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명상수행의 한가지 중요한 목표는 고독의 즐거움-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독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또 지금 & 여기에 만족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 머물러 있다는 뜻.
행복한 순간의 공통점은 그 순간과 장소에 만족하는 것. 즉, 만족이란 지금 이 상태를 충분히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에, 외로움이란;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관심을 바라는 것이다.
관계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현대 카톨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의 고독은 하나님과 홀로 마주하는 것, 즉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과 연결된다. 나우웬은 고독 속에서 자신의 가장 깊은 인간적 고뇌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라 말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나우웬의 글을 소개한다.
<헨리 나우웬의 공동체> 헨리 나우웬, p.83
고독이란 순종의 삶, 그 사랑의 음성을 듣는 삶이다. 그러니 잠잠히 있으라.
<헨리 나우웬의 공동체> 헨리 나우웬, p. 123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게 내버려두느냐, 또는 그것이 우리를 고독으로 인도하도록 허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음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독은 평화스러운 일입니다. 혼자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남에게 매달리게 하고,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존재의 독특성을 존경하게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내게 합니다.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지 않게 하고 고독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은 평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는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조언을 구할 것인지에 관하여 의식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거기서 출발하라고 한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고독과 침묵 속에서 나의 외로움과 공허를 채워야 한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릴수도 있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런 감각이 없어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고독을 견디라고 한다. 그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자신을 가득 채우고 흘러 넘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가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공동체는 나의 빈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타인을 바라본다. 그들 안에서 내가 보인다. 깨어진 모습, 상한 모습, 모난 모습, 부패한 모습들이 그들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하는 공통점이다. 세상은 차이를 드러내며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만 기독교는 다르다. 오히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인간이라는 공통점으로부터 공동체의 동질성을 찾는다. 그게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이유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그 깨어진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채워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온전한 회복과 치유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하게 입은 나는 더이상 상대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미 내게 충분하게 부어진 사랑을 상대에게 흘려 보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흘러 넘치는 그 사랑을 흘려 보내지 않으면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빈 자리를 채우며 공동체를 이뤄가기 시작한다. 경쟁이 아니다. 너와 나의 다름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깨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될 때, 공동체에는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는 개인을 다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회복이다. 각 개인은 하나님 앞에서 고독과 침묵을 견디며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통해 영적 에너지를 채움 받는다. 그리고 공동체로 모여 서로의 약함을 돌아보고 채우며 섬긴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용납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열매는 각 개인의 깨어진 부분들의 온전한 회복이다. 공동체의 연합을 통해서 말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나우웬의 글을 소개한다.
구경회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