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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추수감사주일설교.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시편 136편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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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나오는 말 중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이라는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일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가 1분간 기뻐하여 웃고 감사하면 우리 신체에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우리가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의 면역체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① 지금 숨이 안 쉬어지는 분이 있습니까? ② 제가 안 보이는 분이 있습니까? ③ 눈을 깜빡 거리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④ 제 목소리가 안 들리는 분이 있습니까? ⑤ 입이 안 벌려져서 음식을 못 드시는 분이 있습니까? ⑥ 목소리를 못 내서 노래(찬양)을 못 부르는 분이 있습니까? ⑦ 고개가 안 돌아가서 고정 되어 있는 분이 있습니까? ⑧손가락이 안 펴지는 분이 있습니까? ⑨ 가슴에 손을 대면 심장이 안 뛰는 분이 있습니까? ⑩ 얼굴 근육이 안 움직여서 못 웃으시는 분이 있습니까?
제가 우리의 신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열 가지 경우를 말씀 드렸습니다. 감사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잘 일어나서, 낮에 잘 먹고 잘 움직이다가, 저녁에 잘 잠이 드는 것, 곧 정상적인 신체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 중의 감사의 조건은 충분합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말씀 드린 10가지 신체활동이 모두 정상이시라면 우리는 이미 10가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에 무엇을 감사할까? 고민 하지 마십시오. 나를 살아있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는 어떤 감사의 조건이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좋은 말들로 감사의 글들을 남겼지만, 사도 바울이 “내가 나 된 것은~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한 것처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셨고,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심어린 감사의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부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빠짐없이, 그리고 진심으로 기뻐함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은혜 받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감사의 태도입니다.
오늘 시편 136편에는 “감사하라 그의 인자 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는 말씀이 26절의 모든 구절에 빠짐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36편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살전 5:18) 이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6편 내용 전체가 그저 감사 또 감사 뿐 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라는 것이, 우리 삶의 내용 전체를 드리는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동안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있었겠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더욱 더 감사하며 힘쓸 것이 무언이지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나의 비천함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23절)
우리 자신들은 외모나, 학벌과 지적 능력이나, 재물의 부요함이나, 쌓아온 경력과 지위 면에서 등, 어떤 한 부분에서는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재능이든, 실력이든 상관없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비천한 존재들입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입니다!, 나는 내려 갈 곳 없는 밑바닥 인생입니다!, 나는 버려져도 마땅한 아주 보잘 것 없는 폐품입니다!” 라는 자기 고백이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비천하다”는 이 고백에 동의하기 어려운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비교 대상을 자신 보다 낮은 사람,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지닌 알량한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선뜻 동의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교하여야 할 대상을 예수님으로 상정해보세요. 그 높으신 예수님과 우리가 감히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이라면, 그냥 땅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서 내 자신의 비천함을 무조건적으로 고백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고 고백하라는 것은,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빌립보서 2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 곧 하나님 이셨지만, 스스로를 비천하게 하셔서 가장 낮은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시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까지 순종하는 자기 비천을 완성하셨더니, 하나님 아버지가 그를 지극히 높은 곳에 올리시고,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낮아짐과 높아짐을 신학용어로 ‘비천과 승귀의 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시고 비천하게 되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되셨다는 겁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예수님이 하셨던 그 모습 그대로를 따라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비천함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비천함을 요구하시는 어떤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 계시록 3장 21절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그”는 예수님처럼 비천함을 견디고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비천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행위와 순종을 다 기억하여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 기억을 되 살리셔서, 예수님과 똑 같이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을 수 있는(영생을 누리는 천국 백성이 된다는 뜻), 존귀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비천함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더 낮은 자리에서, 더 겸손하게, 더 희생하면서, 내 자신이 비천하게 됨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감사의 조건으로 여기시고, 마지막 날에 내 영혼을 높은 보좌에 앉게 해주시는 그날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나를 대적에게서 건지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24절)
사회에서는 근무 고과 평점을 잘 받고, 승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의 동료가 경쟁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동료들은 나를 대적하는 주적은 아닙니다. 나를 유혹에 빠트리고,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유일한 주적은 오직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의 무리(마귀, 귀신, 악령..)들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우리가 상대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탄의 무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는 대적이 불가능 합니다.
