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치민 마지막 날이다. 어제 호텔로 돌아와 한잔 더 먹은 술로 모두 늦잠을 잤다. 아홉시 기상, 호텔로비로 나와 호텔 전화로 한국 KTF에 전화하여 휴대폰 분실을 신고하였다. KTF에서는 분실확인서를 팩스로 보내줄테니 가능한 현지 경찰이나 공항등 관공서에서 확인 증명을 받아 올 것을 권했다. 확인 증명서를 받아오면 보험처리되나 그렇지 못하면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 보험처리 될 경우 11만원 정도, 그렇지 못할 경우 45만원을 배상해야 한단다. 허걱, 45만원! 일단 호텔 팩스로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다.
베트남은 콜렉트 콜 제도가 없다. 전화비를 요구하는 호텔매니저 아가씨에게 이 전화는 한국의 전화회사에서 지불하는 무료전화라는 설명을 짧은 영어로 어렵게 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매니저 아가씨는 “노, 페이”라는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식사하고 올 동안 팩스가 오면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부근 식당에서 J와 K은 에그 플라이와 볶음밥을 시키고, 국물을 먹고 싶은 C와 S는 베트남 국수 “퍼(pho)”를 시켰다. 베트남 음식은 특유의 향채가 들어가 먹기가 쉽지 않으나 여행자거리의 음식점들은 외국인을 생각하여 야채와 향채를 별도로 준다. 향채만 없으면 베트남 음식은 맛있게 먹을만 하다. 단지 조금 싱거운 게 흠. 고추장을 조금 풀어 넣으니 국물이 시원하여 아침 해장으로 제격이다.
오늘 일정은 호치민 시내 관광인데, 휴대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팩스가 와 있다. 서류에 보니 호텔에서 확인서를 받아도 된다고 되어있었으나 고급호텔도 아닌 이런 여관급 미니호텔의 확인서를 보험사에서 믿어줄지 의심되어 일단 경찰서로 가기로 했다. 방에서 배낭을 정리하여 로비에 내려다 놓고 오늘 밤차로 나짱으로 갈 예정인데 그때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호텔에 경찰서의 위치를 물어보니, 한 십 여분 걸으면 된다며 길을 가르쳐 준다. 가르쳐 준대로 4인조는 평일 오전의 한가로움이 가득찬 호치민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상쾌했다. 밤에는 인도마다 가득 찬 노상 식당에서 쏟아지는 각종 쓰레기로 지저분하지만 새벽부터 청소한 환경미화원들 덕분에 깨끗하기 그지없다. 여름의 호치민은 무덥고 습하다지만, 지금은 덥긴 해도 습기가 많지 않아 견딜 만 하고 시원한 바람도 있어 여행의 적기인 듯 하다.
호치민 관광지도에는 경찰서의 위치가 없다. 가면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리가라 저리가라며 친절히 가르쳐 준다. 인상좋고 친절한 베트남 사람들. 그러나.... 문제는 가라는 곳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30여분 걷다보니 옛날 우리네 시골사람들이 생각난다. 길을 물어보면 “저 고개만 넘으면 돼, 시간? 조금만 걸으면 되지”하는데 고개를 다섯 개는 넘어야 했고, 조금은 몇 시간이기도 하던 ‘악몽’이 되살아 난다.
서서히 현지인 말에 대한 4인조의 분석이 제각각으로 달라질 즈음, 교통경찰을 만났다. 구세주였다. J가 유창한(?) 영어로 경찰서의 위치를 묻는다. 맙소사!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마침내 C가 “왜얼 이즈 유어 하우스?” 라는 중1 영어까지 사용했으나 돌아오는 말은 “노!”.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일이다. 교통경찰은 아예 우리를 외면하더니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날 태세다. 이런 시~O~새 같으니.
그때 S가 소리친다. “저기다!” 돌아보니 오오! 바로 10여 미터 떨어진 뒤편에 경찰서가 있다. 경찰관들 몇 명이 들락거린다. 아니 이 교통경찰은 자기 집 앞에서 지금까지 뭐한 거야. 쌍욕이 나오려는데 J는 역시 휼륭한 교사다. 교통경찰에게 저곳이 “폴리스 오피스”라고 점잖게 가르쳐준다. 그 경찰, 앞으로 ‘폴리스 오피스’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게다. 코리아 티쳐 이즈 베리 굿!
