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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내 답답한 환경을 바꾸려면
성경 본문 : 이사야 41장 17절~24절
설교 자 : 박 한 서 목사 <2026년 9월 6일 주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 <이사야>41장 17절-24절 말씀입니다
17절.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절.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절. 내가 광야에는 백 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 석류와 돌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잦나무와 소나무와 황 양목을 함께 두리니
20절.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해 아리며, 깨달으리라.
2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속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절.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23절.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산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절.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을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 하니라<아멘>
세계선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나라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로마>가 그랬고 <영국>이 그랬습니다. <미국>이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120여년 전 복음이 들어오기 전 처참했던 나라, 가난하기 그지없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무역규모로 세계 7위에 오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장차 <중국>이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미 세계 강대국이 되었지만 앞으로 엄청난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국>기독교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일 5만 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1년에 천오백만, 10년에 1억5천 명입니다.
왜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는 강하게 하고
세계를 정복하게 할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는 하나님이 강대국이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역사에서 가장 강성했던 때가 <다윗>과<솔로몬>때였습니다.
왜죠?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이 강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강대국이 되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교만하게 되고 그때 우상승배하고
그때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망하게 하십니다.
<로마>도 그랬고 <영국>도 망해가고 있고 <미국>도 타락하였습니다.
동성결혼을 합헌으로 결정한 것은 <미국>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오늘 주신 성경 말씀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은 답답한 환경 속에 처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사야>41장 17절부터 20절까지 말씀은
<이스라엘>백성이 겪고 있는 황폐했던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로 물댄 동산과 같이 아름다운
환경으로 변화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사야>선지자 당시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70년 만에 <바벨론>왕 <고레스>마음을 감동시켜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처한 답답한 환경이 싹 바뀌어
풍성하고 은혜가 넘치는 삶을 이룰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었던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기적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이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답답한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시나요?
몇 가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의 환경은 왜 답답한가요?
<이사야>선지자가 이 말씀을 외칠 당시에는 <이스라엘>백성은
정말 답답하고 캄캄한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이었나요?
1) 사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은
오늘 우리 대한민국처럼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세계 4대 강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남쪽에는 <애굽>, 북쪽에는 <앗수르>, <바벨론>...
그래서 주변 열강들의 힘을 빌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주변 열강들의 눈치를 보면서 외교를 해야 했으나
세상이 쉽게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리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주변 열강들의 힘을 의지하다 보니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뭐라 하시나요?
<시편>146편 3절~4절 말씀을 보세요.
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사람의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왕들을 의지하고 열강들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환경 속에서 고생하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해결책이 보이질 않은 것입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시편>146편 5절 말씀을 보세요.
5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열국을 의지하지 말라고
수 없이 외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우리의 힘이 될 것이라 믿으면 착각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눈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나 언약,
그리고 베풀어 주신 은혜는 속히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답답하게 살았고 결국 그들의 삶과
환경은 처참하게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그것만을 바라보면 답답합니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는 소망이 없고
온갖 죄악이 가득한 것이 우리의 현상입니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곧 망할 것 같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기에 달라야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시편>121편 1절~2절 말씀을 보세요.
1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 서로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도우 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바라보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말씀 붙잡고
하나님께 나가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가 유지되고 발전한 것은 우리의 노력 덕분일까요?
어느 시대, 어느 해는 망할 것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요?
세계 여러 나라가 우리나라는 망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임을 믿어야 합니다.
3) 교만하여 우상만 의지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한 이유가 뭡니까?
남 왕국 <유대>가 풍전등화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치나 경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우상 숭배입니다.
왕부터 백성들까지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는
<바알>신, <아세라>신을 숭배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고 회개하라고
외치셨건만 그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외쳤던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가두었습니다.
왜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우리 심령을 황폐하게 만들고
주시는 은혜를 천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뭔가를 구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환경은 더욱 캄캄하고 답답했던 것입니다.
심각한 것은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잠언>16장 18절 말씀에
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참 교만해졌습니다. 좀 살만하다고 교만해졌습니다.
이제 선진국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의지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온갖 우상이 대한민국 땅에 가득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이 횡횡합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조차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장로 믿는 국회의원이 석가탄일에 절에 가서 머리 숙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악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일을 어찌해야 할까요?
