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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 복음준비
32. 예수의 성전에의 봉헌
1944. 2. 1.
성전에의 봉헌
나는 한 쌍의 남녀가 아주 초라한 집에서 길을 떠나는 것을 본다. 매우 어린 어머니가 흰 배내옷을 입힌 아기를 안고 바깥 층계를 내려온다.
나는 우리 어머니를 알아본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고 금발이고 날렵하며, 행동거지가 아주 다정한, 항상 한결같은 마리아이다. 그녀는 흰 옷 위에 엷은 하늘색 겉옷을 입고 머리에 흰 베일을 쓰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아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요셉은 계단 밑에서 작은 회색 나귀와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연갈색 옷을 입고 있다. 튜닉과 겉옷 모두 같은 색이다. 그는 마리아를 보고 그녀에게 미소 짓는다. 마리아가 나귀 가까이에 도착하자 요셉은 나귀의 고삐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잠시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기를 받아 안아 마리아가 나귀의 안장에 더 편안하게 안게 한다. 그 다음에 그는 예수를 그녀에게 돌려주고 나서 출발한다.
요셉은 마리아 곁에서 줄곧 나귀의 고삐를 잡고 걸으며 나귀가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도록 보살피며 걷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안고, 아기가 추울까봐 자기의 겉옷의 자락으로 그를 덮어준다. 요셉과 마리아는 거의 말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자주 미소 짓는다.
계절로 인하여 황량한 들에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길이 구불구불 나 있다. 소수의 다른 여행자들이 길에서 그들을 만나거나 앞지른다.
그러다가 나는 몇 채의 집들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들을 본다. 그들은 한 성문으로 들어가 몹시 부서져 아주 울퉁불퉁한 포석이 깔린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기가 훨씬 더 어려운데, 그 이유는 교통이 혼잡하여 나귀가 매순간 걸음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돌들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인하여 불쌍한 나귀가 줄곧 흔들리는 바람에 마리아와 아기가 편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은 평탄하지 않고 약간 오르막이다. 그것은 높은 집들 사이로 좁게 뚫려 있는데, 그 집들의 출입문들은 작고 좁고 낮으며, 거리 쪽으로 몇 개의 창문들이 나있을 뿐이다. 집들 사이로, 아니 옥상들 사이로 수많은 가느다란 푸른 띠들처럼 위쪽으로 하늘이 보인다. 아래쪽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몹시 소리 지르고 있다. 그들은 걸어가거나 나귀를 타고 있거나 짐 실은 나귀들을 끌고 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낙타가 끄는 무거운 포장마차를 따라가는 군중도 만난다. 어느 순간 로마군대의 순찰대가 말굽들과 무기들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좁고 돌이 많은 길을 가로지르는 아치 너머로 사라진다.
요셉은 더 넓고 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돈다. 나는 거리의 끝에서 나에게 이미 친숙한 감시구가 뚫려 있는 성벽들을 본다.
마리아는 다른 나귀들을 위한 일종의 마구간이 있는 문 가까이에서 작은 나귀에서 내린다. 그것이 일종의 헛간이거나 지푸라기가 깔려 있고, 짐승들이 매여 있는 고리들이 달려 있는 몇 개의 기둥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마구간’이라고 말한다.
요셉은 자기에게 다가온 작은 남자에게 몇 개의 동전을 주고 약간의 건초를 산 다음에 한쪽 구석의 촌스러운 우물에서 물 한 동이를 길어온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귀를 먹인다. 그는 마리아를 만나 두 사람은 성전 경내로 들어간다.