빨리 처리하고 시내 관광을 시작해야지. 네명이 경찰서로 뛰어들자. 경찰들이 가로 막는다. 유창한 J, 우리는 핸드폰을 로스트 했는데 이 보험사 페이퍼에 스탬프 꽉 찍으러 왔다고 이야기한다. 경찰1: (눈을 껌벅거리더니, 안쪽을 향해) 어이! 경찰2: (안에서 나오며) 왜짜오? 경찰1: (서류를 건너주며)난몰짜오, 니알아서짜오. 경찰2: (눈을 껌벅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가더니, 보이는 경찰관마다) 니알짜오? 니알짜오? 경찰서 내 모든 경찰관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경찰2: (난감하게 서류를 바라보다가, J에게)따라와짜오. (둘이 경찰서 밖으로 나가더니 부근 미니호텔로, 5분후 다시 돌아온다) 우리: 어떻게 됐어? J: 몰러, 지네끼리 떠들더니 그냥 왔어.
마이 갇! 이 경찰서에 영어를 알아듣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경찰2, 경찰1과 뭐라 그러더니, 갑자기 경찰서 앞에 서있던 택시기사를 부른다. 우리들에게 타고 가란다. 어디로 가느냐니까, 더 큰 경찰서란다(이것도 바디랭귀지로 알았다). 수첩을 찢더니 베트남어로 몇 자 적고는 기사에게 일러 준다. 황당했지만 어쩔것이여... 택시를 탔다 . 이 놈의 택시, 30분은 넘게 달리더니 또 다른 경찰서 앞에 세운다. 택시기사가 그곳 경찰관에게 쪽지를 건네주며, 상황설명을 한다. 심각하게 듣던 여자경찰관, 오오, 영어를 한다. 빠른 영어속에서 알아들은 말은 “빽”. 허걱! 돌아가라니, 어디로? 영어 몇 마디를 분석해(?)보니, 말인 즉은 “씨바놈들 사건이 일어난 곳이 지네 구역인데, 왜 이리로 보내고 지랄이야. 거기가서 해달라고 해. 내가 몇자 적어줄테니 당장 꺼져!” 또 수첩을 찢어서 적어준다.(2장의 수첩 찢은 종이 지금도 보관중이다)
J가 그냥 스템프만 꽉, 프리즈! 했으나, 도도한 여경찰관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런 C~발. 우리가 핸폰 찾아달라고 했냐, 그냥 확인 도장하나 찍어달라는데... 우이쒸!
택시기사는 싱글실글 웃으며 다시 타고 돌아가잔다.(오늘 땡 잡았다) 4인조 긴급비상회의. 이 상태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호치민에서 하노이 경찰서까지 택시타고 가야할 지 모르니까, 때려치자, 나중에 호텔매니저를 구슬려서 도장찍어 달라고 하고, 안되면 나중에 하노이에서 대한항공 하노이 지사에 근무한다는 C의 친구에게 부탁하자. 씨바, 그것도 안되면 n분의 1하면 될 거 아냐. 모두 썅, ok! (교훈: 외국 여행시 핸폰 로밍은 필요없다. 잃어버리면 우리처럼 X된다.)
다시 택시를 탄다. 기사에게 역으로 가자고 했다. 어리둥절하는 기사에게 “호치민 레일웨이 스테이션!” 오늘밤 나짱으로 이동하려면 기차표를 미리 사두어야 한다. 기차여행은 평일은 가능한 12시간 전에, 토, 일은 2일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택시비만 엄청 축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기사가 일부러 빙빙 돌아다닌 듯하다.
호치민 역, 베트남 최대 도시의 역치고는 작으나 사람들은 바글바글 하다. 나짱가는 기차시간표 확인하고, E2(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30시간, S2는 32시간, S4부터는 41시간쯤 걸림 -참고로 하노이에서 호치민 방향은 E1, S1식으로 홀수다)로 4인실 침대칸 4자리를 끊는다. 1인 평균 340,000동 11시 출발. 나짱 5시 20분 도착. 안내원 아가씨가 외국인 전용으로 안내해줘서 쉽게 표를 구했다.
