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은 시들어갈지언정, 알맹이는 여전히 푸르른 '청춘의 사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치 오래된 고목이 되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겉껍질은 비바람에 깎여 거칠어지고 군데군데 패인 옹이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그 속을 흐르는 수액은 여전히 대지의 기운을 품고 위로, 더 위로 뻗어 나가려 합니다. 많은 이들이 거울 속에 비친 주름진 얼굴을 보며 "나도 늙었구나" 탄식하지만, 정작 그 육체 안에 거하는 영혼은 단 한 번도 늙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문득문득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여전히 청춘인 이유는 단순한 착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진 **'열정의 온도가 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0세 시대라는 거대한 시간의 지평선 위에서70세 80세, 90세는 더 이상 '뒷방 늙은이'로 머무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파고를 다 넘기고 난 뒤 찾아온, 가장 온전하고 숙련된 '자아의 황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흔이든. 여든이 넘어서도 "내게 주어진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존재의 효능감'**에서 기인합니다. 평생을 일궈온 경험과 지혜는 이제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을 관조하는 안목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일이 생계를 위한 치열한 전쟁이었다면, 지금의 일은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소중한 끈이자, 내가 여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노래가 됩니다. 작은 소임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내 손으로 완수해낼 때 느끼는 그 뿌듯함은 그 어떤 보약보다 강한 생명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자부심과 청춘의 마음을 지탱하는 기둥은 결국 **'건강'**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아무리 고귀한 정신과 열정이 가득해도, 그것을 담는 그릇인 몸이 무너지면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맙니다. "몸이 쇠약하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씀은 세상을 향한 가장 정직한 통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입이 즐거운 과식보다는 속이 편안한 '절제의 미학'을 실천하고, 소화의 부담을 줄여 내 몸의 장기들이 평온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그것이 몸에 대한 예의입니다. 또한, 틈나는 대로 내 몸의 근육과 관절을 깨우는 운동은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 발로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내 눈으로 담겠다는 '자유를 향한 의지'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얻은 여유 시간에 누리는 문화생활은 거친 일상에 뿌리는 향수와 같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며,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는 시간은 메마른 정서에 단비를 내립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서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가꾸어 그 청춘의 마음을 마음껏 발산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멋진 반격이 아닐까요.
세월은 우리의 피부를 가져가지만, 대신 우리에게 '삶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소식(小食)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운동으로 기력을 다지며, 문화의 향기로 영혼을 채운다면, 70세80세90세의 당신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닮고 싶은 선배이자, 스스로에게는 가장 당당한 '현역'으로 남을 것입니다.
청춘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의 반짝임에 있습니다. 오늘도 그 눈빛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되세겨 봅니다. 작성자(김종열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