먼저 그들은 나중에 예수께서 호되게 매질하신 상인들이 있는 회랑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그들은 어린양들과 멧비둘기들을 파는 상인들과 환전상들이다. 요셉은 두 마리의 작고 하얀 비둘기들을 산다. 그는 더 이상 돈을 바꾸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여덟 개의 단들이 있는 층계로 올라가는 옆문으로 간다. 모든 문들에는 이렇게 층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의 중심이 주위 땅 위로 들어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시 주택들의 대문들처럼 그 문 안에는 커다란 홀이 있다. 이 편이 더 넓고, 더 잘 장식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홀 안에는 좌우에 일종의 제단들이 두 개가 있다. 그것들은 두 개의 장방형 구조물들인데, 나는 처음에는 그것의 용도를 몰랐다. 그것들은 얕은 수반 같다. 왜냐하면 내부가 바깥쪽 시울보다 몇 센티미터쯤 낮기 때문이다.
한 사제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가 요셉에게 불려서 왔는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마리아는 자기의 두 마리의 작은 비둘기들을 바친다. 나는 그놈들의 운명을 알기에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나는 매우 육중한 대문과 천장과 홀의 장식들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나는 곁눈으로 사제가 마리아에게 약간의 물을 뿌리는 것을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마리아의 옷이 얼룩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물일 것이다. 그 다음에 두 마리의 비둘기들과 함께 한 움큼의 동전들을 사제에게 주었던(나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었었다)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사제를 따라 진정한 성전으로 들어간다.
나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이곳은 화려하게 장식된 곳이다. 조각된 천사의 머리들, 종려나무들과 장식들이 기둥들, 벽들,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분명히 유리들은 없고, 벽들에 비스듬히 설치된 이상한 길고 좁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는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렇게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특정 지점까지 나아간 다음 걸음을 멈춘다. 그녀에게서 몇 미터 거리에 다른 단들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일종의 제단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구조물이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성전 안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진정한 성전, 즉 그 너머로는 사제들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내가 성전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성막이 들어 있는 성전을 세 방면에서 둘러싸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현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내 생각을 잘 설명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건축가도, 기술자도 아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바친다. 아기는 태어난 지 며칠 밖에 안 되는 갓난아기들의 놀란 무죄한 눈들을 사제들을 향하여 돌린다. 사제는 아기를 두 팔로 안아 계단들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제단의 땅을 향하여 서서 성전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팔들을 펴서 아기를 치켜든다. 의식이 끝난다. 아기는 그의 어머니에게 건네지고, 사제는 물러간다.
시메온의 예언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있다. 그들 중에서 고령으로 인하여 등이 굽은 작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나아온다. 그는 매우 늙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그가 80세가 넘었다고 말하겠다. 그가 마리아에게 다가와 잠시 아기를 자기에게 그녀에게 달라고 청하자,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그의 청을 들어준다.
노인은 시메온이다. 나는 그가 사제계급에 속해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적어도 그의 복장을 보고 판단하자면 그는 평신도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그에게 입 맞춘다.
예수는 젖먹이들에게 특유한 미소로 노인에게 미소 짓는다. 아기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살펴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노인은 동시에 울고 웃으며 눈물이 그의 주름들 사이로 흘러내려와 반짝이는 수예작품을 만들어놓았다가 예수가 자기의 작은 손들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는 길고 흰 수염에 떨어져 구슬을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아기는 예수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아기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기의 주의를 끌어 그것을 붙잡아 그것이 무엇인지 보기를 원하는 것 같다. 마리아와 요셉이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아기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거룩한 노인의 말을 듣고 요셉의 놀란 시선, 깊이 감동한 마리아의 표정, 그리고 작은 무리의 시선들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놀라고 감격하고, 어떤 사람들은 웃는다. 후자 중에는 몇 명의 수염을 기른 사람들과 빈정대며 동정의 눈초리로 시메온을 쳐다보며 자신들의 머리를 흔드는 거만한 산헤드린 위원들이 있다. 그들은 그를 노망한 늙은이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시메온이 고통을 언급할 때 마리아의 미소는 창백함으로 바뀐다.비록 그녀가 안다 해도 그 말은 그녀의 영혼을 찌른다. 그녀는 위로받기 위하여 요셉에게 다가가고, 자기의 아기를 정열적으로 가슴에 꼭 껴안는다.
