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There Are Roughly Zones
We sit indoors and talk of the cold outside.
And every gust that gathers strength and heaves
Is a threat to the house. But the house has long been tried.
We think of the tree. If it never again has leaves,
We’ll know, we say, that this was the night it died.
It is very far north, we admit, to have brought the peach.
What comes over a man, is it soul or mind—
That to no limits and bounds he can stay confined?
You would say his ambition was to extend the reach
Clear to the Arctic of every living kind.
Why is his nature forever so hard to teach
That though there is no fixed line between wrong and right,
There are roughly zones whose laws must be obeyed.
There is nothing much we can do for the tree tonight,
But we can’t help feeling more than a little betrayed
That the northwest wind should rise to such a height
Just when the cold went down so many below
The tree has no leaves and may never have them again.
We must wait till some months hence in the spring to know.
But if it is destined never again to grow,
It can blame this limitless trait in the hearts of men.
heave : 내쉬다, 몸을 일으키다, 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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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의 영역이 있다
우리는 집안에 앉아 집밖의 추위를 이야기한다.
힘을 모아 꿈틀대는 모든 돌풍은
집에 위협이다. 그러나 집은 오랜 시험에 견뎠다.
우리는 나무을 생각한다. 다시 잎이 피지 않으면,
우리는, 그래, 나무가 죽은 것이 오늘밤이었음을 알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거니와 복숭아를 이식하기에는 너무 북쪽이다.
인간은 어떤 한계와 한도에 그대로 머무를 수 없으니―
무엇이 그에게 작용하는가, 영혼인가? 아니면 마음인가?
사람의 야심은 모든 생물의 영역을 북극의
끝까지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옳고 그름 사이에 확정된 선은 없지만,
법을 지켜야하는 대강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간성에 가르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밤 우리가 나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으나,
하필 추위가 영하 이하로 크게 하강한 밤에
북서풍이 그 높이까지 불어 닥쳤으니,
우리는 적잖이 배반당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무는 지금 잎이 없고 다시 잎을 피지 못할지 모른다.
지금부터 몇 달 기다려서 봄이 되어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자랄 수 없는 운명이라면,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심성(心性) 탓이다.
-신재실 옮김-
단상(斷想): 실패와 성공의 전제(前提)는 도전이다. 이 시는 어쩌면 지나치게 북쪽에 심었을 복숭아나무가 집안의 안전까지도 위협하는 추위와 강풍을 견디어 낼 것인가를 염려하면서 인성과 자연법칙에 대한 개괄적인 명상을 한다.
인간의 야망은 “북극의 끝까지” 생명을 심을 정도로 무모하다. 하지만 도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문제는 분별이다. 자연법칙은 인간도전의 영역을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옳음”과 “그름”의 영역이 애매해서 도전의 모험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성공과 실패를 점칠 수 없다. 자연법칙은 순응과 도전의 양면성을 요구한다.
복숭아나무가 죽는다면,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그 책임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인간능력의 범위와 한계를 확인하는 산 경험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어떤 것은 신에게 맡겨야 되겠지만, 무한한 도전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도전의 결과는 기다려 보아야 한다.
모진 추위와 바람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염려되긴 하지만 틀림없이 죽으리라는 증거도 없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심성”은 결코 실패를 빤히 알면서도 요행을 바라는 분별없는 시도를 일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는 원동력이다.
-신재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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