일정을 마친단다. 길가에는 촌락이 있고 조랑말도 있는데 말도 대여한다고 써있다. 동백나무 같은 잡목지대를 지나서 평평한 계곡을 접어드니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3시 55분 도착하여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개울가의 2층 롯치에 짐을 풀고 발을 쉬며 저녁을 먹고 또 나는 별의 자리를 몇 사람들에게 일러주며 초저녁을 감상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커다란 유성이 북쪽으로 떨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고 상당히 기분이 상쾌하여 무사 행운을 빌었다. 그리고 좀더 하늘을 보니 인공위성이 하나 흘러가는 것도 발견하여 전에 선상에서 보던 감회가 솟아났다. 늘 우리보다 먼저 온 소들은 어쩔까 하였더니 그들은 짐을 풀고 한곳에 모여 한가히 먹이를 되새기고 있으며 한 마리도 멀리 가지 않고 자리를 잘 지키도록 훈련된것 같다.
4월 19일 (6일째) 오늘은 가이드가 바뀌어 깐슈라는 사람이 앞장을 선다. 아직도 계곡을 따라 가는 행열이다. 길가의 구둘장 같은 돌에는 불경이 흰 글씨로 쓰여 널려있고 담을 만들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늘 이런 곳은 왼쪽으로 지나간다. 깐슈는 천천히 그리고 유유히 걸어가는 선수이다. 나는 이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명희씨가 꾸준히 선두에서 멀리 처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진행을 한다. 디보체를 떠나 계곡을 가다가 철출렁다리를 건너니 3,915라는 표고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늘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아마다블람(6,865m)과 멀리 보이는 타보체6,367m를 감상하며 팡부제 마을 앞을 지난다. 여기 “체” 라는 말이 붙은 지역은 부처님이 지나간 자리란 뜻이라고 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우측으로 돌로 담장을 쌓은 밭에는 감자를 심었고 아낙들이 맨발로 땅을 파며 감자를 채취하는 것도 고산지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정경이다. 팡부제에서 휴식을 하고 다시 떠나니 앞에 긴등선의 중앙에 에베레스트가 우뚝 서있으나 역시 정상의 우측은 바람에 날리는 눈을 머금은 구름이 걸려 있는 것이 장관이다. 11시경 somare 라는 마을에서 중식을 하는데 벌써 4,045m 라는 표고가 나온다. 우리는 중간에 높은 봉을 하나 천천히 넘는데 이곳 집들의 지붕은 나무판으로 되어 이들을 운반하는 사람들도 지나친다 . 우리가 여기까지 잘 왔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서 장비를 갖추고 비탈길을 내려서는데 여기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한곳은 사람들이 island-peak로 가는 길이 있고, 우리는 좌측으로 가는 길을 잡은 것이 오직 갈림길이 하나밖에 없던 것 같다. 한참을 이 고개언덕4,260m에서 쉬다가 우리는 눈이 내리며 비스듬한 옆길을 가지만 그 아래는 히말리아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흐르는 넓은 계곡이 있다. 한참을 내려서서 선두가 철다리를 건너니 벌써 눈이 질퍽하다. 그런데 멀리 페리체(Pheroche) 마을이 보인다. 이때 두 사람이 잘못 길을 잡아 우리의 반대편으로 가고 있어서 소리질러 불러 되돌려 오기도 하였지만 눈이 오니 선두 대열을 놓친 것이다. 페리체는 사람들이 파리체라고 하여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었고 넓은 계곡의 마을로 제법 마을이 크고 헬기장도 있으며 이곳에 영령탑이 새겨있기도 하다. 어설픈 2층의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또 새우잠을 자야한다. 가장 불편한 것은 변소이고 용변 후 물을 떠서 부어야 한다. 그리고 그나마 써비스라고 식당에는 소똥을 반죽하였다가 태우는 난로가 있어 다행이다. 집 앞에는 개울물이 흘러가서 사람들이 여기 가서 양치를 하지만, 나는 주전자에 양치물을 떠 놓으라고 하여 그것을 이용한다.