그녀는 목마른 사람처럼 프누엘의 한나의 말을 수용한다. 그녀는 여자이기에 마리아의 고통을 동정하고,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 고통의 시간을 완화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부인, 그분의 백성에게 구세주를 주신 분께 당신의 눈물을 위로해주기 위하여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 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자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었는데, 당신께서는 유딧과 야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고통의 폭풍우를 견디도록 지극히 순수한 금과 같은 마음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 즉 그 어머니(the Mother)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너 아가, 네 사명의 시간에 나를 기억해다오.”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1944. 2. 2.
환시의 교훈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두 개의 교훈들이 너에게 주어진 묘사로부터 도출된다.
첫째 교훈은 이것이다. 진리는 의식들에는 몰두하지만 자기의 영혼은 없는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항상 하느님과 접촉하고 있고, 하느님과 관련된 것과 육체를 초월하는 모든 것에 바쳐진 사제는 그날 아침 성전에 바쳐지고 있는 아기가 누구인지를 즉시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깨달으려면, 그는 살아 있는 영혼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설혹 죽은 영혼은 아니라 해도 졸고 있는 영혼을 덮고 있는 제복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만일 하느님의 성령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분 천둥을 치실 수 있고, 가장 둔한 영혼이라도 뇌성벽력처럼 깨우시고, 지진처럼 흔들어놓으실 수 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그 모든 위(位)에 있어, 그리고 그 행동 방식에 있어 질서이시듯 그 영께서는 질서의 영이시므로, 그분의 은총을 토로하시기에 충분한 공로가 있는 곳에 계시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된다면 그 계시들은 지극히 희귀할 것이고, 너마저도 그것들의 빛을 알지 못할 것이다―그 영께서 그러한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착한 뜻’이 있는 것을 보시는 곳에 영감을 주시고 말씀하신다.
그런 착한 뜻은 어떻게 구현되느냐? 가능한 한 전적으로 하느님께 헌신된 생활로 구현된다. 즉 믿음, 순종, 순결, 사랑, 너그러움, 기도로 구현된다. 행동들(practices)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구현된다.
행동들과 기도 사이의 차이보다는 밤과 낮 사이의 차이가 덜하다. 기도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교감(communion)인데, 너희는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고, 점점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행동들은 항상 이기적인 다양한 목적들을 위하여 구현된 공통적인 습관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너희를 너희의 원래의 상태대로 남겨둔다. 아니 그것들은 거짓말과 나태의 죄들을 너희의 짐에 보태기까지 한다.
시메온은 그런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고난들과 시련들에서 면제되지 않았지만, 자기의 착한 뜻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이와 불행들도 주님과 그분의 약속들에 대한 그의 믿음, 자기가 점점 더 하느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손상시키거나 흔들지 못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한 충실한 종의 두 눈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 성령의 빛인 그분을 그에게 보내시고, 그를 성전으로 인도하시어 세상에 온 빛(the Light)을 보게 하셨다. 그 다음에 그 두 눈은 내가 내 수난 후 승천할 때 하늘들에서(in the Heavens) 작열하는 하느님의 태양(the Sun of God)을 향하여 다시 열리기를 기다릴 것이다.
‘성령께 인도되어’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오! 만일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알기만 한다면! 어떤 인도자이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만일 그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 사랑을, 이 빛 중의 빛, 이 불 중의 불, 이 지성, 이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을 부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얼마나 더 잘 알게 되겠느냐!
마리아야 보아라. 내 자녀들아, 귀담아 들어라. 시메온은 ‘빛을 보기’ 전에,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알기 전에 자기의 긴 일생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희망과 기도 안에서 인내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인내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제와 오만하고 눈먼 산헤드린의 위원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자기를 덥혀주고 자기에게 미소 지었던 한 아기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를 ‘볼’ 자격을 얻었다. 그는 한 아기의 입술을 통하여 정직하고 경건한 그의 일생에 대한 최초의 보상인 하느님의 미소를 받았다.