이제부터는 시내관광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가의 전쟁역사박물관으로 갔다. 11시 25분, 표를 사려는데 점심시간이란다.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어이구, 길기도 하다. 이곳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은 칼이다.
할 수 없이 우리도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점심을 먹기로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맥주 1병에 10,000동(베트남 여행 3일째부터 식당 음식값의 기준은 맥주값이 되었는데 상당히 정확하다고 자부. 총무K는 12000동 이상이면 수전증이 생긴다) 이정도면 싼 편이다. 일단 맥주 4병을 시키고, 안주될 만한 음식을 주문했다. 확실히 여행은 피로를 감소시키나 보다. 어제도 꽤 늦게까지 술을 먹었는데도 맥주가 맛있기만 하다.
예쁘장한 종업원아가씨가 옆에 붙어서서 떨어질 줄 모른다. S가 신이나서 바디랭귀지로 이런저런 말을 거는데, K가 어제의 100,000동 팁을 거론하며 밝히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씨는 여전히 생글생글, 갑자기 S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가씨 손을 잡고, 안쪽자리로 가서 앉히고는 아가씨가 무서우니 가까이 오지 말란다. 익살스런 모습에 박장대소 했지만, 그 아가씨는 꽤나 기분이 상한 듯. 그 후로는 우리가 부르지 않는 이상 가까이 오지 않는다. 와서도 S는 가능한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숫 있어, 외국인도 아니고 현지인이 그러면 화내지..클클..” S를 놀리며 장난친다.
시원하기 그지없는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보니, 13시 30분. 자린고비같은 총무K가 그 아가씨가 마음에 걸렸는지 계산을 하며 아가씨에게 팁을 준다. 아가씨는 다시 생글생글 K에게 깍듯하게 인사한다. 나쁜 K, 혼자만 젠틀맨이 되다니. ㅎㅎㅎ.
전쟁박물관으로 간다. 입장료 10,000동, 현지인은 공짜다. 베트남의 모든 박물관, 기념관은 외국인에게만 돈을 받는다. 철저한 자국민 위주 정책. 전체 6개관으로 꾸며진 월남전 기념관이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컬러와 흑백의 사진이 벽면에 빼곡하다. 미군의 잔인함이 곳곳에 걸려있다. 다행이도 한국군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없이 쓰러져간 베트남 인민들의 주검을 보며, 한없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네이팜탄과 고엽제의 희생자, 그로 인한 기형아의 모습들. 괜히 눈이 먹먹해진다.
세계 최강국 미국을 비롯하여 20여 개국의 소위 자유우방국(?)들과 처절한 전투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친절하고 순진해 보이기 만 하는 베트남 사람들 깊은 곳 어디에 자유와 정의,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들은 베트남의 아버지 호치민과 함께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에 나섰던 것이다. 정글의 폐허가 된 사원앞에서 호치민이 젊은 전사들에 둘러싸여 강의하는 사진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흑백 사진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젊은 전사들의 존경과 환희의 눈빛들...
50여년의 우리의 현대사에서 저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도자가 누구였던가. 베트남 인민들이 부럽기도 하다. 외국여행자들이야 어떻게 보던가에 저들의 마음속에 100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정신이 살아있는 한 베트남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베트남의 자부심. <우리는 미국에게 이겼다, 우리는 조국과 인민을 구했다>.
박물관 야외에는 1976년 사이공대공세 때 급하게 철수하며 버리고 간 미군기, 미군탱크, 중장거리포 등이 즐비하다. 화약을 제거한 포탄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6관을 보고있을 때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몰려 들어오며, 기념관이 갑자기 소란해진다. 아마도 현장학습인 듯 저마다 수첩과 연필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베트남의 미래인 귀여운 아이들이다. 박물관 앞에서 모두 담배 일발 씩 하며 잠시 베트남 역사에 대한 묵상.
