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이치는 변화 / 24.05.11.그우대) 2차 창작
북극의 동토에서 건너온 바람이 동방을 지배하려 머무는 곳.
끝이 보이지 않던 그레이트 게임의 산물.
제정 러시아의 짜르에서 붉은 별의 확장주의적 군홧발이 다시금 당도하기까지.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의 소금기는 그 세월의 파란만장함에도 변함없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소련의 태평양 함대가 북해도(현 일본의 홋카이도)로 유유히 떠나버린 이후, 항만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으니. 한국의 나진항과 소련의 한인 시모노보 역을 거쳐온 한국과 서방의 막대한 상품이 이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제 특구에 산산이 쌓이는 광경은 다시 봐도 장관이었지만, 저 상품의 실 구매자가 소련의 특별한 인민들이라는 건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아니꼬웠던 모양이었다.
"쳇, 뭐가 노동자의 공평한 나라인지. 저게 누구 입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새끼는 굴라그를 뒤져봐도 없을 거야."
"젠장할, 노유스. 여긴 우리 한국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냐. 실적에 미쳐있는 KGB의 끄나풀에게 물리면 답도 없다고."
매번 저녁 술안주로 소련의 모든 것을 까야 만족하는 리투아니아 계 한국인 동료를 누군가 말리긴 했으나, 정작 그 장본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 이걸 달고 있는데 한 번 끌고 가보라면 가보라고 그래."
그렇게 말을 하는 노유스의 자켓 안 감에는 어느 사람을 새겨 놓은 초상화... 아니, 이콘(icon)이 있었다. 서방의 가톨릭과 동방의 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화(聖畵)를 그려서 지고 다니는 거야 개인의 취향과 신앙의 문제였지만, 문제는 그 성화의 주인공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성인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그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도 감히 서슬 퍼런 망치를 들기를 포기하는 제 1세대 볼셰비키 혁명가.
군사학과 전쟁을 접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군신(軍神).
식민지 국가였던 가난한 나라를 반세기도 안 되어 세계에 오롯이 선 열강의 하나로 건국한 국부(國父).
순수한 혁명과 민중의 권리를 위하여 종신 독재라는 권력의 마수를 스스로 떨치고 초야(草野)로 돌아간 위인.
그리고, 동유럽의 폴란드-바르샤바와 발트 3국, 우크라이나의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보호하기를 자청한 수호의 성인.
한국의 초대이자 유일한 총통의 얼굴이 십자가와 함께
'헛되고 헛되노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는 문구가 찍힌 그 이콘은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의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사람이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걸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 신실한 동유럽 출신의 한국인들이 모여서 로마 교황청에 총통을 성인으로 시성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고 이걸 받은 교황청은 아직도 격론을 그치지 않았다는 소문이 전세계의 가톨릭 신도에게 쫙 퍼졌을까?
그리고 노유스의 말처럼, 이 이콘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도 KGB와 소련의 경찰들은 몽둥이나 권총을 들고 협박하기는커녕, 점잖게 타이르거나 그 이콘을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는 선에서 그치는 일까지 있었다. 정말로 대놓고 간첩임을 그들에게 어필하지 않는 이상, 이만한 슈퍼-패스도 없었다.
"에휴, 내가 말을 말지. 오늘 상사에서 팔고 매입하라는 목록 짜온 거 꺼내봐. 제대로 하고 술집이든 찜질방이든 가자고."
"오, 그거 좋지! 보드카에 선지 보로시하고 삶은 만두로 한 끼 채우고 뜨뜻한 찜질방에서 자는 게 최고라고!"
"한국인 다 됐구만."
"어허, 난 언제나 총통과 국가에 충성하는 한국의 국민이라고. 중국인 개새끼, 유대인 나빠요."
소련의 접경지로 무역 거래를 하러 입국만 밟은 게 짧지도 않은데, 매번 이 리투아니아 계 동료는 동토를 밟자마자 해가 뜨고 지기까지 소련을 매번 씹어대길 주저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한국과 소련의 동토에 무슨 성분의 차이나 촉감이 달라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그 패턴이 변화하는 걸 보면 참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투닥거리는 상사의 회사원을 뒤로,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의 영화(榮華)는 계속해서 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소련과 한국의 협력과 성공을 보려면 모스크바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라!>는 말이 괜히 소련 전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서울에 있다는 별-사슴 커피 전문점(초대 총통이 운영하는 그 가게 맞다)은 소련의 인민들이 즐기는 차와 다과를 메뉴에 더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열렬한 환영과 열기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총통이 발틱 3국과 우크라이나 계 이민자를 받아들일 때 긴급히 예산을 설립하여 세웠던 임시 거주지, '찜질방'은 처음에는 그 뜨겁고 쫙 달라붙는 바닥에 기겁한 이들이 여럿이었지만- 목욕탕과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저렴하게 알찬 식사와 숙박까지 가능하다는 점까지 경험한 사람은 매번 외지로 나올 때마다 이를 찾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점은 난방에 목숨 거는 소련의 인민들에게도 매력적이었는지, 소련의 경제 특구에서는 이와 같은 시설이 구획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 점원 가판대의 맨 위에는 총통과 스탈린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에는 깨끗한 수질과 청결한 시설을 보유한(당연히 총통이 시작한 이 찜질방 시책을 이익으로 더럽히는 놈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목욕탕에 가서 씻고, *주변의 선지 보로시를 주로 파는 식당에서 보드카와 형제국 한국의 소주로 입가심을 하고. *업무는 한국의 중개인과 외국의 바이어를 별-사슴 다방에서 불러 계약과 상품을 논의하고. *저녁에는 계약의 성사에 따라서 성대한 찜찔방-파티를 외국의 인사에게 권해주는 것이 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인들에게 있어서 마땅한 도리로 자리 잡았다.
이 기이한 뜨겁고 쫙 달라붙는 바닥에 엉덩이를 데이는 거 아니냐고 펄쩍 뛰는 자본주의의 첨병들이 좀 있긴 했지만, 거래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마땅히 이 소비에트의 가열찬 전통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며 윽박 지르면 기가 죽은 외국의 바이어의 엉덩이는 결국 베이컨이 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소련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었으며. 그 욕망의 산출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위급한 때에 찾아와서 피를 나눠준 형제 -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두 용인이 되었다.
한국 총통의 이콘은 꼭 한국인(발틱 3국, 우크라이나 성분 함유)만이 쓰는 게 아님을 소련의 인민 또한 깊이 체감하고 있었으니. 이를 한국의 총통이 봤다면, 왜 체-게바라 티셔츠 대신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있냐고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티셔츠는 저 건너 건너 멕시코의 어느 혁명가 또한 고이 수집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