4월 20일 (7일째) 7,8,9로 천천히 여정을 시작하여 여유가 있다.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하여 여기서 하루를 더 묵으며 지낸단다. 열악한 롯지를 또 하루 이용한다니 걱정이다. 어제 내린 눈이 아침해를 받자 녹드니 아침에는 영하로 얼었다. 늘 아침은 상쾌하고 사방의 높은 봉은 눈을 머금은 하얀 봉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이곳 kumpbu 지역은 늘 고산을 오르기 전에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아침에 보니 남의 소가지고 온 꼴을 훔쳐 먹는 소들이 있어 셀파가 쫓아내는 것도 정경이며 동물도 배가 고프면 남의 것도 훔친다. 밤새도록 쉬었든 소들은 개울 건너 산비탈에 높은 곳까지 올라가 마른 풀들을 뜯고 있는 정경도 야크들이 살아가는 면면이다. 밤새 추어서 옷을 껴입고 잠을 잤다. 꿈도 잘 꾼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장례를 치루는 꿈을 꿀까? 90인 넘은 장모님이 별세라도 하였나 ? 불안하였지만 할 수 없다. 어제도 다이아벡스 반알을 먹고 잠을 자니 고소증이 오지 않고 머리도 아프지 않다. 아침에 마을 뒤를 돌아 천천히 올라가니 바로 언덕빼기의 허리가 나온다. 간간히 있는 돌과 이제는 풀이나 나무가 점점 없어지는 황폐한 곳이 되어 버린다. 한번 구릉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아래쪽으로 다른 마을이 잘 보이는데 그곳이 딩보체(Dingbuche)라나?--어쨌던 그길로 가야 island-peak.로 가는 길이 있으며 멀리 그 곳에도 베이스 캠프가 있다.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나 롯체를 정복하기 전에 6,300m의 이 봉을 훈련 삼아 오르는 곳이란다. 이제 알게 된 것은 모든 봉우리에는 늘 긴 장대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데 그것이 5-6색이며 파랑=하늘, 노랑=땅, 청색=물, 적색=불, 녹색=환경, 그리고 흰색=구름 이란다. 이것이 그냥 헝겊이 아니고 거기에 불경을 새겨 넣은 글자가 늘비한 것을 보았다. 11시 30분경에는 촐라레이고 라는 봉의 중간에 올라가니 4,665m가 나오는데 더올라가고 싶지만 가이드가 말려 하산을 한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면 롯체봉이 있고 더 멀리에 계곡아래 6,300m의 이이스랜드-픽크가 있으며, 우측으로 아마다블람이 우뚝 서 있는데 그 앞에 산은 암벽이 벌집모양으로 파여 있고 그 아래는 빙하가 녹으며 쌓아놓은 모레인이 있어 사람이 올라 갈수 없단다. 그 자갈이 무너지며 미끌어 지기 때문이란다.
도중에 한무리의 아줌마 6명을 만났는데 일본에서 왔단다. 지진과 쓰나미 피해에도 그들은 길을 용감히 떠난 아줌마 부대와 인사를 나눈다. 몇년전 일본인 들이 쓸고 간 곳을 우리들 한국사람이 이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산을 하여 일찍 되돌아 와서 고소 적응을 위해 오후 내내 이곳 페리체에서 쉬면서 빈둥댄다. 그리고 간간히 나와서 하산하는 무리들의 정경을 보며 부러워 하기도 한다.
중간에 들으니 이곳 히말리야에 오는 코스는 1, 안나푸르나= 누구나 가는 관광코스. 2, 랑탕= 높이는 낮아도 원시림을 많이 걷는 재미 3. 칼라파타르-5,550m 로 가장 높이 올라가고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의 약자인듯 )라면 모두 아는 코스로 우리가 여기를 가는 중이다.
4월 21일 (8일째) 6-7-8로 한가히 출발을 하면서 약 1시간은 계곡을 물을 건너며 아주 완만히 올라간다. 중간에 마을을 지나지만 늘 담은 돌로 쌓아있고 그 안에 야크나 말이 우뚝 서있는데 말은 환자가 생기면 비상시 운반수단으로 고용된다고 한다. 졸라호수에서 맑은 물줄기를 건너니 야크떼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데 야크는 3,500m 이상에만 산다고 한다. 여전히 30분가서 쉬며 물을 먹으란다. 우리가 쉬는 사이에 서구인들이 15명정도 그룹을 지어 하산을 하는데 콧등이 모두 검붉게 탓고 추위 때문에 더 그런것 같다.