담배 말이 났으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베트남은 흡연자의 천국이다. 공항 등 공공기관, 호텔, 식당, 어느 곳도 금연표시가 없다. 1.000동에 다투는 베트남 사람들이지만 담배인심은 후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우리의 흡연량도 엄청 늘었다. ㅠ.ㅠ..
시내지도를 보니 주요 관광명소가 중심가에 모두 모여있다. 4인조는 걸어서 다니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깨끗한 건물이 보인다. 첫눈에 보아도 시설좋은 최신 건물이다. 초등학교다. 3시가 넘었는데 아이들 소리에 왁자하다. 수업은 끝났는 것 같은데 저마다 취미활동을 하는지 악기소리도 들린다. 이 아이들은 4시 반쯤에 부모들이 찾아간다. 그 시간이면 학교앞은 부모들이 타고온 오토바이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 시간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태우고 시내를 달리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교문사이로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여선생님의 모습이 아름답다
다음은 노틀담 성당. 프랑스가 베트남을 문화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식민 초기에 세웠다는 노틀담 성당, 호치민의 모든 도로가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다고 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붉은 벽돌의 첨탑이 아름답다. 사진 찰칵, 찰칵. 주변에 넓은 공원이 있다. 수령이 몇 백년은 된 듯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며 서있다.
성당 옆은 다이아몬드 호텔. 포스코가 지어 2040년까지 운영하고 그후 베트남에 헌납한다는 베트남 최초의 철근구조 고층건물이란다. 지나가면서 통일궁을 보고, 성당을 도는 골목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잠시 쉬며 주스 한 잔씩을 마신다. 주인이 노르웨이인이란다. 전망과 시설은 좋지만 비~싸다.
인민위원회 청사를 거처서 호치민 박물관으로 간다. 호치민 시에는 5~6개의 박물관이 있지만 다 볼 수는 없고 대표적인 몇 개만 보기로 한 것. 그러나 호치민 박물관은 들어갈 수 없었다. 흑. 4시밖에 안되었는데. 경비원이 시간표를 보여준다. 7시 개관 4시 폐관이다. 윽, 정보부족이었다. 전쟁박물관에서 너무 시간을 끌었고, 카페에서도 너무 느긋했다.
“박물관모습이야 어디나 비슷비슷 하지 뭐, 하노이에도 박물관은 많아, 사람 사는 걸 보는 게 진짜 여행이야” 어쩌구 자위하면서 호치민 최고최대의 시장인 벤탄 시장으로 가기로 한다. 걸어서 벤탄으로 이동. 중간에 과일 전문점에서 베트남의 다양한 과일을 구경하다가 드래곤프루잇이라는 요상한 모양의 과일을 3개 구입. 나중에 기차에서 먹기로 했다.
드디어 벤탄시장이다. 노상시장은 아니고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처럼 여러 가지 상점이 입주해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오만가지 잡화가 다 모여있다. 이리저리 구경다니다가 가방가게 앞에 멈추었다. S가 잡동사니를 집어넣고 다닐 싼 가방하나를 사자는 것. 그러나 흥정이 만만치 않다.
사람 2명이 어깨를 부딪히며 겨우 통과할 좁은 통로를 헤매며 구경하다가 건어물 상점에서 멈추었다. 보기에도 먹음직한 대형 한치가 걸려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맥주 안주. 흥정을 하다가 11만동에 대형 한치 열 마리를 구입. 한국에서 손바닥 반만 한 한치 서너마리에 8000원에서 만원했는데 10분의 1 가격이다.
벤탄시장 본 건물 외에도 주변 골목마다 시장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구경 다니다가 다리가 아플 때 쯤. 가방가게 앞에서 잠시 휴식. K와 S는 가방 흥정을 하고 C와 J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모금을 하는데, 길 건너편에 ‘여황’이라고 한자와 영어, 한글로 적은 맛사지 가게가 보인다. 한글로 “어서오세용”이라고 쓰인 썬텐글자도 있다. 아까부터 발바닥이 아프다던 J가 가보고 오겠단다. 잠시 후 돌아와서 1인당 6달러라면서 발맛사지를 받자고 한다. 아가씨들도 예쁘단다.(발맛사지 받는데 미모가 무슨 상관^.^). 주인은 일본인이라고. 대단한 놈들, 한글까지 써놓고 여행자를 꼬시다니.
