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 주요명소
구지봉
490여 년 동안 가락국의 왕도(王都)이었던 김해에는 지금도 옛 가야인들의 얼과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생긴 모습이 거북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구지봉 (龜旨峰) 또는 구수봉(龜首峰)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삼국 유사』 「가락국기」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 42년인 신라 유리왕 19년 3월의 어느 날, 이 곳 마을 사람들은 북쪽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곳에 가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산꼭대기 흙을 뿌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만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그 말에 모두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자,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땅에 떨어졌고, 거기에는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 (金盒)이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황금빛 알이 6개가 있었는데, 후에 거기에서 아기가 나와 6가야국의 왕이 되었으며, 그 중 가장 처음 태어난 아기가 김수로 왕이다. 이처럼 구지봉은 비록 야트막한 구릉지에 불과하지만, 가야의 시조 탄생 설화의 주무대로서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구지봉을 관통하는 도로공사로 거북의 목부분이 끊겼는데,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 하여 도로 위에 인도를 놓아 끊어진 목 부분을 연결하였다.
* 면적 - 44,911㎡
김해시청 문화재과 055-330-3921 김해시 구산동 산 81-2
봉화산마애블
도지정유형문화재 제40호이며, 진영읍 본산리 산4-3번지에 위치한다. 옛날 자암과 봉수대가 있었던 봉화산의 암벽에 마애된 석불로서 고려시대의 여래좌상으로 추정되며 양각과 선각으로 높이 2.48M, 무릎높이 1.7M로서 거대한 암벽이 즐비한 봉화산의 중턱 바위틈에 끼어 옆으로 드러누운 상태로 발견되었다.
영구암
김해시 삼방동 874번지 신어산 자락에 위치한 영구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김해의 신어산은 정상이 해발 634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행 코스가 아기자기해 김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진산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은 산림욕장 까지이며, 산림욕장 끝에 주차를 하고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등산로 주위에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고 우리나라 산길 전형인 곡선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급경사로 되어 있어 주의를 요해야 한다. 산행길이 10여분 지나면 김해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산을 오르게 되어 있으며, 정상 아래 산 중턱에 영구암이 자리하고 있다. 옛 가야국 500년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김해의 진산 신어산(神魚山) 자락에는 가야국의 불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어산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었다.
그 중 신어산의 발원지이며, 신령스러운 물고기가 살아다는 샘이 있던 곳이 바로 영구암이다. 일찍이 가야시대에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 공주가 인연국토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아유타국에서 가야국에 도착하여 동행한 오빠 보옥선사(장유스님)가 가락7암을 지어 불법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신어산 영구암은 그 중 하나로 오늘도 면면히 불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그 후 신라시대의 많은 고승과 조선조의 많은 선사들이 영구암에서 수행정진 하였다.
현재에도 가야시대의 석탑 기단부와 고려시대에 조성보완한 석탑일부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신라 흥덕왕조에 축조한 석벽이 아직도 건재해 있는 가야불교의 산역사의 현장이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구암사, 혹은 ‘개암절’로 불렸으나, 구암사는 은하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므로 두 절의 연혁이 혼동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조선시대에 영구암이 은하사의 산내암자가 되면서 나온 착오로 보인다.
조선시대 어느 때부터 지금의 영구암이 되었는데, 이는 풍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영구암이 자리한 곳은 낙동강 하구나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이 곳 신어산을 바라보면 마치 산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오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살아 숨쉬는 것을 뜻하는 ‘영(靈)’의 기운이 매우 강한 ‘구(龜)’의 형상을 하고 있어 참선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한 때는 남방제일선원으로 꼽히기도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와 사세가 기울기는 하였으나 법등은 꾸준히 이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지금 삼성각에 봉안된 칠성탱이 1911년에 조성된 것이며, 또한 1950년 무렵에 중창이 있었다고 하는 사찰측의 내려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근대에는 묵방선사, 영운선사, 대휘선사, 송산스님, 법정스님, 화엄스님 등 많은 선사들이 가야불교의 부흥을 발원하며 주석하던 곳으로 기록에 의하면 ‘우령 금강산(右領金剛山)’이라 하여 영남 우측에 있는 금강산으로(영남 좌측은 무척산 즉 좌령 금강산) 일출은 경주 석굴암이요. 노을은 가락의 구암(영구암이라는 명문글귀)이라는 글귀를 남길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해향교
도지정유형문화재 제217호이며, 김해시 대성동 224번지에 위치하며, 선조말기 대성전이 건립되고 인조 초기 동.서무와 남루가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이 향교의 주산이 무너져 숙종 14년 현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해에 대성전과 동.서무를 건립하고 동 15년 동.서재를 동 18년 신주를 건립 하였으며 동 19년 명륜당과 남루를 건립하여 면모를 갖추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후기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동 유적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지로서 1920년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로 발굴조사된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구 문화재자료 제 87호)가 합쳐져 2001년 2월 5일 사적으로 확대 지정된 유적이다.