사탄은 모든 면에서(지혜, 힘, 능력) 우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 하시고,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대적자의 무리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거짓에 속아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비참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개처럼 끌려 다닌다”라는 말을 합니다. 가끔 애완견을 차에 매달고 질주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기사화 되고는 합니다. 그 영상을 보고 100이면 100이, “저런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다 비난을 가합니다. 개를 차에 매고 달리면 개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사탄이 우리를 끌고 다니는 것은 마치 차에 매달려 저항하지 못하고 “개 같이 끌려가는” 비참한 상황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무참하게 끌려 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슬퍼하십니다.
사탄에게 끌려 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무례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고, 별거 아닌데도 쉽게 분노하여 다툼을 자주 일으키고, 뻔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보이는 데서는 입만 열면 자기 자랑하고, 안 보이는 데서는 입만 열면 남 흉보기를 즐겨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절대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을 비웃으며 깎아내리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도무지 감사함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에게 이끌려 다니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신앙인이든 아니든)과의 대화의 주제 중에 “예수님, 교회, 말씀, 기도...”이런 신앙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는 사람들은 신앙을 주제로 대화 할 때 가장 신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내 일상 대화의 주제에서 예수님이 없다면,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적자인 사탄은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의 흥미꺼리 유흥꺼리, 자기 자랑꺼리 등을 끊임없이 주어서, 마치 내가 아무 걱정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거짓 판단을 품게 만듭니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사탄에 끌려 다니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할 기회도, 돌이킬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끌려 다니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을 건져 내시려고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의 대적자 사탄은 우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평생에 가장 많이 가장 크게 감사할 제목은 “대적자 사탄에게 개처럼 힘없이 끌려 다니던 이 죄인을 건져 내어 주신 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탄에게 끌려 다니던 부끄러운 나의 옛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말씀을 기준 삼아서, 찬양과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능력으로 대적자를 물리쳐 주셔서, 비참하게 끌려 다니는 종의 생활을 끝내게 하시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소망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 “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감사로 영광 돌리시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나와 가족에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25절)
먹고 사는 것이 힘들면 감사가 나오기 힘듭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한 기준이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지금 현재 주신 것에 감사할 수도 있고, 턱 없이 부족하다고 불평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 수준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자족함에 이르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믿음의 성장이 필요 합니다.
11월 암송구절 말씀(갈 6:9) 인쇄 하면서 나누어 드린 바탕화면 그림을 보십시오. 이 그림은 감사기도 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은혜(The Grace)’ 라는 유화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내용을 잠깐 소개합니다.
『1918년, 미국 미네소타(Minnesota)주 보베이(Bovey) 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 (Eric Enstrom; 1875~1968)입니다.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 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한 노인이 보잘것없는 신발 털개를 팔러 왔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몹시 시장했던지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 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엔스트롬 씨는 그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앤스트롬 나이버그 (Rhoda Enstrom Nyberg; 1917~2012)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이 감사절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반찬 투정 하시는 분 있습니까? 그 투정하는 반찬이 이 그림에 나오는 식탁보다 훨씬 풍성하지 않나요? 주신 것에 감사하되, 특히 먹을 것을 주신 것에 풍성하게 감사하십시오. “하나님!, 저와 제 가족이 끼니때마다 굶지 않게 하시고, 매 세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가끔은 외식할 수 있는 풍성함을 베풀어 주셔서 더 크게 감사합니다. 끼니 중간에 커피와 음료도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저와 제 가족이 일평생 동안 먹을 것에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 합니다”아멘.
기본적인 먹거리에 감사하면, 곧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에 세 가지 감사를 말씀 드렸습니다. 각자가 가정에 돌아가셔서도 온 가족이 다시 한 번 이 제목으로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1. 나(와 온 가족)의 비천함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나(와 온 가족)를 대적에게서 건지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3. 나(와 온 가족)에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입니다. 세 번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감사, 총체적인 감사, 일용할 양식 주심에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라는 뜻입니다. 추수감사절에 선포 된 감사의 말씀을 새기시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 땅에서는 무병장수하는 복을 누리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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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풍성하게 주셨사오니,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지켜 주시는 성령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쁨의 하루하루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감사로 영광 받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