어쨌던 K는 어깨에 메는 최신 패션의 멋진 다용도 가방을 하나 샀다. 10불도 안되는 것 치고는 훌륭하다. 한국에서는 최소 5배는 주어야 할 듯. 그 속에 우리가 산 잡동사니를 모두 집어넣는다. 덥다고 낮부터 시내를 런닝바람으로 다니던 S는(현지인은 런닝차림도 많다) 허리에 매는 쌕을 하나 싸게 사서 런닝 위에 차고는 워킹(?)을 한다. 으윽, 속이 안좋다.
J는 다시 발맛사지 이야기를 했지만 일본놈 배불릴 수는 없다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모두 반대.
다시 쇼핑을 하며 걷다가, 거리의 옷 행상 앞에서 모두 멈췄다. 우리가 존경하는 호치민의 초상을 그려넣은 반팔 라운드 티를 1개 1불(15500동)이란다. 어차피 내일은 나짱 해수욕장이니 막 입을 수 있는 반팔 티가 필요하던 차, 호치민 얼굴은 들어있으나 조금씩 다른 모양의 티를 저마다 한 개씩 고른다. 총 5만동에 에누리. 나중에 인천지부 여름모임에 동시에 입고나가서 자랑하기로. ㄲ,ㄲ ...
많이 걷고 많이 떠들었더니 배가 고프다. 벤탄시장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이름은 Pho 2000, 쌀국수 전문점이다. 맥주 10,000동, 적당한 가격이다. 맥주부터, 역시 여름(?)에는 맥주가 최고야. 시원한 맥주를 모두들 벌컥벌컥. 쌀국수와 볶음밥을 시켰는데 국수맛이 제법이다. 그러고 보니 벽에 클린턴 사진이 붙어있다. 클린턴이 베트남 방문 중 이 식당에 찾아왔다는 이야기. 베트남에서는 꽤 유명한 식당인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변이 제법 어두워진다. 길가에는 야간 노상들이 인도를 점령하는 중이다. 종일 걷고 다녀 다리는 좀 아팠지만 택시타기에는 좀 아까운 거리다. 결국 걷다 쉬다 하며 호텔까지 오는데 도중의 공원마다 런닝과 걷기를 즐기는 여자들이 많다. 이들도 비만과 싸우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밤거리에 신장과 체중을 재는 기계를 가지고 돌아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영업이 될 만큼 베트남 사람들, 특히 여인들은 자신의 몸매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베트남 여인들의 날렵함은 선천적 + 끝었는 노력이란 말인가. ^ㅡ^;
호텔에 도착하니 8시. 어여쁜 매니저 아가씨에게 낮에 경찰서에 갔던 얘기를 하고, 호텔 매니저의 싸인도 유효하니 서류 작성을 도와달라고 점잖게 부탁했다. 영어를 잘 하는 매니저아가씨 꼼꼼하게 읽어보더니 싸인을 해준다. 오메, 예쁜 것. 생각 같아서는 모두가 달려들어 뽀뽀를 해주고 싶었지만, 점잖게 악수하며 “쌩규.” 아가씨는 수줍게 웃는다.
모두들 호텔 명함을 몇 장씩 챙기면 한국에 돌아가면 모두에게 이 옐로하우스 호텔를 선전하리라 굳게 굳게 다짐한다.
도대체 우리는 오늘 아침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 말인가?
자, 이제 안심하고 남은 시간, 술 먹으러 가자. 데탐거리는 밤이 더 활기차다. 끊임없이 오고가는 배낭여행자들이 거리마다 그득하고 카페에는 빈 자리가 드물다. 수레에 갖가지 안주를 갖추어 놓고 있는 어느 노상 술집의 앉은뱅이 의자에 않아 피조개를 구운 안주에 맥주와 소주를 먹는다. 산뜻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노상이다 보니 지나가던 행상들이 물건을 사라고 한다.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장애자, 어린아이까지 다양하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깨끗한 복장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 입었다. 청결함도 베트남 여인들의 미덕.