계곡바람이 차가워서 오늘은 팬츠를 두 개 입었더니 뒤가 차지 않아 다행이다. 여기는 겨울옷을 입고 올라가야 한다. 머리위에는 헬기가 왔다갔다 하는데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편도 2,000$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돈만 많으면 고생을 않고 다녀 갈수 있는 것이다 계곡길을 1시간 반 이상 걷고 나서 오르막을 돌아 12시 20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롯치인 thukla에서 쉬면서 점심을 한다. 역시 발에 산소를 넣은 것은 필수이다. 여기가 4,570m라는 표고가 써있다. 늘 롯치에는 간판에 그런 표고 표시를 써놓아 편리하다. 오후 1시 30분 천천히 진행하여 내렸다 다시 오른 고개언덕에는 바람이 많이 불지만 다행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위령탑- 돌무덤들이 능선에 즐비하게 서있고 간간히 돌에 문자를 새겨 이름과 출생년도 사망년도를 보아 너무 어린 20대에 이곳에 와서 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여기서 좌전방을 보니 역시 높은 산이 눈을 덮고 있는데 여기도 훈련등반을 하는 곳이란다. 한참을 가니 이쪽에도 험로를 돌아오는 팀이 아래에 노란 텐트들을 치고 베이스를 잡은 곳이 보인다. 개한마리가 뛰어 다니는 것도 특이 하다. 2시 30분 4,930m라는 로부체(Lobuche)에 도착 역시 삐걱거리는 침실에서 옷을 잔뜩 끼어 입고 잠을 자지만 변소에 채워둔 물도 아침에 보니 얼음이 얼어 있을 정도로 춥다.
4월 22일 (9일째) 오늘은 일정이 길어서 서두른다. 5시반-6시반-7시30분 출발하는 일정이다. 계곡은 4,930m 부터5,030m까지는 아주 완만한 돌덩이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간다. 5,050m 부터는 오름이 시작된다. 그 전방에는 거대한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부마리7,300m--늪체 8,500m 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가는 양쪽은 오래전에 빙하가 덮여 있다가 녹으며 쓸려 내련간듯 협곡은 넓고 그 아래에는 얼음덩이가 아직도 있고 간간히 물구덩이도 보인다. 9시 40분 부터는 깔닥고개를 올라가니 이제는 5,095mㅡ나 된다. 우리는 바람을 피하여 돌무덩이 속에서 쉬지만 그 돌들이 빙하의 위에 있는 것을 알수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인지 그래도 등산로는 모랫길이 되어 있다 10시30분 5,130m의 지점을 통과 할 때는 돌무덤이 거대하며, 저걸 자연이 움직여 밀어다 쌓아 놓은 것이 장관이며 늪체가 보이고 먼 전방에는 에베레스트를 가는 사람들이 묵는 베이스 캠프에 노란 텐트촌이 보인다. 베이스 캠프는 빙하위에 설치된 천막촌이며 루크라에서 여기까지100km는 된다고 한다. 우리가 목적지 고락셉(Gorak-shep)에 11시20분 도착하여 중식을 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모레인 지대의 계곡을 따라 베이스 캠프까지는 못가고 시간이 허하는데 까지 잘 보이는 곳까지만 다녀오기로 하여, 다음날 새벽 칼라파타르5,550m를 오를 준비를 하여야 한다. 칼라파타르(Kala Patthar)는 =칼라(검은), 파타르(돌부덤)이란 뜻으로 여기만 검은 봉이 솟아 있어 사람들이 장비없이 오를 수 있는 히말리아의 전진 봉우리란다. 우측에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이 보이기도 하며 계곡을 따라 흰띄를 이루고 전에 빙하가 있다가 지금은 모레인 지대로, 그 바닥에는 아직도 빙하의 얼음이 위에는 바위들을 이고 있는 것이 신기하며 언제 저게 다 녹으면 큰 물줄기로 변할 것이라고생각된다. 이곳에 오니 세상사를 망각하고 싶어진다. 속세란 그런 것이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편한 것을 ! 그리고 많은 봉우리들의 이름, 금새 들어도 돌아서면 외국어라 그런지 잊어버린다. 그런 것이 자연현상이지 머리가 둔하여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히말리아에는 6,000m가 넘는 봉이 600여개나 된다, 그리고 14좌니 뭐니 하는 봉도 금새 들어도 잊어버린다. 고산이라 그런가? 낮에 보니 칼라파타르를 굳이 새벽에 오를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아침 일출을 보기위해서 란다. 그러나 칼라-파타르를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황토색을 띄운 길이 두갈래로 보이며 금새라도 갔다 올 것 같은 기분이다.
