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231)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30장 도망자 오자서(伍子胥) (7)
오자서(伍子胥)를 실은 배는 한 시각도 못 되어 저하(滁河) 건너편 언덕에 닿았다.
오자서가 몸을 일으키며 감사의 말을 던지려는데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젯밤 꿈에서였지요. 큰 별 하나가 내 배에 떨어졌소.
그래서 나는 오늘 이상한 사람이 나에게 강을 건네 달라고 청할 줄 짐작했소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대가 내 배를 탔소.
내가 그대의 용모를 보아하니 범상한 사람 같지는 않소이다.
속이지 말고 그대의 신분을 내게 말해주시오.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오자서(伍子胥)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노인을 믿고 자신의 이름과 그간의 일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난 노인은 놀라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려. 보아하니 며칠 굶은 것 같은데, 그 몸으로 어찌 먼 길을 가겠소.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곧 밥을 가지고 오겠소.“
노인은 버드나무 밑에 배를 매어두고 밥을 가지러 마을로 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밥을 가지러 간 노인이 돌아오질 않는 것이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의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상금으로 곡식 5만 석에 벼슬까지 걸려 있는 몸이 아닌가.
그를 신고만 하면 누구든지 벼락부자가 된다.
오자서(伍子胥)는 슬그머니 공자 승(勝)을 품에 안고 배에서 내려 갈대밭 우거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들이 갈대밭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있어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고기잡이 노인이었다. 손에는 밥과 생선국이 들려 있었다.
노인은 배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어둠뿐.
오자서(伍子胥)와 공자 승(勝)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노인은 오자서(伍子胥)가 자신을 의심하고 숨은 것을 알았다.
주위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갈대밭 속에 숨은 사람아, 나는 이익을 위해 밀고하는 사람이 아니오. 어서 나와 밥을 먹으시오."
그제야 오자서(伍子胥)는 몸을 일으켜 갈대밭에서 걸어나왔다.
노인이 타박하듯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의심하고 몸을 피했소?“
오자서는 얼굴을 붉히며 사실대로 대답했다.
"용서하십시오. 오랫동안 쫓기다보니 근심과 걱정이 쌓여 마음에 생기는 것은 의심뿐입니다.
노인장께서 오래도록 돌아오시지 않으니 어찌 암귀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잠시 몸을 숨겼습니다."
노인은 노인대로 자신이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는 인가가 멀리 떨어져 있소. 다녀오는 데만도 한 시각이 넘게 걸리지요.
아무튼 시장하실 터이니 어서 밥을 드시오."
오자서(伍子胥)와 공자 승(勝)은 노인이 가져다준 밥과 생선국을 배부르게 먹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오자서는 답례를 해주고 싶었으나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다.
잠시 고만하다가 허리춤에 찬 칼을 풀어 고기잡이 노인에게 내밀었다.
"이 칼은 옛날에 초왕이 우리 조상에게 하사한 칼입니다.
나의 대까지 삼대를 전해온 가보(家寶)지요.
이 칼엔 보석으로 만든 별이 일곱 개가 박혀 있소. 값으로 치자면 백금이 넘을 것입니다.
노인장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이 칼로 대신할까 합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고기잡이 노인은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내가 알기로 오자서(伍子胥)를 잡아바치는 자에겐 곡식 5만 석과 상대부 벼슬을 내린다고 하였소.
만일 내가 보답을 바랐다면 곡식 5만 석과 상대부 벼슬을 받지. 어찌 백금밖에 나가지 않는 그대의 칼을 받겠소.
더욱이 나는 칼이 필요 없지만, 그대는 칼이 필요할 것이오.
군사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어서 이 곳을 떠나기나 하시오."
"그렇다면 노인장의 존함이나 알려주십시오. 죽지 않으면 반드시 이 은공을 갚겠습니다.“
노인이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그대의 원통한 사정을 돕고자 배에 태워 건네주었을 뿐이오.
다시 말하거니와, 보답을 바라고 그대를 도운 것은 아니니 그대는 염려말고 어서 길을 가시오."
"노인장의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이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발 존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그대는 죄인, 나는 죄인을 도와준 사람.
그러니 그대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름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소.
더욱이 나는 배를 저어 흐르는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오.
비록 이름을 일러준다 한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소?"
"만일 하늘이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면 나는 그대를 '갈대 속 사람'이라고 부를 터이니,
그대는 나를 그냥 '고기잡이 노인'이라고 부르시오.
이 정도면 우리가 서로 기억하기 좋지 않겠소"
오자서(伍子胥)는 노인에게 네 번 절을 올리고 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가다가 문득 몸을 돌이키며 노인에게 부탁했다.
"만일 뒤쫓는 군사가 있으면 이 몸의 종적을 누설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러자 별안간 고기잡이 노인이 하늘을 우러르며 길게 탄식했다.
"나는 그대에게 인덕을 베풀었건만, 그대는 어찌 오히려 나를 못 믿는 것인가?
만일 뒤쫓는 군사가 있어 그대가 붙잡히면 그때는 공연히 나만 의심을 사겠구려.
좋소이다. 내 차라리 목숨을 버려 그대의 의심을 풀어드리겠소."
노인은 말을 마치자 배로 올라타 뱃줄을 풀었다.
삿대와 노를 버렸다.
배가 강물 한가운데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배 한복판에 서서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배는 급류에 휩쓸려 기우뚱거리다가 마침내 뒤집혔다.
강물 속에 빠진 노인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오자서(伍子胥)는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아, 고기잡이 노인은 나를 살려주었거늘 나는 오히려 노인을 죽였구나. 슬프도다. 슬프도다."
오늘날에도 안휘성 저현(滁縣) 땅에 가면 해검정(解劍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바로 그 정자가 당시 오자서가 고기잡이 노인에게 주려고 칼을 풀렀던 곳이라고 한다.
한 시인이 이때의 일을 노래한 것이 있다.
오랫동안 낚시질을 즐기던 한 무명 노인이
도망가는 초나라 신하를 편주(片舟)에 태워 건네주었도다.
훗날의 염려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으니
천고에 그 이름 '고기잡이 노인'으로 전하는도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