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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자로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앞에 자고 계신 분들과 우리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파한 일로 인해서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혐의도 찾지 못하게 되었죠. 그리고 공예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협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해 보라 이렇게 말하며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거침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선언하게 된 것이죠.
결국 공회는 이 두 사도를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요. 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민심을 거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서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위협한 후에 석방해 주게 됩니다.
석방된 사도들은 풀려나자마자 곧장 동료들이 있던 신앙 공동체를 향해서 돌아가게 되죠. 그리고 자신들이 경험한 것, 특별히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신들에게 협박했던 그 발언을 소상히 그 공동체에게 알려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들의 보고를 들은 신앙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장면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공동체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또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24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4가지로 추려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들은요.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따라 합시다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이들은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요. 그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데 누가 기도하자 제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들은 기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한 것이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향후 믿는 자들에 대한 공해와 유대인들의 핍박이 점차 심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죠. 이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이제 핍박받겠구나 라는 생각이 이들의 마음 가운데 공론화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공동체는 무슨 공동체입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이며 이들이 모이는 분명한 목적이 있죠. 무엇입니까?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가르쳐서 제자 삼는 것이 이들 공동체의 목적입니다. 그러니 공의회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했던 이 협박은 단지 두 사람에게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해서 선포한 메시지와도 같은 것이죠. 그래서 사도들은 석방되자마자 곧장 모여 있던 교회 공동체에 가서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공동체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이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함께 기도했던 수요가 얼마만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아서 몇 명이 모여서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성령 충만하여 한 지향점을 향해서 한마음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이죠.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목적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는요.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그 힘과 능력이 더해지기 때문에 그렇지 왜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백짓장도 맡으면 맞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도 함께 힘을 모으면 그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에서도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는 뭐라고 말합니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또한 전도서 4장 9절, 12절에 보면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덜 신났다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전도서 말씀 한번 읽어보실까요? 4장 9절에서 12절 시작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이니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물을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요 저와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신앙 공동체로 형성케 하셨다. 우리 신앙 공동체로 묶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시는 공동체가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쉽게 끊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명인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우리에게 응답이 필요한 기도의 제목들이 있잖아요. 그러한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혼자 기도하지 마시고, 물론 혼자 기도해도 되겠지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합심하여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이 나타나 우리 앞에 있는 당면한 문제들이 멋지게 돌파되어지고, 그리하여서 하나가 되는 참사랑의 공동체로 세워가는 우리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한마음으로 도 두 번째 이들은요. 소리 높여 기도했다. 따라 합시다. 소리 높여 기도했다. 여러분 이들이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소리를 높여서 기도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들이 얼마나 절박함으로 전심 전력을 다해서 기도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9장 12절, 13절 먼저 읽어보실까요?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오, 너희가 온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오. 나를 만나리라.
할렐루야 33장 2절, 3절, 예레미야 33장 2절, 3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도 있죠. 같이 읽어봅니다.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여러분 간절함이라는 것은요. 부르짖음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때로는 묵상 기도도 필요하고요. 때로는 욕조리는 기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소리 높여 부르짖음의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라는 사실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함께 모여서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입니까?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주일날 우리가 막 부르짖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래도 허락한 시간은요. 금요 기도예요. 금요 기도회 때 우리 교회가 당면한 문제라든지 개인의 문제 또한 복음을 위해서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이죠.
여러분 특별히 금요 기도회는 주일 예배를 위해서 우리가 합심하여서 기도하고요. 선교를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 부르짖는 기도에 동참하셔서 함께 소리 높여 기도함으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친히 경험하고 간증하는 우리 기도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이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거예요. 본문에 보니까 대주제여 지으신이시오라는 표현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향한 호칭으로 표현한 것이 대주제여라는 대주제여 이것은 천지를 만들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하는 그러한 단어입니다.