4월 23일 (10일 째)
4월 23일 (10일 째) 고락셉에서 추위에 하늘이 보이는 지붕밑에서 웅크리고 밤을 대기하다가 2시 30분 기상하여 추위에 덜덜거리며 마늘수프를 먹고 3시 30분부터 랜턴을 키고 깐샤의 뒤를 따라 모래마당을 건너 바로 황토길을 Z자로 천천히 고소를 먹지 않도록 하며 걸어간다. 오늘이 마지막 절정으로 세계의 지붕 쿰부히말의 전망대 격인 칼라파타르(5,550m)를 오르는 것이다, 왼쪽으로 칼라파타르 봉의 검은 돌들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은 암릉이 아니고 모래와 자갈길로 사람들이 얼마나 올라 다녔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천천히 오르지만 5,300정도에 오르니 손끝마디가 저려온다. 그런 것이 고소의 증세란다. 머리는 아프지 않고 정신도 말짱하며 힘도 남아돈다. 그러나 가이드의 뒤를 따라서 천천히 오르지만 저리던 손끝이 이내 얼을장 같이 차거와 시리다. 이런것을 조심하여야 한다. 장갑을 이리저리 두 개나 끼었는데도 손이 차가운 것을 견디기 어렵다. 처음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나중에 5시경이 되니 사방이 흐미하여지고 오른쪽 멀리 검은 보이 에베레스트이고, 눞체와 로체도 잘 보인다. 어제 밤에 눈이 살짝 내려 정상에 도착한 5시50분에는 훤하다. 그러나 마지막 봉우리의 바위 덩이는 살짝 눈이 덮여 미끄럽다. 조심을 하여야 바위틈으로 쳐박히지 않는다. 우리팀 들이 잘 따라오며, 초행의 명희씨나 미애나, 봉길씨가 잘 안내를 하고 있어 안심이다. 바위사에에 커다란 나무통에는 펄럭이는 깃발이 수도 없이 달려 있다. 도착하자 추위를 무릅쓰고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가 바쁘다. 나도 몇장을 찍고 잘 나오기를 바라며 가이드에게 부탁을 하며 포즈를 잡는다. 이들은 수없이 사람을 안내하며 사진을 찍어주어 그들이 잡는 자리가 제일 일것이다.
마지막 20여 미터를 남기고 서둘르니 숨이 가빠온다. 고산을 조심하며 드디어 도착한 소망, 이걸 오르려고 먼길을 고생고생하며 왜 왔나 싶다. 평생에 두 번 오라면 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쨌던 나이 70에 해낸 원정에 감사 하다. 명희씨는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합장하며 감사 합니다를 연발하며 이 나이에 오게해준 것도 감사 하며 일행이 잘 안내를 하며 자기를 도와주어 감사하다고 내이름도 올려 기도하여 보람을 느꼈다, 물론 스스로 한 것 이지만 말이다.
사진찍기가 끝나니 많은 사람들이 자꾸 올라온다. 우리는 자리를 빼야한다. 그래서 아침햇살이 에베레스트를 비추고 금빛을 띄운 봉을 잡아 보기도 하며 조금 하산을 하여 쉬면서 조망을 하니 이내 150미터쯤 내려오니 금새 손끝이 저리고 차거왔던것이 풀린다. 고도가 변하면 금새 적응이 되는 것을 느낀다.
멀리 베이스 캠프도 보이지만 나는 봉과 봉사이의 빙하가 흘러 내려가다가 계곡의 물이 찾던 것처럼 남은 흰띄의 흔적에 저 밑의 얼음이 다 녹으면 더 깊은 계곡이 생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칼라파타르는 말대로 검은 돌의 무덤이란다. 그래서 내려오며 보니 검을 구둘장 같은 돌들을 척척 눕혀서 쌓아 놓은 것 같은 봉우리를 감상 할 수 있었다. 내려오는 것은 금새이다. 모랫길로 먼지를 내리며 약 1시간 만에 롯치에 도착하니 7시 10분이다. 8시에 조식을 하고 10부터 하산을 시작한다. 몇 번을 뒤를 돌아보며 베이스캠프와 에베레스트, 로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자 한다. 2시간을 바위덩이 사이길을 하산하여 12시 로부체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나서 한없이 달려 하산을 하니 위령탑이 있는 곳을 지나 경사면을 하산한다. 이 경사면이 그래도 가파른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은 행복한 것일까? 이곳에서 뒤를 보니 높은 산의 눈위를 몇 사람들이 오르는 중이라고 사람들이 구경하는 모습이 있다. 1시간 만에 다시 선두는 4,620m인 루크라 도착 휴식을 한다. 우리는 오늘 페리체 까지 장거리를 달려가야 한다. 나는 눈이 조금씩 내리는 넓은 계곡 길을 물을 따라 내려가며 징검다리도 건너며 귀한 물을 접하기도 한다. 2일이나 자고 간 페리체는 눈에 익었다. 2시 20분, 나는 선두로 일찍 도착하여 짐을 풀고 홀에 나와 그나마 소똥난로근처에 앉아 쉬는 여유 속에 미국인 75세의 안드레씨를 만났는데 그는 베이스 캠프는 갔다 왔어도 칼라 파타르는 못 갔다고 하나 우리 나이라면 76세인 그가 세계102개국을 여행하였다는 자랑과 프랑스에서 태여나 독일에서 2차대전을 보고 미국에 25년 전에 건너가 정착하여 시민권을 갖었다고 자랑한다. 나는 내가 선장을 하며 여러 곳을 다닌 경험과 불령 마다가스칼 이나 모리셔스등의 나라를 대며 즐거운 영어를 한동안 연습하기도 하여 즐거웠다, 익숙한 장소에 다시 잠을 자며 룸메이트와 아침 침낭개는 것도 숙달되어 가고 있었다.