그런데 베트남 상인들은 자기구역에서 다른 사람이 물건을 파는 것에 매우 관대하다. 같이 먹고 살자는 것인지... 어려보이는 아가씨 행상에게 망고 2개를 샀다. 이 아가씨, 쪼그리고 앉더니 정성껏 망고 껍질을 벗겨 곱게 잘라서 종이위에 올려 놓는다. 그 모습에 감동하여, 잔돈은 그냥 주었다.
또 다른 아가씨가 바나나잎에 싼 무엇인가를 사라고 권한다. 창백하게 하얀 피부를 가진 고운 아가씨다. 몇 개 달라고 했더니 바나나 잎을 벗겨 준다. 어묵같기도 하고 소시지 같기도 한 것을 바나나잎을 싸서 찐 모양이다. 제법 맛있었다.
베트남 정부에서 관광진흥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예쁜 아가씨들을 뽑아 외국인 상대로 행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행상하는 여인들은 곱고 착하다.
이번에는 목발을 집은 중년남자가 껌과 작은 초코렛 과자를 내밀며 사달라고 한다. 동정을 구하는 눈빛. 앵벌이가 분명했지만 문득 낮에 본 전쟁박물관의 사진이 생각난다. 혹시 이 사람도 전쟁희생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격을 물어본다. 10,000동, 조금 비싸다. K가 4천동 인가를 주며, 과자는 필요없으니 그냥 받으라고 했다. 그 사람은 의아한 듯 잠시 쳐다보더니 돈을 받아 들고 간다. 기분 나쁜지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괜히 잘 못한 기분이 들어 모두들 침묵하며, 술을 들이켰다.
기분전환, 소주를 섞어 원 샷! 다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노상주점의 아줌마가 우리가 피우는 담배를 하나 달란다. 4종류(4인조는 피우는 담배가 각기 다르다)의 담배가 건네진다. 아줌마는 자신의 담배를 4가치 뽑아준다. 베트남 담배는 중국처럼 독하지 않다. 우리 입맛과 비슷한 듯.
자리를 옮겨 분위기 있어 보이는 카페로 이동. 바깥에 서양인들이 꽉 차 있어서 지나치려는데 종업원 아가씨가 손짓을 한다.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 들어가 보니 좁긴하나 산뜻한 내부장식이 편한 느낌이다. 람 카페(영어로 far far away restaurant). 맥주 10,000동, 먹을 만하다.
카페에는 젊은 아줌마와 아가씨 2명, 주방을 보는 듯한 험상궂은 남자가 있는데 주인은 파스칼이라는 뚱뚱한 서양인이었다. 베트남에는 뜻밖에도 외국인이 하는 가게가 많다. 외국인은 땅이나 집을 소유할 수 없으니 투자하거나 현지인의 명의를 빌려서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아줌마과 아가씨들이 K를 보며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며 쏘근댄다. 왜 그러냐니까 한 아가씨가 K를 멋있다고 했단다. 주방남자가 험악한 인상으로 웃으며, 저 아가씨가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다. 특히 구레나룻이 멋있단다. 진화가 덜 되어 털이 많은 K, 그 털이 베트남에 와서 진가를 발휘할 줄이야. 베트남, 특히 남쪽 지역 남자들은 더운 지방이어서 그런지 털이 거의 없다. 서양인은 원래 털 많은 종족이고, 동양인이 구레나룻이 무성한 것이 신기햇던 것 같다. 모두들 질시의 눈으로 K를 째려본다. 모두들 내일부터 면도를 하지 않겠단다.
실제로 털 때문인지, 뛰어나 외모(?) 탓인지 K는 그후에도 계속 베트남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나머지 3인을 "털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했다. ㅠ.ㅠ...
10시쯤 호텔에서 짐을 찾았다. 매니저 아가씨, 웨이터(아가씨의 동생 - 이곳은 4남매가 함께 호텔을 운영)와 기념 촬영 후 아쉬운 이별을 했다.