대주제 즉 하나님은 대주제로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분이십니다라는 것을 이들의 입술을 통해서 고백하게 된 것이죠. 협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공동체가 가장 먼저 말한 표현이 대주제요라는 이 단어임을 생각해 볼 때 비록 눈에 보이는 세상 이 세상은 로마 제국 그리고 공해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 같았지만 그 현상 너머로 실제로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이들이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요. 자신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고 급박한 상황 가운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대책 회의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문제가 생기면 뭐 어떻게 합니까? 가족들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니 모여봐 모여봐 우리 대책 회의를 좀 해보자 이렇게 하면서 대책 회의를 하잖아요. 어느 공동체나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런데 이들은 대책 회의를 먼저 한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만물의 통치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참 귀감이 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는 사자가 30일자를 찾는 그러한 세상들 우리는 그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들이었어.
그렇기 때문에 이 모습은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이며 어쩌면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실제 보기보다 참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살면서 느끼지 않습니까? 이 세상 이렇게 쭉 보면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단이 이 세상 권세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을 사단이 지배한다 할지라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단의 권세 앞에서도 우리가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다라는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여러분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늙지 못하실 일 없으신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승리하며 찬송하는 시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내 힘으로는 안 돼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믿었다는 것이죠. 이들이 기도할 때 네 번째 말씀을 토대로 기도했다. 따라 합시다.
말씀을 토대하여 기도하자.
25절 26절 한번 보실까요? 같이 읽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이 말씀은 시편 2편 1절 2절을 인용한 것인데, 당시 다윗이 반역자들에 의해서 쫓겨다니면서 지었던 시입니다. 공의회 협박에 직면했던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적용하면서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혹독한 핍박에 직면하게 될 때에 피할 길을 내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떠올리면서 그들과 맞서 우리가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놓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무엇을 의지해서 말씀을 의지해서 즉 신앙 공동체 기도는요. 말씀이 기초가 된 기도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이 없이 드리는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실제 말씀을 근거하지 않으면 어떤 기도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자기 욕심에 따른 기도가 나와요.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가 말하잖아요. 약속을 따라서 기도하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따라 기도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여러분 다른 종교도 기도하잖아요. 그걸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 전에 지수는 d 마이너스 100일이 지나갔습니다. 아마 갓바위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겠죠. 목적은 단 한 가지 무엇입니까? 자녀가 좋은 대학 가기를 위해서 부모로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말씀의 근거도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말씀을 근거로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자녀가 잘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좋은 대학 가기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그것이 어떻게 옳은 기도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녀를 위한 기도는 좋은 대학이 목적이 아니라 바른 신앙 성장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고 신앙을 잃는 것과 만족할 만한 대학은 아니지만 신앙을 지키는 것 무엇이 더 좋으세요?
대답하기 곤란하죠. 여러분 좋은 직장에 가서 신앙을 잃는 것과 별 볼 일 없는 직장이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이 신앙을 지키는 것과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렵죠. 똑같은 질문입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벌고 신앙을 잃는 것과 적당히 먹고 살면서 신앙을 지키는 것 무엇을 원하십니까? 물론 신앙이 성장하면서 좋은 대학도 가고 신앙도 성숙하면서 좋은 직장도 생기고 풍성한 신앙 아래서 돈도 풍성해진다면 가장 복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있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요. 신앙이 먼저냐 대학, 직장 돈이 먼저냐 말씀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말씀을 토대로 기도하여서 때로는 주님이 걸어가신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에도 동참하시고 때로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서는 그 놀라운 축복과 함께하는 복된 신앙인 복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는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29절 30절에 그들의 기도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여기에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소서라는 기도죠. 여러분 이 공동체는요. 공의회의 위협을 없애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앞으로 닥쳐올 환란과 핍박에 이 벗어남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들의 위협함을 우리 하나님께서 굽어봐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거예요. 굽어봐 달라라는 이 표현은 어떤 사물에 대해서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다는 거예요.