또한 구릉 위에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령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김해시 봉황동 253 사적지 관리소 055-330-3589,3941
예안리고분군
김해 예안리 시례마을 주변에 있는 가야 무덤들이다. 여러차례 발굴조사 결과 가야 때의 각종 무덤 형태가 중복되어 나타났으며 무덤에서 사람 뼈가 많이 발견되었다. 총 212기가 조사되었으며 그 중 널무덤(토광묘) 64기,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수혈식장방형석실묘) 108기, 독무덤(옹관묘) 24기, 앞트기식방형돌방무덤 (횡구식방형석실묘) 16기가 발견되었다.
널무덤은 예안리 무덤들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널(관)의 사용은 불분명하다.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은 4벽을 만든 상태나 바닥 시설로 보아, 만든 시기의 선후 관계를 나눌 수 있다. 독무덤은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가 1m 미만이다.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에 인접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상호간 친근관계에 있는 어린아이용 무덤으로 보고 있다. 앞트기식방형돌방무덤은 거의 파손된 상태라 전체적인 구조파악은 어려운 상태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회백색와질, 적갈색연질, 회청색경질 토기류가 있다. 철정, 가위, 재갈, 도자들을 비롯한 철기류가 나오며, 150호 널무덤에서는 투구가 발견되었다. 각 무덤들마다 사람 뼈들이 나오고 있어 무덤의 주인공을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장식품으로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호박제 구슬류들이 출토되었다. 무덤 형태나 출토 유물로 보아 가야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오랜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유적이다.
* 면적 - 4,341㎡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 문화재청 042-481-4650
가야랜드
김해는 옛 금관가야가 있던 역사의 고장이다.가야는 우리나라 고대문화의 커다란 줄기 가운데 하나였는데도 관심 밖에 머물다가 최근에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가야는 520년 동 안 한반도에 존재했었다. 가야는 크게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으로 구분된다.
전기 가야 연맹시기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었고 후기 가야연맹 시기는 고령의 대가야가 맹주 자리를 차지했다. 이같은 역사를 지닌 김해시의 가야랜드는 100만평의 대지위에 각종 첨단 놀이시설을 갖추어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13종의 놀이시설, 수영장, 등산로, 산책로 등이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배치되어 있다.
* 관람최적기 4~10월
가야랜드 055-337-0311~2 김해시 삼방동 1번지
신어산
경남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한 신어산(634m)은 능선에서 김해시가지를 바라보면서 산행할 수 있어 올라가는 재미가 있고, 기암절벽 사이로는 구름다리가 있어 산행을 더욱 즐겁해 한다.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할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탄강지로 전해오는 구지봉은 이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다. 정상에서 서쪽 주능선길을 따라 630봉까지 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암봉이 있고, 광할한 김해 평야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쾌하다. 580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460봉의 암봉에 올라서서
신어산을 바라보면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게 된다. 460봉의 전망대 같은 바위에서 동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암벽 밑에 천진암이 있고 숲길과 대밭길을 거쳐 은하사에 닿게 된다.
정상의 조망은 무척산 토곡산 매봉 오봉산, 금정산의 고당봉과 파리봉 등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다.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한다. 가락국 초기에 세워진 고찰 은하사와 동림사가 있다. 은하사는 가락국 수로왕 때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본디 이름은 서림사라고 했다. 대웅전의 수미단에 쌍어 문양이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은하사 055-337-0101) 김해 시내에서 김수로 왕릉과 허후릉,구지봉 등 명소가 많으므로 산행시 함께 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문의처 : 김해시청 공원녹지과 055-330-4377
* 가는 길 : 부산,마산 국도14호선 이용,
남해 고속도로 이용, 김해시외버스터미널4.5㎞(15분소요)

무척산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척산:700m,식산,무 축산,무착산 이라고도 하며,산정의 천지는 수로왕의 국장때 판것이라고 전한다. 중복에는 모은암, 동쪽에는 백운암이
있다. 김해시내에서 가장 높은 이며,산세가 좋아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 문의처 : 시청 문화체육과 (055)332-0101
* 생림면사무소 055-330-8711 * 김해시청 공원녹지과 055-330-4377
장유계곡
장유대청계곡은 불모산 산자락에 양갈래로 형성된 6km의 긴계곡으로 산림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는 등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계곡을 따라 30분쯤 올라가면 장유암이 있으며 경내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법을 전파 했다고 전하는 장유회상의 사리탑이 있다.