불러 준 택시를 타고 호치민 역에 도착. 10시 30분. 종점이라 그런지 일찍 개찰을 했다. 구내 매점에서 맥주 몇 캔 (여기는 캔밖에 없는데 비싸다. 15,000동)을 사들고 승차. 4인용 침대칸, 중간 통로에 탁자가 있고 1,2층 4개의 침대가 마주보고 있다.
짐을 풀고 탁자를 중심으로 4명이 둘러 앉았다. 맥주와 노상 주점에서 미리 구워온 한치, 드래곤푸르잇(껍질을 벗겨내니 키위와 수박을 섞은 모양의 과육이 나오는데 달고 시원한 맛이 일품)을 꺼내 차내 파티를 시작한다. 11시 정각에 기차가 출발하고, 맥주와 S가 산 바바나술, K의 소주를 마신다, 한치의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이 최고다.
12시쯤 역무원이 와서 표를 점검하고 플라스틱 카드로 바꾸어 준다. 5시 30분에 모닝콜을 부탁하고 1시쯤 잠자리에 누웠다. 침대카버나 이불에 털(?)들이 보였지만 의외로 편안한 침대다.
자, 이제 자고 일어나면 베트남 최고의 해안 휴양도시, 끝없는 푸른 바다가 열려있는 나짱일테지. 쿨~~~ ( 계속 )
5화부터는 특수임무를 맡았던 S의 글이 시작됨. 현란한 바디랭귀지는 글에서도 계속될 듯.. 그동안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 ----------------- 가이드
벳트남 가기전에 읽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을...(그 무신 오만한 무대뽀정신으오 후기한편을 읽지도 않고 무작정 떠났는지..원) , 하지만 지금 봐서 더 즐거운 것도 있군요, 거리랑 사람들 모습이 그려지니..그나저나 특수임무를 왜 빨랑 수행하지 않는데요? 이 글을 쓰신분은 C,J,K,S 중에 누구시랴?기죽어서 후기글 못
첫댓글 ㅋㅋ 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월에 벳남에 갈 예정인데 큰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도 벳남을 여러번 다녀왔지만(특히 호지민) 너무나 생생하고 현장감 있고 재미있는글 오랫만에 읽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벳남! 3월에 다시한번 간답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젊은이처럼 배낭여행 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긴글은 안좋아하는데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담글도 기대되는군여
4월에 가는데 많은 도움이될거 같네요. 넘 재미있어요^*^
정말 실감나는 상황설명...재밌게 보고갑니다...감사감사
근래에 보기 드문 정말 10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아주 멋진 여행기였습니다. 다음 ,S님의 글을 기대합니다.
읽고나니 마음이 행복해 지는 글...맛나게 보고 갑니다...글 감사
벳트남 가기전에 읽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을...(그 무신 오만한 무대뽀정신으오 후기한편을 읽지도 않고 무작정 떠났는지..원) , 하지만 지금 봐서 더 즐거운 것도 있군요, 거리랑 사람들 모습이 그려지니..그나저나 특수임무를 왜 빨랑 수행하지 않는데요? 이 글을 쓰신분은 C,J,K,S 중에 누구시랴?기죽어서 후기글 못
후기를 올리려고 들어왔다가 님이 쓰신 것만 배꼽잡으면서 읽고는... 에고 난 못쓰겠다 싶게시리...(나뻐요)
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분이신것 같네요..얼릉 다음 후기 올려주세요. ^^
징짜 재밌네요,,ㅋㅋ 다음편도 얼릉 보고 싶다는,, 글고 좋으시다면 사진도 곁들여주세요,,님들의 얼굴이 보고파요,,ㅋㅋㅋ특히 구렛나루를요,,호호호
진짜 쓰러집니다.ㅋㅋ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구요 여행 에 큰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6
40대의 배낭여행~~ 넘 좋아보여요. 꿈꾸고 있는 저도 꿈으로 끝나지 않길 다짐해봐요^^*
아~ 눈물겨운 아저씨들의 우정도 감동적이고...에피소드들도 진짜 재밌네요. 뭣보다 실감나는 묘사와 중간중간 보이는 낭만적이고 위트있는 글솜씨가 일품이네요. 다음편도 빨리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