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1 북한강 발원지
북한의 금강산(金剛山) 부근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강원도 철원군에서 금성천(金城川)을 합친 후, 화천군 화천읍(華川邑) 휴전선에서 북한강 국가하천 구간이 시작된다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楊西面) 양수리(兩水里)에서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화천군에서 양구군 쪽에서 흘러오는 서천(西川)·수입천(水入川) 등이 파로호(破虜湖)를 이룬 후 남쪽으로 흐르고, 춘천시의 의암호(衣岩湖)에서 소양강(昭陽江:강원도 인제군가평군에서는 가평천(加平川)·홍천강(洪川江)이 합류하며 서류하다가 청평면
한강의 지류 가운데 가장 긴 강으로, 유량이 풍부하여 댐 건설에 유리하기 때문에 소양강다목적댐·화천댐·춘천댐·의암댐·청평댐 등이 건설되었고 이에 따라 주변에 파로호·춘천호·소양호·의암호 등 여러 호수가 생겨났다.
예전에는 화천지역에서는 북한강을 낭천이라 부르고, 춘천지역에서는 모진강이라 불렀다. 춘천시는 당시 북한강 유역 내에서 최대 거점도시였으며 조선 초기에는 소양강창을 두고 물자 집산지 역할을 하였고, 모진나루터는 서울에서 소금배가 올라오거나 특산물을 싣고 내려가기도 하고 뗏목
소양강과 합쳐진 이후의 강을 지칭하던 신연강에 있던 배터는 춘천의 관문이었다. 그러나 1939년 청평댐, 1940년 화천댐, 1962년 의암댐, 1965년 춘천댐이 들어서면서 나루터와 뱃길은 모두 사라졌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요동정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철령 이북도 명나라에 귀속되지 않았다
금강산 철령 분수산을 넘나들며 시인. 묵객들은
이항복(李恒福); < 시조>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고신 원루를 비 삼아 띄우다가/임 계신 구중 심처에 뿌려본들 어떠하리.”
관동팔경《송강가사》;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연추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남문(慶會南門) 바라보며, 하직(下直)고 물너나니 옥절(玉節)이 압패 셧다. 평구역(平邱驛) 말을 가라 흑수(黑水)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은 어듸메오 치악(雉岳)이 여긔로다. 소양강(昭陽江)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말고, 고신거국(孤臣去國)에 백발(白髮)도 하도할샤"
<그리운 금강산 [─金剛山]>
최영섭 작곡, 한상억 작사의 가곡 금강산의 절경과 분단으로 인하여 우리 땅이지만 가지 못하는 심경을 표현한 3절로 이루어진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2절;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발아래 산해 만 리 보이지 마라/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3절;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풀마다 바위마다 변함없는가/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물도/장안사 자고향도 예대로인가
(후렴)
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