4월 24일 (11일 째) 페리체에서 기상하여 6-7-8로 시작한다. 페리체에서 내려 올 때는 눈이 와서 올라갈 때 못 본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하산을 하다가 언덕위에서 한동안 쉰다. 조금 내려오면 작은 마을을 지나며 왼쪽 디보체에서 island-peak쪽에서 온 길과 합류하는 지점을 통과 하나 가이드가 약간위의 길을 택하여 지름길을 가는 것을 알았다. 한참을 내려오니 돌담안의 밭에서 곡괭이로 감자를 수확하는 정경도 구경한다. 이 높은 곳에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한 것에 탄복한다. 여자들이 맨발로 감자를 캐며 주워내는 것을 보고 대단함을 느낀다, 우리가 올라갈 때 점심을 먹든 곳을 지나자니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9시30분 휴식을 하고 나서 한참을 내려오다가 출렁다리를 건너고 올라갈 때 잠을 잤던 곳을 지나니 12시경에는 3,910m의 능선에 거대한 불당 조르첸에 도착한다. 여기를 오를 때는 황토길이 무척 힘이 든다. 이 고개에서 후미들이 오기를 기다려 하산을 하려고 하니 미국인 안드레를 또 만났다. 그는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하였다고 자랑을 한다. 달랑 물병하나를 들고 옆에는 그림자처럼 인도인이 배낭을 지고 따라다닌다. 저 나이에 저렇게 다니는 의지와 체력은 대단한 것이다. 나보고 간은 70대라고 하지만 나는 그에 비하여 얼마나 젊은 가? 거대한 성지를 잠시 관망하다가 이내 내리막길을 내려서지만, 먼지가 나고 가파러서 짜증이 난다. 그와 중에 나는 대변이 보고 싶어 음폐된 곳을 찾으나 불가하여, 올라갈 때 점심을 한 곳까지 열심히 달려 내려가니 점심을 먹는 곳이 다리를 건너 외진 곳에 있어서, 그나마 나는 선두로 온 바람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니 얼마나 힘이 나고 가벼운지? 그리고 뒤뜰에 가서 바지를 벗고 먼지를 털어댔다. 우리가 내려오는 좌측 계곡쪽으로 붉은 랄리-브라스가 잘 피어있어 그 꽃만 쳐다봐도 기분이 낳아진다. 도중에 보라색의 붓꽃이 무더기로 길가에 솟아 있는 것도 야생화라고 기이하다. 우리가 점심을 위해 쉰 곳의 출렁다리 건너에는 알룩말 궁둥이 같은 거대한 바위가 장관이다. 잠시 빗발이 후두둑거리더니 금새 그쳤지만 늦은 점심을 지친 김에 허겁지겁 먹고 난다, 점심을 하고 13시 45분 출발 가파른 소나무 길을 갈지자로 힘겹게 오른다. 여기를 오르락 거리는 것은 힘든 일정이다. 힘이 빠진 상태에서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냐? 우리는 일단 캉주마에 도착하여 잠을 자던지 아니면 숙소가 여의치 않으면 남체까지 가기로 하여 달려본다. 그러나 작전은 이미 남체로 된 것이다. 선두로 간 가이드가 방이 없다고 하여 1시간 30분이나 더 가서 남체에서 자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남체 가는 길은 고속도로 모냥 평지 같다. 간간히 오름이 있을 때는 힘이 들지만 선두는 그래도 본대가 보이고 도착 할 때까지 기다려 숫자를 파악하고 간다. 문제는 4명의 교수라는 사람들의 부부가 너무 늦장을 부려 우리가 거의 남체에 올때 겨우 점심 먹는 곳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선두는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며 힘을 다 소진하고 마지막 남체에 장장 8시간의 긴 하산을 마치니 5시 20분이나 된다. 역시 올라갈 때 묵은 집이다. 방도 2층으로 갔다. 티-타임은 늘 하루의 저녁식사전의 일과 있다. 일본여자와 두 명의 남자를 만나 그들과 산 이야기를 하며 나의 경험을 말하니, 그들은 어디까지 간다는 목표가 없이 힘닿는 대로 가다가 쉬었다 간다고 한다. 정말 저런 것이 여행이지 하고 한수 높은 그들의 여유에 반한다. 우리도 그런 여유를 갖고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 까? 다음에는 시도 해보자. 