장유계곡은 수려한 경관과 물도 좋지만 오리, 닭, 백숙의 맛이 뛰어나 음식관광을 즐기는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1984년 장유폭포 휴양공원으로 조성 되었으며 교량, 급수시설두곳을 만들었고, 임도 1,720m 를 개설하고 계곡 입구의 상절교는 30m, 본포교는 4m이다. 산허리 부분에 괴상하게 생긴 암봉이 많은 등 산세가 험한 편이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다른 산에 비해 산 타는 재미가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마현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석굴암과 모은암을 거쳐 정상에 오른다. 마현 고개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가다보면 석굴암에 닿는다. 석굴암은 작은 암자이긴 하나전망이 뛰어 나며 샘터에서 북쪽으로 나가면 바위사이로 길이 있어 이 길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모은암이 나온다.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척계곡
김해시 상동면 장척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척계곡은 자연발생 유원지로 계곡이 매우 깊고
수려한 경관과 맑은 물 이 어우려져 가족동반 휴식처로 많이 찾고 있다. 토종닭 백숙과 꿩요리 맛이 일품이다.
* 문의처 : 상동면사무소 (055)323-6733
* 가는 길 : 부산(구포) 17㎞ (40분 소요), 김해시외버스터미널15㎞(30분소요)
김해천문대
김해천문대는 지난 1998년 12월에 밀레니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천체와 우주에 대한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시민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선사하기 위하여 추진되어 2002년 2월 1일에 개관하였다. 천문대의 형상이 알을 닮은 것은 기원전에 김해지역에서 형성되었던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난 것에서 유래되었다.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첨단 항해장비가 없던 당시 허왕후가 배를 타고 가락국으 로 올때 별을 보고 항해해 왔을 것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가락국의 왕자가 진례 토성 위의 상봉에 천문을 보기 위하여 첨성대를 쌓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전해오고 있는데, 지금도 그곳을 별을 보는 곳이라 하여 비비단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로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고대국가 가야는 별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볼수 있다. 천문대가 위치한 분성산 정상에 서는 김해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특히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밤에 내려다본 김해시의 야경은 매우 절경이다.
* 면적 - 부지 6598㎡(1,996평), 건물면적 1521㎡(460평) 2층
문의/안내 전화 055-337-3785 행정전화 055-337-2774,2775
수로왕릉
수로왕은 서기 42년 가락국의 시조로 왕위에 올라 서기 48년 인도의 야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으며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왕릉은 선조 13년(1580)에 영남관찰사 허엽이 능을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능의 경내에는 수로왕, 수로왕비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을 비롯하여 안향각, 전사청, 제기고 등 여러 건물과 신도비, 공적비 등 석조물이있다.능앞의 묘비는 조선 인조25년(1647)에 세운 것이며 숭선전은 고종 21년(1884)에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 숭선전
- 가락국 시조 수로왕과 왕후 허씨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1호. * 안향각
- 1824년 창건. 춘추제례에 사용할 향과 축을 국가가하사하면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다. * 납릉 정문
- 수로왕릉의 정문 * 구지봉 - 풍수학설로 거북이 열마리가 뭉쳐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42년 이곳 구지봉에서 금알 6개가 금합에 담겨 하강하여 금관성 아도간 집에
모셔졌는데,금알들은 다음날 모두 동자로 화신하였다 한다. 동자 1명은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5동자는 5가야의 추장으로 추봉 되었다 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58호.
* 숭선전 제례 - 나라에서 춘추제례(음력3월 15일과 9월 15일)를 행하고, 정월 초하루, 추석, 동지에는 다례를 숭선전 참봉이 올리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올린다.
김해시 서상동
국립김해박물관
경남 김해시 구산동 23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 문화권의 유물을 집대성하여 시대별 문화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가야문화의 이해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하여 건립된 고고학 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은 가야탄생의 발원지인 구지봉의 지기를 박물관 안까지 끌어들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전체를 검은 벽돌로 외장하여 철광석과 숯의 이미지로 하여 철의 왕국 가야를 상징적으로표현하였다. 전시실은 I실과 II실로 꾸몄으며, 보물 제637호인 수레바퀴모양토기 등 약 13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I실에는 선사시대와 가야성립의 기반이 된 변한의 유물 및 전기가야를 대표하는 금관가야의 유물을 전시하였으며, 전시 II실에는 각 지역별로 형성된 가야문화의 독창성과 변화상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전시유물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종 복원모형과 영상시설을 설치하여 가야의 문화상과 유물의 쓰임새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몄다.
김해시 구산동 230번지
055-325-9332~3
김해양동리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 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 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 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 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 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 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 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 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 면적 - 47,670㎡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문화재청 042-481-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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