다른 교훈은 한나의 말이다. 여자예언자인 그녀도 갓난아기인 나에게서 메시아를 본다. 그녀의 예언자적 특은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믿음과 사랑에 감동되어 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라. 그리고 그녀의 말들을 이 암흑의 날들과 이 빛의 축일에 떨고 있는 너희의 영혼들을 위한 빛으로 삼아라.
‘구세주를 주신 분께 당신의 눈물을 위로해주시기 위하여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의 영혼들 안에서 사탄이 한 일을 지우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숙고해라. 그런데 그분께서는 지금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사탄들을 이기실 수 없겠느냐? 그분께서는 이 사탄들을 쫓아버리시고 너희에게 다시 한 번 그분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보내주심으로써 너희의 눈물을 닦아주실 수 없겠느냐?
너희는 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청하지 않느냐? 너희의 수많은 죄들로 인하여 분개하시는 하느님의 준엄함이 그 앞에서 미소와 함께 사라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구원인 그분의 용서와, 너희 스스로 원하여 피의 홍수에 잠긴 이 세상에 무지개가 되는 그분의 축복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기억해라. 아버지께서는 홍수로 사람들을 벌하신 다음에 그분 자신과 그분의 족장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는 이번에 내가 했던 것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자신들과 하느님께 ‘만일 이번에 저희가 재앙을 면한다면, 만일 당신이 저희를 구해주신다면, 저희는 다시는, 결코 다시는 전쟁들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으며, 그러고 나서 항상 더 끔찍한 전쟁들을 일으키지 않았느냐? 오, 거짓된 사람들아, 하느님과 너희 자신들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아, 너희는 얼마나 여러 번 그렇게 했느냐? 그런데도 만일 많은 충실한 사람들이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부르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다시 한 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너희의 근심을 하느님의 발아래에 가져다놓아라. 하느님의 준엄함을 살아 있게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균형을 이루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은 너희, 너희의 머리 위에 매달려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현시대의 끔찍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헌신된 채로 남아 있는 너희는 말이다. 그분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그분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십자가와 결합해라. 그것은 항상 마귀의 덫들을 이겼다. 그가 다른 방법으로는 지배할 수 없는 마음들을 사람들의 잔인함과 삶의 비애를 가지고 절망 즉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리로 몰고 가려고 애쓰는 마귀의 덫들을 말이다.”
첫댓글 오! 만일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알기만 한다면! 어떤 인도자이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만일 그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 사랑을,
이 빛 중의 빛, 이 불 중의 불, 이 지성, 이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을 부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얼마나 더 잘 알게 되겠느냐!
너희는 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청하지 않느냐?
너희의 수많은 죄들로 인하여 분개하시는 하느님의 준엄함이
그 앞에서 미소와 함께 사라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구원인 그분의 용서와,
너희 스스로 원하여 피의 홍수에 잠긴 이 세상에 무지개가 되는 그분의 축복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런데도 만일 많은 충실한 사람들이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부르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다시 한 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피앗! 피앗 미히!
두 개의 교훈
첫째 교훈은 이것이다.
진리는 의식들에는 몰두하지만 자기의 영혼은 없는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그러한 계시를 받기에 충분한 공로보다, 합당한 ‘착한 뜻’이 있는 것을 보시는 곳에 영감을 주시고 말씀하신다.
착한 뜻은 어떻게 구현되느냐? 가능한 한 전적으로 하느님께 헌신된 생활로 구현된다.
즉 믿음, 순종, 순결, 사랑, 너그러움, 기도로 구현된다. 행동들(practices)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구현된다.
시메온은 그런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고난들과 시련들에서 면제되지 않았지만, 자기의 착한 뜻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이와 불행들도 주님과 그분의 약속들에 대한 그의 믿음, 자기가 점점 더 하느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손상시키거나 흔들지 못했다.
다른 교훈은 한나의 말이다.
‘구세주를 주신 분께 당신의 눈물을 위로해주시기 위하여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의 근심을 하느님의 발아래에 가져다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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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앗. 하느님, 당신뜻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나라가 오소서! 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