올라갈 때는 여기까지 얇은 옷으로 왔는데 위에서 얼어서 인지 아직도 춥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한 4명은 결국 3명의 가이드가 붙고 랜턴을 키고 늦게 도착하여 변경된 일정을 나무라며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잘난 성만 내서 모두 배운사람이 자만하는 모습을 싫어하는 모습이 되었다. 나는 벌써부터 그들이 반말을 하기에 바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싫어 그들과 늘 상면을 피하였다, 남체는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나니 벌써 8시가 넘어서 모두 문을 닫아 구경거리가 없고 올라갈 때 갈등을 하며 본 그 유화를 반값에 사려던 흥정도 못하여 보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
4월 25일 (12일째) 남체에서 팍딩까지., 아침 5시에 갈가마귀 떼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오랜만에 따스한 긴잠을 자고 났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6시 반이 되니 밝아 오기 시작한다. 7-8-9시30출발. 어제 강행하여 멀리 왔으므로 오늘은 편하게 간단다. 남체를 떠나 마을을 빠져나오니 한곳에 초소 같은 데서 길을 막는다. 알고 보니 등정증명을 발급하는데 돈을 내라니까 모두 그냥 온다. 한떼의 소를 몰고 가는 두 애들이 장난을 하며 소를 때리자 우리 일행이 아프다고 동물학대라고 눈살을 찌프린다.
먼지가 나고 동물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천천히 남체에서 합수점까지 출렁다리를 건널 때까지 가파를 길을 내려선다. 걱정을 하던 이 경사면을 소떼 때문에 덕을 보아 아주 천천히 내려와 시간을 30분이나 소모하였다, 합수점 부터는 빙하수가 철철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또 출렁다리를 건너 우리가 갈대 쉬어 점심을 먹던 곳을 지나고 또 입산 신고소 조살레도 지난다. 쉬고 싶어도 자꾸 가기만 하잔다. 앞에 가는 식사 당번들이 자리를 잡아 놓은 곳까지 늘 가야 한다. 얼마 만에 monju에서 점심을 하고 나니 한국에서 온 무슨 사람들인지 촬영을 하는 것을 보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올라갈 때 만발한 벚꽃 마을을 지나지만 그새 다 지고 이제는 사과나무 꽃들만 만발을 하고 있다. 여기가 2,850m나 된다. 상상도 안 되는 고도에 식물이 많이 있는 산림지대이다. 하산하는 길은 쉬운것 같지만 그래도 마을을 돌고 가끔씩 만나는 작은 언덕을 오르면 그간 소진한 힘의 탓에 힘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에도 제제소가 있다. 나무로 지붕을 하는 관계로 송판을 밀어 쌓아 놓고 파는 곳이 있고 우리말로 한옥 목수들이 일을 한다. 그래도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올라갈 때 쉬어간 팍딩의 롯치에 도착하여 짐을 푸니 이제 하루만 남았다고 한다. 나는 샤워를 5$을 주고 하는데 비불기로 쫄쫄 내리는 더운물에 혼자서 싫컨 샤워를 하며 그간 12일이나 딲지 못한 머리를 감어 내니 얼마나 시원한지. 정말 살것 같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곳 숙소에는 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감고 발도 씼어 대며 살맛을 느낀다. 이제 고도가 낮아지니 (2,745m) 아무런 부담도 없다. 편안한 마지막 산속에서 잠을 잔다. 그간 짐을 져 나르던 포터들도 사방에서 머리를 감고 발을 씼기도 하고 운동화도 빨기를 한다. 물이 없으면 못사는 인간이란 걸 체험한다. 그간 짐을 나른 소들이 출렁다리 너머 좀 넓은 공간에 한가히 풀을 뜯고 되새김을 하고 있은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그러나 소들이 짐을 날라주어 편한 우리지만 어찌 보면 진짜 동물 학대를 한 것이다. 오늘 까지 11일을 산에서 지내고 내일은 천천히 일어나 4시간이면 lukla 에 도착하면 등정이 종료 된다니 개운한 마음이다.
