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요소가 모인 것이고
인연이란 여러 가지 요소가 모인 것이고
그 모인 인연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는 과정에 있고,
찰나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는데
일체만물은 인연에 의해 생生하므로 무상無常하고,
무상無常하므로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므로 공空한 것입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입니다.
공이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의 자성自性이 없는 모든 존재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무아無我사상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무자성無自性의 바탕에서 나온 것입니다.
“온갖 현상은
연기 즉 인연에 의해서 생멸하므로 무상하다.
따라서 일체의 존재는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는 그 성질을 공이라고 한다.”
색불이공色不異空은
‘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떤 물질이든 인연에 의해 생긴
일시적인 환상幻想이기 때문입니다.
환상幻想이란 환영幻影과 같은 뜻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착각에 의해서 실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눈은 환각작용에 의해
화면이 살아서 생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 및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는 뜻으로
일체의 현상을 일시적인 존재로
찰나적인 존재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풍성한 오곡을 거두어들이는 절기가 있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 사는 데만 정신을 빼앗아 버리고
죽음이라는 다른 면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는 실정일 겁니다.
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앗이요,
지혜는 애가 밭가는 가래이며,
신,구,의 악업을 없애는 것이
내 밭의 김매기 이다. [잡아함경]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죽음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이 들어서 병원에 입원 하고서야
비로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평상시에는
천 년 만 년이나 살 것처럼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는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우리 손바닥과 손등과도 같기 때문 입니다.
모두가 죽을 사람들이지만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
애도하는 마음인지 측연심인지는 몰라도
하나 둘 오고 감에 있어서
발걸음 옮기며 한마디씩을 합니다.
"아니,
그렇게 정정하던 사람이 무슨 일이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도 하룻날 문 앞이 저승이라는
우리의 회심곡 가사에 나오는 말처럼
눈을 떠 보고 허공을 보아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사람이니 개니 짐승이니 하지만
그것은 이름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편의상 이름을 지어 부를 뿐
우리 인간도 실은 공한 존재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아니 언제 내 얼굴에 이렇게 변했지?”한다면
이제 겨울이 다가 왔다는 얘기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말없이 흩어질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걱정·근심이라는 것도 아침저녁이 다르게 반하는 것으로
마치 허깨비와 같은 것이지만
여기에 집착하고 울고불고 아우성치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 아닙니까?
백내장, 녹내장이란 눈의 망막에
무엇인가가 쓰여서 사물을 바로 보지 않는 병이듯이,
마음에 무언가가 쓰여서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중생들이 모두 잃고 있는
공통된 질병인 집착이라는 질병입니다.
오늘은 반야심경을 외우시되
여러 요소가 모여 있음이 인연이라는 것은
그 모인 인연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말입니다.
2024년 10월 24일 오전 06:13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