따라서 이들의 기도는요. 우리가 위협과 고난이 찾아오게 될 것인데 하나님 이거 그냥 없애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조명하시고 집중하셔서 이 상황들을 돌봐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들이 믿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겠어요? 고난은 그리스도가 당한 축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기도한 것이 이 고난만 생각하면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죠.
그러나 이 고난의 결과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타난 축복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이 기도가 나온 거예요. 우리 27절 28절 말씀 보면서 한번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여러분 이것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죠.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핍박이 시작되자 전날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고난당하셨나요? 또한 그 결과가 어떠함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기억했던 거예요. 그래서 기록한 것과 같이 우리 예수님께서 헤롯에 의해 조롱당하셨잖아요. 그리고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시고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신과 수모를 당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무엇이라고요? 다 하나님의 섭리였다라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성취된 것임을 고백한 것이죠. 그러니 축복의 고난을 없애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신 고난받는 자신들이 그 고난을 눈히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 돌봐주십시오. 하나님이 고난 앞에서 우리가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을 넉넉히 돌파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는 메가더 장군 자녀를 위한 기도를 했어요.
어떤 기도를 했냐 하면 주여 나의 자녀들을 평탄하게만 하지 마옵시고 고난도 주시옵소서 그리고 고난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 불편함만을 원치 않습니다. 고난도 주십시오. 그러나 고난만 주지 말고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 또한 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혹시 작은 고난만 있어도 없애달라고 기도하고 매사 우리의 기도가 평안과 안녕을 위해서만 간구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박해받는 것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천국을 소유하는 참복을 누릴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인으로 걸어가면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에 원망과 불평하면서 없애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고 굽어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길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을 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신은 공동체가 이런 기도로 인해서 더욱 단단해지고 뿌리가 깊어지는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요. 이들이 기도한 내용이 무엇인가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고난과 핍박으로 인해 낙심하여서 맡겨진 사명을 놓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죠. 오히려 환란이 찾아올수록 담대함을 주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 대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죠.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죠. 저와 여러분들을 그렇게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을 고백하는 자가 감당해야 될 사명 그것이 바로 복음 증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 전하는데 왜 우리가 머뭇머뭇하는 줄 알아요? 이것이 없어서 그래 그것은 무엇이냐 며 따라 합시다. 담대함 빈소리로 따라합시다. 담대함. 그래서 공동체가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담대함은 인간적 용기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인간적인 용기가 있으면 세상에 나가서도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교회와 성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담대함은 내가 갖고 싶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에게 그 담대함, 우리 공동체 가운데 그 담대함을 주시옵소서라고 강구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공동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공동체에게 찾아왔던 협박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장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은 이도 전하지 않은 이도 그러면 세상 편하게 살 거예요. 하지만 이들이 기도한 것은 지체하지 마시고 담대함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이죠.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고난과 핍박이 올 것인데 그건 우리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면서라도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 속에는 자신의 안위와 평안보다는 복음 사명이 우선되었기 때문에 선포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이요 어떻게 살아야 가장 멋진 삶을 살 수가 있을까요? 주인의 말을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뭐 토달고 이게 좋습니다. 저게 좋습니다. 얘기하는 게 아니라 종은 주인이 말하는 대로 그것만 잘 수행하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핍박을 한다 하더라도 나의 주인 되신 주님이 명령한 것이라면 그 대사명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나의 삶의 주인이 나와 세상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삶의 주인이 우리 주님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이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가?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기적을 요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되어지고 누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나의 손을 통해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지금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 당시를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예수님 때의 치유, 표적 기사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어요.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귀한 사역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에 이런 말씀합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듣지 않다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면 믿는 거예요.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서도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하는 표적과 기사가 누구를 증거한다고요? 나를 증거한다. 예수가 곧 메시아의 증거에 따라 또한 로마서 15장 19절에 보면 바울도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복음을 전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로마서 15장 19절입니다. 시작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행하여 일루리봉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복음을 편만하게 전할 수 있었던 도구가 무엇이라고요?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었어 실제 공동체가 기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지금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공동체가 기도했잖아요. 기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무엇 때문입니까? 앉은뱅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난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솔로몬 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이 복음이 전해지자 종교 지도자들이 보고 분노하면서 두 사도를 감옥에 갔다 신문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서 협박의 메시지를 받게 되어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어요?