4월 26일 (13일 째) 6-7-8 롤 팍딩의 2,690m지점을 벗어나 내려서는 듯하지만 마지막 루크라는 조금 올라간다. 중간 중간 마을에서 회전 종을 돌려 보기도 하고 여유를 느끼며 조랑말들이 올라가는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돌담 너머의 유채같은 노란 꽃이 핀 파란 배추관 식물을 보고 잎이라도 쌈을 싸서 먹고 싶은 충동이 나며 , 가끔 마늘이 조악하게 자라지만, 그 마늘은 전 세계인의 공통 조미료 음식임을 알게 된다. 어제부터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우리가 쉴 때는 Andre씨가 어김없이 물병을 하나 달랑 들고 지나가면서 나와 인사를 한다. 쉬지 않고 달려가기 만하여 얼마나 가서 쉴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총괄 현지 가이드인 리마의 아버지가 사는 집까지 와서 쉬니 그 아버지가 안으로 안내를 하여 차를 한잔씩 대접을 한다. 그집 앞에는 올라갈 때 본 한국의 자선 의료 센터에 물건이 많이 쌓여있고 한국의 기술자들이 일을 하면서 물건을 분해하며 확인 하고 있는데 그것이 항공 육로 등을 거치며 작년 11월에 발송한 것이 이제 4월 말에 들어 왔다고 하여 얼마나 운송수단이 나쁜지도 알게 되고 쌘드위치 판넬도 새것을 보냈지만 운반과정에 쭈그러져 헌것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 들이 세우는 저 자선 의료 쎈터가 큰 기여를 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미국인 Andre씨에게 우리가 예전에 전쟁 때는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경제 부국이 되어 repay 할 때라고 하였더니 그 사람도 꼭 repay를 하는 모습이 장하다고 한다. 한국기술자는 이곳의 등산로를 개척한 사람이라고 자찬한다. 구순한 경상도 사람이다. 중간에 우리는 엄홍길 휴먼 스쿨를 밑으로 지나쳤다. 올라가는데 20분 거린다고 하며 올 때도 일부러 그리로 갔다 와야 한다니 모두 그냥 오고 말았으며 한사람이 거기가면 출연을 하여야 한다니 짠돌이가 된 모습이다.
글쎄 에베레스트를 가는 젊은이에게는 엄홍길씨가 대단하지만 그래도 여기 트랙킹을 온 사람을 백두대간을 안 한 사람이 있냐고 자찬하는 사람들이다.
얼마를 걸으니 밑으로 계단식 밭들이 보이고 그 경사에 저런 농사를 짓는것이 장하기도 하다, 길가에 얼마나 오래된 거목인 떡갈나무 같은 것이 두서너 그루 장엄하게 서있다. 참으로 큰 나무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이 크다. 11시 30분 마지막 오름 계단을 올라서면 루크라 공항입구의 사원에서 간드러지는 네팔 종교 음악이 피로를 풀어준다. 동네 시장 길을 돌아 공항의 철망을 돌고 나면 처음에 공항에 내리며 쉬었던 lukla Number-Hotel 이란 곳에 짐을 푼다. 아 길고 긴 여정을 마친다. 나는 우선 의자에 짐을 던지고 등산화를 벗어 맨발이 되어 발에 감사하며, 피로를 풀고 후미가 오길 기다렸다.
저녁에는 식사가 끝나자 한패거리 외국팀이 쫑파티를 한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그들의 한판을 구경하고 나니 우리 차계가 와서 우선 셀파들이 춤을 추며 자축을 하면서 막걸리 같은 술을 주전자에 싫컨 갖어다 푸어 먹이며 한 두사람이 스폰하여 술도 사고 흥겨운 현지 음악에 세파들과 함께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지만, 나는 그 76세의 andre씨와 나란히 앉아서 소담을 하며 함께 온 사람이 인도 태생으로 법무부 마약국의 공무원이란다. 그 사람도 이제는 안도하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즐기면서 그간 수고한 현지 가이드 4명과 리마에게 팁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잔치인지 우리를 위한 축배인지를 즐기며 1시간 이상 즐겼다.
