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흔히들 삼위일체의 근거구절들 중 하나로 제시하는 유명한 성경구절이 나옵니다.
| 마3: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삼위일체라는 그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삼위일체의 내용을 설명하는 근거구절들이 위와 같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1)이시고, 위격들은 성부∙성자∙성령으로 셋(3)입니다. 이 위격들은 분리되지 않고 구별되시며 “상호간에 교류”하십니다. 마3:16에서 세례를 받는 위격은 성자(예수)이시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성자에게 임하시고 마3:17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를 보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성경구절은 최고의 진리들 중 하나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기독교입니다.
● “상호교류”하시는 것은 위격들의 구별과 인격적 관계를 나타내는데요. "상호침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들이 서로의 안에 존재하며, 본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호침투는 '상호내주'로도 표현하며,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용어 사전과 원로 신학자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 상호(침투)내재 circumincession = 상호내주 coinherence |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고도 하는 신학적 개념으로, 세 위격의 특징들을 흐릿하게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신적 *본질essence이 *삼위일체의 세 위격, 각각에 의해 공유된다는 것을 확언하는 표현. 이 개념을 확장한다면, 이는 세 위격 중 하나에게 속한 모든 본질적 특징이 다른 두 위격과도 공유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상호(침투)내재는 삼위일체의 위격 중 하나의 행위가 완전하게 다른 두 위격의 행위라는 점을 확언한다.
스탠리 그렌츠 등, 『신학용어 사전』, p.31. |
초신자나 초학자는 총신대 교수였던 서철원 박사의 페리코레시스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할 수도 있겠습니다.
| 삼위가 서로 상호 침투한다는 ‘페리코레시스' |
닛사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yssa)는 바실레오스의 동생이었다. 그는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인 것은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기본 신학이었다. 그는 삼위가 서로 상호 침투한다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를 공식화하여 창조 전 만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보았다.
서철원, “하나님론”, 『서철원박사 교의신학 II』(서울: 쿰란출판사, 2018), p.135. |
● 한편, 초대교회의 이단들 중에 네스토리우스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분리되었다고 보고 예수의 고통이 인성에서만 있었다고 보는 오류입니다.
|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 네스토리우스 신학 |
에베소 공의회(주후 431)에 의해 정죄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네스토리우스에 의해 고수된 견해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인격(신인 통합)이지만, 그의 두 본성(하나의 인성과 하나의 신성)은 각각 존재하며, 따라서 구별된다는 주장. 이 견해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인류를 위한 예수의 고통은 그의 신성이 아닌 인성 안에서만 이루어진 예수의 행위로 보인다.
스탠리 그렌츠 등, 『신학용어 사전』, p.15. |
| 칼케돈 신조(Chalcedonian definition, creed, formula) |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간의 관계를 서술하고자 했던, 451년 칼케돈에서 내려진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신학적 결정.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칼케돈 신조를 정통 진술로 수용했다. 이 신조는 "한 분이요 동일한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는 두 본성으로 알려지셨으나,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리 없이, 분열 없이 존재하며, 그 본성의 차이는 결코 연합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스탠리 그렌츠 등, 『신학용어 사전』, p.59. |
cf) 개혁주의 교리의 표현 중에 ‘분리’되지 않고 ‘구별’된다는 것이 자주 나옵니다. ‘혼합’ 되지 않고 구별되어 ‘연합’(결합)한다는 표현도 자주 나오고요. 이 표현에 유의하여 살펴보면 이해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첫댓글 상호 '내재'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 "번 S. 포이트레스, 삼위일체 위격들의 상호내재"
https://cafe.daum.net/1107/YDR0/211
네, 저도 타자치는 동안 공부가 되었습니다.
페리코레시스를 상호침투, 상호내재, 상호내주 등 여러 단어로 번역한 것이 내용 이해에 더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서철원 박사의 창조 전 만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사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보았다는 설명도 좋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
공감합니다22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고립이 아닌 ‘완벽한 사귐’이라는 사실이 정말 경이롭고, 우리를 그 사랑의 춤(Perichoresis) 안으로 초대해 주셨다는 점에 깊은 위로를 얻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주고받는 교류를 넘어 서로의 삶에 거룩하게 스며드는 상호침투의 신비를 배우며, 우리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네요.
자기를 비워 상대방을 채우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사랑이 오늘 제 삶의 모든 관계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에너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22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신학적으로는 참 깊고 어렵지만,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고립된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는 분'**이라는 설명에 깊은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나를 비워 상대방을 채우는 **'사랑의 역동성'**이 삼위일체의 본질이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며, 그 신비로운 사랑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결국 신앙이란 교리를 머리로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아름다운 관계의 춤에 우리도 기쁘게 동참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큰 위로가 됩니다.
아멘 🙏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지만, 말씀 곳곳에 계시된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완벽한 구별과 연합을 믿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견고한 기초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특히 세례 현장에서 나타난 세 위격의 상호교류는 하나님이 정적인 존재가 아닌 사랑으로 소통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며, 이 최고의 진리가 우리 믿음의 중심이 됨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시나 사랑 안에서 역동적으로 사역하시는 그 신비를 마음 깊이 새기며,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예배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