즉 이들은 이미 복음의 사역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역들로 인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앞으로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복음을 위해 병을 낫게 하는 것과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서 이 복음이 온전하게 선포되어질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예수도의 이름으로요. 왜냐하면 마태복음에 보시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마태복음 24장 24절 우리 큰 목소리로 읽어봅니다. 시작.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도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누구를 미혹한다고요? 여러분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에요. 종종 이런 일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하는 경우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미혹하는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여러분 그래서 사탄도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기 위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들을 미혹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되어지고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이것이 때로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가 있는데 내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어지기를 위해서 기도되어지고 그리하여서 귀하게 쓰임 받는 치유의 사역, 회복의 사역들이 우리 안에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기도의 결과를 한번 보실까요?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지 31절 우리 한목소리로 읽어봅니다.
빌기를 다함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세 가지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인 곳에 진동이 있었다. 진동이라는 것은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는 외적 증거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경험하는 매우 객관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이죠. 여러분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다음과 같이 묘사해 줍니다. 연기가 자욱하고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시는데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산에 크게 진동하더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현장에 진동함이 있었다. 바울과 실라가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밤중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가운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리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메인 첩보들이 풀려졌다. 성경을 기록하고 있죠. 이러한 진동의 형상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외적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개인이든 공동체든 가끔 그런 거 경험할 때 있지 않아요 막 목이 떨리고 진동이 온다. 물론 경험하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저는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 개인이 기도하든지 아니면 수련할 때 막 공동체로 기도할 때 막 뜨겁게 진동하는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그 자리에 함께하시다는 외적 증거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금요일날 모여 기도할 때에 이 자리에 강력한 진동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 동안 기도해 주십시오. 이번 금요일날 이 자리에 진동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3주 동안 기도해 보시고 동참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시다.
두 번째는요. 무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이들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요. 이들이 요청했기 때문에 무엇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성령 충만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봉사가 되었든 전도가 되었든 내 힘으로 하기 시작하면 힘 빠지고 나면 원망 불평 나오고요. 때로는 짜증도 부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면 그것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할렐루야 내가 할 수 있는 내 모습과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과는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는 거예요. 공동체의 기도 응답은 모인 곳에 진동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함이 나타났다.
여러분 이번 금요일날 기대하시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임 가운데 진동과 함께 성령 충만을 주시옵소서 한 주간 함께 기도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거예요. 이들은 기도한 대로 믿고 믿은 대로 행한 거예요. 따라 합시다. 기도한 대로 믿고 믿는 대로 행하자. 그리고 그 행동의 중심에 뭐가 있었습니까? 성령 충만함이 있었다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사실 다 알잖아요.
