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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변천(수난사)와 유래 그리고 어원
1. 설의 변천(수난사)
설(삼국유사 기록, 신라 비처왕 488년에 설을 쇰) ⇒ 구정(일제강점기 때 민족정신 말살 정책) ⇒ 신정(이승만, 박정희 정부, 1949년 이후) ⇒ 민속의 날(전두환 정부, 1985) ⇒ 설(노태우 정부, 1989부터 3일 공휴일)
* 설은 찬란한 천손(天孫)문화로서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설에는 돌아가신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올린다. 우리 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례를 올리는 것이다. 양자과학자들은 이제야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 우리 조상님들은 현실 세계에도 아침 점심 저녁이 있듯이 영혼의 세계에도 아침 점심 저녁이 있다고 믿었다. 영혼의 아침은 설날이고, 점심은 단오(端午)이며, 저녁은 추석(秋夕)이라고 믿었다.
설날, 단오, 추석은 현재 단순한 민속적인 의미나 공휴일 정도로 알고 있지 천손민족의 1정신세계관은 잊혀졌다.
2. 설의 유래와 어원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 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2)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3)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설날 차례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歲饌]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또 마른 것은 왼편에 젖은 것은 오른편에 놓으며, 나물류인 김치·청장(淸漿)·숙채(熟菜)는 가운데에 놓는다.
세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 (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데,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또 떡은 오른쪽에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2) 세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3)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열양세시기(洌 陽歲時記)》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 하였다.
(4) 덕담
덕담(德談)이란, 설날에 일가 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 (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원일 (元日)조에도 설날부터 사흘 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 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元日)조에 연소한 친구를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하는 등의 말을 하는데, 서로 축하하는 이 말을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5) 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傳喝)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며, 또 약간의 세뱃돈도 준다.
(6) 설그림[歲畵]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 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 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7)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8) 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 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는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9) 청참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4) 설날에 하는 놀이.
(1) 윷놀이
: 편을 갈라서 윷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 척사(擲柶)·사희(柶戱)라고도 한다. 목편 4짝을 가지고 하므로 4의 뜻인 윷과 놀이가 복합된 명칭으로 보인다. 2사람 또는 인원수가 많을 때는 2패·3패로 나뉘어 각각 4개의 말[馬]을 가지고 29밭으로 된 윷판을 사용하여 놀이한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까지 행해지는 전통놀이로, 정초에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하였다.
(2) 널뛰기
: 긴 널빤지의 중간을 괴어 놓고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뛰는 한국의 대표적 민속놀이. 음력 정월 초순이나 5월 단오, 8월 한가위 등 큰 명절에 부녀자들 사이에 전국적으로 행하여지는데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여성은 매우 활발하여 기마나 격구 같은 경기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널뛰기는 고려 여성들의 활달한 기상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3) 팽이치기
: 팽이를 치며 노는 놀이. 도토리 따위를 돌리며 장난하던 놀이가 발전된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중국은 당(唐)나라 때 성행하였고, 한국은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팽이란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하는 장난감으로서 박달나무·대나무처럼 무겁고 단단한 나무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다.
(4) 투호
: 화살을 일정한 거리에 놓인 병 속에 넣어서 승부를 가리는 놀이. 두 사람이 서로 마주서서 10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병 속에 푸른 살과 붉은 살을 던져넣은 뒤 병 속의 화살수로써 승부를 결정한다. 원래 중국 당(唐)나라 때 성행하던 놀이로 《북사(北史)》<백제전>과 《신당서(新唐書)》<고구려전>에 그 기록이 있어 한국에도 일찍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5) 연날리기
: 바람을 이용해 연을 공중에 띄우는 놀이.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 기예(技藝)의 하나로 남성들의 흥미를 끌어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한국의 각처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였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이며, 대체로 12월 20일 무렵이면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기 시작한다. 다른 연과 어울려 연줄 끊어먹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청장년은 청장년끼리 주로 한다.
5) 설날 음식
정월의 설날 음식으로는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떡국, 떡만두국, 떡볶음, 떡찜, 떡산적, 떡잡채 등이 있다. 고기 음식으로 갈비찜, 사태찜, 생선점, 편육, 족편, 지짐으로 녹두빈대떡, 각색 전, 채소 음식으로 삼색 나물, 겨자채, 잡채 등이 있다.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할 수 있는 신선로와 김치 곧 떡과 함께 먹는 장김치가 있고 후식류로는 약과, 다식, 정과, 엿강정, 강정, 산자, 식혜, 절편, 꽃절편, 인절미,수정과 등이 있다. 정월 상차림은 아침 일찍 밝은 마음으로 조상께 지낸 차례 음식으로 고루 차진다.
6) 까치설날의 유래
까치설날의 유래는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가 제시한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한국문화 상징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서정범 교수님의 주장요약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설날' 노래가 있기 전에는 까치설이 없었다고 합니다.옛날에는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했습니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합니다.이것의 근거는 음력으로 22일 조금을 남서 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합니다. 이렇게 아치조금이 까치조금으로 바뀌었듯이, 아치설이 까치설이 바뀌었다고 합니다.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설날'이라는 노래의 작사작곡을 하신 윤극영 선생은 이북출신 서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노래는 1927년작) 이것은 윤극영 선생이 경기도 지방의 언어에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