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로 번역한 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행하고’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 문장에 나오는 믿음은 나의 믿음이 아니다.
‘믿음(피스테오스)’이 ‘소유격’으로 되어있고 그 앞에 ‘디아’ 전치사가 나온다. 예수께서 가지고 온 믿음 안으로 들어가서 그 믿음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생명이다. 이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다.
‘페리 파투멘’은 1인칭 복수로서 살다, 좋아하다, 행하다. ‘보는 것’으로 번역한 ‘에이두스’는 겉 사람(에고)의 눈을 통해서 보는 믿음이다. 말씀은 이처럼 겉 사람의 믿음과 속사람의 믿음을 온전히 구별하였다.
겉 사람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보는(에이두스) 것은 모두 왜곡되고 변한다. 이것이 창세기 2장부터 나오는 아담과 화와의 이야기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하아담과 하잇솨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에 대하여 왜곡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관사가 없다)과 하와는 왜곡하여 알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이 선악 지식(좋아함 싫어함을 알게 하는)의 나무로부터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뱀의 꼬임에 의한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