그쵸? 다 인정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으니까 복음 전해야지 이거 알고 있지만 실제 전하는 사역을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개인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맡겨주신 사명 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십시오. 담대함을 주십시오. 그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모인 자들이 기도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 충만함 얻게 된다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참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제가 강력하게 여러분들에게 권망하며 요청을 드립니다. 내가 신은교회 공동체로서 한 일원이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은 공동체 귀한 사명자라고 생각하신다면 이번 금요일날 열릴 제청을 오시고 함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가 신앙이 깊다고 생각하시면 내가 직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열렬히 제쳐놓고 그 얘기들 나오십시오. 혹 내가 신앙이 좀 부족하다 생각하시면 신앙을 위해서 금요일에 나오십시오. 그래서 우리 함께 뜨겁게 기도하여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제가 개인적으로 권면하기 시작하면요. 그때부터 서로 피곤해지는 거예요. 강단에서 이렇게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감면할 때 함께해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세워져서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가정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길 원하신다면 공동체에 속한 모든 분들이 우리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함께 나와서 기도하는 일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진짜 사랑하십니까? 용돈을 줘서라도 그 누가 데리고 같이 기도하십시오. 내 자녀를 사랑한다 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어찌 우리가 사랑한다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 청년들도 참여하십시오. 청년들도 신은교회 공동체입니다. 청년회 이전에 신은교회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어르신들도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함께할 때에 우리 어르신들의 건강이 더 회복되어질 줄 믿습니다. 어르신들이 참석한다 하면 사랑을 갖고 계신 젊은 분들이 우리가 가서 모시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함께 힘을 모으고 그런 분위기가 된다면 교회가 살지 않겠어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세워지지 않겠어요.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을 모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멋진 공동체 기도하는 예수 공동체 신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같이 기도로 한번 일 좀 내보면 안 될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가 뭔가 큰 일을 내야 되지 않겠어요 그냥 그냥 이대로만 그냥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 신흥교회를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일이 있을 텐데 이 일을 우리 금요 기도회부터 하나님께서 터뜨려 주시옵소서 그래서 모이시면 좋겠어요.
특별히 이번 금요일날에는 고덕 아름다운 교회 개척하셔서 섬기고 계시는 박주동 목사님을 모시고 그 가정을 위해 다 같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막내 딸이 지난 7월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난치성 질병으로 단국대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복통과 설사 발열로 인해서 고생하는 가운데 치료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걸 치료하려면 임상 중에 있는 약을 처방해야 되는데 그 임상을 하는 병원이 많지 않아요. 서울에 몇 군데 하고 경북대병원, 칠곡, 경북대 병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의료계가 좀 어렵잖아요. 그래서 쉽게 입원할 수가 없는데 칠곡에 자리가 생겨서 지난 월요일날 칠곡 경북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개척한 지 2년 조금 지났고요. 사모님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어쩔 수 없이 경북대 병원에 내려와서 아이를 케어하고 있죠. 그리고 이제 주말에 올라가시고 사모님이 내려오시고 그러한 상황으로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이 되었어요. 상황이 길어지면 이곳에서 일자리를 잡아야 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참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월요일 오전에 전화를 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12시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왜 아기 배가 아프시 그리고 제가 한 주 동안 무지하게 고생을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까지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그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기도했어. 하나님 좋아요. 제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에는 지장이 없게 해주십시오. 새벽 예배 제가 맡겨진 금요 예배 주일 예배에는 지장이 없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이번 주 말씀을 이렇게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는데 그 아이의 마음을 주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 특별히 제가 9년 전이다. 복통으로 아파가지고 위에서부터 점막이 생겨가지고 원인 모를 병으로 지금 일주일 동안 입원했던 기억들 하시죠 일주일 동안 입원하신 우리 장로님들도 오시고 제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주일 동안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빼고 싶지 않아도 그냥 일주일 되니까 10kg 빠지더라고요. 그때도 저는 원인 모를 병이었고 그때 퇴원해서 그냥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지금 대학병원 가도 계속 원인을 밝힐 수 없고 계속 임상 실험 쪽으로 가니 이제 못 가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셨어요.
그러니까 저희 일주일 동안 그 목사님 자녀가 여기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후부터 일주일 동안 제가 아프면서 그때가 생각나고 또 이 아이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가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저는 어디에 있어야 있습니까? 대구에 있어야 올라 그쵸. 근데 그 목사님은 대구에 있으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사명자로 부를 때는 고덕에 보내기 위해서 보내신 분이에요. 그래서 빨리 쫓아내야 돼요. 빨리 빨리 집으로 교회로 보내야 돼요.
여러분 그 일에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래서 그 역사하심을 통해서 고독 아름다운 교회가 이제 2년 조금 넘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그 땅 가운데 일어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 신은교회에도 이러한 놀라운 기도의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친히 경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분명하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병 고침 받는 이 놀라운 사역에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