성경은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나요?
2. 이 답답한 환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과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이사야>41장 17절 말씀에
17절.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 “가련하고 가난한 자”는 누굽니까?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고 오늘 우리입니다.
사실 우리는 목마른 인생입니다. 그래서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이 목마름을
돈이나 건강이나 명예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에서는 만족이라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돈이 얼마나 있으면 만족할까요?
10억? 20억? 그것이 채워지면 정말 만족하고
욕심 안 부리고 살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이 부족하여
목이 마르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돈으로는 안 됩니다.
건강은 언제까지 누리길 원하나요?
건강하지 못한 것은 저주 받은 것인가요?
오히려 약한 자가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도 <바울>에게도 건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 출신 <누가>가
늘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남들 병은 잘 고쳐주었습니다. 손만 언은 즉 낫기도 했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뱀에 물려도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늘 육체의 가시를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건강으로 목마름이 해결되는 것 아닙니다.
따라서 합시다.
건강으로도 안 됩니다.
안된다니까요...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한도 끝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과거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 머물 때,
그들에게 육체적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를 터트려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불평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려
코에서 냄새가 나서 진절머리를 내도록 먹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만족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 목마르고 계속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7장 38절 말씀에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을 만나면
목말랐던 우리 속 깊은 곳에서 성령의 생수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에게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내속에서
샘솟듯이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고 우상을 따르니
목마름의 근원적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 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을 복된 환경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이사야>41장 18절 말씀에
18절.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이 말씀은 “물이 없는 환경”에서 “물이 풍부한 환경”으로
아예 근본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뭘 의미합니까?
홍수가 나서 온천지가 물바다 되는 환경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말씀을 붙잡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손길로 도우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환경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근본적인 갈증이 해결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풍요를
누리게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이사야>41장 19절 말씀에
19절. 내가 광야에는 백 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 석류와 돌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잦나무와 소나무와 황 양목을 함께 두리니
여기 기록된 나무들은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나 꼭 필요한 재목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땅은 광야가 많고 황폐하여 이런 나무가 자라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사막에 잣나무와 소나무가 날 수 있나요?
그런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런 환경조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나무’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 나무들은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재들을 허락하셔서 그들을 통해
우리 환경을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누가하신다고 합니까? “우리”가 아닙니다.
18절 말씀에도 “내가” 19절 말씀에도 “내가”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강을 내며”,
“내가... 심고”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답답하고 어려운 환경을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그때 그 백성들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에 이런 소망을 품어봅니다.
하나님은 척박한 광야에
풍부한 자원과 인재를 심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도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에는 항상 일꾼이 부족합니다.
저는 늘 일꾼을 세우느라 머리가 아프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자원을 보내 주시고 심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이사야>41장 19절 말씀에 나온
나무들을 “인재”라고 생각해 보세요.
광야 같은 곳에도 인재를 심어주시는 주님,
일꾼이 부족하고 필요한 우리 교회에
훌륭한 재목의 일꾼들을 심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본문 <이사야>41장 20절 말씀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인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0절.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해 아리며, 깨달으리라.
우리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압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우상이 헛것임을 믿고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의지하였던 우상은 허무한 것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우상이 뭔가를 해결해 줄 것을 믿고 그를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이사야>41장 21절 말씀에
2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속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무슨 뜻이냐면 우상이 살아있다면 뭔가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헛것이고 죽은 것이기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이사야>41장 24절 말씀에
24절.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을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 하니라<아멘>
그렇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은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요.
복이나 화를 내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결국 그 우상을 섬기는 백성은 허망하게 되고
그 우상의 종들은 가증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엎드리고
길을 물어보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우리 교회에는 이런 우상숭배자가 없나요?
안 믿는 사람은 몰라서 그런다 치고 믿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냥 두질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허망한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새롭게 바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상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뭐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환경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능히 우리의 모든 필요와
목마름을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목자로 믿는 백성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라 라는 <다윗>의 고백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혹 답답한 환경 속에 힘드셨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이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의 답답한 환경을
새로운 환경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주님께 여러분의 모든 삶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