4월 27일 (14일째) 루크라에서 --수도 카투만두로 5시기상하여 아침을 서두르고 첫 비행기를 타야 수도에 들어가 일정을 잘 채울수 있다는 인솔 가이드의 말대로 일찍 서두르지만 어쨌든 각방에 화장실이 따로 있고 물도 나오는 곳에서 잔 것으로 만족하며 비행장에 줄을 서지만 쌍발기는 급한것이 없이 인원대로 선착순으로 태운다. 추락의 걱정은 이제 올때 타봐서 없어졌다. 머리를 구부리고 탑승하고 나면 솜을 주면서 귀를 막으라고 한다. 그리고 사탕도 한 개씩 준다. 오른쪽 창에 앉아야 히말리야 설산의 봉우리들을 볼수 있는데 나는 젊은 친구들이 모두 오른쪽을 차지하여 왼쪽에 앉았지만 비행중 하계를 바라보며, 그 높은 산마다 계단식 농사를 짓고 집들이 능선을 따라 있는 정경도 보았으며, 능선을 길게 이으면 얼마던지 등산 트랙킹 코스가 있음을 발견한다. 산위에 집들은 일단 외양은 성냥곽 같지만 잘도 그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내린 카투만두는 이날이 번다(데모)가 있어 모든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다니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정경이다, 다만 외국인 전용이란 간판 (travelers only)을 붙인 차만 텅빈 거리를 달린다. 우리는 오히려 한가한 거리를 달려 마지막 숙소인 샹그릴라에 도착하여 우선 샤워를 하고 경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살 것 같다. 그리고 오후에 시내의 성지를 순방하며 산 꼭대기에 있는 스와이암부낫 사원을 구경하고 탑돌이를 하지만 골동품들이 무척 많이 진열되어 있으나 그 것이 얼마나 오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흥미도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
두 번째 관광코스 구왕궁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더니 금새 물난리가 난다. 그래서 우리는 처마 속에 들어가 무슨 설명을 듣고 데모데들이 소리치며 무리를 지어 가면 군중이 동시에 박수도 치고 멀리서 경찰차 한 대가 그냥 관찰만 하는 평화적 시위에 놀라기도 한다. 물론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동하여 이 나라도 나중에 순수한 민주 국가가 되려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가 되려는지 알바 아니다. 그 와중에 나는 낮에 먹는 것이 한식집에서 상추쌈에 돼지고기가 과하여 탈이 나서 혼이 났고 텅빈 건물 속에 들어가 일을 처리하라는 현지인의 말을 따라 이리저리 어두운 곳을 찾았지만 적당한 자리가 없어 고생을 하였다. 생리는 조절이 불가할 때가 있다.
비가 오고 난 길은 어떤 데는 무릎까지 물이 찼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닌다. 저녁을 현지식으로 음악과 약간의 무용을 보면서 먹지만 실제 흥미 없고 차라리 그간 지친 몸을 호텔부페에서 싫컨 퍼먹기나 하였으면 하고 후회를 하지만 그런 것은 일정상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순응하여야 하는 제도이었다.
현지 카투만두는 고도 1,400-1,500m 로 기온이 24도 정도라 견딜 만 하였다, 처음에는 잠만 자고 난 샹그릴라 호텔의 뒷 정원은 아주 잘 정돈되었고 다리아 꽃 들이 커다란 송이를 뽐내고 있었으며 작은 수영장도 있었다.
4월 28일 (15일 ) 귀국하는 날 모처럼 여유 있는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뷔페식으로 많이 먹는다. 낮에는 비행장에서 대기시간 때문에 식사가 없다고 하여 우리는 배를 채울수 있는데 까지 채운다. 그간의 열악한 광장시장 김치쪼가리의 식사에 비하면 아침을 황제모냥 먹은 셈이다. 나는 지구력으로 15일 일정을 소화한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열악한 광장시장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조악한 식사 메뉴에 허리가 쑥 들어가고 몸무게가 2kgs이상 빠진 것을 앞으로 두 달은 채워야 할 것 같다. 어려운 공항의 수속을 끝내고 14시 출발하여 한국으로 오는 일정은 편하였다. 공항에 밤 23시 도착하니 마누라가 생각도 안했는데 대들을 데리고 차를 갔고 마중을 나와 편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는 길에 5기생 최용이가 저세상으로 갔다고 하여 허망하였고 서둘러 다음날 문상을 하여야 하였으며, 여행 중 두 번이나 장사를 치루던 꿈의 답을 얻은 셈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천천히 생각나는 대로 일화들을 따로 첨부 하여 올리고 싶으며, 홀씨 일행이나 그 나라 또는 여행사를 해되게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객관적인 일정을 쓰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은 너무 지루한 것이다. 사실 15일을 여행을 간다는 것은 장시간을 낼 수 없기도 하고 건강도 문제 이며 경비는 300만원 정도 이니 감안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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